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뉴스가 끝나고 마야는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파트너인 M이 왔다. M은 전직 음악 강사이자 가수였다. 그는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노래하고, 아마추어 합창단의 지휘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마야와도 합창 단원과 지휘자의 관계로 처음 알게 되었다고 들었다. 그토록 비경제적인 일만으로도 생계가 가능한지 내가 물었을 때, 그는 집세가 저렴한 집에서 살고 아주 검소하게 생활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게다가 종종 음악회를 열 기회가 있기도 하고. 비록 큰 액수는 아니지만 음반 판매도 할 수 있으며 자신은 이미 일생 동안 그렇게 간헐적 수입으로 살아오고 있다고. 그가 극장이나 연주회 혹은 조카의 결혼식이나 외국 여행 때도 늘 들고 다니는 배낭은 엄청나게 낡은데다 원래 색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랬는데, 그것이 그의 유일한 배낭이자 가방이라고 했다. 올해 8월에 그들은 마야의 뜻에 따라 발트해의 유이스트섬으로 휴가를 갈 계획이라고 했다. 물론 M은 마야의 불평에도 고집스레 그 배낭을 짊어지고 갈 것이다. 그들이 현관에서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오늘 저녁 함께 교회의 오르간 연주회에 가려고 한다. 바흐의 곡이 연주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책상 서랍에서 빵과 마가린을 꺼냈다. 주방으로 가서 차를 끓이고 접시를 가져와 마가린 바른 빵을 체룹과 나누어 먹었다. 완전히 닫히지 않은 주방에서 라디오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두 사람이 숲으로 갔다네, 그러나 돌아온 건 한 사람뿐.” 나를 괴롭히거나 다그치려는 건 아니라고, 체룹이 누그러진 어조로 다시 말을 시작했다. “네가 잘못했다고 비난하려는 건 더더욱 아니고, 그러니 제발 오해하지 말아줘.” 마야는 M과 함께 작별인사를 하고 집을 떠났다. 그녀는 집을 나가기 전, 혹시 자신의 아들인 펠릭스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만약 펠릭스가 온다면 우리는 오늘 오르간 공연을 보러 갔다고 말해줘. 지금 그애와 연락이 안 되는데, 오늘 내 책을 빌리기 위해 집에 들를지도 모른다고 했거든.” 불 꺼진 복도는 차갑고 어두웠다. 오래되어 검게 반들반들해진 마룻바닥 냄새가 났다. 나는 잠시 복도에 우뚝 서서 주방에서 들려오는 라디오의 노래에 귀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완전히 새로운 삶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아마도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일 것이다. 흥분한 목소리도 강요되는 말도 발아를 재촉하는 계절도 시계의 초침이 흘러가는 속도도 없는 세계를 그리워했다. 오직 빛뿐, 오직 고요뿐. 그렇다면 나는 마침내 집으로 가게 되는 걸까.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는 몰랐다. 체룹은 방안에, 여전히 쳄발로에 기대선 채로, 당시는 우리가 쳄발로인 줄 모르고 있던 쳄발로, 책상에 펼쳐진 내 노트를 바라보며, 뭔가 부담이 덜한 무해한 화제를 찾아보려는 의도로, 그사이 새로운 번역을 시작한 것인지 물었다.
이건 유언장이라고, 내가 대답했다. 뭐라고, 유언장이라고? (“그래요, 이건 유언장이야.”) 그러면 나중에 공증인에게 가져가 확인까지 받을 예정이냐고 그가 다시 물었다.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노라고 솔직히 말했다. 내 유언장은 법률관계를 확실하게 할 목적은 없기 때문에 공증인의 확인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게다가 내가 쓰는 유언장은 아직 초안일 뿐이고, 딱히 법적인 내용이 들어갈 예정도 아니었다. 하지만 정식 유언장은 그 자체로 법적인 문서라고 체룹은 말했다. 내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내 유언장은 좀 다를 거라고 나는 말했다. 체룹도 알고 있겠지만 나는 재산이라고 할 만한 것을 거의 갖고 있지 않고, 또 내 사후에 그런 소소하고 하찮은 물건들의 행방은 어차피 내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그 누구의 관심사도 아닐 것이다. 그러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유언장이 필요한 거냐고 체룹이 물었다. 그 이유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나는 대답했다. 단지 얼마 전 농부이자 시인인 크리스티안 바그너의 집에서 우연히 그가 남긴 유언장을 보았는데, 거기에는 바그너가 생전 한겨울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던 자신의 들판 한 구역을 그대로 보존하기를 원한다고 적혀 있었다. 바그너는 겨울에 그 들판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의 사후라도 들판이 그의 땅에 속하는 이상, 그 구역에는 그 어떤 사냥꾼도 들어올 수 없다고 남겼다. 그 어떤 사냥꾼도 겨울철 먹이를 먹기 위해 찾아오는 노루나 새들을 쏘아서는 안 된다. 바그너의 유언장은 내 인상에 깊이 남았고, 아마도 그래서 나도 유언장을 쓰게 된 것 같다고. 하지만 나는 농부도 아니고 들판을 갖고 있지도 않으며 야생동물들을 위해 눈 덮인 들판에 먹이를 남겨놓는 일은 해본적도 없다. 아아, 어쩌면 나는 들판을 바라본 적조차 한 번도 없는 것 같다고 나는 체룹에게 고백했다.
들판이 있다. 눈이 쌓였다. 차갑고 고요한 겨울의 굶주림이 있다. 멀리 사냥꾼의 파수대가 있다. 눈보라가 친 뒤의 맑고 차가운 창공, 까마귀와 매가 있다. 오, 아마도 나는 그저 시야에 들어온 들판을 지나친 적은 있겠지만 그것을 내 눈으로 바라본 적은 없는 것 같다고 체룹에게 말했다. 딱히 누군가를 향해서 쓰는 유언장은 아니지만, 원한다면 완성된 후에 복사해서 그에게도 한 부 보내주겠다고 했다. 물론 법률적으로 중요한 내용은 전혀 들어 있지 않다. 나는 그럴 만한 재정적 사회적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나와 같은 사람에게 유언장은 하등 쓸모없는 물건일 것이다. 내가 유언장을 쓰면서 깨닫게 된 유일한 사실은 바로 그것뿐이다. 그러면 쓸모없다고 스스로 알아차린 그 유언장을 하필 지금 쓰고 있어야 할 이유는 무엇이냐고, 제발 자신을 위해서라도 멈추어달라고, 네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고, 그러니 제발 당장 그 유언장 쓰기를 멈추어달라고 체룹이 말했다. 쓰는 것은 내 삶의 아마도 거의 유일한 기쁨이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일생 동안 쓸모없는 글을 쓰며 살아왔다. 그것이 내 일이었다. 나는 까마귀도 매도 아니었고 눈보라도 아니며 사냥꾼은 더더욱 아니었다. 아마도 나는 그저 거기 있는 빈 들판이었을 것이다. 내 유언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특히 그 누구의 관심도 불러일으키지 못한 유언장이라면, 더더욱 나의 것이다. 나는 어머니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 모두는 어머니가 내게 가르쳐주려고 의도하지는 않았던 일들이다. 유언장 쓰기도 그중의 하나이다. 반면에 어머니가 내게 의도적으로 가르치려고 했던 일들은 대부분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며 참혹한 실패로 끝났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에는 모녀 관계도 파탄이 나고 말았다고. 하지만 예를 들어서 지금 내 삶을 구성하는 주요한 성분들, 읽고, 쓰고, 기피하고, 멀리 있고, 침묵하고, 홀로 잠드는 행위는 사실 어머니로부터 왔다고 했다. 또 어머니는 평생 동안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고통받았는데, 아마도 이제 조만간 그 고통이 고스란히 나의 몫이 될 것이란 예감이 든다고. 그 고통이 바로 어머니의 크나큰 유산이기에, 어머니의 그리움과 고통에서 나는 뒤늦게 사랑의 원형을 발견한 것 같으니까, 하고 나는 체룹에게 말했다.
체룹에게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기나긴 상실을 앓던 여자에게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일생 동안 열성적으로 편지를 써왔다. 친구나 친척들도 있지만 가장 열렬한 편지의 대상은 자신의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십대 시절부터 집을 떠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머니는 자신의 아버지가 죽은 다음에도 그에게 편지를 쓰곤 했다고, 나는 말했다.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깊은 밤 문득 잠에서 깨어 마주친, 돈을 아끼기 위해 최대로 희미하게 만든 전등불 아래서 고개를 깊이 숙이고 편지를 쓰고 있는 모습이다. 편지를 다 쓰고 봉투를 봉하기 전에, 길가 화단에서 딴 꽃잎이나 산책길에 주운 붉은 낙엽, 죽은 나비의 날개, 색이 아름다운 초록빛 이끼 등을 책갈피 사이에 끼워두었다가 엷고 바삭하게 잘 마른 그것들을 봉투에 넣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부터 행하던 습관인데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편지봉투에 그런 식으로 마음을 담는 일을 어머니는 소중하게 여겼다고. 나의 아버지, 하고 어머니는 늘 말하곤 했다고, 나는 체룹에게 말했다. 단 한 번도 그냥 아버지라고 말하는 법이 없었다고, 항상 나의 아버지여야만 했다고. 그 어휘는 어린 내게 깊이 각인되어서, 나 역시 그녀의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라고 인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으므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녀의 아버지를 나는 종종 나의 아버지라고 떠올린다고 말했다. 그리고 슬픈 표정으로 편지를 우체통에 넣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그것을 배웠다. 그 표정과 침묵과 태도를. 세상으로부터의 모종의 기피를. 도저히 숨길 수 없이 드러나는 것들. 아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얼굴에 지문처럼 새겨진 좌절과 피곤까지도. 물론 어머니도 유언장을 썼다. 나와 마찬가지로 어머니 역시 재산이나 값나가는 소유물, 혹은 주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그 어떤 유무형의 것도 남길 처지가 아니었으므로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은 일이었지만, 어머니에게 유언장이란 죽은 나의 아버지에게 보낸 초록색 이끼를 넣은 편지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그만큼 쓸모없고 또 그만큼 절실하게 그녀 자신인 것들.
그러나 법률적인 구속성이나 필요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굳이 그것이 유언장이 되어야 하는지, 체룹이 물었다. 그것이 왜 단순한 편지가 아니라 유언장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덧붙이자면 자신은 유언장을 쓸 생각이 없다고 했다. 실질적인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뿐 아니라, 사후에 보잘것없는 자신의 소유물이 어떻게 되더라도 전혀 상관이 없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행운 혹은 불행 덕분에, 도저히 현실적이지는 않지만, 자신이 의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남기게 된다면, 그건 전부 멕시코에 있는 친구 존에게 갔으면 한다고. 하지만 자신이 유산자가 되거나 혹은 존이 자신보다 더 오래 사는 것, 두 가지 모두 현실성이 희박하다고 했다. 존은 체룹보다 거의 스무 살이나 더 나이가 많았다. 그러나 인간의 수명에 대해서 그 누가 장담하겠는가, 존이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체룹을 넘어서서 살아남게 될지도 모른다. 어차피 이런저런 말들은 모두 핑계일 뿐이고, 뒤에 남겨질 사람들이나 사후 소유물의 행방 등을 미리 생각하고 염려한다는 일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건 지나치게 시민적이다. 그런 일들이 자신에게 크게 필요 없다는 현실 때문만은 아니고, 그는 일생동안 양이나 질 모두가 극도로 간소한 삶을 지향해왔고, 어차피 세상의 모든 일은 사람이 원하는 바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또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이승의 삶을 통제하려고 하는 욕망은 덧없는 것일 테니까. 그 욕망이 굶주린 동물의 것이든, 혹은 사냥꾼의 것이든 상관없이.
어느덧 해가 져서 방은 어두워졌으나 창밖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환해서 전등을 켤 필요는 없었다. 내 삶은 지금 이 순간 이 방처럼 단순해 보인다. 곧 떠나야 할 수많은 임시 거처 중의 하나에서, 그 어디의 시민도 아닌 채로.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보다 훨씬 더 단순한 삶이다. 그러므로 체룹의 의견대로 나는 유언장이 필요 없는 사람에 속할 것이다. 네 말이 맞다고 나는 체룹에게 말했다. 현실적인 목적을 위해서라면 나 또한 너만큼이나 유언장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고 마찬가지로 그만큼 거리가 먼 죽음을 죽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 내 유언장은 차라리 편지에 가까울 것이다. 내 유언장은 어머니에게, 나의 어머니에게 쓰인 편지라고 나는 말했다. 물론 어머니는 이미 죽었지만,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일 하나가 최근 홀연히 떠올랐는데, 그건 어머니가 자신의 유언장을 나의 아버지를 향한 편지의 형태로 썼다는 것이었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내가 수신자인 것은 맞았으나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명백히 내가 아니라 나의 아버지를 향하고 있었노라고. 어머니는 이미 죽었지만, 그리고 그 유언장의 내용도 당연히 다 잊었지만, 애초에 크게 기억에 남을 만한 내용이 담겨 있지도 않았고, 유일하게 기억나는 건, 어머니가 나의 아버지를 향한 유언장을 썼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 있던 하나의 문장이라고 나는 말했다: 고통과 함께 세상을 등지는 편이 세상과 함께 고통을 등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그러면 너는 고독해질 거라고 체룹이 말했다.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고독해질 거라고 했다. 유언장 때문이 아니라, 죽은 이에게 유언장을 썼다는 것 때문에. 나는 상관없다고 했다. 그 누구도 내 유언장을 읽지 않고, 유언장이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고 그대로 버려져도 상관없다고 했다. 내 여행 가방, 내 책들, 내 손수건과 낡은 옷가지 등 값어치 없고 소소한 물건들을 누가 가지게 되더라도 상관없고 또 아무도 원하지 않아 쓰레기 컨테이너로 직행하더라도 역시 상관없다고. 아마도 어머니는 유언장에 어머니가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와 함께 불공을 드리러 간 여행에 대해서 적었던 것 같다고 나는 체룹에게 말했다. 나의 아버지와 어린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할머니(나의 아버지의 어머니)는 여행을 떠났다. 불교도인 어머니의 할머니가 부석사에 가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그때 고향은 아직 일본이 점령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버스와 기차를 타고 시골을 여행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내 머리는 뚜렷한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태어난 나라는 너무도 많이, 상상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충격과 경악을 넘어, 거의 구토를 불러일으킬 만큼 변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공동의 경험이나 기억이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세 사람은 버스를 타고 길을 떠났고, 부석사 인근의 여관에서 묵었다고 했다. 다섯 살 무렵 떠났던 그 여행이 마음에 사무치도록 그립다고 어머니는 썼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의 무덤 속에 어린 시절의 사진들을 함께 넣었다고, 어머니는 유언장에 썼다. 그중에는 부석사 석탑 앞에서 찍은 사진도 있다고 했다. 절을 돌아다니는 떠돌이 사진사가 관광객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나중에 인화한 사진을 우편으로 보내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나의 아버지는 일생 동안 돈을 벌거나 가족 부양과는 아주 무관하게 살아왔고, 그래서 어머니는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부터 관공서의 사환 일 등을 하며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들었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 사진은 모두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나의 아버지의 무덤 속에 들어가버렸으므로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어머니와 나의 아버지 그리고 나의 아버지의 어머니가 있는 그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 나 또한 이미 함께 있었던 거라고 어머니는 유언장에 썼고, 당시의 나는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의 의지를 초월한 존재가 진짜 존재라고 어머니는 유언장에 썼다.
지난 일주일간 내가 한 말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할 시간을 가졌노라고 여전히 쳄발로에 기대 선 채 체룹이 말했다. (여전히 우리는 쳄발로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고 있다, 아니 쳄발로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모른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충분히 대화를 나누어야 해, 하고 그가 덧붙였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체룹은 내가 유언장을 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가 유언장을 쓰는 게 아니라 사실은 자신과의 대화를, 그것도 장기적으로 회피하기 위해 유언장을 핑계로 내세우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들어 내가 떠나버릴 것이 두렵다고 고백했다. (“너는 항상 고향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말했으니까.”) 그런데 내 유언장은 진지한 의미의 유언장이라고 할 수는 없고, 사실 체룹의 질문에 즉흥적으로 튀어나온 답변에 가까웠다. 체룹이 묻기 전까지 나는 내가 쓰는 것이 어떤 종류의 글인지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체룹이 옳았다. 나는 더이상 집이 없지만 그 사실을 체룹에게 숨기고 있었으며, 마치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처럼 잔인하게 굴었다. 그것이 내 비밀이었다. 아래층의 벨이 울렸고 나는 펠릭스가 왔음을 알았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계단에서 들려왔다. 펠릭스가 계단에서 마주친 이웃과 인사를 나누는 소리, 그들이 말하고 그들이 웃었다. 그들이 팔을 흔들고 고개를 저어가며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었고 사이사이 친밀하고 호탕한 웃음소리를 냈다. 나는 펠릭스에게 문을 열어주고, 마야는 마르쿠스와 오르간 공연에 갔다고 전했다. 빌려가기로 한 책은 마야의 서재 책상 위에 있을 테니 가져가면 된다고. 그러나 펠릭스는 곧 내 방 문을 다시 두드렸고, 서재 책상 위에 있는 건 자신이 원한 책이 아니라 비슷한 제목의 다른 책이라면서, 혹시 마야가 책을 다른 곳에 두고 착각한 건 아닌지 물었다. 나는 더이상 자세한 다른 내용은 들은 바가 없다고 대답했다. 펠릭스는 마야가 가족 기록물을 다듬는데 온통 신경을 쓰느라 그 밖의 다른 일들은 다 잊고 만다고 불평했다. 게다가 좀 거친 어투로 덧붙이기를, 나치 전범이 있는 가족사가 뭐가 자랑스러워 책까지 쓴다는 건지, 자신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침묵했다. 마야는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아버지의 사진을 서재에 걸어놓았고 펠릭스는 그 점도 불만스럽게 여겼다. 그리고 혹시 자신에게 온 우편물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펠릭스는 물었다. 우편물을 챙겨두겠다고도 마야가 말했다고 했다. 나는 우편물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아아, 우리는 왜 잠시도 조용히 대화를 나눌 수가 없단 말인지, 방으로 들어가자 체룹이 분노를 터트렸다. 펠릭스가 부엌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고, 문틈으로 라디오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두 사람이 숲으로 갔다네, 그러나 돌아온 건 한 사람뿐.”
한 사람의 일생을 기록하는 일은 흥미롭다고, 역사를 전공한 마야는 언젠가 말했다. 그런데 한 가족의 일생 또한 마찬가지라고. 가족은 마치 따뜻한 담요와 같아, 그런데 그 안에는 이가 한 마리 자리잡고 있어. 담요를 집어던지고 싶지만 그러면 너무 추우니 말이지. 한 마리 이는 우리를 추위에 떨게 할 만큼 심각한 방해물일까. 마야는 가족을 이렇게 표현했다. 60년대에 자신이 파리에서 오페어(au pair)로 일하며 공부할 때 과거 하녀들의 공간이던 지붕 밑 다락방에 살았는데, 거기서 이가 옮아 고생한 경험이 있다고, 그런 사소한 일도 이번 책에 써넣었다고 했다. 60년대 파리의 가난한 거주지, 외국인 유학생의 소소한 삶 역시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그리고 내게 물었다, 너도 머릿니를 옮은 경험이 있는지. 아마 그런 경험이 있겠지만, 이를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나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학교에서 이가 옮아온 날 어머니는 신문지를 바닥에 반듯하게 깔고 내 머리를 그 위로 숙이게 했다. 그리고 살이 단단하면서 매우 촘촘한 빗으로 내 두피를 긁어내듯이 지그시 누르며 머리카락 끝까지 천천히 빗어주었다고 말했다. 신문지에 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내가 직접 이를 볼 수는 없었다고 했다. 아래로 쏟아져내린 머리카락이 내 시야를 온통 가리고 있었고, 또 머리 빗기가 끝나자마자 어머니가 신문지를 치워버렸기 때문이다. 그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나는 이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역사 교사로서 아쉬웠던 점은 과거를 돌아보는 방식이 평범한 개인이나 가족의 역사가 아니라 한 나라나 왕조 혹은 민족 전체를, 마치 그런 것이 존재하기라도 한다는 듯이, 의지를 가진 단일 유기체로 인식하게 되는 점이라고 마야는 말했다. 폴란드는 강대국 사이에서 자주 환난을 겪었으므로, 연도에 따른 국경선의 다양한 변화를 가르쳐야 하는 폴란드의 역사 교사들은 특별수당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아아, 폴란드에서 풀들이 얼마나 높이 자라는지 네가 안다면, 내 가장 나이 많은 자매는 죽기 직전까지도 이렇게 말하곤 했어. 마야의 가장 나이 많은 자매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일꾼들이 풀 베기를 하는 들판으로 점심밥을 날라야 했는데, 한 손에 점심 바구니를 들고, 다른 손에는 항상 커다란 쇠스랑을 높이 치켜든 채로 키 큰 풀 사이를 걸어갔다고. 한순간도 무거운 쇠스랑을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고. 왜냐하면 키가 작은 어린아이는 높이 자란 풀 사이에서 보이지 않으므로 아버지가 커다란 반달형 낫으로 풀을 베면서 자기 자식의 목을 댕강 베어버리는 것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농부들이 사용하는 낫은 농경의 신 크로노스가 양손으로 쥐고 좌우로 휘두르는 커다란 반달형 낫이다. 또한 검은 후드 망토 깊숙이 얼굴을 가린 죽음의 신이 들고 있는 낫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계속해서 낫을 기계적으로 빠르게 휘두르다보니 자식의 목이 풀 사이로 데굴데굴 굴러가버리면 자신이 아이의 목을 베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일을 마친 농부는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며, 아이가 왜 보이지 않는지 의아하게 여겨 아내에게 물을 것이다. 마야는 그 일도 이번 책에 써넣었다고 했다. 물론 전쟁이 끝나고 가족들이 독일로 돌아온 후 태어난 마야는 단 한 번도 동부 유럽 농촌의 그런 삶을 직접 체험하지는 못했다. 모두 폴란드 농가에서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나이 많은 자매들의 진술을 통해서 들었을 뿐이다.
겨울 한철을 제외하면 누구도 아눅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아눅은 양치기 아눅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도시로 내려오는 기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마야가 말했다. 만약 할 수만 있다면 한겨울 내내 아눅은 산 위 양치기 오두막에서 보내기를 원할 거라고 마야는 장담했다. 나는 아눅을 만나기 전부터 아눅을 잘 안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 아눅의 방에서 지내면서 우연히 그의 유언장을 발견했던 것이다. 정확히는 아눅이 유언장을 작성하기 전에 미리 기록해둔 초안이다. 나는 그것을 읽었다. 겨울이 되면 아눅이 산에서 내려올 것이다. 가축들을 산 아래 겨울 우리로 데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눅은 대개 피리로 양들을 인도한다고 들었다. 죽은 백조의 갈비뼈로 만든 피리라고 했다. 그때 나는 아눅을 만날 것이다. 대형 낫을 익숙하게 사용하려면 연습이 필요하다고 마야는 삶은 감자를 접시에 담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김이 오르는 뜨거운 감자 위에 냉장고에서 꺼낸 응유를 끼얹으며 다시 말했다. 아아, 폴란드에서 풀들이 얼마나 높이 자라는지 네가 안다면.
결국 우리가 차분히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어딘가 다른 장소로 옮길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날 체룹의 결론이었다. 체룹은 작은 여행용 손가방을 들고 왔다. 바퀴 달린 슈트 케이스가 아니라 손에 드는 납작한 서류가방 모양의 물건이다. 손가방에는 여권과 간단한 세면도구와 속옷 한 벌 그리고 양말 두 켤레가 들어 있다고 했다. 그는 오늘밤 멕시코로 떠날 예정이었다. 푸에블라 자치대학에는 그의 친구인 존이 있었다. 그들은 과거 그가 잠시 동안 교사로 일하던 고등학교에서 알게 된 동료 사이였으나 곧 우정을 나누는 일생의 친구가 되었다. 원래 영어와 문학을 가르치는 교사였지만 제3세계와 문화인류학에 관심이 깊었던 존은 교사 일을 그만둔 뒤 멕시코로 갔고, 이후에 그들은 매년 한두 번 정기적으로 만나서 함께 독립 문학잡지를 만들었다. 한번은 푸에블라에서, 또 한번은 뮌헨에서. 편집과 인쇄까지 모두 그와 존 두 사람이 직접 한다고 했다. 잡지에 실리는 원고는 작가인 친구들의 자유 투고로 이루어졌다. 두 발행인이 개인 주머니를 털어서 지불하는 원고료는 아주 상징적인 액수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일 년에 한두 번 발간되는 잡지의 원고를 모으는 데 아직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종종 작가들이 직접 그린 스케치가 실리기도 했고 기꺼이 일을 분담해주는 푸에블라 대학의 자원봉사자들도 있었다. 물론 그들의 잡지는 제작 부수도 극히 적고 일반 서점에서 볼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꾸준하게 주문이 들어오는 구매처는 단 한 군데, 잡지와 무크지 전문 서점뿐이지만 그래도 중고 시장에서 희귀한 잡지를 모으는 수집가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 체룹은 잡지 일 말고도 이런저런 행사나 강연 등으로 종종 여행을 다니는 편이었고 나는 그것에 익숙했다. 그의 여행용 손가방은 쳄발로 옆에 기대 세워져 있었다. 그는 이 주일 후에 멕시코에서 돌아올 예정이라고 했다. 그때라면 네 마음이 진정되어서 이 문제에 대해서 대화가 가능해지겠지, 하고 체룹이 마치 자신에게 대답하듯이 말했다. 내가 푸에블라에서 돌아오면, 하고 그는 반복했다. 우리는 대화가 필요해,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데, 나는 비난하고 싶지도 않고 논쟁하고 싶은 건 더더욱 아니야. 나는 논쟁을 즐기지 않아. 단지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마음을 열고 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야.
그는 우리가 어떤 방해도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대화를 나누어야 하며, 그 일을 회피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미리 세워두고 그것만을 고집하거나 상대가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혼자 서둘러서도 안 된다고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대화는 아눅의 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여기서는 네 말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네 주장을, 나는 충분히 이해해.”) 체룹은 입 밖에 꺼내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건 곧 이 방이 아눅과 나의 밀회의 장소였을 거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체룹의 집도 이상적인 장소는 아닌 것이, 그의 집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원래 그의 영역인 셈이니 공정하고 열린 대화를 하기에는 내게 불리한 환경이 조성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 무엇도 너를 윽박지르고 압박해서 얼어붙게 만들어서는 안 돼. 그게 내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결론이었어, 하고 그가 말했다.
체룹은 내가 다녀간 이후로 지난 일주일 동안 우리가 대화를 나눌 만한 장소를 생각해보았는데, 결국 내린 결론은 여름 거주지라고 했다. 나는 오래전 체룹과 함께 단 한 번 그 근처 요양원에 있는 그의 어머니를 방문한 적은 있지만 그의 고향집 농가에 대해서는 잘 몰랐고 가본 적도 없었다. 그가 말하는 여름 거주지 별채에 대해서는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만 단편적으로 들었을 뿐이다. 우리가 요양원을 찾았을 때 체룹은 이것이 고향과 관련한 마지막 방문이 될 거라고 분명히 말했다. 어머니는 기억을 잃고 요양원에서 생을 마칠 것이며, 고향 농가의 일은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났으니 두 번 다시 고향을 찾을 이유도 의무도 없을 것이라고, 그는 어차피 도시의 삶을 선택했으므로 그곳은 더이상 자신의 장소가 아니라고 말했다. 여름 거주지는 상속으로 인해 체룹의 형제 소유이지만, 거주권을 체룹이 갖고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언제든지 가서 머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므로 여름 거주지는 사실상 그의 영역이 아니며 그 누구의 영역도 아니었다. 그는 현재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여름 거주지의 열쇠를 내게 주고 가겠다고 했다.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그곳으로 갈 수 있도록. 그곳은 생각에 잠기기 좋은 장소이며, 오직 둘만이 아무런 방해 없이 오래 대화를 나누는 데 더없이 좋을 장소라고 했다. 이웃도 없으며 전화도 방문객도 없고, 아무도 우리가 거기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고. 그런데 나는 어디로도 가고 싶지 않았다. 체룹의 고향은 가고 싶지 않았고 더구나 체룹과 함께라면 더더욱 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역시 두 번 다시는 고향에 갈 일은 없을 거라고 강조해서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내 의심과 거부를 눈치챈 체룹이 강경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갑자기 나타난 여름 거주지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는 그런 따위 물음보다 더욱 중요하게 강조되어야 할 점은, 자신은 나를 비난하거나 추궁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고,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단지 조용히 시간을 갖고 깊은 대화를 나누어보고 싶을 뿐이다. 대화를 회피하는 건 우리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미래,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는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우리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는 결론만큼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혹시나 오해할까봐 하는 말인데 나를 비난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다고,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그는 다시 한번 더 강조해서 말했다.
그는 흰 천으로 덮인 쳄발로 위에 열쇠 하나를 놓았다. 고전적으로 크고 투박하게 생긴, 곡물 창고나 마구간 혹은 헛간에 사용하는 옛날식 열쇠였다. 그것은 여름 거주지의, 우리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가야 할 장소의 열쇠라고 했다. 그리고 수첩을 찢어 주소를, 늘 그러듯이 휘갈겨 썼다. 그는 좀 흥분한 나머지 내가 자신의 필체를 잘 읽지 못한다는 걸 잊어버린 듯했다. 앞으로 이 주일 뒤 자신은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먼저 가 있어도 좋으며 혹시 내가 시간이 더 필요할 경우에 자신은 좀 더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멕시코에서 돌아오면 여름 거주지에서 한동안 머물면서 나를 기다릴 생각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니 언제든지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대화를 할 마음의 준비를 마치면, 그때 시작해보자고 했다. 여름 거주지는 한때 그의 형제가 그림을 그리는 작업실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비어 있노라고 했다. 만약 자신이 돌아온 다음에도 내가 더 시간이 필요하다면, 비록 일생 동안 그림이라곤 단 한 장의 스케치조차 그려본 적이 없고 또 시골이나 농가에서 사는 건 자신의 방식이 아니지만,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나를 기다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곳에서는 아마도, 들판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하루가 흘러가 버릴 거라고 했다. 일 년, 그리고 일생 또한 마찬가지다.
지난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쓰지 않았고, 오직 책장의 책들을 펼쳐서 임의의 한두 페이지를 읽다가 바닥으로 집어던지고 다시 다른 책을 펼쳐 같은 행위를 되풀이 하는 일만 반복하고 있었다고 체룹은 말했다. 나는 그가 말한 여름 거주지라는 장소로 갈 생각이 전혀 없었으나 굳이 그에게 알리지는 않았다. 아직은 체룹과 대화를 나눌 만한 마음의 상태가 아니었고, 이 주일 만에 획기적인 변화가 찾아올 것 같지도 않았다. 내 고백으로 인해 어쩌면 나는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은 큰 상처를 받았다고 체룹은 털어놓았다. 그래도 일주일 동안 깊이 생각해보니 내가 자신에게 솔직하게 말해준 것은 그 반대의 경우보다 어떤 의미로든 나은 결정이었다고 체룹은 말했다. 그동안 나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으며, 그건 미움이나 원망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그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난 고개를 돌린 채, 떠날 거라고 체룹에게 말했다. 나는 고향으로 떠난다, 너의 것이 아닌 내 고향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나는 마치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 것처럼 말하는 체룹을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않았다. 체룹도 아마 내심으로는 믿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이에는 오직 껍데기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조금 울었다. 그러나 많은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밤이면 공포가 찾아온다고, 나는 울부짖다시피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이곳에서건 그곳에서건 그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말도 더는 하고 싶지 않다고. 대화를 위한 장소가 중요하다는 체룹의 말은 절망을 외면하기 위한 연극일 뿐이라고 말했다. 네가 보태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고통받고 있다고. 그러니 체룹, 너는 나를 벌주기 위해서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벌주지 않는 방식의 벌 말이다.
우리는 잠시 방 한가운데서 떨어진 채로 서서 상대를 바라보았다. 팔을 뻗으면 닿은 것 같은 거리였다. 그는 들판을 바라볼 거라고 했다. 나를 보는 것은 들판을 보는 것과 같다고, 체룹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