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우리의 첫 연재가 시작되었으니 어느덧 이 왕복편지는 한 바퀴를 돌았네요. 그사이 지구도 태양을 공전해 사계절을 지나왔습니다. 서쪽 하늘에서 제가 좋아하는 금성이 밝게 빛났습니다. 목성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옥상에서 내려온 저는 마터호른 상공에서 겨울 은하수와 여름 은하수가 이중 아치를 이루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지구가 자전하면서 제가 바라보는 방향이 달라졌을 뿐인데, 정수리 위에서 하늘이 회전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에게 곤충의 눈을 달아봅니다.
드넓은 돔 운동장 한가운데 누워 있습니다.
한꺼번에 우주가 쏟아집니다.
아침에는 놀이터가 보이고,
몇 시간 뒤에는 지구 반대편의 축구장이 보입니다.
조금 어지럽습니다.
목성 근처에서 작은 번개가 칩니다.
돔 안에는 수많은 존재가 있습니다.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 아닌 것도 있습니다.
아무도 자기 자신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막 아기 시인이 꼬리를 떼어냈습니다.
슬로우―다리가 세 개뿐인 의자
반란반묘가 만났던 아기는 아이가 되었다.
아이의 이름은 알파벳 소문자 i이다.
아직 자라지 않은 일인칭.
i는 한쪽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누었다.
인간들이 말했다.
개 같네.
사랑받으려면 똑바로 서야지.
i가 물었다.
사랑이 뭐예요.
먹는 건가요?
꼬리는 이제 떨어졌어요.
말이 안 통하네.
검열관이 혀를 찼다.
i는 꼬리를 물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싶었다.
하지만 꼬리가 없었다.
i는 스스로 뺨을 한 대 치고, 높다란 독백 의자에서 내려왔다.
다음 차례였다.
얼굴이 붉은 인간이 주춤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그는 말했다.
저는 마, 말을 더듬어요.
주, 주머니 안에 금붕어가 살고 있거든요.
잠시 침묵.
그 사실을 평생 숨기고 살았습니다.
인간의 말을 할 때마다 입속에서 기포가 올라왔습니다.
아가미는 이미 안쪽에서 자라고 있었어요……
금붕어 인간의 얼굴이 또 붉어졌다.
i도 자신의 뺨을 만져보았다.
조금 뜨거웠다.
그때,
뒤쪽에서 노파가 손을 들었다.
저기,
내가 먼저 하면 안 될까?
무릎이 아파서 오래 못 서 있어.
검열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노파는 잡담하듯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내 인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소설책 몇 권으로도 모자라.
전쟁을 겪었지.
참전 용사였어.
내 아들은…… 광수는……
노파가 목덜미를 잡고 쓰러졌다.
검열관은 노파보다 의자를 먼저 세웠다.
인간들 몇 명이 코를 훌쩍였다.
검열관이 그다음 사람을 호명했다.
i는 아직 독백 의자 옆에 서 있었다.
나는 사랑받는 법을 몰라.
그러니까 이 지구에 잘못 도착한 거야.
i는 자기 팔을 핥았다.
인간들이 더러운 개를 피하듯
i를 피해 걸어갔다.
퀵―한 박자 늦은 춤
돔 중앙에 댄스플로어가 있다.
미러볼이 돌아간다.
알록달록한 조명이 인간들의 얼굴을 휙휙 지나가고
인간 아닌 것들의 몸을 스친다.
조명은 구석에 무릎을 모으고 앉은 i의 얼굴에는 닿지 않았다.
인조 잔디 위에서
일인칭 좀비들이 흐느적거리며 돌아다닌다.
채식하는 좀비들은 인간을 물지 않는다.
대신 자기 그림자를 조금씩 갉아먹는다.
그들의 몸이 가벼워질수록
발뒤꿈치가 바닥에서 약간 뜬다.
좀비들의 합창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비유가 덫을 놓는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설명이 손짓한다.
어디까지 왔니?
의미가 너를 포획한다.
그때 무대 중앙에서 고양이가 스케이트를 타고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스케이트 날이 별 가루를 긁는다.
고양이가 말한다.
자, 파티를 시작해볼까?
좀비들이 일제히 턱뼈를 닥닥닥닥 부딪히며 환호한다.
퀵
슬로우
고
고
좀비가 등을 뒤로 꺾으며 스텝.
금붕어 인간이 입을 뻐끔거리며 턴아웃.
난초가 가느다란 줄기를 흔들며 헤드뱅잉.
까마귀들은
콕, 콕콕, 바닥을 찍는다.
i도 춤을 흉내낸다.
한 걸음.
멈춤.
반걸음.
멈칫.
i는 계속 박자를 놓친다.
혼자만 다른 춤을 춘다.
퍼포먼스를 마친 고양이가 댄스플로어에서 내려와 모두에게 키스한다.
일인칭 좀비들, 금붕어 인간, 난초, 검열관.
고양이가 구석으로 다가간다.
거기에 i가 웅크린 채 있다.
i가 조심스레 고양이에게 손을 내민다.
고양이는 물끄러미 i의 손을 내려다본다.
그러다 다른 존재에게 간다.
파티는 계속된다.
i는 그 자리에 있다.
턴―물로 쓴 시
i는 호수 위에 시를 썼다
물이 금방 지워버리는 시.
마음속에만 있는 시를.
지구는 태양을 돌고
달은 지구를 돈다
이상해
모두 당연하다고 말해
인간들은
인간들끼리 모여
인간적이라고 말한다
신은 숨바꼭질을 잘 못할 것 같다
너무 높은 데 있으니까
나는 장난기 많은 귀신과 놀아야지.
나의 뚱뚱한 신은
눈보다 재를 좋아한다
커다란 두부 위에 누워 잠들었다가
이따금 깨어나
검은 케이크를 삽으로 퍼먹는다
입안이 까매진 신이 웃으면
나도 검은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나의 신은
석탄 한 숟갈의 맛
피와 땀과 재가
조금씩 섞인 맛
이름을 잃어버린
일인칭 한 포기의 맛
우주인이 되는 열매를 먹자
너는
금목서 향기로 말해
나는
만데빌라의 혀로 노래할게
풍선 속에
노을을 가득 불어줄게
네가 매듭을 풀면
조용한 저녁이 새어나오고
우리의 볼은
오렌지빛으로 물들겠지
―「인간적인 마음」
i는 몇 번이고
같은 시를 썼다.
물은 몇 번이고
같은 시를 지웠다.
아무도 i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어린 까마귀들만 날아와
젖은 문장을 부리로 콕콕 쪼았다.
저녁노을의 씨앗이
조금씩 벌어졌다.
그때,
노을 속에서
또다른 아이가 걸어왔다.
봉제 인형처럼
피부를 꿰맨 자국이 있었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개처럼 네 발로 걷던 i는
천천히 두 발로 섰다.
i가 손을 내밀었다.
다가온 아이도 손을 내밀었다.
두 손은
투명하게 포개졌지만
잡을 수는 없었다.
“하지메마시테.”
2026년 7월 20일(月)
서울에서 신미나
* 「커다란 두부 위에 누워」는 양양 낭독회에서 편집자 무라타 마이가 쓴 연시의 한 구절을 변용했으며, 「우주인이 되는 열매」는 호시노 도모유키의 동화 제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