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신호들이 나를 아눅에게로 이끌던 인생의 시기가 있었다. 길다고 할 수는 없는 기간이다. 하지만 그런 신호를 한번 해독해버린 사람은 그것의 전언을 무시하거나 간과할 수 없다. 일어나기도 전에 이미 일어나버린 일처럼, 나는 아눅에게로 갔다. 나는 8월의 푸른 잠자리처럼 수면 위를 낮게 날아 아눅에게로 갔다. 혹은 아눅이 내게로 왔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만나기 이전에 이미 시작된 일이었다. 도저히 다르게 설명할 수는 없다. 예를 들자면 나는 많은 장소에서 살았는데, 그 사실 역시 아눅이 내 삶에 들어오게 된 계기이자 원인이기도 했다. 내 어머니는 내가 아눅을 만나도록 마련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도저히 다르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나의 아버지가 바로 나인 걸까? 하나의 임시 주소지는 또다른 임시 주소지로 이어졌다. 동시에 존재하는 무수한 익명의 공간들이 내 안에는 있다. 나는 딱히 고정된 작업실이 없었고, 책과 노트가 든 가방을 들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시기, 내 길은 아눅의 길과 엷은 우연으로 잠시 희미하게 스쳐갔다.
팔 년 전 내가 처음 뮌헨에 왔을 때 체룹은 내게 거실 한 모퉁이를 비워주면서 작업실로 사용하도록 했다. 그것이 우리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글을 쓴다는 건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체룹과 나는 이미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는 오랜 파트너였으나, 그 관계가 서로의 글쓰기 공간에 대한 배타성과 예민함을 누그러뜨리지는 못했다. 나는 종종 분노를 터트렸고 체룹은 냉담하게 침묵하며 외면했다. 내가 체룹에게 온 것은 우리가 함께하는 글쓰기가 가능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 믿음은 단 며칠 만에 산산조각났다. 이상한 것은 체룹 자신은 나와의 동거를 전혀 방해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몇 달 동안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글을 썼고,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다음 체룹에게 돌아가곤 했다. 체룹은 시나 편지 혹은 짧은 산문을 쓸 때, 심지어 일기조차도 늘 수십 년 된 수동 타이프라이터를 사용했는데, 대형 망치로 철판을 두드리는 듯한 그 소리는 두 개의 방문도 막아내지 못할 만큼 엄청나게 컸다. 그는 항상 두 장의 종이 사이에 먹지를 넣고 타이프라이터를 쳤다. 편지나 원고의 복사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키를 유난히 강하게 치는 건 그의 원래 습관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목적을 위해서도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지 않으면 복사본이 확실하게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집안 전체는 수십 년 동안 그렇게 만들어진 일기와 편지, 원고의 복사본과 손으로 쓴 기록물과 노트로 가득차서 빈 공간이라고는 없었다.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 십대 시절부터 굳어진 습관이라 바꿀 수는 없었다. 마침내 그도 내게 별도의 작업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나는 계속해서 찾아 헤맸다. 간혹 체룹의 집으로 가서 함께 저녁을 먹었고 번역 스케줄이 급하지 않을 경우에는 며칠 동안 그의 집에 머물기도 했다. 글을 쓰지 않을 때 우리는 함께 평화로웠다. 심지어 우리는 종종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매번 나는 임시로 얻은 내 방으로 돌아갔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체룹은 정오 무렵 내게로 왔다. 가까운 카페에서 함께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대개 커피와 크루아상 그리고 체룹을 위해 조간신문을 주문했다. 카페에서 느리게 아침을 먹고, 오랫동안 책을 읽고,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오후 시간을 보냈다. 자주 여행을 떠나는 그는 여행지에서 내게 잊지 않고 엽서를 써 보냈는데, 그것들은 모두 그의 집으로 도착했다. 내가 머무는 주소는 너무 자주 바뀌었을 뿐 아니라 정식으로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우편함에 내 이름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매우 열정적인 편지-쓰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그로부터 받은 엽서와 편지만으로 내 가방 하나가 가득찼고 그 가방은 체룹의 집 지하실에 있다. 때때로 우리는 멀리서 서로를 그리워했다. 우리는 멀리서 서로에게 편지를 쓰고 있을 때 더할 수 없이 가까웠다. 나는 한두 달 동안 여행을 떠난 친구 혹은 친구의 친구의 빈집에서 쓰고, 살았다. 그러다 친구 혹은 친구의 친구가 여행에서 돌아오면 여행을 떠난 다른 친구 혹은 친구의 지인 집으로 갔다. 그 사이사이의 기간 동안은 체룹의 집에 머물렀다. 내 책과 옷가지와 소소한 짐들은 내내 체룹의 집에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면 외투와 스웨터를 가져오려고 체룹의 집으로 갔다. 어느 해 겨울 내내 나는 한 정원사의 지하실 방에서 일했다. 코카서스의 고향을 방문하러 간 정원사에게 몇 달간 방을 빌렸던 것이다. 하루에 겨우 몇 시간, 유일하게 빛을 볼 수 있는 그의 주방 창 아래에 탁자를 가져다놓고 나는 일했다. 점심을 함께 먹고 헤어진 후에도 간혹 늦은 오후에 체룹이 차를 마시러 또 찾아오기도 했다. 저녁에는 산책을 나갔다. 비슷한 모양의 구분하기 어려운 모퉁이를 돌며 우리는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구름 사이로 불그스름한 달이 모습을 나타내면 우리는 말없이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솜덩이처럼 둥글게 뭉친 구름들은 검푸른 밤바다에서 서로 간격을 유지한 채 떠 있는 섬과 같았다. 예상보다 이르게 코카서스의 정원사가 돌아왔다. 급한 대로 나는 몇 권의 책과 노트를 마야의 집 주방으로 옮겼고 그곳에서 일했다. 그 어느 곳에서도 나는 정식으로 계약을 맺거나 서류에 서명하거나 거주 등록을 하거나 은행계좌를 만들거나 우편함에 이름표를 달거나 신분증을 받지 않았다. 마치 금방이라도 고향으로 돌아갈 사람처럼, 돌아갈 고향이 있는 사람처럼 나는 행동했다. 스스로 만든 그 믿음이 바로 내 고향이었다. 그러나 나는 혼자였나?
어느 날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누군가 나를 따라오는 것을 느꼈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몇 블록이나 따라오던 사람은 내가 집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머뭇거리더니 마침내 용기를 내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내가 글을 쓰고 번역할 방을 간절하게 찾는다는 말을 어디선가 전해들었다고 했다. 그는 공증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집 빈방을 빌려주고 싶다고 했다. 보통 크기의 평범한 집이고 특별히 아름답거나 우아하지는 않지만, 그리고 불행히도 자신은 흡연자이지만, 그래도 방이 널찍하고 환해서 글쓰기 작업을 하기에 좋을 것이라고. 나는 거절했다. 그사이 아눅의 방이 내게 주어졌기 때문에 당장은 다른 방을 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공증인은 서른다섯 살에서 마흔다섯 살쯤으로 보였고 검은색 웃옷과 재킷에 검정 모자를 썼다. 체구가 큰 편이지만 위협적일 만큼 크지는 않았고 한 단어 한 단어를 간신히 힘겹게 입 밖으로 꺼낼 만큼 매우 수줍어하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그는 구강 구조에 문제가 있어서 남들에게는 평범한 발성을 내는 데도 큰 노력을 해야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언젠가 친구의 집에서 열린 하우스 낭독회에 왔었고―그건 체룹과의 공동 낭독회였다―그래서 나를 알아보았다고 했다. 내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즉석에서 거절을 말을 하자 그는 당혹해서 어쩔 줄을 몰랐고, 자신이 초면에 너무도 주제넘는 제안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절망적인 수치심에 얼굴이 빨개졌다. 공증인은 입속으로 작별의 말을 우물거리며 달아나버렸다. 겨울이 되었다. 산에서 내려온 아눅이 마야의 집으로 왔다. 그가 집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나는 그가 이미 내게 왔음을 알았다.
아눅은 모차르테움에서 공부했다고 들었으나, 그가 작곡가이자 오르간 연주가로 활동한 건 음악 아카데미를 졸업한 직후 극히 짧은 기간뿐이었다. 그리고 아눅은 산으로 갔다. 양치기가 된 것이다. 여름 동안은 산 위의 양치기 오두막에서 지내다가 겨울이 되면 도시로 내려와 마야의 집 방에 머물며 라디오극과 희곡을 썼다. 그래서 나는 아눅을 겨울에 처음 만났다. 아눅은 거의 삼십 년 동안이나 양치기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동시에 삼십 년 동안 작가이기도 했다. 처음에 나는 그런 사실을 몰랐다. 체룹은 그의 초기 작품들이 언어의 실험적인 형식에 치우친, 생기 없이 드라이한 글이라고 평했다. (“그것은 불탄 숲과 같아, 골격만 있고 수액이 없어. 모든 매혹과 모든 곤경은 어휘들이 가진 개념이 아니라 어휘들의 자연으로부터 오는 법이지.”) 체룹의 집에서 체룹과 함께 글쓰기에 실패했던 내가 아눅의 방에서는, 심지어 아눅이 거기 있을 때조차도 작업에 아무런 장애를 느끼지 않은 것은 거의 기적 같은 일이었다. 아눅은 소파에 앉아 있고 나는 책상에 있다. 혹은 아눅이 책상에 있고 나는 침대에 앉아서 글을 썼다. 우리는 종종 상대방이 거기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었다.
아눅이 실종된 뒤 방에 있던 그의 물건들은 모두 치워졌지만 쳄발로는 이후에도 한동안 마야의 집 아눅이 사용하던 방에, 그러나 최근 이 년간은 아눅이 아닌 내가 주로 머물렀던 방에, 우리가 각자 다른 시기에 유언장을 썼던 방에 남았다. 내가 아눅과의 일에 대해서 체룹에게 고백한 건 아눅이 산에서 행방불명된 다음, 마침내 아눅이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확정된 날이었다. 사람들의 추측에 의하면 아눅은 길을 잃은 염소를 찾으러 갔을 거라고 했다. 일부가 빙하로 덮인 산은 대규모 카스트르 고원으로 이루어졌고, 도보 여행자들이 다니는 길을 벗어나면 깊이를 알 수 없는 숨겨진 석회암 동굴과 크레바스 천지라고 했다. 가축들은 우리에 있었으나 아눅이 항상 데리고 다니던 검은색 양치기 개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티벳 개에게 검은 양복을 입히고 검은 안경과 검은 펠트 모자를 씌운 다음 냅킨을 양복 단춧구멍에 꽂아 식당 의자에 앉혀놓으면 다른 손님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나중에 마야는 내게 쳄발로를 가져가겠느냐고 물었다. 그의 상속인들은 쳄발로를 펠릭스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펠릭스는 한때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펠릭스는 아눅의 쳄발로를 거부했고, 친구들 중에서도 원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마야는 아눅의 물건을 완전히 치워버리고 싶어했다. 그래야 방을 다시 임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M의 집은 너무 작아서 쳄발로를 둘 수가 없다고 했다. 게다가 악기 연주가 금지된 집이라서 어차피 그에게는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눅은 실제로는 단 한 번도 쳄발로를 연주한 적이 없었다고 마야는 말했다. 그의 쳄발로는 오래전 이른 나이에 죽은 한 친구의 아내에게서 구입했다고 들었다. 아눅은 쳄발로가 당장 필요하지 않았지만, 음악을 그만둔 그에게 아무런 소용 가치가 없는 물건이지만, 가진 돈을 털어 경제적으로 곤궁한 과부와 아이들을 도우려 한 것이다. 쳄발로가 온 직후에 아눅은 쳄발로 위에 흰 이불보를 덮었고, 마야의 말에 따르면 단 한 번도 이불보를 치운 적이 없다고 했다. 나 역시 쳄발로가 있는 그의 방에서 이 년 가까이나 살았지만 쳄발로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하여 지금 흰 천이 씌워진 쳄발로는, 마치 보이지 않는 아눅의 관이 올려진 단과 마찬가지였다.
삼십여 년 전 아눅은 젊은 오르간 연주자이면서 연극배우이자 막 시작한 희곡작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명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갑작스럽게 모든 활동을 그만두었다고 들었다. 이미 약속된 공연과 연주회도 취소하고 악기뿐 아니라 소박한 살림살이들까지 모두 처분하거나 내다팔았다. 그는 지팡이 하나만을 들고 산으로 갔다.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수목한계선을 넘어 높은 곳으로, 멀리 달아났다. 그는 산 위 오두막에 머물면서 농부들의 가축을 위탁해서 관리해주는 양치기가 되었다. 뮌헨 시내에 있는 마야의 집에 방 하나를 장기로 빌리고 늦가을이면 산 위 양치기 오두막에서 내려와 겨울 동안 시내의 방에서 살았다. 그는 묘석을 찾아가는 여행을 떠날 때를 제외하고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고 집안에서 주로 글을 썼다고 들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나는 언젠가 한번 우연히 체룹과 함께 그의 희곡 작품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눅을 모르고 있었고 그래서 작가의 이름을 의식하지 못했다. 아눅의 글은 그의 음악이나 삶이 그렇듯 센세이셔널한 화제로부터 가장 멀리 있었다. 일생 동안 글을 썼지만 그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모르는 이름이었다. 심지어 그의 글을 인상적으로 읽었거나 그의 희곡 작품을 무대에서 본 독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눅을 만나기 전까지 나 역시 그런 독자에 속했다. 아눅은 단 한 번도 낭독회를 열거나 문학 페스티벌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국제 행사에 초대받지도, 멕시코에서 발간되는 문학잡지에 원고를 실은 적도 없었다. 그의 사진은 신문에 실리지 않았다. 그는 미디어와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그의 삶은 오직 양과 염소, 그리고 티벳 개의 리듬을 따랐다. 극장이나 레스토랑에 가거나 아주 가까운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법도 없었다. 적어도 그 자신이 스스로 원하지는 않았다. 그는 단지 잊힌 묘석을 찾아다녔다.
라디오를 틀어봐, 하고 어느 날 아침 마야가 내 방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당장, 지금 당장 라디오를 틀어봐, 아눅의 이름이 나오고 있어, 뭔가가 일어났어, 뭔가 의심스럽고 수상한 일이. 나는 라디오를 틀었고, 실제로 아눅의 이름을 들었다. 차가운 마룻바닥에 맨발로 서서 그 이름을 들었다. 산 위에 있는 그의 양치기 오두막은 며칠째 인기척 없이 비어 있다고 했다. 한 친구가 산으로 그를 찾아갔으나 그는 집에 없었다. 다음날에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틀 전 근처를 지나던 도보 여행자들이 살아 있는 아눅의 마지막 목격자였음이 밝혀졌다. 산 위 목초지를 지나던 여행자들은 잃어버린 염소를 찾아다니던 목동과 마주쳤다고 했다. 물론 그들은 그 목동이 아눅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으나 목초지 인근의 양치기 오두막은 아눅의 것이 유일했고, 또 그들이 기억하는 목동의 차림새와 외모를 들었을 때 그것이 아눅이라는 건 분명했다. 목동은 어깨에 양털 외투를 걸치고 머리에는 자작나무 껍질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손에는 두툼한 나뭇가지를 직접 깎아 만든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고 했다. 새끼 염소 한 마리가 그의 배낭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아눅이 항상 데리고 다니던 검은 양치기 개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헬리콥터까지 동원한 구조대가 며칠 동안이나 수색 작업을 펼쳤으나 끝내 아눅을 찾지는 못했다. 산에서의 실종 사고는 아눅이 처음은 아니었다.
누구도 당장 입 밖에 꺼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아눅의 실종은 스스로 원한 자발적 사라짐일지도 모른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아눅과 가까웠던 몇몇 친구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공통된 생각이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기는 했으나 처음에는 아눅이 치명적인 병의 진단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기도 했다고 들었다. 아눅은 그 누구에게도 단 한 줄의 메모도 남기지 않았고, 그 어떤 암시도 없었다. 마치 이 세상에 단 한 점의 미련도 없는 사람이 사라진 것처럼, 그렇게 아눅은 사라졌다. 실제로 그는 종종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보였고, 그래서 동시에 언제라도 촛불처럼 흔적 없이 꺼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보였다. 그는 내게도 그 어떤 메모 한 장 남기지 않았다. 나는 그가 죽기를 바랐던가? 아마도 아눅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아눅에게 말했다.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 그게 당연해, 하고 아눅이 감정의 동요 없이 평화롭게 대답하던 것을 기억한다. 비가 내리는 겨울밤이었다.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어.”) 젖은 흙의 차가움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몸서리를 쳤다. 나의 죽은 어머니는 어디에 있는 걸까. 나는 서랍에서 마가린과 빵을 꺼내 아눅과 나를 위한 저녁식사를 차렸다. 아눅이 부엌에서 차를 끓여왔다. 그러나 나는 빵을 베어먹을 수가 없었다. 숨이 막혔기 때문이다.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어.” 내 목소리는 떨렸고, 고통스럽게 들렸다. 하지만 이 냉기, 이 서리와 추위, 흙과 돌과 뼈의 축축한 차가움, 영혼을 갉아먹는 한없는 외로움을 생각하면 숨을 쉴 수가 없노라고 나는 떨면서 말했다. 아눅은 평화로운 눈으로 나를 잠시 지켜보았다. 그리고 자신은 평화롭게 죽을 거라고, 너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러니 미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나를 위로하며 말했다.
라디오 뉴스가 끝난 뒤 나는 바로 밖으로 나왔다. 그날 나는 목적지 없이 걸었고, 더이상 앞으로 갈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 강이 나타났다. 넓적하고 깊은 접시처럼 우묵한 강변 모래톱 위에는 옷을 벗은 사람들이 누워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하늘에는 흩어진 구름이 들판의 양떼와 같이 떠 있었다. 이제 막 걸음을 떼기 시작한 듯한 어린아이가 삽으로 모래를 플라스틱 그릇에 퍼 담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낮의 무위한 사건들, 나른함에 빠진 어른들, 바위에 부딪히며 단조롭게 흘러가는 강물소리, 단 한 번 있는 한낮의 끝없음, 멀리서 들려오는 소녀들의 건강하고 높은 웃음소리, 눈을 멀게 하는 햇빛, 이 순간 강물에 실려 흘러가고 있는 미래의 우리 자신의 시체, 그리고 자신을 쳐다보며 서 있는 나를 포함한 모든 외부의 시선들이 아이에게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릇이 가득차자 아이는 아무 미련 없이 단 한 번의 동작으로 그릇을 뒤집어 모래를 쏟아버리고 다시 처음부터 퍼 담기 시작했다. 입술을 살짝 벌리고, 다른 모든 사건과 현상을 망각한 몰아의 표정, 오직 한 가지 단순한 행위에 사로잡혀, 이유도 의미도 상관하지 않고 오직 그 순간에 매혹된 채 온 영혼을 집중하는 아이의 얼굴에는 세계 전체가 담겨 있었다. 나는 충격 속에서 깨달았다. 세계는 우리의 외부에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죽음도 마찬가지일까.”) 그날 하루는 영원히 끝나지 않았다. 생애 전체와 같은 하루가 있다. 오직 그 하루를 산다. 나는 아이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 얼굴을 다시 만나게 되리라. 혹은, 이미 나는 이 얼굴을 알고 있다. 나는 이유도 모르는 채 마비되듯이 매혹당했다. 저 아이는 혹시, 먼 과거로부터 나타난 아눅이 아닐까. 며칠 뒤 그의 출판사는 공식적으로 아눅 A.의 실종을 발표했다.
쳄발로를 가져가겠느냐고 마야가 물었다. 쳄발로를 위해서 너와 체룹의 집만큼 어울리는 주소는 없을 테니까. 나는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왜냐하면 나는 아눅이 쳄발로를 갖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는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므로, 게다가 체룹과는 헤어질 생각이고, 애초에 체룹과 나의 집이란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으므로, 쳄발로를 가져간다는 건 오직 불가능이라고 말했다. 나는 악기 연주도 할 줄 모르며 음악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니 쳄발로처럼 덩치 큰 악기는 그야말로 무용할 뿐이고, 게다가 결정적으로, 쳄발로를 옮길 운송비를 부담할 능력도 없다고 했다. 팔 년 전 내가 뮌헨으로 온 건 아마도 잘못된 선택이고 결국 실패로 종결된 것 같다고, 나는 마야에게 말했다. 그런 일에 성공과 실패가 있다면 말이다.
아눅은 쳄발로에 손을 댄 적조차 없을 거라고 마야는 장담했다. 이미 삼십 년 전 양치기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아눅은 오르간 연주를 하지 않았고, 오르간뿐 아니라 다른 악기 역시 건드리지조차 않았다고 들었다. 심지어 언젠가부터는 음악을 듣지도 않는다고 했다. 산 위 그의 양치기 오두막에는 음악을 들을 만한 수단이 없었고 마야의 집 방에도 라디오 이외의 별다른 음향기기가 없었다. 그는 양치기로 살아가고자 했고 오직 그렇게 했다. 그러나 겨울이면 그는 마야의 집 방에서 희곡과 라디오극을 썼다. 나는 아눅의 방에서, 하지만 아직 그를 알게 되기는 전에 그의 라디오극 <여자 망토 혹은 민들레>를 라디오에서 들었다. 깊은 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나를 깨운 건 어느 속삭임이었다. 속삭임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라디오가 켜져 있는 것을 알았다. 음악을 듣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렸던 것이다. 속삭임은 라디오의 심야 프로그램인 라디오극의 일부였다. 그런 방송은 주로 자정이 한참 넘은 시각에만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이 <여자 망토 혹은 민들레>였다. 여자 망토는 산악지대에서 흔하게 자라는 작은 관목식물로 양과 염소의 먹이이다. 펼쳐진 옷자락처럼 생긴 초록 이파리가 성모마리아의 망토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손바닥 모양의 이파리 중심에 맑은 이슬이 고인 것을 성모마리아의 눈물이라고 부른다. 아눅의 방에서 살던 시간 나는 내 삶이 어떤 변곡점에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밤, 양털 외투에 감싸인 아눅의 어깨가 내 어깨와 닿아 있는 걸 느낀다. 차가운 꿈속에서의 한없이 멀고 희미한 따스함. 비와 바람과 햇빛과 양털과 구름, 그리고 어치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백조의 갈비뼈로 만든 피리 소리를 듣는다. 민들레 수프가 든 접시에 숟가락을 담근다.
하지만 만약 네가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너는 아눅의 쳄발로를 위한 가장 어울리는 집이 될 텐데. 나는 그렇게 믿어, 하고 마야가 말했다. 아눅의 쳄발로는 반드시 연주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야. 그건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물, 무엇보다도 집이 필요한 존재야. 이제 아눅이 없으니, 너까지 떠나버린다면 쳄발로는 집이 없는 셈이구나.
나는 일생 동안 집이라 이름 붙일 만한 장소를 영영 상실했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헛되이 그리워하기를 멈추지 않았지만,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혹은 무엇에게 집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으므로 마야의 말에 조금 놀랐다. 마야가 말했다, 알고 있는지, 아눅은 자신의 방에 네가 머무는 것을 정녕 기쁨으로 여겼어. 아마 쳄발로도 그렇지 않을까. 그리고 마야는 나를 가만히 보며 덧붙였다. 체룹과 헤어질 거라고? 그게 진심일지라도, 그래도 정말로 고향에 돌아갈 생각은 아니겠지?
아눅이 실종된 지금, 나는 어딘가로 떠나야만 했고 그게 어디인지는 몰랐다. 마야는 아눅의 방을 내게 빌려주고 싶어하는 눈치였으나 아눅이 실종된 지금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아눅의 방에서 하루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건 절대로 불가능했다. 종종 나는 내가 쓰게 될 다음 문장을 모르는 것만큼 살게 될 다음 장소를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예전에 살던 체룹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너무도 확실했다. 체룹이 제안한 이 주일이 지날 무렵 나는 공증인의 집에 방을 구했다. 집안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다른 컨디션은 좋았고 방세도 무척 저렴했다.
쳄발로를 가져가겠느냐고 마야가 물었다. 아눅의 상속인들이 와서 아눅의 방을 비웠으나 쳄발로는 가져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들은 쳄발로를 펠릭스에게 선물하려고 했으나 펠릭스가 거절했다는 것이다. 펠릭스의 집에는 쳄발로를 위한 공간이 없고, 또 그는 최신 유행인 전자음악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이유는 따로 있는 것이 분명했다. 흰 이불 천을 뒤집어쓰고 고요히 있는 쳄발로를 펠릭스는 아눅의 유령이라고 불렀다.
쳄발로를 가져가겠느냐고 마야가 다시 물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왜냐하면 나는 영영 집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