16. 시기(3)
주아는 주연이 아무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못마땅했다. 태어나보니 이모와 이모부의 딸이었고, 숨만 쉬어도 사랑받았고, 잘 먹고 잘 자기만 해도 칭찬받았다. 이모와 이모부가 주연이를 귀하게 대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주연이를 그렇게 대해주었다. 이뻐 죽겠다는 부모의 눈빛과 타인들의 관심과 환대를 기본값으로 생각하는 주연를 바라보며 어린 주아는 인생이 정말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아는 세상의 주인공이 자신이 아니라 주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이름의 의미를 써가는 숙제를 하면서 주아는 주연이라는 이름에 주인공으로 살아가라는 이모 부부의 염원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았다. 주아의 부모는 아시아의 기둥이 되라고 주아라고 지었다고 했는데, 주아는 세계가 아니라 굳이 아시아로 범위를 좁혀 놓았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옥편을 찾아볼 수 있는 나이가 되고 ‘아’에 아시아라는 의미뿐 아니라 버금이라는 의미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주아는, 정말 이름대로 살아가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주아는 자기라도 주연이를 싫어해야 공평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주연이를 마주하게 되면 그럴 수가 없었다. 주아는 이모만큼이나 주연이 좋았다. 주아는 주연이가 자기 부모나 가연이보다 자신을 더 좋아해주기를 바랐고, 주연이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이었으면 했다. 주아는 이모를 독점할 수는 없어도 주연을 독점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주아는 주연이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해주었다. 이모와 함께 다니던 어린 시절에는 주아가 딱히 해줄 것이 없었지만, 초등학교에 가면서 주연은 같은 반이 된 주아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주연은 초등학교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고, 친구도 쉽게 사귀지 못했다. 노력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주연은 아이들 사이에 끼는 것을 힘들어 했기에 주아하고만 어울리려고 했다. 주아는 주변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하교할 때 집에 같이 가기도 하면서, 곧 한 무리의 친구를 만들었다. 주아가 만든 무리에 주연이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면서 모든 문제가 사라졌다. 주연은 새 학년이 될 때마다 새로운 반에 적응하기 힘들어했는데, 그때마다 주아가 만들어 놓은 친구들이 도와주곤 했다.
주아는 도움을 주고도 개운하지 않았다. 주연이 힘들고 외로워지는 게 싫었던 거지, 모든 친구를 공유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일단 모두가 친구가 되고 보니 아이들은 주연의 곁에 몰려들었다. 주아가 보기에 주연이 특별히 남에게 잘해주지도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같았는데 아이들은 주연을 좋아했다. 남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말하고, 함께 하자고 제안하는 것들을 기분 좋게 함께 해주는 친구는 주연이뿐이라며 다들 그녀와 함께 어울리고 싶어했다. 아이들이 주연을 둘러싸면 주아는 한쪽으로 밀려나는 기분이 들었다. 주연은 늘 주아를 찾았지만, 주아는 책을 꺼내 읽거나 집에 혼자 돌아가며 관심 없는 척했다. 선생님들도 해맑은 주연이를 귀여워했다. 경미 이모는 주연이가 있는 반에는 싸움이 일어나지 않고, 소외되는 아이가 없다고 선생님이 칭찬했다며 주아의 엄마에게 자랑했다. 주아는 그 소외되는 아이가 주연이일 뻔했던 것을 자기가 막은 거라고, 자기 때문에 반에 평화가 온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시험 시간에 덜렁거려서 한 문제를 틀린 것에 화가 나 있는 엄마가 무서워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주아는 열심히 움직여서 친구를 만들었고, 열심히 공부해서 겨우 선생님의 사랑을 받았는데, 주연이는 모든 것을 너무 쉽게 가지는 것 같아 얄미웠다. 자기 덕에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신만의 친구들을 만들어가는 것도 싫었고, 그래서 자신과 영영 멀어질까봐 두려웠다. 등교하다가 반 친구를 만난 주연이 자신을 버리고 뛰어가는 것도 서운했고, 하굣길에 아무 말 없이 반 아이들과 가버리는 것도 화가 났다. 주연이 함께 다니던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고 반 아이의 엄마가 운영하는 학원으로 옮기면서 둘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둘이 노는 시간은 주연이네 가족 행사가 없는 주말이나 주아네 집이 비어있는 밤 시간 주연이 이모의 심부름으로 저녁을 가져다줄 때뿐이었다. 주아는 예전처럼 이모네 집에 자주 가지 않았고, 이모 역시 주아와 자기 아이들을 함께 데리고 다니지 않았다. 그 대신 빈집을 지키고 있는 주아에게 밥을 가져다주고 청소와 빨래를 도와주었다. 주아는 그 시간만이라도 이모를 독점할 수 있어 그나마 괜찮았지만, 진짜 외톨이가 된 것 같아 속상했다.
외톨이가 된 주아는 주연을 모두에게서 빼앗아오고 싶었다. 아니, 동시에 주연에게서 모두를 빼앗고 싶었다고 하는 것도 맞다. 주연과 사이가 멀어질지라도 그 애들을 다 분리해버리고 싶었다. 주아는 이모가 그랬던 것처럼, 약간의 진실이 담긴 이야기와 이상한 뉘앙스만으로도 서로 의심할 만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주아는 주연에게 들은 이야기나 다른 데서 들은 이야기, 만들어낸 이야기를 친구가 많고 수다스러운 아이들에게 조금씩 흘렸다. 주연의 친구들의 비밀 아닌 비밀이 교실 가득 퍼져나갔다. 거짓말들은 곧 사라졌으나, 진실이 담긴 이야기가 그들에게 큰 균열을 만들었다. 부모가 이혼해 아빠와 산다는 사실을 숨겼던 친구는 그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자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같은 반 남자아이를 좋아하는 마음을 들키게 된 아이와 주연에게 무리의 다른 친구의 험담을 했던 아이는 다른 아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자 괴로워했다. 그 무리의 아이들은 비밀을 지키지 않은 것이 누구인지 서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주아는 주연을 위로했다. ‘너희 반 아이들 다 너를 욕하고 있지만, 나는 네가 그러지 않은 것을 알아. 나는 너를 끝까지 믿을 거니까 힘내.’ 주연에게는 위로보다 욕한다는 말이 귀에 콕 박혔을 뿐이었는데, 그 또한 주아의 계획이었다. 주연이 누가 욕을 하는 건지 묻자 주아는 그냥 여기저기서 전해들었을 뿐이고, 누가 퍼뜨린 소문인지는 모른다고 답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을 너무 믿지 말라고 충고했다. 주아의 계획은 여기까지였다. 아이들에게 질린 주연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로 돌아오는 결말만을 기대했다. 그러나 주연은 생각보다 나약했다. 모든 아이들이 자신을 욕한다며 등교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경미 이모는 학교에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려했지만 선생님은 아이들 간의 작은 싸움으로 생각하고, 이모를 예민하고 극성스러운 부모 취급했다. 이모는 어머니회에서 활동하는 주아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이들 간의 잡다한 일을 귀찮아하던 늙은 교사는 아이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아이들은 서로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고 했고, 욕을 한 적도 없다며 사과와 화해를 거부했다. 이 사건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진실이 무엇인지 밝힐 의지는 없었고, 무사히 학년이 끝나는 것만 신경쓴 선생님과 서로에게 화가 나 대화를 거부하게 된 아이들 덕택에 주아의 악행은 결국 드러나지 않았다.
주연은 조금 주눅이 들고 어두워진 아이가 되었을 뿐, 예전처럼 주아의 절친한 친구로 돌아오지 않았다. 주연은 아이들이 모여서 자기만 쳐다봐도 자기 욕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아이들이 당연히 자신을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다. 주연은 주아 또한 자기 앞에서는 편을 들어주지만 자기 무리에 가서는 어떤 말을 할지 모른다고 의심했다. 주아는 그게 다 자기 탓인 것 같아 괴로웠다. 잘 웃지 않는 주연이와 그것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경미 이모를 보면 마음이 썩어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들 앞에 엎드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싶었으나 그들이 자신을 싫어하게 되어 영영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그럴 수 없었다. 밥도 먹지 못하고, 잠을 자지 못하는 날이 길어졌지만, 주아가 그렇게 괴로워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아는 허공에 대고, 이불 속에서, 기차가 지나가는 기찻길을 향해 자기 잘못이라고 소리치곤 했다. 학교 가는 길에, 쉬는 시간에 엎드린 채로, 피아노를 치면서 자기도 모르게 계속 자기 잘못을 곱씹어댔지만, 괴로운 마음은 나아지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평생 그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새벽 주아는 술에 취해 들어와 소파에 쓰러져 누워 잠든 엄마의 곁에 앉아 말했다. 잠들어 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그간 품어온 마음을 고해성사하듯 쏟아냈다.
“엄마. 사실 제가 주연이네 반 애들을 이간질했어요. 걔가 가진 게 질투가 나서 다 빼앗아버리고 싶었어요. 못 쓰게 다 부숴버리고 나한테 돌아오게 하고 싶었어요. 사실 이모네 식구들도 다 그렇게 해버리고 싶어요. 내가 너무 나쁜 애라 죄송해요, 엄마. ”
“멍청하게 굴지 마. 질투는 빼앗길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인데, 친구, 이모네 식구들 다 네 것이 아니잖아? 자기한테 없는 걸 부러워하고 가지고 싶어하는 건 시기라고. 그런데, 남의 걸 부러워할 수도 있고, 가지고 싶어할 수도 있는 거지. 그걸 네가 노력해서 가져오겠다는데, 그게 뭐가 나빠? 빼앗기는 것보다 빼앗는 게 낫다고 내가 몇 번을 얘기했어?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자는 줄 알았던 엄마는 눈을 감은 채로 주정하듯 불명확한 발음으로 중얼거렸지만, 너무나 엄마다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주아는 자신이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닮은 딸인가 싶어 몹시도 수치스러웠다. 주아는 시기심으로 남의 소중한 것을 부숴버리는 짓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주아는 시기심을 한 번도 버린 적이 없었다. 자신에게 없는 덕목을 가진 사람을 보기만 해도 모두 망쳐버리고 싶던 그 이상한 마음이 시기심의 다른 얼굴이었던 것이다.
주아는 정말 경미 이모의 시기심 없음을 닮고 싶었다.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게 많았던 경미 이모는 엄마를 부러워했을지 모르지만 빼앗으려하지 않았다. 엄마 곁에서 하소연을 들어주고, 힘들 일을 도와주고, 주아를 챙겨주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결국 그 긴 시간의 노력은 엄마에게서 주아를 빼앗는 것을 성공시켰다. 이모의 시기심은 자식이 부모에게 느껴야 할 존경, 애정, 닮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향하도록 오랜 시간 공을 들인 것이다. 주아는 경미 이모가 자신의 빈자리를 계속 채워주며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준 목적이 그것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부정할 수는 없었다. 평생 자신이 빼앗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엄마는, 주아의 모든 것을 경미 이모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세상을 떠났으니, 경미 이모의 승리였다. 과연 진짜 승리였는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