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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님, 전화가 울려요.”
조중균씨 이야기를 들으며 북한산 산등성이를 오르던 나는 놀라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술집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전화는 끊겼고 화면에 떠 있던 영도의 이름이 사라지자 테이블 끝에 앉아 있는 휘발유가 눈에 들어왔다. 저 친구는 또 언제 왔나 싶었는데 나를 향해 쇼핑백을 내밀었다. 뭐냐고 묻자 “불편하실 것 같아서 그냥” 하고 무덤덤하게 답했다. 꺼내보니 검은색 트레이닝 바지였다. 봉제선을 따라 형광색 실로 스티치되어 있었다.
“나 갈아입으라고 사온 거야? 표세씨 사회생활할 줄 아네, 고맙다.”
“사회생활 그런 거 아니고요.”
휘발유가 무릎을 손바닥으로 비비며 딴청을 부렸다.
“무슨 얘기중이었어요?”
“조선생님 과거사요. 완전 영화예요.”
첩보, 추리, 서스펜스, 미스터리 다 있는 여름 대작감이라고 해란씨가 설명했다. 모두들 더 듣고 싶어했지만 졸음으로 눈꺼풀이 반쯤 내려온 하이에나 사장이 마감 시간이라고 알렸다. 자정이 훨씬 넘어 있었다. 옷가게를 찾아다녔을 휘발유를 생각해 화장실에서 바지로 갈아입고 나왔다. 휘발유 조언대로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택시 말고 버스를 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원이 집인 해란씨는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흩어지는데 해란씨가 “조만간 후속편 또 들려주세요!” 하고 조중균씨에게 부탁했다.
“글쎄요.”
조중균씨는 평소처럼 과묵해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입이 술술 열렸던 게 꿈결 같았다.
“제가 다음에 하이볼 살게요!”
해란씨가 조금씩 뒷걸음치며 외쳤다.
조중균씨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하고는 아까 조중균씨의 과거에 대한 해란씨의 요약에 빠진 게 있다고 짚었다.
“뭔데요?”
“뭔 것 같습니까?”
“호러?”
해란씨가 답하자 휘발유가 옆에서 피식 웃었다.
“브로맨스?”
조중균씨로부터 별 반응이 없자 해란씨는 답을 못 듣겠다 싶었는지 뒤돌아 걸었다. 가볍고 선선한 해란씨다운 걸음이었다. 우리는 문 닫힌 가게들을 지나 큰길가로 나갔다. 조중균씨는 전화광 형수씨의 연락을 받을 때의 예의 그 초조한 표정이 되어 택시를 불렀다.
“뭐예요? 뭐가 빠졌어요?”
내가 묻자 조중균씨가 답을 말해주었는데, 그것은 애증이었다.
조중균씨가 떠나고 휘발유와 나도 버스에 올랐다. 밤처럼 조용하고 적막한 표정으로 귀가하는 승객뿐이어서 우리도 그 침묵에 이내 젖어들었다.
“저 음악 들어도 돼요?”
그러라고 하자 휘발유는 에어팟을 귀에 꼈다가 떼며 “같이 들으실래요?” 하고 물었다.
“그래요.”
블루투스로 연결해서 듣자는 얘기인 줄 알았더니 에어팟을 하나씩 나눠 끼는 고전적인 방법이었다. 십대 때 줄 이어폰으로 하던 방식 아니었나 생각하던 끝에 아까 걸려온 영도의 전화가 떠올랐다. 왜 전화했을까. 기분이 착잡했다. 이 평온한 초여름밤에 무슨 용건이 있어서, 뭐가 필요해서 그래. 수많은 사람들에게 꽃잎처럼 감싸여 살면서. 에어팟에선 첫 노래로 퓨전 국악이 나왔고 휘발유에게 나를 배려한 거라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일렀다. 나는 그런 ‘라이트’한 건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럼 어떤 거 들으세요? 헤비한 걸로 틀겠습니다.”
“왜요, 국악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냥 표세씨 좋아하는 음악 들어도 돼요.”
“아, 그건 좀 그럴 텐데. 싫어하실 거예요.”
“싫어하지 않을걸? 나 그렇게 편협한 취향 아니야.”
휘발유는 몸을 틀어 나를 바라보고는 이내 노래를 바꿨다. 하지만 버스가 신촌 현대백화점 앞을 지나기도 전에 나는 했던 말을 후회했다. 그로울링 창법의 헤비메탈이 고막을 두들겨댔던 것이다. 아우성치는 보컬과 드럼, 전자기타 속에서 그래도 내가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느껴보기 위해 애써야 했다. 그루브라든가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가사에 집중했다. “소리는 사람의 생김생김마다 제각각이라 좋제” 하던 선생들의 말까지 떠올리면서. 판소리를 배우는 아이들조차 같은 소리는 하나도 없었다. 자연스레 잘하는 애를 따라 하면 얼마 못 가 “니 소리로 질러야제!” 하는 꾸중이 벼락처럼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내 소리, 내 목소리도 아니고 내 소리. 아직 변성기도 지나지 않아 앞으로 내 목소리로 소리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 그 운명도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주문이었다. 그리고 어려움 앞에서 아이들은 아주 조용히 무력해진다.
“밴드 이름이나 알고 들을까?”
한 곡이 끝난 타이밍에 맞춰 휘발유에게 묻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판테라요. 괜찮아요. 받으세요.”
망설이는 사이 전화는 끊겼고 ‘그때 말한 약속……’으로 시작하는 메시지 알림창이 화면 위로 떴다 사라졌다. ‘많이 바쁠 테지만……’ 하는 말도. 바쁘지는 않지, 오히려 한적하지. 이대로 끝난다면 오늘밤은 더 바랄 게 없다 싶을 정도로. 폭주하는 메탈 음악에 대비되어 버스 안의 적막감은 더 극적인 평온을 몰고 왔다. 또다른 말들이 다시 도착했고, 화면에 떴다가 가뭇없이 사라지는 그런 메시지들은 영도의 어떤 상태를 이미 전하는 듯했다. 뭔가를 이뤄도 걷어내지지 않는 서늘한 결핍감 같은 것. ‘어나더 레벨’로 살아도 사람 사는 게 뭐 그리 ‘어나더’ 할 수는 없겠지. 돈 많다고 하루에 수십 끼 먹을 수 있는 것 아니고 수십 벌 껴입고 나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물론 돈의 힘은 세고 센지라 누구든 그 영향에서 대대손손 벗어날 수는 없다. 흥보는 생살지권을 가진 돈이라고도 했으니까. “잘난 사람도 못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 하던 흥보가의 한탄이나, “연왕도 오백금으로 죽은 뼈 사셨으니 너를 산 채 몰아다가 대왕전에 바쳤으면 천금상을 아니 주랴” 하는 수궁가 동물들의 탐욕이나, “살림을 팔자 한들 단돈 열 냥 뉘랴 주며, 내 몸을 팔자 한들 앞 못 보는 봉사놈을, 단돈 서푼을 뉘랴 주리” 하던 심봉사의 자탄. 그중 압권은 춘향가였다. 옥에 갇혀 죽게 된 사람 앞에서 군졸들이 돈을 받아 챙기며 “유전(有錢)이면 가사귀(可使鬼)”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는 가장 섬뜩했다. 돈이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니, 그건 사실상 영혼의 점령 아닌가.
버스는 아현고가도로 입구에서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안전요원들이 야광봉을 들고 있는 걸 보니 공사중인 모양이었다. 운전기사가 두 팔을 앞으로 죽 펴며 몸을 풀었다.
“가영도라고, 배우 알아?”
“알아요. 박찬욱 영화에도 나왔잖아요.”
“박찬욱 감독 좋아해?”
“아뇨.”
나는 어느 지점이 웃겼는지 모르겠지만 웃었다. 휘발유는 어딘가 천진한 면이 있었다. 팀 전체를 골치 아프게 만드는 빌런일 줄 알았는데 그런 사건 사고를 일으킬 만큼 정념을 지닌 성격 같지는 않았다. 점심을 거르고 엎어져 잔다거나, 괴이하게 커스텀한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건 자기 나름의 회사 적응법이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박찬욱 감독 좋아해.”
“죄송합니다.”
그 말에도 웃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오해를 살지 몰라 어금니를 꽉 물고 참았다. 창밖으로 점멸하는 경고등이 보였고, 버스는 천천히 공사 구간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가영도가 내 전 남친이에요.”
“축하드릴 일이네요.”
짧고 옅은 반응 때문인지 구부장 언니에게 말고는 해본 적 없는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최근에 재회했어.”
“어이구,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나는 더 참지 못하고 웃었다. 음악은 다음 트랙으로 넘어가 메탈리카의 <웰컴 홈(Welcome Home)>이 흘러나왔다. 서울역사박물관을 지날 즈음 나는 에어팟 한쪽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바지도 고맙다고 인사했다. 다음에 점심을 사주겠다고.
“어떻게 내 사이즈를 딱 맞혔어요? 프리 사이즈는 맞지도 않는 몸뚱이를.”
휘발유는 에어팟과 휴대폰, 모자를 차례로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내리기 전 “차장님” 하고 불렀다. 눈이 동그랗고 입술이 조그마해 언뜻 보면 땃쥐나 청설모 같은 작은 동물을 연상케 하는 얼굴이었다.
“몸뚱이라니요.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십니까. 점심 말고 저녁 사주세요. 제가 혜화동으로 갈게요. 같이 가고 싶은 식당 있어요.”
휘발유는 홱 돌아 계단을 느긋하게 내려 밟고 사라졌다. 휘발유가 향하는 정류장 뒤편으로 정말 주유소가 있어서 나는 별수없이 또 웃었다. 종로에서 내린 나는 버스를 갈아타지 않고 집 방향으로 걸었다. 밤길을 걷는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 흥얼흥얼 가락이 흘러나왔다. 어느 마당의 어느 구절인지 기억이 안 나는 소절들이었고 그렇게 떠오르는 것들은 입이 아니라 몸에 붙어버린 대목들이었다.
편지를 쓰랴 헐 제 한 자 쓰고 눈물짓고 두 자 쓰고 한숨 쉬니
눈물이 떨어져서 글자가 수묵(水墨)이 되니 언어가 도착(倒錯)이로구나
편지 접어 손에 들고 문을 열고 나가보니 기러기는 간 곳 없고
창망헌 구름 밖에 별과 달만 뚜렷이 밝았구나
부치지 못할 편지를 들고 문밖을 나선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불분명했다. 춘향이인지 이도령인지 적벽가의 장수 중 하나인지…… 하지만 그렇게 가락을 풀다보면 여름방학 때 산공부를 가서 느꼈던 습함까지 기억의 세부가 되살아났다. 비가 오면 선생들은 우중에는 거문고라며 상급생들에게 거문고 병창을 시켰다. 빗속에 뜯는 거문고 소리는 나도 알아챌 만큼 아주 특별했다. 공기를 지그시 누르며 또렷하게 퍼져나갔다. 산안개가 몰고 온 나무와 이끼와 풀과 물 냄새가 내려앉은 한옥의 대청마루. 앉거나 누워서 듣던 음들의 물결. 나는 그 시절이 못 견디게 그리워져서 일부러 지름길을 피해 창덕궁 앞으로 갔다. 그리움은 자꾸 어딘가를 헤매게 하는 마음이니까. 이짝이 아닌데, 늦어부렀는데 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는 행진이니까. 밤이라 궁궐담장길로 가는 계단은 막히고 엘리베이터도 멈춰 있었다. 나는 율곡터널 보행로로 터덜터덜 걸었다. 갑자기 쏟아진 백색 조명이 마음에 찬물처럼 끼얹어졌다. 동네로 들어선 뒤에는 아주 잘 알고 있는 지름길로 방향을 바꿨다.
골목을 지나는데 “어떻게, 어떻게 그러니? 어떻게 너가 나한테 그러니?” 하는 텔레비전 소리가 담장을 넘어왔다. 나는 취객들이 으레 그러듯 자기 일도 아니면서 대체 어떤 놈이 무슨 짓을 했나 고심했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은 일들은 언제나 일어나고 누군가는 억울해진다.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은 걸 오늘에야 알게 된 사람처럼 침통해진 나는 골목을 한 바퀴 더 돌았다. 그렇게 걸으면 뭔가를 알게 될 것처럼.
오늘은 그런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거듭되는 밤이었다. 하지만 내내 걸어도 답은 정리해내지 못할, 도무지 산문화되지 않는 밤. 나는 아까 조중균씨 이야기를 들으며 떠올렸던─실제로 본 것처럼 생생하던─긴 산행을 되짚었고, 둘의 결말이 희극일지 비극일지를 생각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염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