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회

17. 발뺌 (2)

17. 발뺌 (2)  

 주아의 집에 있는 한 자연산은 안전했다. 주아만 말하지 않으면 자연산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범생이라고 불리는 주아와 날라리라고 불리는 자연산이 함께 지낼 거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연산은 집으로도 모자라 사람으로 보호막을 만들겠다는 듯, 아이들을 계속 데리고 들어왔다. 그녀는 마치 사람들 속에 숨어 지내기로 한 사람처럼 보였는데, 주아는 그럴 수 있는 자연산이 부러웠다. 그녀처럼 사람들을 따르게 하는 능력도, 학교에 가지 않고도 불안해하지 않을 배짱도 주아에게는 없었다. 주아는 아이들이 대체 자연산의 뭘 믿고 여기까지 따라와 지내는 건지 궁금했다. 자연산은 모두가 갈 곳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했지만, 주아는 그 많은 애들이 모두 하나같이 불우하고 갈 데가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사실 자연산도 믿을 수 없었다. 정말 아빠에게 폭행을 당한 게 맞는지, 아니면 다른 데서 맞고 와서 아빠 핑계를 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을 이용하려고 접근했던 건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했으나 그래도 자신을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더는 생각하지 않았다. 
    주아는 자기 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몰랐다. 주아가 집주인인 줄 모르는 아이들도 있는 것 같았다. 갈 데 없는 애들은 쫓겨나도 상관없다는 듯, 제멋대로 행동했다. 집은 더 엉망이 되었지만, 주아는 자연산이 그애들 편을 드는 꼴을 또 보게 될 것 같아 치워달라고 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부려놓은 음식물 쓰레기와 마당에 던져놓은 쓰레기에 벌레가 꼬이는 걸 두고 보지 못한 주아가 청소를 시작해도 관심을 두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눈치가 있는 아이들 몇 명이 자기가 어지른 것들을 주섬주섬 주워담는 시늉을 하다가 나가자 소파에 누워 있던 자연산이 남은 아이들에게 말했다. ‘불편한 사람이 좀 치우자. 그런 사람 있으면 손 들어봐.’ 그녀의 옆에 있던 아이들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히죽히죽 웃었다. 불편한 사람이 없으면 굳이 안 치워도 되겠다는 자연산의 말에 주아는 쥐가 들어올 수도 있다고 화를 내려다가 집 하나 가지고 유세한다는 소리를 들을 게 분명하다는 생각에 애써 참았다. 그 대신에 엄마가 돌아와서 잔소리할 것 같다고 한마디했다. ‘안 돌아오실 것 같은데? 너도 느낌 오지 않아? 돌아오면 내가 같이 혼나줄 테니까 걱정 마.’ 주아는 자기 방, 아니 엄마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면서, 같이 혼나는 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하다가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자연산 말대로 걱정을 거뒀다. 
    주아는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기로 했다. 빈집 대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아도 되고, 자기가 없는 새 누군가 들어와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밤을 혼자 보내지 않아도 되고, 사람이건 귀신이건 들어와도 혼자 싸우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든든한지, 그래도 안방에는 들어오지 않는 걸 보면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애들일지도 모른다고 애써 생각했다. 사람이 많아서 밤에 누구 하나는 깨어 있으니 그것도 다행이었고, 가끔 자연산과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그걸로도 된 거라고 생각했다. 시끄러운 것은 이어폰으로 귀를 막아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이어폰을 뚫고 들어오는 소리를 피할 방법은 없었다. 주아는 그애들이 십 초마다 추임새처럼 내뱉는 욕설을 들어야 했다. 부모의 재산을 앗아간 사기꾼 욕, 멍청하게 사기당한 부모 욕, 철없는 형제 욕, 이기적인 친구 욕,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남자아이 욕, 그 남자애 옆에 붙어 있는 여자애 욕, 자기 앞을 가로막는 길가의 장애물 욕, 시끄럽게 지나가는 기차 욕, 거실 깊이 들어오는 햇빛 욕, 밤에도 가시지 않는 더위 욕,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옆 친구 욕, 욕하게 만드는 세상 욕. 그러다가 목소리가 작아지면, 주아는 오히려 음악을 끄고 숨죽여 소리에 집중했다. 거지 같은 집 하나 가지고 위세 떠는 년, 눈으로 욕하는 년, 자기도 엉망이면서 깨끗한 척하는 년, 공부 하나 잘한다고 뭐라도 되는 척하는 년. 주아는 이름이 들리지 않아도 그것이 자신의 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아는 어느 날 그 욕의 끝에서 낮은 남자 목소리를 처음 듣고 화들짝 놀랐다. 
    ‘야, 방에서 담배 피우지 마. 한 걸음만 나가면 밖인데, 남의 집에서 뭣들 하는 거야. 희진이 너도 문제야. 네 집도 아닌데 애들 데리고 와서 이러면 안 되지.’
    주아는 집에 남자가 있다는 것도, 언제 들어왔는지도 몰랐지만, 자신에 대한 욕을 멈추게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신해줘서 싫지만은 않았다. 그가 자연산의 이름을 부르는 걸 보면 친한 친구인가 싶어 누구인지 보고 싶었으나, 자신의 욕을 하던 애들의 얼굴까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는 않아 나가지 않았다. 
    그를 처음 본 건 다음날 아침 등교를 준비하려 일어나서였다. 씻으러 나가던 주아는 소파에 누워 자다가 눈을 뜬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몸을 털고 일어나 말을 건넸다. ‘희진이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 있게 해줘서 고마워. 나는 태규야.’ 주아는 딱히 그를 있게 해준 건 아니라 뭐라 할 말이 없어 고개만 까딱했다. 그는 키가 작고 마른데다 여자애 같은 인상이어서 여자애들만 있는 곳에 있어도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주아는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엉망인 애들에게 쓴소리까지 해주는 그를 굳이 내보내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자연산은 주아에게 다른 여자애들을 소개하지 않았듯 그 또한 소개하지 않았다. 주아는 태규는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남자애들이 더 들어오는 것은 싫어서 걱정했으나 그런 일은 없었다. 주아는 눈치로 둘이 연인 관계일지 모른다고 짐작하고는 그에게 따로 묻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주아는 문밖의 소리에 계속 귀를 기울이느라 기말고사 공부에 집중할 수 없어 독서실에 등록했다. 자기가 없는 사이 집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어쩌나, 엄마가 돌아오기라도 하면 어쩌나, 불안을 끌어안고 독서실에 꾸역꾸역 앉아 있었다. 집중이 되지 않아 같은 페이지를 반복해서 보느라 금세 새벽이 되었다. 아무도 없는 캄캄한 길을 걸어 돌아가는 것이 무서웠지만, 아무도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겠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감각이 좋았다. 
    적어도 한명은 깨어 있을 줄 알았는데, 대문 너머는 캄캄했고 너무 고요했다. 그렇게 싫었으면서도 아이들이 혹시 모두 떠나버린 게 아닐까, 마음이 덜컥 내려앉아 얼른 대문을 열고 들어가 현관 앞에 놓인 신발을 확인했다. 그리고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더운 방에서 뒤엉켜 자는 아이들 속에서 자연산의 얼굴을 찾아내고는 안심했다. 주아는 마당 한쪽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태규가 자신의 행동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화들짝 놀랐다. ‘많이 늦었네. 애들 다 어디 안 가. 너 고독한 거구나.’ 태규는 마치 주아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바라보았다. 고독이라니. 주아는 고독이라는 말을 일상어로 쓰는 고등학생은 처음 보았다. 학교도 가지 않는 애가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주아에게 고독이라는 단어는 그때 처음 생성되어 일상을 장악했다. 그간 그 감각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아빠의 옷을 덮고 골방에 누워 불면의 밤을 보냈을 때, 텅 빈 집 벽에 튕겨 돌아오는 자신의 노랫소리를 들었을 때, 엄마가 사놓고 나간 문제집들을 다 풀 때까지 돌아오지 않아 스스로 채점해야 했을 때, 엄마의 잠옷에서 다 빠져나간 냄새를 맡아보려 했을 때, 짐이 다 빠진 경미 이모네 집을 돌아보았을 때,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다 먹어버린 척하며 엎드려 있을 때, 아무도 자신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궁금해하지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런 시간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을 때 느껴본 감각이었다. 그 파편적인 감각들이 모두 고독이라는 이름으로 모이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겁게 느껴졌다. 
    주아는 그 말을 머리에 심어놓은 태규가 영 거슬렸다. 많은 아이들 사이에 있는 그가 눈에 거슬렸고, 그가 집에 없어도 거슬렸다. 다른 아이들의 대화 속에서 유독 크게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고, 그의 웃음소리도 거슬렸다. 그가 ‘희진아’ 하고 자연산의 본명을 부르는 것도, 여자애들이 스스럼없이 그의 손을 잡고 팔짱을 끼는 것도 거슬렸다. 주아는 그와 눈이 마주치면 얼른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주아가 그러든지 말든지 그는 눈이 마주치면 빙그레 웃거나 뭐 필요한 게 있냐고 묻는 듯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곤 했다. 주아가 그에게 뭔가를 해달라 한 적은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그는 뭐든 알아서 해주곤 했다. 그가 들어온 뒤, 애들은 밥도 지어 먹고 청소도 하는 것 같았다. 마당에 쌓여 있던 쓰레깃더미가 사라지고, 재떨이가 생겼다. 돈이 어디서 났는지 냉장고도 채워넣는 것 같았다. 
    주아는 그가 너무 거슬려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를 보지 않으면 괜찮을까 싶어 늦게까지 독서실에 있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태규는 평소보다 귀가가 늦어지는 게 걱정되어 찾아왔다며 독서실까지 마중을 나왔다. 주아는 아무도 없는 밤거리를 그와 함께 걸었다. 그의 그림자, 발소리, 숨소리, 웃음소리, 자신의 손등에 살짝 부딪히는 그의 손등의 감촉, 그의 땀냄새, 그 밤의 공기와 풀벌레 소리 뭐하나 거슬리지 않는 것이 없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걸으면서 그가 하는 말들, 이를테면, 불공평한 세상을 정직하게 살아가는 게 바보라는 말, 자기는 꼭 성공해서 부자놈들에게 복수할 거라는 말, 물론 너는 빼고라는 말, 나중에 꼭 은혜를 갚겠다는 말도 거슬렸다. 얼굴 말고는 잘 알지도 못하는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거슬렸다. 주아가 불편한 내색을 해도 기말고사가 끝날 때까지 그는 계속 마중을 나왔다. 돌아가는 시간이 늘 같지 않았는데도 집에 가는 길 어디에선가 그를 마주치곤 했다. 어느 날은 외출했다가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고, 어느 날은 집에서 자다가 나왔다고 했다. 
    둘이 집으로 돌아가면 아이들은 모두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가끔 누군가가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리거나, 싸우는 소리가 들려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주아는 여자애들이 그렇게 많이 모여 있는데 별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데다, 태규가 어떤 상황인지 대충 설명을 해줘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그런 날에는 자연산이 깨어 있다가 맞아주었는데, 주아는 그녀의 표정에서 난감하고 어색한 표정을 읽곤 했다. 처음에 둘이 사귀냐고 주아가 물었을 때, 둘은 서로를 경멸하는 표정으로 마주보며 고개를 저었던데다 서로를 함부로 대하는 것 같아 사귀는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그런 행동들이 허물없이 가까운 사이에서만 가능한 일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주아는 그 둘이 서로 가장 가까울 거라고 생각하면 질투가 났다. 자연산을 태규에게, 태규를 자연산에 빼앗긴 기분이 들었지만, 둘 모두 자신의 것이었던 적이 없어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없었다. 주아는 자신이 없는 시간 과연 이 둘이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자신의 집에 있는 아이들은 무슨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했다. 아이들이 이 둘을 남겨두고 나가지 않기를 바랐지만, 학교를 가야 하는 주아가 알 길은 없었다. 주아는 원래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독서실로 가곤 했지만, 궁금증이 생긴 뒤로는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새로 챙겨 독서실을 갔다. 아이들의 총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집에 들러봐도 누가 나가고 누가 있는 건지 알 수도 없었다. 아무튼 자연산과 태규 둘만 남을 때는 없었고, 둘 다 없을 때도 없었기에 주아는 안심했다. 
    방학이 될 때까지 자연산은 자기 아빠에게 발각되지 않고 잘 숨어 지냈다. 주아는 자연산의 아빠가 실종 신고라도 해서 자기를 찾아오기라도 할까봐 걱정스러웠지만, 주아가 자연산의 측근이라고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주아는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으나, 엄마는 가끔 전화만 걸어왔다. 엄마는 자기가 어디서 지내는지, 언제쯤 들어올지 말해주지 않았고, 성적에 관해서만 물어보았다. 엄마는 기말 성적이 떨어져 등급이 하나 낮아진 것에 대해서 질책했을 뿐, 주아가 어떻게 지내는지, 무엇을 먹으며 지내는지, 누구와 지내는지 물어보지 않았기에 주아는 집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아무 말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나갈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마치 자기 집이라도 되는 듯,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생활했다. 방학이 되어 집에 있게 된 주아가 관찰한 결과 애들은 밤낮이 바뀐 사람들처럼 정오가 다 되어 일어났다. 그들은 거울 앞에 한 시간을 넘게 뻗치고 앉아 화장을 했다. 에어컨이 없네, 선풍기가 한 대뿐이네 투덜거리면서 변신을 한 뒤에 해가 질 무렵 삼삼오오 짝을 지어 놀러 나갔다가 새벽에나 돌아왔다. 그 화려한 애들 사이에 있으면 자연산이 정말 자연산으로 보일 정도였다. 자연산은 가끔 나가기도 했지만, 주아가 있으면 옆에 붙어앉아 수다를 떨며 혼을 빼놓곤 했다.  
    한 이틀을 그렇게 지내다보니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는 것 같아 주아는 불안했다.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채 개학을 맞게 될까 걱정스러웠던 주아는 다시 독서실에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독서실에는 에어컨도 있고, 돌아오면서 태규와 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도 생길 것 같아 나간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험 기간이 아니라 초저녁에 들어가곤 했기 때문에 태규가 마중을 나오지 않았고, 집에 가도 그를 볼 수 없었다. 태규는 매일 오후쯤 나갔다가 밤늦게 돌어오는 아이들과 함께 들어오는 것 같았다. 주아는 태규가 그 길에 자신을 마중나오곤 했음을 떠올리다 실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매번 자기를 데리러 와준 것이 쉽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은 감동했다. 주아는 그런 마음이 너무 거슬려서 그가 꼴도 보기 싫었다. 그와 함께 나가는 아이들, 함께 돌아오는 아이들, 그가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는 아이들, 그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 아이들, 그가 부채질해주는 아이들, 그의 곁에 누워 선풍기를 함께 쓰며 열대야를 보내는 아이들 모두 꼴 보기 싫었다. 자연산은 그런 마음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운을 띄워봤지만, 그녀는 애들이 동생 같고 친구 같아서 그가 잘해주는 거라며 헐렁하게 굴었다. 주아는 그런 자연산에게서 그를 빼앗는 건 정말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독서실에 앉아 있는 시간 대부분을 그 궁리를 하는 데 썼다. 그러나 주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을 빼앗겼다.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뿐 아니라 자신의 것이 아닌 것까지 모두 빼앗겼다. 그리고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그녀의 미래까지 모조리 빼앗겼다. 
    폭염이 심해 조금 늦게 들어갔던 날 주아는 골목 어귀에 정차되어 있는 경찰차를 보고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자연산이 집에 있는 것을 들켰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골목으로 뛰어들어갔다. 집의 대문은 열려 있었고 안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이 시커멓고 땀에 절어 있는 한 여자가 집주인이 누구냐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고, 옆에 선 경찰이 그녀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자연산이나 태규도 보이지 않았고, 이름을 모르는 아이들 몇 명이 겁에 질린 얼굴로 마당 한쪽에 어깨를 움츠리고 서 있었다. 아이들은 주아를 가리키며 저 언니가 주인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주아는 그 애들이 자기보다 어리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처음 알고 놀랐다. 여자는 무슨 일이냐고 묻는 주아의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너구나. 네년이구나.’ 너가 누구를 가리키는 건지, 왜 그러는 건지 짐작도 할 수 없었던 주아는 멍청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주아의 머리와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여자를 경찰이 겨우 떼어놓았다. 경찰은 ‘영주’라는 아이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집에 있는 아이들의 이름을 다 모른다는 주아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여자는 갑자기 신발을 신은 채로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방문을 열어보더니 부엌으로 들어갔다. ‘여기라고요.’ 여자는 골방 문을 열고 서서 소리쳤다. 주아와 경찰은 그곳에서 피에 젖은 쿠션과 벽지와 장판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경찰은 그 방의 용도가 무엇이며 왜 이렇게 되어 있느냐고 다그쳤다. 주아는 그 방이 자신의 은신처라고 말하지 못했다. 아빠가 벽지를 발라주고 쿠션을 넣어준 골방이 그렇게 된 것에 충격을 받은 데다, 그런 곳에 몸을 숨기고 안전함을 느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주아는 무고한 집주인에 지나지 않았고, 죄가 있다면 무지뿐이었다. 영주라는 이름은 그날 처음 들었고, 얼굴도 본 적 없었다. 중학생이라는 영주가 그 방에 한 달 정도 갇혀 있었다던데, 주아는 집에 자연산이 들어오고 난 뒤로 밤이 무섭지 않았으니 그 방문을 열어볼 일이 없었다. 다른 애들이 차려놓은 밥을 먹었으므로 주아가 부엌 쪽으로 갈 일도 없었고, 독서실에서 늦게 들어와 잠깐 눈을 붙이고 나가곤 해서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여자는 골방문을 닫고 들어가 소리쳤다. 그 소리는 문밖으로 고스란히 새어나와 모두의 귀에 콕콕 박혔다. ‘이 천벌을 받을 년아. 갇혀서 이렇게 밤낮없이 소리쳤다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너 같으면 네 말을 믿을 수 있겠어?’ 경찰도 못 들었을 수가 없다며 의심스러운 얼굴로 주아를 바라보았다. ‘영주가 도망치지 않았으면 여기서 죽어도 몰랐을 거예요. 애가 이 지경이 되도록 때리는 것도 모자라 가둬놓고 굶기는 게 인간이 할 짓이냐고요. 이건 살인미수예요. 경찰관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주아는 오갈 데 없는 친구들에게 아무 대가 없이 집을 빌려주었을 뿐이라고, 자신의 선의가 이런 결과를 초래했을 거라고 생각했으면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차분히 말했다. 여자는 너도 공범이라고, 이 집만 아니었다면, 이 방만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거라며 울었다. 집에 남은 아이들은 아무도 주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해주지 않았고, 주아도 더는 입이 떨어지지 않아 그녀의 통곡을 듣고만 있었다. 
    ‘우리 애가 그럴 리 없어요. 내 딸은 내가 제일 잘 알아요. 내가 그렇게 키우지를 않았다고요.’ 
    주아를 완전히 믿는 사람은 엄마가 유일했다. 주아는 자기가 미성년자여서 보호자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면 아마 그 모든 조사를 혼자 고스란히 받아야 했을 것이고, 아무도 항변해주지도 믿어주지도 않는 억울한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와 오랜만에 재회한 장소가 경찰서라는 사실이 기막혔지만, 그래도 주아는 자신에게 엄마가 있고, 그녀가 자신을 믿어주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믿는 게 주아인지, 엄마 자신인지 분간이 가지는 않았지만, 주아에게 의지가 되었으니 그게 뭐든 상관없었다. 주아는 영주의 얼굴을 그날 처음 보았다. 부모가 실종 신고를 했던 사진과 사건 이후의 사진이 함께 프린트되어 있었는데, 두 얼굴이 전혀 다른 사람 같아 알아볼 수 없었다. 물론 그 두 얼굴 모두 주아는 모른다고 했고 그건 진실이었다. 영주의 얼굴은 시커먼 멍으로 덮여 있었고, 눈두덩이와 입술 주변이 찢어져 있었다. 온몸도 멍과 상처로 가득했다. 주아는 그애를 누가 때린 것인지, 왜 때린 것인지 궁금했지만 자신을 무죄를 주장하는데 급급해 물어볼 수가 없었다. 엄마는 그 사진을 보고 놀라면서도, 여전히 주아가 그럴 수 있는 애가 아니라고 딱 잘라 장담했다. 경찰서에서 나와 두부 전골을 먹으며 엄마는 주아에게 물었다. ‘아니지?’ 주아는 목이 콱 막혀서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엄마와 헤어져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왔다. 
    자연산과 태규, 집에 살던 아이들이 모두 연행되고 뉴스에 보도되기 전까지 주아는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들이 집에 함께 살던 아이 중 한 명을 때린 폭행 사건인 줄만 알았다. 주아는 불량한 애들 여럿이 함께 지내면서 잘 지내는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뒤, 자기도 모르게 너무 큰일에 엮여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규는 고등학교 3학년이긴 했지만 유급을 당해 주아보다 세 살이 많은 성인이었다. 자연산은 그의 아버지나 학교 아이들에게 폭력을 당할 아이가 아니었고, 매일 늦는다고 잔소리가 심했던 아버지를 피해 가출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거리의 아이들과 자주 부딪히며 때리기도 하고 맞기도 했는데, 태규를 만나면서 그런 일이 줄어들었다. 그 무렵 자연산은 운좋게도 주아의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는데, 집을 보니 돈이 될 만한 일이 생각나 둘이 공모하게 되었다. 자연산이 데리고 들어온 건 지인들이 아니라 숙식, 숙박, 일거리 제공을 명목으로 모집한 아이들이었다. 태규는 인터넷 통신으로 조건 만남을 알선했고, 자연산은 아이들을 회유해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자연산은 처음인 아이들에게 아무 일 없을 거고, 돈을 얼른 모아 그만두면 된다고 안심시켰고, 이 바닥에서 뼈가 굵은 아이들에게는 큰 비전, 이를테면, 돈을 벌어 전세 비용을 마련한다거나, 부모님의 빚을 갚아주는 것을 제안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번 돈의 삼 분의 이를 자연산에게 생활비로 지불했는데도 큰 불만이 없었다. 자연산은 그들이 준 돈의 반은 집세로, 반은 식비와 꾸밈비로 쓴다며 그들을 이해시켰다. 영주는 인근에 사는 아이였는데 주아의 집이 아이들이 모여 자유롭게 지내는 곳인 줄 알고 들어왔다가 원조 교제를 강요당했다. 하기 싫다고 조용히 나갔으면 아무 일 없었을 텐데, 화를 내고 주변에 알리겠다고 하다가 폭행과 감금을 당했던 것이다. 
    결국 태규는 구속되었고, 관련된 아이들은 모두 퇴학을 당하거나 정학을 당했다. 정학을 당한 아이들은 소문이 두려워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주아는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는 일관적인 증언과 독서실에 입, 퇴실 기록 카드에 찍힌 시간이 알리바이가 된 덕택에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다. 주아는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았고, 세상에 한 점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문은 진실보다 더 빠르게 번져서 개학이 되기 전 이미 학교에 도착해 있었고, 아이들은 모두 주아가 무고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주아가 공부를 못하거나 엄마가 학부모회 임원이 아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거라며 수군거렸고, 공평하지 못한 학교와 선생님들을 원망했다. 누군가가 빈정거리며 포주아라고 부른 것을 계기로 모두가 그러게 부르기 시작했다. 그 별명은 직접 부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욕을 하기 위해 만들어 낸 별명이라 계속 입에 올리지 않으면 곧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고등학교 내내, 졸업한 뒤 대학까지 따라다녔다. 대학 시절 자신의 소문을 써놓은 대자보를 보았을 때, 주아는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했지만 포주아라는 별명을 쓰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주아는 그 상황이 되면 누구도 알 수 없었을 거라고 장담했다. 집에 있는 애들의 학생증이나 신분증을 보지 않은 이상 중학생인지 성인인지 알 수 없었고, 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어디로 가는 줄도 몰랐다. 그들이 밤에 들어오는지 새벽에 들어오는지는 자기들 맘이지 주아가 알 바는 아니었다. 그들이 새벽에 싸우고 울고 소리치는 게 무엇 때문인지 주아가 알 의무도 없었다. 태규가 데리러 나오는 게 선의가 아니라 자신을 밀착 감시하기 위함이라는 걸 눈치챘더라면 그렇게 거슬리는 그와 함께 있지 않았을 것이다. 집에 있는 주아 옆에 붙어서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던 자연산 역시 친구여서 그런 게 아니라 주아의 귀를 막고 발을 묶으려고 했다고 생각했다면 집에 살도록 놔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아는 누가 물어봐주기만 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 혼자 속으로 수백 번도 더 되뇌일 뿐이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럴 때마다 확신이 생기는 게 아니라 점점 더 알 수 없어졌다. ‘정말 몰랐을까? 그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이렇게 하나하나 다 기억하는 게 말이 될까? 이제 와서 생각하면 모르고 싶었던 것이다. 알 필요가 없다는 말로, 알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가려온 것뿐이었다. 그때는 어려서 몰랐다고 했지만, 실은 발뺌에 지나지 않았다고 이제 와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