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망각 (2)
주연이는 주아의 삶에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워졌다. 주아는 집안의 공간마다, 물건마다 남아 있는 주연이의 흔적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함께 누워 장난치던 침대, 고무줄을 묶어놓고 놀았던 마당의 나무, 서로 물을 뿌려대던 수돗가, 함께 떡볶이를 만들던 부엌, 숨바꼭질하느라 숨어있던 엄마 방의 장롱, 매일 누워서 나오지 않던 골방. 그 모든 공간에 주연이가 있는 것 같아서 주아는 어디에도 눈을 오래 두지 못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혼자 지내는 주아에게는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다. 외면할수록 주연이의 부재는 더 크고 선명해졌다. 그런데도 주연이는 결국 주아의 삶에서 제거되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줄 알았으나 실제로는 석 달도 걸리지 않았다.
주아는 자기가 쓰고 있는 머리끈이 주연이의 것이라는 사실을 잊었고, 하나 남은 주연이의 양말을 쓰레기통에 버리면서도 그게 원래 자기 양말인 줄 알았다. 주아는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했지만 주연이를 생각하지 않았다. 완전한 혼자라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떠올릴 사람도, 기다릴 사람도, 찾아올 사람도 하나 없는 상태였다. 주아는 자기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지냈다. 오지 않는 사람 때문에 실망한 적이 없는 사람처럼, 버림받은 적이 없는 사람처럼, 다른 사람의 행복과 자신의 불행을 저울질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주연이는 삼삼칠 박자로 문을 두드리며 다시 돌아왔다. 대문이 잠겨 있지도 않았는데 문을 두드린 것은 자신이 돌아왔다는 것,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 그 소리는 주아가 애써 지운 기억들을 한꺼번에 본래 있던 자리에 되살려놓았다. 안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있던 주아는 주연이가 대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이미 집안의 모든 공간에 주연이 다시 돌아와 있음을 느꼈다. 주연이는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사람처럼 집으로 들어왔다. 거실에 앉아 있던 자연산과 몇 명의 여자애들과 마주친 주연이는 초면인 그들에게 너희들은 누구냐고 물었다. 그들이 대답하기도 전에 주연은 작은 방문을 열었다. 좁은 방에 앉아 화장하는 여자애들 사이에 주아가 없는 걸 확인하고서 온 집안을 뒤졌다. 안방 문을 열고 혼자 있는 주아와 마주치자 마치 바람난 아내를 추궁하듯 저애들은 다 뭐냐고, 너는 여기서 뭐 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것은 도리어 주아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그동안 연락도 한번 없더니 여기서 뭐 하는 거냐고, 왜 돌아왔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주아는 아무 관심 없는 사람처럼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주연이가 가건 오건 간에 아무 영향 받지 않고 싶었고, 그런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연이는 그 아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주아로부터 듣기도 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어쩔 줄 몰라 했다.
“나 너무 힘들었어. 네가 없는 것도 너무 힘들어.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보충 수업을 빼고 몰래 온 거야. 엄마는 내가 여기 온 거 몰라. ”
주아는 보고 싶었다는 말이 반가웠지만, 힘들지 않았다면 찾아오지 않았겠구나 싶어 쓸데없이 마음이 상했다. 주연이 공부를 잘하는 걸 무엇보다 고대하고 자랑스러워했던 이모, 주연이가 자신을 훌쩍 뛰어넘어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했던 이모가 이런 상황을 좋아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고 주아는 생각했다. 보충 수업까지 빠지고 찾아온 걸 알고 자신까지 미워하게 되면 어쩌나 걱정하다가 문득, 이제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사랑받든 미움받든 어차피 남인 거고, 이모의 마음 따위는 자기 삶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주아는 생각했다. 이모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만큼 주아도 이모를 예전처럼 좋아할 수 없었다. 주아는 경미 이모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람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헷갈리는 것은 자신이 이모를 영 잘못 알고 있다가 이제야 제대로 볼 수 있게 된 건지, 아니면 정말 이모가 달라진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주연이는 부모가 자신의 의지를 조금도 반영하지 않은 채 이사한 것에 화가 나 있었다. 주아는 주연이가 부모에 대해 분노와 반항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주연이는 엄마가 자기보다 뭐 하나라도 잘하는 아이가 있으면 끊임없이 비교했다고 했다. 글씨를 먼저 깨치고, 셈이 빨랐던 주아를 따라잡기 위해 잠들기 전 동시 한 편을 다섯 번씩 베껴 쓰게 하고, 덧셈 뺄셈을 오십 문제씩 풀게 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주아가 집에 오면 그 책과 문제집을 다락에 치워두었다는 것은 더군다나 뜻밖이었다. 중학교 시절 주연이가 주아의 성적을 넘어서기 전까지 경미 이모는 둘을 끊임없이 비교했다. 늘 함께 지내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경미 이모는 주아 모녀에게 그런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앞에서 내색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던 게 분명했다. 경미 이모는 주아의 엄마가 집을 나가기 전 잔뜩 사놓고 간 문제집을 보곤 똑같은 것을 사서 주연이에게 풀게 했다. 주아는 주연의 집에서 같은 문제집을 보고도 누구나 푸는 문제집이구나 싶어 의아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둘이 함께 놀면서도 엄마의 명령대로 문제집을 꼬박꼬박 푸는 주아를 경미 이모가 기특하다고 칭찬하면, 주연이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주아가 그 많은 문제집을 다 풀었다는 것과 그걸 또 스스로 채점하고 오답 노트까지 쓰더라는 것을 주연이 마치 자기 자랑처럼 이야기한 날, 경미 이모는 책꽂이 꽂힌 주연이의 문제집을 모조리 끌어내려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주연이는 그때 문제집을 안 풀어도 돼서 속이 시원했다며 웃었다.
그런 마음을 안고도 경미 이모는 주아가 중학교 다니는 내내 집을 드나들며 식사를 챙겨주고,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해주곤 했다. 하지만 주연이는 오지 않았다. 학교에서 만나 대화하기는 했지만, 학교 밖에서 어떻게 지내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둘은 서로의 집에 왕래하지 않게 되었는데, 주아는 그것이 커가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관계 변화라고 여겼다. 섭섭하긴 해도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연이는 그것이 그다지 자연스러운 변화는 아니었다고 뒤늦게 말해주었다. 경미 이모는 둘이 쓸데없이 노는 것도, 함께 노는데도 주연이만 성적이 안 나오는 것도 못마땅해했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둘만 있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경미 이모는 주연이에게 주아네 집에 발도 들이지 못하도록 주연이로부터 시간을 빼앗았다. 주아는 경미 이모가 인연이 다한 자신들을 이어붙이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보니 둘 사이를 장벽처럼 가로막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연이는 학습지와 학원, 개인 과외 때문에 놀 시간이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숙제를 하느라 밤늦도록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경미 이모는 주연의 식단과 수면 시간까지 일일이 신경썼고, 영양제를 종류별로 챙겨 먹였다. 성적이 점점 오르자 경미 이모는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주연이에게 더 많은 과외 선생님을 붙였다. 타 학교 수학 교사의 불법 과외를 받게 하고, 그 과외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대학생 과외를 받게 했다. 이 동네에는 과외를 그렇게까지 하는 애들은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애들조차 거의 없었으니 성적이 급상승한 아니었겠냐며 주연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학군지에서는 누구나 공부에 전력투구하고 있었다고, 자기 정도의 노력으로는 중위권에도 못 들어가는 게 당연했다며 한탄했다. 경미 이모는 이사 후 치른 첫 중간고사에서 주연이 중학교 마지막 시험처럼 전교 1등은 못해도 5등 안에는 들 거라고 기대했다. 각 과목의 점수도 나쁘지 않아 그게 당연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성적표를 받고 크게 실망했다. 경미 이모는 한 문제만 틀려도 등수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주연이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더 열심히 하기를 종용했다. 주연이는 그 모든 것이 진저리나게 싫었다. 주연이는 이미 고등학교 전 과정을 선행하고 들어온 아이들, 공부 자체를 재미있어하는 아이들, 타고나기를 공부 머리가 좋은 아이들에게 자기는 애초에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엄마만 모른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어릴 때부터 같은 학교와 학원을 다니며 서로 오래 알고 지낸 아이들은 자기처럼 뒤늦게 들어온 평범한 애가 끼어들 자리를 내주지 않았고, 선생님들은 부모가 좋은 직업을 가진 아이들에게만 신경을 쓴다며 주연이는 훌쩍거렸다.
솔직히 주아는 주연이의 고민이 다 하찮아 보였다. 극성 엄마와 과도한 과외, 공부에 미친 애들, 그게 진짜 불행인지 되묻고 싶었다. 제때 밥을 차려주고, 영양제까지 챙겨 먹이는 부모, 깨끗한 집과 좋은 학교, 이게 얼마나 고통을 줄 수 있는가 따져 묻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맞아 죽을까봐 집을 나온 자연산이나,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집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사는 자신과, 어디, 감히, 같은 불행이라는 명찰을 붙이려고 하느냐고 호통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내색은 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주연이는 따돌림을 당하기 전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주아가 자기 편을 들어주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은 채 마음속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으며 울었다. 주아는 자신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떠났던 주연이 자신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이용하기 위해 돌아왔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주연이는 자기 이야기를 모두 하고도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소리에 신경이 쓰이는지 귀를 기울였고, 집에 있는 아이들이 누구인지 여러 번 물었다. 주아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애들이라고만 말했을 뿐, 이름도 사연도 말해주지 않았다. 주연이는 그애들이 다 주아의 새 친구들이라고 생각하며, 소개해주지 않는 것을 서운해했다. 주아는 그 오해를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둘이 살아가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고, 이제 서로 섞일 일이 없다는 것을 주연이가 깨달았으면 해서였다. 하지만 주연이는 이 집이 자신의 것이라도 되는 양 말했다.
“나는 여기 있을 거야.”
“저 애들 안 보여?”
“쟤들은 집에 갈 거 아냐? 난 여기서 자고 갈 거라고.”
“혼자 산다고 무시하냐? 우리 집에서 아무도 못 자.”
주아는 그 아이들이 집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주연이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고, 아이들 사이에 주연이가 섞여 들어오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경미 이모가 보충 수업을 빠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전에 얼른 돌아가라고 했다. 주아의 단호한 태도에 화가 났는지 주연이는 예전처럼 대문이 부서져라 쾅 닫고 집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