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곁눈질을 한다. 모자를 기울여 쓴 잡화점의 주인은 무언가 닦아내는 데 열중하고 있다. 너는 집중한 사람처럼 귀 뒤로 머리칼을 꽂으며 구경한다. 꽃무늬가 프린트된 유리잔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형광색 공룡 모형을, 눈알이 번져 시커먼 빛을 띠는 인형을, 자그마한 목제 단추를 차근차근히 본다. 단추들은 온갖 모양으로 잘려 있고, 알록달록하며, 개당 이십 엔이다. 너는 나비 모양의 단추를 고른다. 붉은 나비, 노란 나비, 보라 나비. 너는 손바닥을 오목하게 만들어 다섯 개의 단추를 담아 백 엔 어치를 만든 뒤, 한 개의 하얀 나비 단추를 다른 손에 움킨다. 이곳에서 나비는 쵸쵸라고 불린다. 아카 쵸쵸, 키이로 쵸쵸, 시로이 쵸쵸…… 너는 잡화점의 주인에게 계산을 부탁한다. 동전을 꺼낼 때, 너의 손에서 단추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떨어졌네요!
너는 놀란 척 웃는다. 그렇게 웃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 너는 계산을 하고 나오는 길에 붉은 나비 단추를 하나 훔친다.
이 여행이 고작 사흘 차고 아직 일주일 정도의 시일이 남았다는 것을 너는 믿을 수가 없다. 이국의 휴양지에 왔지만 너의 일상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너는 최소한으로 먹고 가끔 마시고 최대한으로 걷는다. 너는 권태롭다. 권태감이 질긴 고무처럼 온몸을 감싸 너의 몸을 조여오는 것만 같다. 너는 낯선 길을 매일 걸어온 길처럼 걷고, 호텔을 몇 년간 살아온 집처럼 대한다. 너는 잡화점에 들른 한낮부터 호텔로 돌아갈 저녁 시간까지, 주머니에서 왼손을 잘 꺼내지 않는다. 식사를 대강 해치우고, 걷고, 커피를 마시고, 편의점에서 하이볼 캔을 여럿 사는 동안 너는 너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작은 나비 단추를 의식한다. 너는 습관적으로 나비 단추를 손에 쥐었다가 매만지고, 쉴 새 없이 주머니 속에서 굴리며 방으로 돌아간다. 분명 나무로 만들어진 줄 알았던 나비 단추는, 너의 손안에서 아주 작게 들이쉬고 내쉬며 박동하는 것 같다. 숨을 고르는 중인 것 같다. 날개를 손끝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린다.
너는 호텔로 돌아와 외출복 차림으로 침대 위에 엎어져 눕는다. 침대맡에는 폭이 좁은 거울이 길게 둘리어 있고, 그 거울의 존재가 거슬린다. 너는 거울을 일부러 등진 채로 몸을 일으킨 뒤 침대 위에 널브러진 캔을 하나 열어 들이켠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한다. 아홉시까지는 한 시간가량이 남았다. 너는 목욕을 할 요량으로 캔을 든 채 욕실로 향한다. 욕조에 물이 차오르는 것을 바라본다. 훈기가 돌자 갑자기 취하는 듯한 느낌에 휩싸인 채 욕조로 들어간다.
아홉시 정각이 되자 연인은 네게 전화를 걸어온다. 떠난 날부터 매일 밤 아홉시, 너의 연인은 성실하게 걸어온다. 고작 오 분 내외의 통화를 하기 위해. 연인은 너에게 일과와 식사 여부를 묻고, 너는 절반 정도 거짓으로 대답한다. 너는 이렇다 할 일과를 보내지 않고 밥은 한끼로 족해하며 대신 술을 마신다. 연인은 네가 술 마시는 걸 그다지 유쾌하게 여기지 않으니 너는 목소리를 똑바로 내려고 노력한다. 연인은 이국에 온 너를 돌보고 있다. 그것은 연인다운 일이라고 너는 생각한다.
어느 날 연인이 너에게 떠나라고 말했다. 잠시간이라도 홀로 머물며 쉬는 시간을 가지라고, 그편이 좋겠다고, 연인은 다소 단호하게 말했다. 너도 그러는 편이 좋겠다고 수긍했지만 사실 정말로 여행을 떠나올 생각은 아니었다. 연인은 비행기 티켓과 호텔에 대한 비용을 지불했고, 여행지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지, 무엇을 먹거나 무엇을 봐야 하는지도 문서로 정리한 뒤 하나하나 읽어주었다. 연인이 너를 위해 고른 여행지는 동양의 하와이라 불리는 땅이었다. 전후 재건의 상징과도 같다는 기적의 국제거리, 별자리의 이름을 따서 만든 오리온 맥주, 1월에도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히비스커스, A&W의 루트비어와 블루실의 솔트쿠키맛 아이스크림 같은 것들이 있는. 다정한 일이었지만 너는 혼란을 느꼈다. 연인은 너를 조금은 쫓아내는 것 같았다. 너는 연인이, 네가 가버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호의를 베풀었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너는 매일 밤 긴장이 된다. 연인에게서 전화가 올까봐. 혹은 전화가 오지 않을까봐.
침대에 걸터앉은 채 통화를 끝낸 너는 목욕 가운 차림으로 눕는다. 넌 누운 채로 붉은 나비 단추를 바라본다. 하이볼을 들이켜기 위해서만 간헐적으로 몸을 일으킨다. 불현듯 너는 흠칫 놀란다. 째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방 바깥에서 들려온다. 너는 소리의 근원을 찾으려고 방문을 연 뒤 복도로 나간다. 그것은 건너편 방에서 들려온다. 젊은 여자가 누군가와 대화하며 웃는 목소리다. 웃음소리는 복도를 울린다. 너는 웃음소리가 삐져나오는 방문을 주먹으로 한 번 쾅 친다. 그런 뒤 방으로 돌아가 귀마개를 꽂은 채로 눕는다. 곧 잠에 빠져든다.
너는 국제거리를 걷는다. 직선으로 길게 뻗은 국제거리는 온갖 기념품과 관광객으로 가득차 소란하고, 너는 그 정돈되지 않음에 벌써 지쳐버렸다. 그러나 너는 국제거리를 피할 수 없는데, 호텔이 국제거리 인근에 있기 때문이다. 정처 없이 떠돌기 위해 너는 어떤 식으로든 국제거리를 거쳐야 한다. 너는 잠깐 길을 걷다가 멈추어 선다. 상점 가판대에는 아름답게 채색된 도기와 민사* 문양이 새겨진 패브릭 지갑, 음경 모양의 호루라기와 여주가 그려진 콘돔 갑, 자그만 시사 여러 쌍이 어지러이 놓여 있다. 시사. 사자와 개 그 사이에 있는 것처럼 생긴, 이 땅의 수호신. 너는 쓸모도 없고 아름다움도 갖추지 못한 물건들을 내려다본다. 그러던 너는 시사들 사이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을 본다. 너는 방금 시사의 얼굴 위를 스쳐지나간 무언가를 본 것 같다. 가마에서 구워진 도자기 시사의 표정은 바뀔 리가 없는데도. 시사는 언제나 쌍으로만 존재한다고 너는 들었다. 과연 시사들은 모두 짝수다. 한 마리는 입을 다물고, 한 마리는 입을 벌린 채. 균형이 깨지면 무엇이 함께 무너질까? 궁금해하며, 너는 한 마리를 집어올린다. 분홍색 물감으로 칠해져 있고, 입을 활짝 벌린, 손바닥만한 크기의 시사를. 너는 그것을 꼼꼼히, 다소 오래 들여다본 뒤 내려놓고, 곧바로 옆에 놓인 입을 다문 시사를 가볍게 집어 너의 푹신한 천가방 안으로 떨어트린다. 너는 지체하지 않고 떠난다. 그런 식으로 일이 진행된다. 너는 잘 차려입고, 신중하고 소중하게 만지작거리고, 오래오래 들여다보다가, 어느 순간 저지른 뒤 멈추지 않는다. 네가 강탈하는 방식으로 균형을 깨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사람은 없다. 너는 들키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초조하다. 너는 누군가가 너의 뒤를 밟기를, 쫓아오기를, 너에게 따지거나, 욕설을 퍼붓거나, 심지어는 폭력으로 되갚아주기를 기다리며, 심장을 느리게 부풀린다. 커다랗게. 심장이 곧 네가 될 때까지. 그러나 누구도 너를 쫓아오지 않는다. 너는 가게를 벗어난 지 몇 걸음 지나지 않아 멈춰선 채로 뒤를 돌아보지만, 길을 가는 평범한 행인들뿐이다. 그때 바람이 세게 불어온다. 너는 잠시 몸을 굽힌다. 어느새 너의 심장은 원래 자리에 있어야 할 크기대로 쪼그라들어 있다.
* 오키나와의 전통 직물. 면으로 짠 폭이 좁은 띠를 일컫는다.
너는 대로를 빠져나와 샛길을 걸어간다. 며칠 사이 근방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된 너는 일부러 모르는 곳을 향해 걷는다. 1월인데도 기온은 온화하고, 야자수가 흔들리고, 핏빛을 띤 히비스커스가 골목 틈마다 피어 있다. 너는 강을 넘어가보기로 한다. 너는 그렇게 계속해서 길을 걷는다. 한참 걸음을 옮기자 머리가 지끈대온다. 바람이 차가워서였다는 걸 깨닫는다. 너는 시폰 원피스 한 겹 위에 얇은 가디건 한 장을 둘렀을 뿐이다. 연인이 추위를 많이 타는 너를 위해 목도리를 챙겨주었지만 너는 그걸 매번 잊는다. 상비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희고 작은 알약을 꺼내어 삼킨다. 너는 통증을 참지 않는다. 통증이 만성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너는 애초에 참는 것을 멍청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너는 견디고 싶지 않다. 너는 약기운이 돌 때까지 기다리고 싶지도 않다. 그러는 대신 너는 매순간 움직이고 싶다. 외치고 싶다. 내던지고 싶다. 고요함을 찢는 경적이 되고 싶다.
너는 계속 걷다가 거대한 나무를 만난다. 너는 스산함을 느낀다. 그건 추워서가 아니라 나무가 뿜어내는 기운 때문이다. 나무가 너에게 말을 걸어온다. 너는 다가간다. 걸음걸음마다 두피가, 뒷목이, 종아리 언저리가, 오른발 끝이 찌릿하게 마비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찌릿함은 너의 등을 타고 넓게 너의 온몸 구석구석을 향해 퍼져나간다. 너는 걸음을 잠시 멈추고 나무를 바라본다. 나무는 거대하고, 다섯 명의 네가 있어야만 겨우 한 번 안아볼 수 있을 듯이 두껍다. 살면서 본 것 중 가장 거대한 나무. 네게 나무는 여러 마리의 코끼리를 한데 합해놓은 것처럼 보인다. 너는 겁이 나지만 힘을 내기로, 나무를 조금 더 바라보기로 한다. 너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 뒤, 고개를 조금 숙여 나무의 뿌리 부분을 본다. 줄기보다는 얇지만, 지상에 드러나 있어 억센 피부를 가진 뿌리를. 어떤 뿌리는 뿌리끼리 맞닿아 꼬여 있고, 어떤 뿌리는 스스로의 몸을 약간 허공에 띄운 채로 있고, 어떤 뿌리는 직선으로 나다가 뚝 잘린 듯 있다. 너는 잘린 뿌리의 단면을 바라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불현듯 너의 눈에 그 나무의 정체가 보인다. 그건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니다. 여러 나무의 총합이다. 나무가 나무의 목을 조르고, 그러다 아예 삼켜버렸다는 것을, 너는 알게 된다.
그때 너의 몸에서 일이 벌어진다. 너의 왼쪽 눈에서 눈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네가 인지할 새도 없이, 상처에서 흐르는 진물처럼 느리게 고여 맺힌다. 진득하고 묵직해 흐르지 않는 종류의 눈물. 너는 손등으로 닦아낸다.
계속해서 걷자 너는 아는 길로 금세 돌아와버린다. 이런 식이다. 유난히 신경 쓰지 않으면 너는 계속해서 아는 곳으로 되돌아온다. 너는 국제거리에 위치한 대형 드러그스토어로 들어간다. 입구에 놓인 스크린에서는 파란색 찰흙 덩어리처럼 보이는 캐릭터가 씰룩씰룩 춤을 추며 끝없이 CM송을 부르고 있다. 너는 그 노래가 거슬리지만 드러그스토어 어디에 있어도 같은 멜로디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시간이 지나자 조금은 경도되는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너는 약간 흥분한 채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탄다. 먹을거리와 기념품, 약, 메이크업 제품, 문구, 티셔츠, 성인용품 따위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는 너의 눈앞을 끝없이 스쳐지나간다.
너는 꼭대기인 5층에서부터 한 층씩 내려간다. 내부를 가로지르고, 물건을 살피고, 재고 박스를 지나치고, 걷고, 물건을 관찰하면서. 이것저것 잡고 내키면 가방 안으로 집어넣는다. 심장이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너는 천장에 붙은 채로 내려다보는 보안 카메라를 의식한다. 겁이 나지는 않는다. 너는 카메라들이 무심하고 엄정한 눈으로 한곳을 바라보고 있음을 안다. 그 시선에 익숙해진다. 그쪽을 향해 잠깐씩 웃어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 너를 발견할 수도 있다는 상상은 너에게 기쁨을 준다. 그러나 네 눈에 보이는 종업원들은 눈앞에서 들고 나가더라도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파리한 얼굴을 하고 있다. 2층에 다다르자 일련의 일들은 패턴이 되고, 지루함이 시작된다. 너의 가방에는 잡동사니들이, 소프트아이스크림 모양 마그넷, 컬러 립밤, 초록색 딜도, 도라에몽 인형, 흰색 인조모 피스 따위가 들어차 있다. 가방의 덮개는 물건으로 들썩여서 반 이상 열려 있으며, 금방이라도 넘실넘실 넘칠 것 같다. 1층에 다다라 출구가 보이자 너는 안심한다. 당장이라도 이 시끄러운 드러그스토어를 나서고 싶다. 누구도 너를 의심하지 않는다. 네가 드러그스토어를 막 빠져나오려던 그때, 누군가 너의 손을 붙잡는다.
이번엔 이 여성분께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머리에 흰 띠를 두른 남자다. 남자의 앞에는 팔각형의 커다란 가라폰이 놓여 있다. 남자는 지체하지 않고 너의 손을 가라폰 손잡이로 가져간다. 너는 남자의 뒤편에 세워진 조잡한 간판을 보고 나서야 상황을 이해한다. 〈RANDOM RANDOM EVENT!! 오늘은 무엇이 나올까?〉 지나가던 사람들은 너를 보고 있다. 너는 손잡이를 던지듯 돌린다. 가라폰의 내부에서 도르르 구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구슬이 바닥으로 똑 떨어진다. 파란색 구슬이다.
축하합니다. 3등, 식도 당첨입니다!
남자는 몸 깊숙한 곳에서 재생시킨 듯한 소리를 우렁차게 내뱉는다. 주변 사람들은 박수를 친다. 너는 얕게 탄식한다. 이런 데에 운을 써버릴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너는 맑은 파란색 구슬을 남자에게 건네고, 남자는 납작한 상자를 꺼내든다.
좋은 요리를 만들게 되실 거예요.
남자는 웃으며 너에게 쥐여준다. 그러나 너는 요리를 하지 않는다. 그러면 너에게 칼은 무엇이 될 수 있나. 너의 가방은 이미 가득찼기 때문에 너는 식도가 담긴 상자를 옆구리에 끼운 채 소란한 국제거리를 걷는다.
너는 기진맥진하다. 배가 고파진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어느 레스토랑으로 들어간다. 너는 갈색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아 카치오페페와 긴 휴가라는 이름의 칵테일을 주문한다. 별다른 토핑 없이 치즈와 후추로만 만들어진 파스타는 따뜻하고 양이 적다. 칵테일에서는 직접 짠 파인애플의 맛이 진하게 난다. 너는 이런 식사가 마음에 든다. 깔끔하고 간단하며 적당히 비싸고 허기를 때울 정도의 식사.
그때 옆자리에서 누군가 벌떡 일어났고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린다. 너는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본다. 바닥에는 포크와 나이프가 떨어져 있고, 아마 직전까지 의자에 앉아 있었을 여자는 잔뜩 일그러진 채 자리에 서 있다. 순간 주변이 고요해지고, 여자는 일행들을 그 자리에 남겨놓은 채 떠나려 한다. 몇 걸음을 옮기다가 기우뚱하더니 차가운 타일 바닥 위로 쓰러진다. 병이 깨지듯 여자는 깨진다. 여자의 팔다리는 빠르게 여자의 통제를 벗어나고, 한참 파들파들 떨리다 어느 순간 멎는다.
그 풍경을 관람하며 너는 파스타를 포크에 만다. 큰 소리 탓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너는 응당 벌어질 일이 벌어졌다는 기분이 든다. 어떤 면에서 너는 여자가 부럽기도 하고, 저 자리에 엎어져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장내를 혼란하게 만드는 신체가 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너는 여자가 한심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칠칠치 못하게. 너는 여자가 들것에 실려 나갈 때까지 그 장면을 오래도록 눈에 담는다.
너는 레스토랑을 벗어난다. 아직 해가 질 시간은 아닌데 주변이 어둡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끼어 있다. 너의 손에는 우산 대신 길쭉한 식도 상자만이 들려 있다. 너는 호텔로 돌아가기로 한다.
네가 묵는 호텔 건너편에는 현청 건물이 있다. 건물은 온통 희고 길쭉한데, 매 층마다 풀잎과 넝쿨들이 얽혀 있다. 정글 같은 꼬임과 얽힘. 횡단보도 앞에 선 채 그것을 바라보며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린다. 주변을 어둑하게 물들이던 구름이 순간 걷힌다. 갑작스레 사위가 밝아지며 구름 사이로 햇빛이 쏟아져내린다. 곁에 서 있던 한 무리의 학생들이 와아, 하고 작은 감탄을 내뱉는다. 그때 신호가 바뀐다. 신호음이 사거리 위에 울려퍼지는 동시에 빗물이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너는 달리기로 한다. 눈부신 햇빛과 방울방울 흩뿌려지는 빗물이 동시에 머리 위로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