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무능 (1)
“브랜든이 살아 돌아오길 바라긴 하는 거야?”
질문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비난의 말이었다. 주아는 폭력적인 말을 자주, 아무렇지도 않게, 잘도 내뱉었다. 자기 자식이 죽었으니 남한테 그런 식으로 말해도 되는 자격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주아는 당장 집을 나가 직접 아들을 찾아다니든가, 그러지 못할 거면 처가에 가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자기 말대로 하지 않으면 아이의 부모가 될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대부분 시간을 일기 쓰는 데 집중했는데, 일기를 쓰지 않는 시간에는 브랜든의 행방을 물었다. 여전히 알 수 없다는 말을 반복하자 행적의 단서를 찾기 위해 브랜든에 대해 질문했다. 그애가 요즘 힘들어하는 일이 있었냐, 여자친구가 있냐, 꿈이 뭐냐,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하냐는 식의 아주 개인적인 질문이었다. 질문 대부분의 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그녀는, 아빠가 되어서 어떻게 하나도 모를 수 있느냐는 비난을 거침없이 퍼부었다. 그녀의 욕을 듣고 있다보면, 인간 쓰레기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인 아들의 사생활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야 제대로 된 아빠라고 생각하는 그녀가 좀 이상하게 느껴졌는데, 생각해보니 그녀가 아이가 다 자라도록 키워보지 않아 잘 모르는 것 같아 측은했다.
주아는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나도 할 만큼은 해보았다. 미국에 있는 아내나, 이곳에 있는 나나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아내는 출국 사실을 확인했고, 나는 입국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우리는 브랜든이 경유지인 중국에서 연결편을 미탑승하고 입국했다는 것도 알아냈다. 물론 알아내는데 내가 큰 도움이 된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아내는 브랜든의 친구들을 수소문해 그애가 한국에 잠깐 다녀온다는 말 외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입대하기 싫은데 잠적해버릴까 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아내가 그러는 동안 나도 브랜든의 SNS 친구목록으로 들어가 밴드 동료나 같은 각별한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내가 아빠임을 밝히고 브랜든과 연락이 되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지, 브랜든에게 문제가 없었는지 물었다. 그중 대답한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는데, 원하는 답이 아니라 욕뿐이었다. ‘Fuck off, scammer’ ‘What dad? His dad is dead.’ 그의 아빠는 살아 있다고 말하고 다시 묻고 싶었으나 모두에게 차단당해 그럴 수 없었다.
아내도 마치 내가 브랜든을 실종시킨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일 새벽 전화를 걸어 아무 연락이 없는지 물었다. 자신에게도 연락하지 않는 그애가 나에게 연락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아내는 매일 다른 레퍼토리로 나를 괴롭혔다. 어느 날은 브랜든이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며 해외여행중 실종된 젊은이들에 관한 기사를 찾아 보내왔다. 또 어느 날은 하나밖에 없는 손자에게 관심이라고는 전혀 없고 오로지 자기 자신들과 재산을 지키는 데만 눈이 벌건 나의 부모를 비난했다. 손자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돈도 노력도 들이지 않는 그들을 욕했다. 다른 날은 중국으로 사람을 보내 찾아보라고 닦달했다. 그렇게 넓고 사람이 많은 곳에 작정하고 숨어버린 아이를 찾을 방법이란 게 있는지 모르겠다는 나에게, 숨은 게 아니라 실종이라며 소리소리 질렀다. 아내는 조금이라도 수가 틀리면 소리를 지르곤 해서 그런지, 아니면 혼자 통곡을 하는 건지 목이 다 쉬어 쇳소리만 삑삑거렸다. 또 아내는 인기 여행 유튜버가 이집트 여행에서 찍은 화면에 브랜든이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며 링크를 보내왔다. 나는 아무리 눈을 씻고 들여다봐도 아들와 비슷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내는 내가 아들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맹비난하며 캡쳐한 화면에 동그라미까지 쳐서 보내주었다. 아무리 봐도 전혀 닮지 않은 것 같다고 메시지를 보내자, 아내는 곧바로 전화를 걸어 소리를 질렀다.
“내가 브랜든이어도 너 같은 놈이 아빠라면 연을 끊고 말겠다. 애가 자라는 동안 제대로 쳐다봤어야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아내는 계속 다른 여행 유튜브 화면에서도 아들과 닮은 사람을 발견해 자꾸 보내곤 했는데, 공교롭게도 나는 아내가 보낸 것 중 같은 날 다른 지역에서 찍은 영상을 발견했다. 내가 그것을 그 사람이 아들일 수가 없는 증거로 들이밀자 아내는 삑삑거리며 울었다. 그렇게라도 살아 있다고 믿고 싶었다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나는 어지간한 충격에도 끄떡없는 옹벽 같던 아내가 무너져내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매일 새벽 아내와의 통화를 본의 아니게 엿듣던 주아는 내게 그것 보라는 듯,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봐. 네 아내도 우리 같은 사람이었던 거야. 이런 일 앞에서는 다 똑같다고. 어서 가. 혼자서는 안 된다고 했잖아.”
주아가 나를 아내에게 보내려 한 말이고, 그것이 나를 위한 마음에서 한 말이라는 것도 알지만, 어쩐지 고소해하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묘했다. 내가 그곳에 간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다고, 아내 곁에 다른 남자가 있다고 말하자, 순간 주아의 얼굴에 경멸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그게 나를 경멸하는 건지, 아내를 경멸하는 건지, 아니면 모두를 경멸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잠시 멈칫했던 주아는 다시 그래도 아내 곁에 있어줘야 하는 거라고 말했다. 나는 소중한 게 뭔지 모르는 놈이라는 욕이나 들으며 그녀 곁에 어떻게든 붙어 있으려 안간힘을 썼다.
처음에 한 번 이야기했다가 대차게 욕을 먹었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브랜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니라 그의 말대로 입대하기 싫어 잠시 방황하다가 돌아올 일을 아내나 주아가 극성을 떨며 크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허물어졌다. 나는 매일 아내의 전화에 시달리며 아들이 실종되어 돌아오지 않거나, 사체로 발견되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야 했다. 그 지긋지긋한 전화를 끊은 뒤에는 주아에게 다시 시달렸다. 주아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 이런 일이 일어난 것처럼 말하거나, 당장 떠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말했다. 나는 그녀들이 전혀 다른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여자들을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둘이 비슷하게 굴었다.
그 둘이 조금 잠잠해졌다 싶으면, 본가와 처가에서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아들을 찾는 일이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했다. 아내가 그들과 연락을 한 건지, 내가 그들 중 누구와도 함께 있지 않다는 것을 모두 알게 되었다. 나는 모두에게 아들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다고 둘러댔다. 어느 지역에서 있는 건지 더 묻지 않는 걸 보면 모두 내 말을 믿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브랜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모두는 인터넷을 뒤져 배낭여행을 간 청년의 실종, 숲으로 들어간 연인의 실종, 오지 여행객의 의문사 같은 기사를 나에게 보냈다. 그뿐 아니라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도시 괴담같은 이야기까지 보내기 시작했다. 이런 일도 있다, 이 지역에서 그런 일이 많다니 돌아보거라, 하는 메시지가 덧붙어 도착했지만 나를 겁박하기 위한 메시지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뒤로 내 마음속에 브랜든의 자발적 잠적이 아니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것은 모두의 불안과 그들이 보낸 기사를 거름 삼아 순식간에 자라나 내 머릿속을 완전히 뒤덮어버렸다. 나는 브랜든이 살아 있을 거라고 낙관할 수 없게 되었다. 유재가 죽은 것을 모르고 혼자 신났던 것을 생각하면 살아 있을 거라고 믿는 것과 실제로 살아 있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아들이 살아 있다는 믿음이 남아 있었을 때 괜찮았던 일상이 희망이 사라지자 힘겨워졌다. 나는 휴대폰에 얼굴을 처박고 실눈을 뜬 채 수시로 기사를 검색했다. 사고와 범죄에 관한 기사는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사진도 없고 이름도 없어 그게 아들이 당한 일인지 확인할 수 없는 동시에 아들이 당하지 않은 일이라고도 확신할 길이 없었다. 나는 계속 반복되는 듯한 범죄나 사고들을 아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미디어를 통해 구체화되기도 하고, 상상력을 통해 과장되기도 했다. 아들이 그런 일을 몸으로 겪는다고 생각하면 미칠 것 같았다. 차라리 내가 가서 대신 당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가 불안에 떠는 게 눈에 보여서 그런지 주아는 오히려 브랜든은 괜찮을 것 같다고 위로를 다 해주었다. 나는 이런 상황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 없을 것 같다고, 차라리 아들 대신 죽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다.
“네가 느끼는 건 네 상상력 때문이지 진짜 일어난 일은 아니니 얼마나 다행이야. 죽은 아이를 마주하게 되면 이 정도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아. 하지만 브랜든은 살아 있을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을 견뎌야 하는 고통과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무력감과 죄책감, 모두에게 끝없이 시달리는 데서 오는 고통, 그것이 실제 아이를 잃은 것보다 덜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런 감정을 주아는 결코 알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말을 하면 불행 대결을 벌이는 것 같아 차마 말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