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회

태초에는 음악이 정육면체였다던, 사용할수록 모서리가 마모되다가 나중엔 손톱만큼 작아진다던 그 이야기에 나는 왜 사로잡혔나

12.

태초에는 음악이 정육면체였다던, 사용할수록 모서리가 마모되다가 나중엔 손톱만큼 작아진다던 그 이야기에 나는 왜 사로잡혔나. 음악 시간이 아니라 수학 시간이었고, 그래서 더욱 생의 모순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음악 비누는 길고 복잡한 수식인 동시에 분명히 만져지는 슬픔이었다. 교실에 앉아 있던 열네 살의 나에게도, 사무실에 앉아 있는 지금의 나에게도 그 이야기는 여전히 이상해서 떠올릴 때마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심정이 된다.

우리가 아직 거래처 관계였을 때 그에게 음악 비누 이야기를 해준 건 대화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홍해파리니 꿈의 벤다이어그램이니 하는, 그가 들려준 사적인 세계에 답신하는 마음으로 깊은 우물 속 이야기를 하나 꺼낸 것이다. 그게 계속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며칠 후 태오는 꿈에서 비누를 흘려보냈다고 했다. 종이배처럼 물에 띄운 거죠, 라면서.

“물에?”

“음악이 닳아 없어진다면서요. 어차피 끝은 올 테니까, 그냥 강물에 띄우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꿈에서는 비누가 물에 닿아도 안 녹나요?”

“빨리 녹았으면 좋겠어요, 음악으로 만든 거라면 그게 다 물로 퍼지는 거잖아요. 물은 돌고 도니까 비누는 점점 작아져도 음악은 물을 타고 계속 흐를 거 아니에요. 바다가 되었다가 다시 빗방울이 되었다가 하겠죠?”
“일종의 투자군요.”

“투자요?” 그는 크게 웃고서 말했다. “그쪽으로 보낼게요.”

“그쪽?”

“서 계신 쪽이요.”

“누가…… 서 있는데요?”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으면서도 괜히 그렇게 물었다.

“임미아.”

내게 붙던 호칭들을 가볍게 떼어내면서 그는 환하게 웃었다. 태오는 나보다 열 살 어렸고 그 나이 차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내가 느끼는 부담감의 모양은 구체적이지 않았다. 막연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가 몇 살이든 상관없었다. 홍해파리의 회춘이라든가 꿈의 벤다이어그램이라든가 그런 얘기들 속에서 자질구레한 다른 계산법은 좀 시시하게 느껴졌다. 언제나 태오는 내게 현재 진행형이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중요한 것은 가슴이 뛰느냐 아니냐, 가슴이 아프냐 아니냐였으니까.

그 말들이 오간 건 일 년 전이었다. 그때 태오는 이미 알았던 걸까, 음악 비누가 사랑의 은유라는 것을? 나는 몰랐는데. 그것이 사랑에 빠진 이의 두려움과 같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기 전이었는데. 태오는 알았을까 아니면 모르고도 닿은 걸까. 닳아 없어지는 걸 보느니 차라리 풍덩 뛰어들어 모든 빗방울이 되겠다는 마음. 태오가 꿈에서 흘려보낸 것이 흐르고 흐르다 마침내 내게 와서 닿았다는 것을 그는 알까.

 

누운 채로 지난밤의 꿈을 복기한다. 불길에 귀퉁이가 오그라드는 사각형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꿈의 중심부를 다급히 읽어내는 일, 곧 한 줌 재가 될 세계를 붙잡는 일. 태오와 헤어진 다음, 나도 몇 차례 꿈을 꿨다. 별다른 의미는 없어 보이는, 휘발성이 짙은 꿈이 대부분이지만 밤과 아침 사이에 존재하는 그 투명한 이물감에 놀라곤 한다. 꿈을 꾸는 행위가 파도에 휩쓸리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눈을 뜨면 늘 낯선 해변이고, 들고 있던 지도는 어떤 종류든 현실로 넘어오는 동안 다 타버린다는 것도. 파도가 부서지는 각도, 구름의 무늬와 색,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예민하게 감지하면서 여기가 어디인지 파악하려 애쓴다.

꿈속에서 나는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십 분에 한 대씩 열차가 지나가는 지상역에서. 하늘도 보이고 횡단보도도 보이고 선로에 무언가가 떨어져 있는 것도 보이는 플랫폼이었다. 이 순간에 밑줄을 그으라는 듯이 길고 느리게 열차 한 대가 지나가고 다시 고요해진 플랫폼. 엄지손톱만한 흰 물체가 저 아래 선로에 놓여 있었다. 동전만큼 작아진,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려면 아직 시간이 더 걸릴 무언가. 네모난 비누가 닳고 닳다가 가장 마지막에 발견될 모습으로 거기 있었다.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 소리에 다른 소음들이 묻히고 모든 사람의 시선이 선로 끝을 향하고, 나 역시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꿈에서 깼다.

플랫폼에 있던 자판기는 카드 결제가 가능했다. 1996년의 역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근처에 공장들이 있고 전체적으로 한적한 곳이었다. 고가 아래로 테니스코트가 내려다보였다. 테니스코트는 대체로 남북 방향으로 길게 자리하니까 선로의 방향은…… 흐릿한 지점을 자꾸 떠올리면 꿈이 뭉개지다 찢어질 것만 같다. 지우개로 종이를 세게 문지를 때처럼. 그래도 한 사람이 떠오르는 것은, 마음속에 자꾸 퍼져나가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그곳이 태오가 말했던 역일까.

그의 꿈속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태엽을 한참 되감아 자신이 태어나지도 않은 시절을 살아내는 것도 가능했다. 꿈에서 실제 자신보다 더 오래된 현재를 살았던 사람. 지하철역 내부의 장치나 열차 정보로 미루어 1996년이구나 추론할 뿐 역의 이름은 끝내 알 수 없었던 역무원. 그가 바로 태오였다. 그가 지금도 1996년의 지하철역으로 출근을 해 티켓 발매기의 현금을 수거하고 잔돈을 채워넣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여전히 꿈을 꾸는지 어떤지조차 나는 이제 모른다.

 

나는 여전히 생존 용품 사이에 놓여 있다. 추려진 샘플을 비틀고 여닫고 들거나 메면서 그 느낌을 기록한다. 악천후용답게 거친 환경에 놓인 사용자를 가정하고. 두툼한 장갑을 낀 채로, 빛이 적은 어두운 환경에서, 촉박한 시간 안에, 한 손으로만…… 그렇게 제약을 두고 인지 부하 평가도 한다. 제품의 구조가 직관적이라고 느꼈습니까? 5, 4, 3, 2, 1. 이와 같은 제약 조건하에서 이 제품을 사용할 자신이 있습니까? 5, 4, 3, 2, 1. 생존배낭의 구성품이 필수적인 것 위주로 알차다고 느끼십니까? 5, 4, 3, 2, 1. 누락 또는 이상이 있다고 느낀 항목이 있다면 작성하세요…… 촘촘한 질문들이 어설프게 봉인한 창고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것 같다. 유연하게 늘어나고, 찢어지지 않고, 물에 젖어도 금세 복원되며, 불이 잘 붙지 않는 소재들을 손으로 비비거나 쓸어보는 동안 마음이 휘청거린다.

꿈을 꿔야 한다면, 꿀 수 있다면, 태오의 집에서 보낸 일주일로 돌아가서 멈추고 싶다. 그 시절의 외벽에 딱 붙어서 멈추고 싶다. 홍해파리처럼. 그러나 꿈의 물살은 거세서 나를 원하는 지점에 내려놓지 않는다. 휩쓸려 가게 한다. 외면하고 싶은 것 앞에 끌어다놓는다. 그와 함께한 일주일이 천국이었다면 그 끝엔 낭떠러지가 있었다. 서랍 안 유리잔들이 다 깨진 날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며칠간 진공 상태에 놓여 있었다. 천국의 낭떠러지에서 추락한 뒤에도 출근은 해야 했지만 일부만 내 사무실에 있었고, 퇴근을 해도 내 일부만 집에 있었다. 태오의 집에 내가 두고 온 짐들이 있었다. 옷가지 몇 개와 화장품 같은 것.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핑계로라도 현재를 파악하고 싶었다. 내 삶에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영영 사라진 것인지 아닌지, 우리 사이에 오갔던 이별의 말들이 유효한지 아닌지, 회복 가능한 것인지 이제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것인지. 한참 후 태오에게서 돌아온 답은 ‘우편으로 보낼게요’였다.

우리는 한 번의 다툼으로 관계가 산산조각났는데, 그 균열의 결정타가 폴더였음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는 내게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무슨 말이든 ‘폴더를 지우고, 삭제한 후에’ 이야기하자고 했다. 나는 삭제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너에게 돌을 던지려던 사람들의 흔적을 모아둔 것인데, 누구나 보라고 전시한 그 오물을 한데 모았을 뿐인데. 복수할 의지나 복수의 유효기간과 관계없이 나는 그것을 그저 차곡차곡 모아두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왜 이것까지 버려야 하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야, 너를 위해서고 나를 위해서야. 내가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도 아니잖아. 내가 그렇게 대책 없어 보이니? 이 쓰레기들처럼 그렇게 형편없어 보여? 이걸 모아두는 건 내 자유야. 이 폴더를 소각하든 망각하든 평생 짊어지든 내 영역이야. 나까지 통제하려 하지 마. 그 폴더가 우리 관계에, 아니 나 자신에게도 이미 유해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혐오와 분노, 저주. 그 폴더가 유발하는 감정이 너무나 더러워서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것도. 그러나 인정해야 했다. 그것이 나를 견디게 했다는 걸. 내 생존배낭이었다는 걸.

태오에게 전화를 걸어보고 메시지도 남겼지만 우편으로 보내겠다는 말 외에 더이상의 반응은 없었고, 나는 거의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그러다 어느 아침에는 사무실이 아니라 태오의 집으로 갔다. 포털 사이트와 SNS에서 K선의 광고를 보게 됐다. 역무원 유니폼을 입은 두 사람 위로 ‘이제 인턴 그 이후를 만들어갑니다. K선과 함께’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 아래 깨알같이 적힌 말들은 이랬다. ‘목표 대비 2.5배 전환’ ‘성장을 이어 가겠습니다’…… AI로 만든 이미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쩐지 광고 속 얼굴이 태오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공개 상태였던 태오의 SNS 계정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인지한 아침이기도 했다. 그와 내가 주고받은 말들이 한꺼번에 다시 떠올랐고, 태오의 전화는 완전히 꺼져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출근하던 길에 방향을 틀어 태오의 집으로 갔고, 계단을 올라가면서 나는 발을 헛디딜 정도로 초조해하고 있었다. 까치가 울었고, 우편함 가득 우편물이 꽂혀 있었고. 그가 문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오전 열시, 빌라 안팎 풍경은 평화로웠는데 초인종을 몇 번이나 누르고 문을 두드려봐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식은땀이 났다. 도어록이 있었지만 고장난 지 오래였다. 실제로는 작은 열쇠 하나로 문을 여닫았고, 그 열쇠는 내게 있지 않았다.

바빠서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했던 열쇠공은 내가 급하다고, 가족의 안전이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말하자 조금 서둘러 온 듯했다. 열쇠공은 피킹 도구로 순식간에 문을 연 후 말했다.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하라고. 미친 사람처럼 안으로 들어가 닫힌 방문을 열었을 때 태오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평온하게,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면서. 파란색 수면 안대를 한 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 열쇠공은 돌아갔고, 나는 문을 닫았다. 힘이 쭉 빠졌다. 평일 오전 열시, 그 시간쯤에 거실 바닥에 생기는 섬세한 빛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풍경. 이 모든 것을 망친 사람이 바로 나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안도감이기도 했고 수치심이기도 했다. 태오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걱정이 돼서 문을 따고 들어왔다는 말에 그는 “신고해야 되겠는데” 했다. 잠에서 덜 깬 목소리였는데 그렇게 말하는 모습이 어딘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내게 자괴감을 안겨주었다. 그의 목소리와 눈빛에서 내가 알던 태오를 발견하려 온 신경을 쏟는 것이 순간 초라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 순간에도 그의 옆에 나란히 눕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나 자신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 모르는 도시를 달리고, 침대에서 재잘대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드는 것…… 우리가 꿈꾼 것은 그렇게 작은 머묾이었는데, 그날 내가 남은 가능성조차 억지로 잡아 뜯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집 문까지 업자를 불러서 따고 들어가다니. 처음으로 태오와의 관계에서 내 나이가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 보인 모습이 견딜 수 없이 수치스러웠다. 네가 너무 걱정되어서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취재라는 명목으로 태오의 집 초인종을 마구 눌렀던 사람들과 내가 뭐가 다른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뒤돌아 도망치고 말았다. 태오는 따라 나오지 않았다.

삼 주 후 태오가 집 앞으로 찾아왔다. 뜻밖이었지만, 우리 사이에 남은 얘기가 있다는 것을 둘 다 알았다. 우리는 최대한 먼 목적지를 향해 달렸고, 그 도시의 대관람차 안에서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불빛들은 연말이 오기도 전에 이미 바랜 듯 보였다. 해가 바뀌고 봄꽃이 피고 다시 초록 터널의 계절이 오고, 나는 태오 없이도 웃을 수 있게 됐다. 한동안 태오를 잊었다고 생각했다. 그를 어떤 배경 속에 두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 공백을 견딜 수가 없어서 임시로 묻어두었던 것임은 뒤늦게 깨달았다. 그 꿈을 꾼 후에야 내가 잠시 외면했던 것뿐임을 알아챈 것이다. 태오와 헤어진 후에도 그는 어떤 가능성으로 내 삶에 늘 존재했다는 걸.

나는 태오의 근황을 알지 못한다. 대관람차가 있던 도시에서, 그는 해가 바뀌면 이사를 갈 거라고 얘기했다. 나 때문이야? 내가 문짝 뜯어낼까봐? 그렇게 말했을 때 그는 아주 튼튼한 문짝을 찾고 있다고 대답했는데, 튼튼한 문짝이 달린 집을 찾아 이사를 갔을지 여전히 서울에 있을지, 전화번호가 그대로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태오씨 잘 지내요? 태오야 나야…… 메시지를 몇 번이나 고쳐쓰다가 미끄러지듯 통화 버튼을 누른다. 충동적으로, 그러나 익숙한 컬러링이 흘러나오는 것에 조금은 안도하면서. 예상대로 통화음만 길게 울린다. 태오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선뜻 받을 용기가 나지 않으면서도 전화벨이 끊길까 초조하다. 전화를 받고, 태오인 줄 알면서도, 여보세요, 라고 말하고. 나예요, 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숨소리,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듯한 표정. 전화 건너편에 태오가 있다. 내가 얼른 답을 하지 못하자 그가 말한다. 잘 지내요?

그가 듣고 있냐고 묻는다. 이대로 전화가 끊어지면 다시 걸 용기는 나지 않을 것 같아서, 어서 용건을 말해야 한다는 생각에 입이 바짝 마른다. 그러나 태오가 한 말을 메아리처럼 반복할 뿐. 잘 지내요?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어 허둥댄다. 실은, 꿈을 꿨다고. 꿈을 꾼 후 단박에 그게 네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1996년은 아닌 것 같았지만 네가 말했던 그 지하철역 같았다고 말하려다가 관둔다. 그것을 언급하는 게 어떤 의미일지 몰라서. 거기에 떨어져 있던 음악 비누 이야기도 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결국 나는 꿈을 꿨다고만 말한다. 그리고 네 생각이 났다고. 태오는 두서없는 말을 듣기만 하다가 말한다. 나 지금 들어가봐야 하는데.

“아, 미안. 그럼 얼른―”

“토요일에 시간 돼요?” 하고서 그는 얼른 덧붙인다. “다음 생 말고. 이번주.”

이틀 후다. 태오는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고 말한다. 며칠 후 돌아갈 예정이라고.

“어디로?”

“시드니요.”

 

태오와 나는 예전에 시드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십 년 전, 내가 머물던 셰어하우스에는 나까지 네 명이 있었는데 냉장고 하나를 같이 썼다. 위에서 세 번째 칸이 내 몫이었으나 그 경계가 잘 지켜지지 않았다. 나중에는 우유통에 눈금을 그리고, 감자에 이름을 적은 라벨지를 붙여뒀다. 태오와 마트에서 장을 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 시절에 대해 들려주었다.

“뭐 그런 거였어, 아이비스, 캥거루, 웜뱃, 유칼립투스, 에뮤…… 그땐 감자가 줄어드는 것 이상의 의미였거든. 일자리며 뭐며 자꾸 변수가 생겨서 예상대로 움직여주질 않는 거야. 그런데 어느 날 집에 오니까 아이비스가 없더라? 내 아이비스를 못 봤냐고 묻고 다니니까 동거인들이 질린 것 같았어. 그다음부터는 아무도 내 감자를 건드리지 않더라고. 라벨지가 붙은 감자 몇 개는 그냥 거기 버려둔 채로 방을 뺐는데, 나중에 누가 그러는 거야. 에뮤가 너를 기다리다가 썩었다고.”

그 시절 내가 영역 침범에 얼마나 민감했는가에 대한 얘기였는데 태오는 엉뚱한 부분에 꽂혔다. 고개를 갸웃하며 “그런데 감자는 냉장 보관하는 거 아니야, 알죠?” 하길래 “그때 누가 비슷한 얘기 했던 것도 같아. 어쨌든 그건 감자 주인인 내가 판단할게요!”라고 대꾸했고. 태오는 “식재료라는 게 그런 게 아니랍니다! 같은 냉장고 안에 있었다면서요” 하면서 좀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순간 그의 얼굴에 어리던 그 생기가 얼마나 반가웠던가.

“근데 생존배낭 기획자가 식재료 보관법 그런 거 몰라도 되는 거야?”

“그때는 입사 전이었거든요!”

“지금도 모르시는 것 같은데.”

“자세히 들어가면 지루할까봐 자제하는 건데, 전문가로서는 전기, 수도, 가스 이런 게 다 끊긴 상황을 고려한다고. 냉장고가 웬 말이니.”

“나도 나름 준전문가거든요, 초코바, 참치캔 종류별로 구비한다고요.”

“배낭 삼분의 일을 이렇게 찐득한 초코바로만 채우면요, 목 막혀 죽습니다. 갈증이 나서 안 된다고요. 아, 역시 뭐든 전문가의 손길이 닿아야!”

그날 우리는 전문가 행세를 하는 데 탄력이 붙어서 계속 핑퐁하듯이 놀았다. 태오는 자취 경력 칠 년 차임을 내세우며 돼지고기를 넣은 감자찌개를 만들었다. 감자를 넣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면서, 너무 일찍 넣으면 부서지고 너무 늦게 넣으면 덜 익는다고 재잘거리면서. 그날 태오가 해준 집밥은 따뜻했다. 부엌을 가득 채웠던 소리와 냄새, 둘이 서 있기에는 조금 비좁던 그 부엌에서 몇 번이고 엉키던 동선이 지금 생각하면 꿈속의 것 같다.

“이 년 전이었나, 진짜 오랜만에 시드니에 간 거야.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을 봤다? 근데 공연이 시작되고 조도가 달라지자마자 그 무대에 감자가 네 개 딱 뜨는 거야.”

“아이비스인가? 에뮤?”

“아니! 음향 반사판 첫 줄이 그렇게 거대한 네 개의 감자로 보이더라고. 원래는 꽃잎을 형상화한 거라던데 내 눈엔 너무나 감자였어. 깜짝 놀랐다니까. 하필 또 그렇게 감자인 거야. 계속 웃었어. 속으로.”

“궁금하다!”

태오가 그렇게 말했던 것도 기억난다. 내가 다음에 같이 가자고 했던 것도. 무슨 대화 끝에 태오가 “내가 186번째 사랑이라면서요” 하면서 삐쭉거렸던 것도. 그러면서 183번째 사랑은 어떤 사람이었느냐고, 요리를 잘했느냐고 물었던 것도.

“아, 그 사람은 알코올중독이었어.”

“182번째도 무슨 중독이었다면서. 일 중독이랬나.”

“어, 죄다 그렇더라고. 그 앞에도 싹 다 중독이었어.”

“그럼 186번째는?”

“현재 진행형이라 말하기가 좀 그런데. 지나야 말해줄 수 있지.”

“지나갔다치고.”

이번에는 내가 삐죽거렸다. “그게 중요해? 어떻게 기억되는지가? 현재형인 게 중요하지.”

 

태오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서 지난 2월에 시드니로 갔다. 한국에는 이 주 일정으로 나왔는데, 그때 나에게서 연락이 왔던 거고. 그는 말했다. 코알라 집게처럼 지냈다고.

“일시정지 상태로 있었다는 뜻이야?”

“지금까지는 그랬고” 하더니 태오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조금 더 반듯하게.

“이번에 들어가면 나무나 새가 된 것처럼 지내보려고요. 어제는 유칼립투스, 오늘은 아이비스, 내일은 자카란다…… 나 목이 좀 길어진 것 같지 않아요? 아이비스도 그렇고 에뮤도 그렇고, 목이 다 길더라고요. 그 양말 호주산이었죠?”

“아, 홀튼의 양말. 그렇지.”

“그것도 목이 길잖아요.”

뜻밖의 연결이 꼭 밀폐된 공간에 창문을 열어둔 것처럼 산뜻하게 다가온다. “긴 정도가 아니지. 칠십 미터까지 늘어나니까. 목이라고 보기엔 너무 길긴 하다.”

그것으로 물이 불어난 강을 건너갈 수도 있다고, 비상시에 양말 외에도 여러 용도로 쓸 수 있다고 홍보했던 것이 생각난다. 처음 그것을 선로에 떨어뜨린 줄 알고 유실물 신고를 했던 것도. 그렇게 태오를 만났던 것도.

태오는 시드니에 와서 목 위와 아래를 분리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고 말한다. 살짝 분리했다가 다시 조합할 수도 있겠구나, 그걸 알아가고 있다고.

“나 거기서 뭐하는지 알아요? 감자 캐요.”

“감자?”

그는 웃는다. 감자도 캐고 당근도 캐고, 러닝도 하고, 수영도 하고, 하면서. 어느 주말에는 오페라하우스에도 갔다고. 아무거나 남아 있는 티켓을 사서 들어가 앉았는데, 홀의 조도가 바뀌고 연주가 시작되자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감자들이 나타났다고. 감자 아닌 다른 걸로는 보이지 않더라고 그는 말한다. 내가 모르는 시간 속에 내가 아는 기억이 섞여 있구나.

“내 생각도 했어?” 농담처럼 가볍게. 그렇지만 내내 묻고 싶었던 것.

“어우, 문단속 열심히 하고 있지.” 태오는 그러고서 어느 아침에 대해 말해준다. 거리 곳곳에 빨간 장미꽃을 파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 아 밸런타인데이구나 했는데, 다음날 아침 트램 선로 위에 꽃잎이 툭, 툭 떨어져 있었다고. 밤이 다녀간 발자국처럼.

“그때.”

“그때?”

“응. 그때 생각이 났어.”

나는 농담을 한다. “어떤 생각이야, 인류애 같은 거?”

“인류애까지는 아니고.” 그러면서 태오는 작게 웃는다.

우리는 일 년 전에 갔던 테니스코트를 향해 걷는다. 길모퉁이를 돌기 전부터 빛의 일렁임이 느껴진다. 초록 그물을 넓게 던진 듯한 움직임. 테니스코트는 거기 그대로 있다. 빛나는 열매들이 땅에서 뒹군다. 철조망 울타리에 눈을 바짝 대고 떨어져 있는 라임빛 열매들을 하나, 둘, 셋…… 헤아리지 말라는 듯 바람이 불어와 테니스 나무의 무성한 잎들이 마구 흔들리고 그새 열매 몇 개가 더 떨어진다.

태오가 말한다.

“말해주고 싶었어. 나 잘 지내고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면…… 이제 괜찮다고.”

나는 웃어 보인다. 태오도 웃는다. 그러나 나는 웃음을 지속하기가 힘들다. 뭔가가 위에서 나를 누르는 기분이다.

“태오씨 우리, 십 년 후에 만날까. 태오씨가 조금 더 늙으면. 나는 안 늙고 기다릴게.”

바보 같은 농담. 정말 솔직한 마음은 털어놓지 못한다. 나는 태오에게 음악 비누 얘기를 하고 싶었다. 네가 흘려보낸 거, 음악 비누. 그게 내 꿈으로 흘러왔어. 아주 작아져 있었어. 그만큼 많은 것들이 물에 녹아났을 거야, 바다로도 가고 빗방울로도 떨어지고 그랬겠지. 나는 그걸 선로 위에서 발견했어. 네가 오래전에 나를 향해 흘려보낸 것을 내가 봤어. 줍진 못했어. 그게 어디 있었는 줄 알아? 그렇게 말해야 하는데 어쩐지 그 말을 온전히 전할 수가 없다. 이미 일부가 손상된 것 같아서. 나는 태오에게 묻는다.

“꿈에서 내 것이 아닌 걸 발견하면 어떻게 해야 해? 소중한 건데 내 것이 아니면.”

태오는 이렇게 말한다. 꿈에 묻어둔 것, 흘린 것은 누구라도 발견할 수 있다고. 발견되지 않아도 거기 있는 거라고. 누구든, 하면서 그는 말을 잇는다.

“그걸 찾아야 하는 사람이 꼭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니까. 꿈은 담벼락 없는 공동지대 같은 거니까, 그렇게 열어두면 돼.”

“열어두는 거구나.”

혹은 놓아주는 것이기도 하고. 우리는 급격히 말수가 줄어든다. 머물 시간도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의 걸음은 테니스 나무 앞에서 멈춘다. 이 테니스 나무는 내게 지표종 같은 존재. 이제 나는 여기에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시기가 좋지 않았어. 그치.”

태오가 가만히 나를 본다. 눈으로 하나둘 담으려는 듯한 눈빛이다. 내가 시선을 옮겼다가 다시 가져와도 태오는 그대로 날 보고 있다.

“사실은 전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았는데…… 이 말은 꼭 해주고 싶었어. 힘들 때…… 날 살게 했어.”

태오가 어떤 말을 하는지 안다. 다 알면서 나는 묻는다. “누가?”

“너. 임미아.”

나는 울음이 터지고야 만다.

“한태오도 날 살게 했어.”

“그리고.”

태오는 한참 말을 잇지 못한다.

“그리고?”

“보고 싶을 거라고. 오랫동안.” 그는 고개를 숙인다.

그날의 일몰은 처음엔 유화 물감으로 그린 것 같다가 십 분 후에는 수채화처럼, 마지막에는 파스텔톤 그림처럼 보였다. 흐려지고 뭉개지다가 일몰 아닌 것과 뒤섞이고, 마침내 구분되지 않는다.

 

나는 차를 몰고 세차장으로 간다. 색색의 세제들이 붉고 푸른 눈덩이처럼 나를 향해 투척되며 유리창에 원색의 물 커튼을 만든다. 눈을 감는다. 윱 베빙의 <에튀드>다. 태오가 왜 이렇게 슬픈 음악을 들어요, 했던. 음악은 멈춤 버튼을 누른 후에도 꺼지지 않고 계속 흘러나온다. 청음실에서 보내는 오 분이 다한 뒤에도 계속. 초록불 신호가 켜지고 도로로 나온 다음에도. 집 앞에 주차를 하고 엔진룸의 열기가 다 가라앉은 다음에도 여전히.

이제야 알 것 같다. 내가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사람, 흐름을 거슬러 거꾸로 뛰게 할 만큼 강렬한 사람, 그 사람은 어느 시절에만, 한순간에만 존재한다는 것. 그래서 방향을 바꾸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각자의 속도로 춤을 추던 두 사람이 어느 순간 같아지는 것, 고유한 파동을 가진 두 존재가 어느 순간 같은 리듬으로 엉키는 것, 그게 태오와 나의 이야기였다. 그 폭풍 같던 시절에 우리는 같은 모양이었다. 어느 시절에 나란히 겹쳐졌다가 이제는 서로를 스쳐지나가는 중인 거고. 다시 서로를 놓아주는 중이다. 우리가 모르는 시절로.

 

헤어지기 전에 그가 남긴 말.

“서로의 꿈속에 사는 사람. 유효기간도 없고 그래서 사라지지도 않는 사람.”

나는 꿈에 닿으려 애쓰지만, 꿈꾸기가 태풍 속에 닻을 내리기만큼이나 어렵고, 겨우 닻을 내려도 한자리에 고정되지 않는다. 특히 특정 장소에 닿으려고 하는 꿈은 더욱 허상 같다. 선로 위에 반짝이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집어들진 않더라도 발견하기만 하면…… 생각을 이어가보지만 끝내 가닿는 건 꿈이 아니라 잠과 잠 사이의 짧은 쉼표. 새벽 세시뿐이다. 아침이 되면 밤의 허리에서 닿은 그 지점이 꼭 섬처럼 기억된다. 꿈이 아닌 섬.

그러면 태오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에겐 꿈도 필요하지만 섬도 필요하다고. 잠과 잠 사이, 섬에 닿으면 그 섬을 걸어보라고, 해변에 서서 거기까지 밀려오는 것들, 그 섬을 떠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조류와 일몰에 대해 마음을 쓰라고. 아니다. 태오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태오는 내가 닿은 섬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최근의 일이니까. 그러나 나는 계속 태오의 말을 듣는다.

또 새벽 세시. 이불을 걷어내고 두 발을 마룻바닥 위로 내려놓는 순간 무언가 툭 떨어진다. 알 수 없는 부스러기, 파편, 잔해…… 나는 그것을 운석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무언가 열렬히 타오르다 남은 찌꺼기. 무엇이 타다 말았나. 운석을 우주에 되돌려줄 방법이 없듯이 나도 이것을 되돌려줄 방법을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