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회

1985년 6월, 북한산성 입구에 모인 이들 중 조중균씨와 형수만 등산복 차림이 아니었다

1985년 6월, 북한산성 입구에 모인 이들 중 조중균씨와 형수만 등산복 차림이 아니었다. 조중균씨는 백팩에 밀리터리 망치 가방까지 어깨에 메고 있어, 산을 오르기에는 너무나도 부적당했다. 형수는 말할 것도 없었다. 늘 입는 체크 바지에 평소처럼 구두를 신었으니까. 아침마다 왁스를 바르는지 구두는 항상 반질반질했고 그런 인공적인 광은 형수의 작은 발을 더욱 앙증맞아 보이게 했다. 산성 입구의 버스 정류장에서 등산로 초입까지는 노점 수십 개가 늘어서 있었다. 새벽 서울역에서 만난 둘은 156번 버스를 두 시간 넘게 타고 와서는 정오까지 죽치고만 있었다. 같은 버스를 타고 온 등산객들은 태극기 휘날리는 백운대를 찍고 내려와 산중턱 어디쯤에서 점심을 하고 있을 시각이었다.

옥수수 얼마예요?”

형수가 노점 한 곳으로 가서 물었다. 주인 여자는 형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오백원이라고 답했다. 옥수수들은 비닐에 두세 개씩 묶여 채반에 놓여 있었다. 뜨거운 김이 식으며 생긴 물방울들이 비닐 표면에 촘촘히 맺혀 있었다.

, 관광지라 비싸게 받네.”

비싸기는. 강원도 찰옥수수라 그래요.”

, 강원도! 이거 강원도 찰옥수수 맞니?”

조중균씨가 옥수수와는 거리가 먼, 깊고 차가운 해류를 따라 러시아에서부터 헤엄쳐 이동하는 명태들의 세상에서 왔다는 사실을 형수는 모르는 것 같았다. 강원도라고 모두 다 옥수수와 감자만 먹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물론 좌판에 놓인 건 찰옥수수가 아니라 수입산 메옥수수였다. 찰기 없이 꺼끌꺼끌하고 단맛 한 점 없어 미국에서는 동물 사료로나 쓰는. 그래서 그렇게 뉴슈가를 퍼넣어 찌는 거였다. 조중균씨는 손짓으로 형수를 불렀다. 감자칼로 오이 껍질을 벗겨내고 있는 여자가 듣지 못하도록. 그득히 쌓인 오이들은 등산객들이 사서 갈증이 날 때마다 하나씩 꺼내 먹었다.

미제 사료?”

조중균씨의 의도가 무색하게 형수는 듣자마자 큰 소리로 외쳤다. () 자로 찌푸려지는 여자의 미간이 멀리서도 보였다.

, 너 아니면 큰일날 뻔했다. 개돼지 사료로 쓰는 미제 옥수수를.”

그 말에 옥수수도 아니고 약숫물을 사려던 손님마저 주춤했다. 곧이어 약수는 맞느냐는 질문이 들렸고 그 말에 자극받았는지 감자칼을 바가지에 던져넣은 여자가 삿대질을 해가며 다가왔다.

복 없는 년은 봉놋방에 누워도 고자 곁에 가 눕는다고 아침 매상 죽 쑤고 나서 부아가 나 죽겠는데 등산하러 왔으면 산이나 오를 것이지 나랑 언제 보고 무슨 웬수가 졌다고 장사에 초를 쳐요? 초를 치긴.”

여자의 기세에 조중균씨가 슬금슬금 물러서는데 형수는 우리끼리 대화에 웬 상관이에요?” 하고 받아쳤다. 장사하는 사람이 정직해야지, 뜨내기손님이라고 찰옥수수도 아닌 걸 속여 팔면 되겠느냐는 훈계가 이어졌다.

찰옥수수 맞다니까!”

여자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자 각자 사정대로 꾸려진 노점들에서 두어 명씩 나와 구경하기 시작했다. 정오의 쨍한 해를 등지고 있어 얼굴들은 어둡고, 겹쳐진 그림자들 역시 짙었다. 바람에 일렁이는 나무들을 거느리고 아스라이 서 있는 산 풍경과 대조되는 장면이었다. 눈앞의 광경은 얼마나 낡고 평범하고 괴로운가…… 자조하던 소설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형수가 입이 닳도록 얘기하는 그 작가의 책을 조중균씨도 읽은 것이었다.

개돼지 미제 사료 옥수수라는데 무슨 소리예요? 얘가 강원도 출신입니다.”

형수는 여전히 밉살맞게 입을 놀렸다. 지목받은 조중균씨는 당황했다.

아저씨가 누군데요? 누군데?”

여자 뒤로 사람들이어쩌면 그냥 싸움 구경을 하는지 모르겠으나병풍처럼 둘러섰고 무리 중 일부는 등산 온 사람들이 아니구먼. 아까부터 왜 여기 있어?” 하고 말을 나눴다. 정확히 본 것이었다. 그들은 등산이 아니라 산에 살러 들어가려는 것이니까. 그 위기의 순간에 발작처럼 터진 기침이 조중균씨와 형수를 구해주었다. 켈럭켈럭켈럭 하며 등을 돌려 빠져나가는 조중균씨를 여자도 굳이 불러 세우지는 않았다. 형수도 옥수수 따위는 포기하고 , 또 기침이 나서 어쩌냐? 괜찮냐?” 하며 뒷걸음질쳤다. 둘은 공중전화 부스 쪽으로 가서 쪼그려앉았다. 버스들이 몰고 들어오는 휘발유 냄새 때문에 조중균씨는 머리가 아팠다.

공중전화 보면 말이야. 꼭 누구한테 전화 걸고 싶지 않냐?”

팔자 좋은 소리구나, 조중균씨는 생각했다. 내부 상황이야 잘 모르지만 그런 비지적 풋내를 지워야 한다고들 하지 않았나. 비지는 부르주아의 약자로, 여태껏 흠뻑 젖어 있던 자본주의적 가치관과 태도를 가리켰다. 하지만 조중균씨 경험상 그런 것은 그런 식으로 단숨에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나는 말이야. 가끔 알고 있는 전화번호에 숫자만 바꿔서 걸어보고 그런다.”

?”

그냥 거기 누가 있구나 확인만 되어도 살맛나잖아.”

, 너 돈이 쌨더래?”

조중균씨는 그런 감상적인 말들은 질색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물러지는 날에는 모든 것이 진창에 빠질 것이다. 사시사철 냉한 공간에서 마치 덕장의 명태처럼 얼었다 녹았다 얼었다 녹는 어머니의 두 발 같은 것. 동상으로 퉁퉁 붓고 물집이 잡히며 못 견디게 가려운 어머니의 두 발은 영영 나을 길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

뭐를?”

우리 데리러 온다는 분 말이야.”

오겠지.”

우리가 가면 안 되냐?”

길을 모르는데? 거기가 그렇게 쉽게 갈 수 있는 데가 아니야.”

다방에서는 같은 서울이라 편안하게 다닐 수 있다고 해놓고는 딴소리를 했다. 그래도 앞으로 조중균씨가 사찰에 누구와 머물게 될지는 설명해주었다. 그는 서클의 전설적인 존재로 현재 대학가에 떠도는 대부분의 사상 서적을 번역했다고 전했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제적되었다가 복학했지만 이후에도 운동을 계속하다 또 제적되었다고. 확인된 것만 6개 국어를 하는 언어 천재라고. 끼니도 거르고 초여름 날씨를 견디던 조중균씨는 점점 의식이 아득해졌다. 등산은커녕 아까부터 참아온 요의마저 해결할 힘이 없었다. 버스 차고지 한편에 변소라고 쓰인 간이화장실 갈 힘조차 없구나, 하고 낙담했을 때쯤 누군가 지나며 종이 뭉치를 툭 던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주머니에 손을 넣고 등산로로 진입하고 있었다. 종이에는 ‘078’이라고 쓰여 있었다.

형수는 발딱 일어나 조중균씨에게 가자고 눈짓했다. 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남자는 한줄기 바람처럼 산중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형수와 조중균씨 사이에는 대화가 끊겼다. 앞서가는 남자는 군인처럼 짧게 깎은 머리통만 슬쩍슬쩍 보일 뿐 여전히 빠른 속도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걸었고 형수와 조중균씨는 그를 따라잡기는커녕 영영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했다. 나무들은 울창하고 여름꽃도 피었지만 감상할 겨를은 없었다. 숲을 느낀다면 그건 살갗에 닿는 축축함이나 숨쉴 때마다 느껴지는 습기를 통해서였다. 나무들이 저마다 내는 맵싸한 향이 조중균씨의 코와 입을 덮는 듯했다. 투명한 거즈나 베일처럼. 얼마나 올랐을까,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지은 창고가 나왔고 남자가 그 앞에 서 있었다.

, 너무 빨라, 너무 빨라.”

형수가 숨을 할딱거리며 탓했다. 남자는 사내 자식이할 뿐 그다지 미안해하지 않았다.

남자는 눈이 크고 콧날이 오뚝하며 눈썹이 짙었다. 어딘가에 숨어서 번역에 열을 올리는 서생이라기보다는 전장에 나가서 싸우고 있어야 할 장부처럼 보였다. 다부진 몸에 키도 커서 더 건장한 인상이었다. 그는 천막을 들추더니 물 한 모금씩 해하고 권했다. 어디와 이어져 있는지 고무호스에서 물이 쫄쫄 나오고 있었다. 조중균씨는 방광을 확실히 누르던 요의가 사라진 걸 느꼈다. 땀으로 배출된 건지 긴장해서 잊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둘은 번갈아 호스에 입을 대고 물을 받아 마셨다.

이것 좀 지고.”

남자가 흙바닥에 발랑 자빠져 있는 지게를 가리켰다. 하지만 조중균씨에게는 뭘 들 만한 등과 어깨가 남아 있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형수가 멨고 그 근처에 나무판자로 덮어두었던 물건을 남자가 들어 지게에 올렸다. 사찰에서 먹을 식자재라고 했다. 장 봐주는 사람이 갖다놓으면 여기서부터는 절 사람들이 옮긴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정작 그는 아무것도 들지 않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조중균씨가 형수에게 왜 너만 짐을 지느냐고 묻자 형수는 헥헥거리면서 뱅가드니까하고 답했다. 조중균씨는 서클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단어만 해석해보아도 뱅가드가 일종의 리더를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가 작전 사령관한테 군장을 메라고 하겠어.”

평소에 조금도 자기를 낮출 줄 모르던 형수답지 않았다.

어쨌든 니 덕에 이렇게 돼서 기쁘다.”

기뻐?”

조중균씨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되물었다. 시간 약속도 지키지 않고 따라오는 사람을 돌아보지도 않으며 무거운 짐 한번 들어주지 않는 기본 인성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저 남자가 뭐기에 만나는 것만으로 기쁘다는 말인가. 조용필 같은 연예인이기를 해, 어디 이름난 사람이기를 해. 조중균씨는 그제야 형수를 완전히 알 것 같았다. 우상을 만들어내고 숭배하며 자기와 동일화하는 하이틴적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쉽게 추앙하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기 사랑을 사랑하는 철부지. 그때 산속 어딘가에서 뻐꾸기가 울었다. 뻐꾹뻐꾹뻐꾹꾹꾹꾹…… 기분 탓인지 그 아름다운 새소리조차 공기 중을 구르는 무의미한 구음처럼 들렸다. 그리고 더이상 뻐꾸기도 울지 않을 때쯤, 사찰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