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회

19. 망각(3)

19. 망각(3) 
    주아는 주연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면 했고, 어쩌면 그날이 주연이를 보는 마지막날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연이는 주아가 모르는 새, 집에 다시 돌아와 있었다. 들어올 때 언니 와따, 라고 소리쳤는지, 삼삼칠 리듬으로 문을 두드렸는지 주아는 알 수 없었다. 언제 다시 왔는지도, 몇 번이나 왔는지도 전혀 몰랐다. 어느 날 주아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주연이는 아이들 사이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섞여 있어 있었다. 주연이는 자연산 앞에 얼굴을 내밀고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자연산은 눈썹 칼과 가위로 주연이의 눈썹을 다듬어 주며 주연이의 눈썹 모양이 예쁘다고, 얼굴형이 예뻐서 어떻게 그려도 어울릴 거라며 칭찬을 했다.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화장을 한 번도 해보지 않고 눈썹도 다듬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냐며 웃었다. 
    “주아 친구잖아.”
    자연산의 말에 아이들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더니 누군가 물었다. 
    “너도 공부 잘해? 범생이였구나?” 
    “아니. 나 학교 짼 거 보면 몰라?” 
    눈을 감고 있는 주연이는 주아가 들어와 자기를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떠들어댔다. 학교에 갔다가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조퇴했고, 떡볶이를 사 들고 와 모두 함께 먹었다는 사실을 주아는 대화만으로 알 수 있었다. 주아가 그들의 대화를 듣지 않았다면 거기 앉아 있는 것이 주연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떡볶이가 담겨 있던 비닐봉지와 입 닦은 휴지를 그대로 한쪽으로 밀어둔 채, 아이들은 각자의 화장품을 꺼내 주연이의 얼굴에 바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아이가 조용히 들어와 자기들을 지켜보는 주아를 발견하고 말했다.
    “야야, 주인님 오셨다. 주인님도 눈썹 정리해줄까?” 
    “내 눈썹은 됐으니까, 먹은 거나 정리해줄래?” 
    주아의 싸늘한 말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목소리에 놀라 주연이가 눈을 떴을 때, 주아는 이미 방으로 들어가고 없었다. 주아는 주연이가 곧바로 따라 들어오리라 생각했지만, 주연이는 아이들에게 얼굴을 내맡긴 채 한참을 떠들다가 방으로 들어왔다. 주연이는 화장한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 모습을 주아에게 보여주며 웃었다. 주아가 엄마에게 혼나지 않으려면 얼른 화장을 지우고 돌아가라고 화를 내자, 주연이는 시무룩해져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서도 밤이 되도록 아이들과 떠들다가 주아에게 인사도 없이 돌아갔다. 경미 이모에게 아무 연락이 없었던 것을 보면 운좋게도 그날의 조퇴와 학원 결석은 발각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뒤로 주연이는 주아가 반기지 않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막 친해진 자연산과 다른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자주 찾아왔다. 주연이가 등장하면 아이들은 더 시끄러워졌고, 많이 웃었다. 주연이는 그들을 만나러 오려고 선생님과 부모를 속인 이야기를 모험담처럼 늘어놓았다. 그리고 반 아이들이 얼마나 지루한지, 자기가 아는 범생이들이 얼마나 꽉 막힌 행동들을 하는지 희화화해 흉내냈다. 그리고 자신의 괴로움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주아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싶지 않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방문을 쉽게 넘어왔다. 주아는 주연이가 말하는 지루한 아이, 꽉 막힌 범생이가 자신인 것처럼 생각돼서 모욕감을 느꼈다. 그리고 주연이가 진지하게 말하는 괴로움, 그러니까 엄마의 과도한 기대와 아무리 공부해도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할 거라는 좌절감에 대해 들은 아이들이 속으로 겨우 그따위 게 뭐냐고 비웃을 거라는 생각에 대리 수치심까지 느꼈다. 그러나 자연산은 온 힘을 다해 주연이를 위로했고, 어떤 아이는 즐거운 생각만 하자며 주연이에게 웃긴 이야기를 해주었고, 또 어떤 아이는 춤을 추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유행하는 춤 동작을 가르쳐주었다. 주아는 학교도 그만두고 밖으로 떠도는 아이들이 주연이의 학업을 걱정하고 위로하는 모양새가 기괴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집까지 내준 자신이 고작 쓰레기를 잘 버리자고 한마디한 것을 노여워하는 애들이 누군가에게 공감하는 게 정말 진심일까, 무슨 목적이 있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주아는 아이들이 주연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주연이는 올 때마다 간식거리를 한가득 사 들고 오거나, 화장품을 한아름 들고 와 잘 어울리는 아이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주아는 주연이가 자신이 가진 좋은 것들을 쉽게 나눠주는 애가 아니었다면 그애들 무리에 섞여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주연이를 쉽게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의 색깔로 물들이면 고스란히 물들어가는 게 재미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주연이는 아이들의 말투를 금세 배웠고, 아이들보다 더 화려하게 화장하고 다녔다. 주연이는 아이들이 건네준 담배를 켁켁거리며 피웠고, 바닥에 주연이 몫의 술잔이 굴러다니기도 했다. 
    주아는 점점 망가져가는 주연이를 보는 것을 더는 견디기 힘들어 집에 오지 못하게 했다. 아이들이 듣지 못하게 조용히 이야기한 적도 있고, 모두가 듣도록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지만 주연이는 실실 웃으면서 알았다고 말하며 계속 찾아왔다. 자연산은 주연이 앞에서는 주아가 너무 유난스럽다고 주연이 편을 들면서, 주아에게는 네 친구니까 잘해주는 거라고 눈을 찡긋거렸다. 주아는 자연산의 여우짓이 뻔히 들여다보였지만, 그래도 자연산이 자신의 기분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하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주아는 주연이와는 서서히 멀어졌고, 아니 사실 이미 멀어진 상태에서 다시 만났던 것이 맞고, 서로가 집에 오는지 가는지도 전혀 알 수 없게 되었다. 주아는 주연이에게 자연산을, 자연산에게 주연이를 빼앗긴 것 같은 익숙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것은 태규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태규가 집에 함께 산 것이 언제쯤이었는지 주아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의 존재를 알았을 때 이미 주연이 역시 그와 가까운 사이였다. 주아는 그들이 얼마나 가까운지, 얼마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지 알지 못했지만, 더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것을 명확히 알아갈수록 주아는 모두를 빼앗기고 자신 곁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주아는 더는 손을 쓸 수 없었다. 주아는 주연이가 집에 언제, 몇 번이나 찾아왔는지 정확히 몰랐고, 주아가 없는 새 와서 무엇을 하다가 돌아갔는지 알 수도 없었다. 자연산과 함께 쇼핑을 다녀왔는지, 다른 애들과 신나게 춤을 추러 다녔는지, 밤늦게까지 함께 있던 태규가 주연이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을 데리러 왔던 것인지 주아는 알지 못했다. 주연이가 자연산과 태규, 아이들과 함께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모르지만, 주아는 그들이 이미 한덩어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주아는 주연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인 아이들이 왜 자신은 받아들여주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주아는 아무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했다. 독서실은 주아의 좋은 피난처였고, 그곳에서 주아는 아무것도 모를 수 있었다. 
    주아는 집에 사는 아이들이 누구인지, 영주가 누구인지 몰랐다. 자기가 없는 동안 그 애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자기 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전혀 몰랐다. 독서실 입퇴실 기록이, 주아의 성적이, 엄마의 맹목적인 믿음이 주아를 사건의 책임에서 빼내주었지만, 사람들의 의심에서까지 빼내주지는 못했다. 아무것도 몰랐다는 주아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주연이는 운좋게도 그런 의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주연이의 존재는 몇 번 찾아온 주아의 친구 정도로만 처리되었다. 주아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은 모두 주연이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주아는 굳이 주연이의 이름을 말해 경미 이모의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고, 자신이 주연이와 더 엮이는 것도 싫었다. 또한 주연이가 그애들과 계속 얽혀 있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주아는 할 수만 있다면 두 번 다시는 주연이와 삶을 연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주아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