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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포는 도시 내 수로에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일하고 있는지 미처 몰랐다. 먼 거리에서 본 그들은 물결 위로 튀어오르는 송어들처럼 반짝였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그 송어들은 말이나 늑대 정도의 커다란 동물처럼 느껴졌다. 물에 푹 젖은 침대 시트를 온몸으로 끌어다 수로의 석판에 패대기치고, 속바지들을 움켜쥐고 물속에 담금질하며 열을 올리고 있었다.
패포는 바보가 아니었기에 유랑민 아이가 말한 여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왜, 어떻게 가져갔을지도 훤히 보였다. 그래서 곧장 아델리나에게로 걸어갔고, 빨랫감이 담긴 나무 대야에 맨 끈을 끌고 오던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델리나는 패포의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받았다. 오히려 패포가 슬며시 고개를 돌렸는데, 말려 올라간 아델리나의 치마 아래로 허벅지가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패포의 얼굴을 주시하던 아델리나는 패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나무 대야를 드륵드륵 끌며 지나갔다. 그제야 패포는 뭔가에서 깨어난 듯 뒤따르며 “내놓으시오”라고 했다. 못 들었는지 무시하는지 아델리나에게서는 답이 없었다. 묵묵히 걷다 창고 앞에서 세탁 세제를 만들고 있는 여자들을 바라보며 잿물 항아리에 오줌을 더 넣으라고 외칠 뿐이었다.
“여덟 늙다리들이 싸놓은 걸 며칠 전에 가져왔잖아.”
가져왔잖아, 하는 말이 수로 벽과 석판 사이의 인공 골짜기를 울리면서 퍼져나갔다.
“시원찮아, 아델리나.”
어깃장을 놓는 건지 정말 재료에 문제가 있는 건지 여자 인부가 짜증을 냈다.
“쌩쌩한 걸 얻어 왔어야지, 아델리나. 늙은 수사들의 집에서 얻어 오니까 냄새만 고약하고 얼룩이 지지를 않아.”
“무슨 소리지, 어제까지만 해도 쌩쌩했는데.”
“쌩쌩했다고, 아델리나?”
일을 하다 말고 여자들이 깔깔깔 웃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델리나, 아델리나, 아델리나…… 쌩쌩하든? 아델리나, 아델리나,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아델리나, 아델리나…… 여자들의 웃음이 멜로디를 이루면서 패포 귀에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그리고 대화는 여덟 늙다리로 지칭되는 노수사들에 관한 음탕한 이야기들로 흘러갔다. 패포는 자기도 모르게 십자를 그으며 성호경을 외웠다. 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죽어갈 것이다. 원죄에 대한 반성, 죄악과 악습에 대한 통회, 천상에 대한 추구와 진리의 빛……도 없이 이 골짜기 빨래터에서 정작 자기 영혼은 씻지 못한 채.
“돌려주시오.”
“뭘 말씀이세요? 선생님은 산펠리체가의 패포 선생님이시지요? 오히려 제게 8리라를 돌려주셔야 하잖아요.”
아델리나의 말에 패포는 대꾸할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외상값을 갚으면 해결될 일이었지만 그에게는 돈이 없고 책을 돌려받겠다는 열망만이 있었다.
“그 책들은 8리라를 훌쩍 넘는 것이오.”
“얼마나요?”
“얼마냐니, 책은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물론 그러시겠지요. 저도 그 고결함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분명한 건 제가 선생님의 속옷과 바지와 스타킹을 빨았다는 거예요. 이런 건 돈으로 따질 수 있는 것이지요. 제가 이 손과 다리로 열심히 빨았으니까요.”
아델리나는 손등이 하늘로 향하도록 손을 들어 보였다. 거기에는 잿물이 남긴 흉터들이 새겨져 있었다. 언뜻 보면 화상을 입은 듯한 상처들이었다. 툭 불거진 손마디마다 붉었고, 손톱은 쪼그라들어 시퍼런 색을 띠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그것을 바라보는 동안에는 패포의 귀에 빨래하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골짜기의 소란은 잠재워지고 이곳에는 마치 패포와 아델리나, 더 정확히는 아델리나의 손만 있는 듯했다. 패포는 마치 책을 읽듯이 침묵 속에 그 손을 들여다보았고 긴 시간 동안 아델리나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채찍으로 당나귀를 후려갈기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채찍은 마부 몇 명을 후려치고 땅바닥을 무의미하게 갈겼다. 수로 관리인이었다. 여자들은 조용해졌다.
“나리, 이것들과는 말을 길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제가 도와드립죠.”
관리인에게 채찍은 동물로 치면 꼬리쯤인 듯했다. 걸어오는 사이사이 자기 내키는 대로 이곳저곳을 후려치며 찰싹찰싹 소리를 냈다. 아델리나는 양손으로 나무 대야를 들어올렸다. 담긴 빨랫감이 마치 숨을 쉬듯 부풀었다가 꺼졌다.
“무슨 일이신가요?”
관리인은 구레나룻을 잘 길러 언뜻 연약해 보일 수 있는 인상을 감추고 있었다. 체구는 작고 땅딸막했지만 눈빛이 날카로워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외상값을 갚으러 오신 거예요.” 아델리나가 패포의 얼굴을 바라보며 먼저 답했다. 둘의 눈길이 마주쳤다.
“그래, 그럼 돈은 어디 있나? 돈이 오가야 거래가 끝난 거니까.”
“그런 것까지 확인할 권한은 없잖아요.”
그러자 관리인은 아델리나의 발치에 그 뱀처럼 긴 줄을 내리쳤다. 아델리나의 슬리퍼는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다 해져 있었다.
“나는 수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 권리가 있다고. 이 강변의 여자들에 관한 모든 것을 관리하라는 명을 받았어. 관리라는 단어를 모르는 거야?”
“알아요, 알아.”
아델리나는 나무 대야를 땅바닥에 내려놓고는 주머니에서 몇 개의 동전을 꺼내 보였다. 물론 8리라는 아니었다.
“다른 일은 없었습니까, 나리?”
어떤 촉을 느꼈는지 관리인이 패포에게 다시 확인했다. 패포는 두통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통증이 밀려와 속이 매슥거리고 이맛살이 찡그려졌다. 패포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델리나가 책을 가져간 것이 분명하니 그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면 될 터였다. 문제 제기를 계속하기에 이곳은 상황이 적당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 눈앞에서 자꾸 휘둘리는 저 채찍이 문제였다.
“안색이 안 좋으시군요. 냄새 때문일 겁니다. 나리 같은 분들이 올 곳이 못 되지요. 다음에는 하인을 보내세요. 아델리나와 아주 은밀히 하실 긴한 얘기가 있지 않으시다면요.”
그 말에 아델리나는 둘을 뒤로한 채 나무 대야를 들고 수로 끝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까 채찍이 그냥 땅바닥만 치고 지나간 것은 아니었는지 종아리에 빨간 상처가 나 있었다. 하지만 아델리나는 그런 것쯤―모욕이나 폭력, 희롱, 위협과 지배―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조용히 걸었다. 여자들이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