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4. 집으로 가는 길―(1)

내게는 어머니가 있었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사랑과 잔인함을 배웠다. 잔인함은 특정 인물을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어머니의 안에 내재하는 자연에 가까웠다. 물론 그녀의 사랑도 다르지 않았다. 
체룹과 함께 살기 위해 뮌헨에 왔을 때 나는 어머니가 죽은 나이에 이르러 있었다. 자신의 죽은 어머니를 넘어서서 산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나는 아직 몰랐다. 어느 날 욕실에서 거울을 보다가 깜짝 놀랐는데, 거기 거울 속에서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놀라움은 죽은 어머니가 갑자기 나타나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생애 최초로, 나는 어머니와 내가 매우 닮았으며, 마치 나이 차이가 거의 없는 자매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충격 속에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 나는 어머니와 완전히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늘 나에게 의문의 존재였고, 내 얼굴이 어디에서 왔는지 거울 앞에서 궁금해하곤 했다. 그러나 자라면서 육체적인 조형이 내가 모르는 어느 미지의 반대편에서 점점 더 어머니에게로 가까워진 것이다. 
어머니는 병들기 전 건강하던 시절의 모습 그대로였지만 그녀에게서 자주 보아서 익숙한, 그래서 마치 처음부터 그것과 함께 태어난 듯 피부에 깊이 각인된 고생과 근심은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유난히 경직된 입모양과 미간의 깊은 세로 주름도 없었다. 그렇다고 봄의 나무처럼 생기 있거나 행복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거울 속 어머니의 얼굴은 그냥 감정 없이 무표정했고, 평화롭다기보다는 살짝 공허해 보였다. 어머니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나를 알아보는 걸까. 어머니는 아주 젊은 나이의 나를 마지막으로 알았으니 지금 중년에 가까운 나를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거울 속 어머니는 평소에 늘 하던 머리 모양 그대로였는데, 긴 머리칼을 목덜미 뒤로 동그랗게 모아올려서 고무줄과 핀으로 고정한 형태였다. 그때까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나 역시 어머니와 거의 동일한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그 순간―거울 안과 거울 밖에서―어머니와 나는 정말로 닮아 보였다. 두 개의 달걀처럼. 나이와 외모가 비슷한 자매처럼. 거울상처럼 흡사하지만 두 개의 거울이 겹쳐지는 다음 순간에는 둘 중 한 명만이 살아남게 되는 자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래: “두 사람이 숲으로 갔다네, 그러나 돌아온 건 한 사람뿐.”) 
어머니는 내가 성인이 되자마자 죽었으므로 지금 거울 속에서 나를 보는 여자가 나의 죽은 어머니일 리는 절대로 없다고 믿어야 하리라. 그게 아니라면 나는 대단히 커다란 환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일생을 보내버린 것이다. 내 사랑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혹은, 어머니는 단지 내 눈앞에서 사라졌을 뿐 죽었다는 건 나의 잘못된 믿음일지도 몰랐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거울 속에서 나와 함께 점점 더 나이들어가는 어머니를 본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죽은 것이 아니다. 영원히 죽을 수 없다. 나 역시 그렇게 될까.) 
내가 입을 열자, 거울 속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이 아이를 알고 있어. 언젠가 이 아이와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면, 우리는 분명히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거야.”) 나는 고개를 돌렸고, 거울속의 어머니도 사라졌다. 

내 기억에 남은 마지막 어머니는 식탁에서 천천히 밥과 국을 떠먹다가 갑자기 손을 입안으로 넣어 뭔가를 꺼내던 모습이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뿌리가 녹아버려 잇몸에서 빠진 어금니였다. 그녀는 잠시 동안 어금니를 손에 들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입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딱딱한 흰 덩어리의 정체를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콩이나 생선 뼈 혹은 덜 익은 감자 조각과도 같은. 그러나 그건 분명 어금니였다. 어금니를 식탁 위에 내려놓은 그녀는 콩과 두부가 든 국그릇을 숟가락으로 저었다. 어머니는 식욕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게, 자신의 갈색 송아지 가죽 구두를 가져가서 신을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시내의 고급 구둣방에서 맞춘 지는 몇 년 전이지만 아주 아껴 신어서 거의 새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아마도 그것이 어머니가 가진 가장 값진 물건 중 하나였을 것이다. 평소에는 아껴두다가 간혹 부유한 친척들을 만나러 갈 때만 꺼내 신곤 하던 구두였다. (나는 그 구두를 어머니가 죽은 후 중고품 상점에 기부했다.) 어머니는 구두를 내게 주고 싶어했으나 내 발은 어머니의 발보다 두 사이즈나 컸기에 불가능했다. 어머니는 이제 앞으로 자신이 그 구두를 신을 일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 구두뿐 아니라 다른 어떤 신발도 필요하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그녀는 내가 꼭 구두를 가져야 한다고 고집했고 당장 내가 구두를 신은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 싶어했으므로 나는 할 수 없이 일어나 구두를 신어보았다. 그러나 당연히 내 발은 그녀의 구두에 들어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실망한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자신의 구두를 신기에는 내 발이 너무 크다는 사실을 어머니 자신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어려서부터 너무 많이 걸어다닌 거야, 그래서 발이 커졌어. 발 모양도 일그러졌고. 어머니는 어금니 없이 말했다. 일그러진 얼굴. 그러니까 너무 많이 걷지 말라고 항상 말했잖니, 너무 많이 걷는 건 발 건강에도 좋지 않아, 내가 어렸을 때 나의 아버지가 항상 그렇게 말하곤 했단다. 
어머니의 말은 어떤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어린 시절 나는 항구도시의 버스 터미널에서 길을 잃었고,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어머니의 고향집까지 걸어간 일이 있었다. 집은 해변에서 가까운 곳이고 터미널은 시 반대편 외곽에 있었으므로 여덟 살이 채 되지 않은 아이에게는 분명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먼 거리였을 텐데. 나는 그 일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혹시 그때, 어머니가 고향 도시로 가는 버스에 나를 홀로 태워 보냈던 날, 내가 길을 잃어버린 일을 말하는 거냐고. 나는 혼자서 먼 거리를 여행한 일도 없었고 그처럼 먼길을 걸었던 적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서둘러 덧붙였다, 내가 길을 잃었고, 내 실수로 마중나오는 사람과 만나지 못했으니 그건 아마도 내 잘못일 거라고. 어머니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나를 잠시 보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얼굴을 돌려버렸다. 그러는 중에도 어머니의 한 손은 우연인 듯 식탁 위의 어금니를 내가 보지 못하도록 계속 가리고 있었다. 

그날 어머니는 나를 홀로 버스에 태웠다. 어머니의 고향인 남쪽의 항구도시로 가는 버스였다. 여름방학 중이었고 서울은 숨막히는 더위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당시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으나, 어머니의 고향이란 곧 내 고향이기도 했다. 나는 거기서 태어났다고 어머니가 말했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터미널에 친척 아주머니가 나를 마중나와 있을 거라고 했다.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주머니지만 그녀가 나를 알아볼 거라고 들었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나를 나의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집으로 데려갈 거라고 했다. 그건 당연히 나의 아버지의 집이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나는 이미 태어나서 몇 년간 어머니의 고향집, 나의 아버지의 집에서 살았다고 하지만 나는 집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너는 어차피 태어나던 순간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잖니, 하고 어머니는 냉정하게 말했다. 그건 내가 둔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별히 예민하고 감수성이 높은 편이라면 태어난 집을 기억해낼 줄 알아야 한다고. 하지만 당장은 기억이 나지 않아도 집에 도착하는 순간 집을 알아볼 거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게 고향이라고. 이상하게도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랐다는 집에 대해서 전혀 기억이 없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기억이 유난히 늦게 시작하거나 부분적으로 삭제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내가 그들에 속하는 것일 테니까. 
나의 아버지의 집에는 큰 정원이 딸렸고 정원 전체엔 풀과 꽃들이 만발하고 꽃잎 속에는 벌들이 잉잉거리며 담장 가에는 키 큰 맨드라미와 석류나무와 감나무 포도나무가 있다고 했다. 나의 아버지는 식물을 유난히 사랑했다고 한다. 고향의 정원은 나의 아버지와 함께 이미 오래전부터 어머니의 숨길 수 없는 자랑이었다. 나는 그것에 대해서 여러 번이나 들었으므로 마치 내 눈앞에서 실제로 보듯이 집을 그려볼 수 있었다. 흰 사발에 담긴 양초가 타오르는 어둑한 부엌에는 깊은 우물이 있고 저녁이면 그 물을 길어올려 데워서 목욕을 했다. 너는 그렇게 자랐단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엉덩이에 종기가 자주 나는 바람에 뜨거운 고약을 붙였다고 했다. 고름을 빨아들이는 검은 고약 한 덩이를 촛불로 살짝 녹여서 환부에 붙이고 그 위에 한지를 덮는 식이었다. 녹은 고약은 씁쓸한 풀의 진액과 석유가 섞인 묘한 냄새를 풍겼다. 고약이 갓 화덕에서 내린 냄비처럼 뜨거울 거라고 생각한 나는 고약을 올린 종이를 맨살에 갖다대기도 전에 울음을 터트렸다. 걷기 전에는 배꼽에서 벌레가 나오는 병에 걸린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기억이 없다. 동네에 떠돌이 사진사가 오면 어머니는 내게 푸른 넥타이가 달린 선원풍의 흰 블라우스를 입혀서 사진을 찍게 했다고 한다. 색이 살짝 누르스름해진 블라우스는 어머니가 어릴 때 입던 유치원 제복이었다고 들었다. 떠돌이 사진사는 아무런 예고 없이, 가족들이 점심식사 후의 낮잠에 빠져 있는 환하고 나른한 오후에 소리 없는 그림자처럼 찾아왔다. 집 앞 커다란 느티나무에서, 아니 그건 느릅나무였을지도 모른다, 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제비들이 지붕 위를 빠르게 날아다녔다. 오후의 맨드라미 위로 햇빛이 무겁게 흘러내렸다. 떠돌이 사진사는 문을 두드릴 필요도, 벨을 누를 필요도 없었다. 늘 그렇듯 낮에는 문이 잠겨 있지 않았고, 마루 밑에서 졸던 개는 사진사가 들어오자 그의 먼지투성이 낡은 인조가죽 구두를 핥았다. 사진사는 마루에 걸터앉아 어린 식모가 건네준 설탕이 든 냉수 한 사발을 마신 후 가족들이 낮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떠돌이 사진사의 자전거에는 작은 짐수레가 달려 있고 거기에는 사진의 배경이 될 커다란 가림판이 실렸다. 접이식 가림판에는 야자수가 서 있는 흰 백사장과 바다, 얼룩말이 뛰어다니는 아프리카의 초원, 붉은 카펫이 깔린 화려한 거실 등의 그림이 있어서 누구든 원하는 그림 배경을 선택하여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가림판 외에도 아이들의 눈에는 진짜처럼 보일 만큼 커다란 말 인형이 있었다. 아이들은 말 인형 위에 올라탈 수 있었다. 그런 혜택은 주로 사내아이들에게 주어졌다. 그러면 용감하고 남자답게 보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말은 눈동자를 부릅뜨고 무시무시한 사각형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으므로 아이들은 겁을 먹었다. 가족들은 이웃집에 식모를 보내 떠돌이 사진사가 온 걸 알렸다. 그러면 이웃은 서둘러 아이들의 머리를 빗기고 새옷을 입혀 사진 찍을 준비를 마친 후 우리집으로 보냈다. 그사이 떠돌이 사진사는 정원의 화단 앞에 삼각대와 카메라를 세웠다. 이웃집 사내아이를 말 인형 위에 앉히자 아이는 말이 무서워서 크게 울음을 터트렸으므로 다시 내려놓아야만 했다. 떠돌이 사진사는 아이들의 뒤로 아프리카 초원의 그림을 펼쳤다. 누군가 그 그림을 배경으로 골랐기 때문이다. 겁낼 필요 없어, 이 말은 그냥 헝겊 인형일 뿐이란다, 그러니 혹시 말이 네 엉덩이라도 물까봐 걱정할 필요는 조금도 없어, 하고 누군가 나를 안아서 말 위로 올리며 말했다. 
겁낼 필요 없어, 가만히 버스에 앉아 있다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차장이 일러줄 테니까. 버스에서 내리면 친척 아주머니가 널 마중나와 있을 거야. 그러니 혹시 길을 잃을까봐,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고아가 될까봐 걱정할 필요는 조금도 없어, 하고 어머니는 내가 버스에 타기 전 다시 말했다. 너는 그 정도는 충분히 혼자 할 수 있어야 해, 언제까지나 어린아이가 아니잖아. 친척 아주머니는 나를 데리고 나의 아버지의 집으로 갈 테니 아무런 걱정 말고 그냥 버스가 최종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어머니는 일을 해야 하므로 당장 서울을 떠날 수 없고, 하지만 곧 나를 따라서 고향 도시로 올 예정이라고 했다. 집을 떠나기 전 어머니는 내게 가방을 싸도록 일렀고 나는 어린아이용 배낭에 교과서 한 권과 연필 한 자루, 어디든지 항상 갖고 다니던 작은 담요, 그리고 일기장 한 권을 넣었다. 양말이나 손수건, 세면도구나 속옷 같은 물건은 없었다. 나는 혼자서 그처럼 먼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다. 버스에 탄 다음에야 생각이 났는데, 나는 그때까지 서울에서도 버스나 기차를 혼자서 타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지폐를 한 장 내 주머니에 넣어주었는데, 놀랍게도 내가 돈을 가지거나 만져본 적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물론 돈이 무엇인지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내가 직접 상점에서 돈을 내고 물건을 구입한 경험이 없었으므로 동전도 아닌 지폐를 보자 겁이 났다. 나는 그것을 결코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으면 된단다, 버스가 너를 고향인 항구도시까지 잘 데려다줄 거야. 그곳은 버스의 가장 마지막 정착지란다. 고향 가까이 도착하면 바다가 보일 거다. 그러면 너는 기억해낼 거야, 네가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걸. 버스의 여자 차장에게 부탁해놓았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어,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런데 버스는 내 짐작과는 달리 곧장 최종 목적지까지 가는 게 아니라 도중에 몇몇 도시에서 정차를 했고, 그때마다 보따리와 가방을 든 사람들이 내리고 제복을 입은 군인과 다른 도시로 가는 방문 판매원 등 새로운 사람들이 올라탔다. 지방 소도시의 버스 터미널들은 모두 비슷해 보였다. 나는 혼자라는 두려움보다 내릴 곳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더 컸다. 어머니가 말한 항구도시와 옛집의 기억이 내게는 없었으므로 더욱 불안했다. 그땐 네가 너무 어렸어, 하지만 그래서 기억을 못한다는 건 뭘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지, 하고 어머니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어린 시절의 집을 기억 못한다고 주장하는 일은 사실 흔하단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고향을 다시 보게 된다면 깨닫게 될 거다, 너 역시 마찬가지야, 그 무엇도 속일 수 없어. 네가 누구인지 너는 거기서야 비로소 보게 될 거다. 
항구도시까지는 버스를 타고 적어도 여섯 시간을 가야 한다고 했다. 버스를 타느라 아침 일찍 집을 나선 나는 유리창에 고개를 기대고 잠이 들었다가 버스가 새로운 도시의 정류장이나 터미널에 멈춰 설 때마다 불안 속에서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버스가 정차를 하면 바구니에 빵이나 과자, 삶은 감자, 달걀, 김밥, 사과와 붉은 색소를 넣은 사탕 등을 가득 담은 행상인들이 버스 창 아래로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창밖으로 지폐를 내밀고 음식을 사 먹었다. 여자 차장이 내게 다가오더니 점심밥을 싸왔는지 물었다. 내가 고개를 흔들자 그녀는 내게 커다란 사탕 두 알을 쥐여주었다. 사탕은 내가 주먹으로 완전히 감싸쥘 수 없을 정도로 컸고 굵은 설탕이 촘촘하게 뿌려져 있었다. 양손에 비닐 포장도 없는 커다란 사탕을 한 알씩 쥐고 있으니 곧 설탕이 녹으면서 견딜 수 없을 만큼 끈끈해졌다. 손을 펼치자 그 사이 사탕에서 녹아나온 색소로 손바닥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사탕 한 알을 입안에 넣었다. 사탕은 너무도 커서 입안을 가득 채워버렸고 나는 혀를 움직이기조차 어려웠다. 입을 반쯤 벌린 채로 사탕을 문 나는 엄청나게 커다란 사탕이 얼른 녹기를 기다렸다. 내 입과 뺨도 손바닥과 마찬가지로 붉은색으로 얼룩졌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앉은 군인이 내게 껍질을 깐 삶은 달걀을 건넸다. 나는 어쩔 줄을 모르다가 사탕을 손바닥에 뱉어내고 달걀을 조금씩 베어먹었다. 긴장을 해서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고 또 삶은 달걀을 항상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탕의 맛과 섞인 달걀은 역겨웠고 버스의 덜컹거림과 휘발유의 악취, 사람들의 땀과 담배, 거기다 온갖 음식냄새들 때문에 토할 것만 같았다. 나는 먹다 남은 달걀을 손바닥 안에 움켜쥔 사탕과 함께 창밖으로 버렸다. 내가 창을 열자마자 카메라를 가슴에 맨 떠돌이 사진사가 다가오면서 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제안했다. 주소만 가르쳐주면 며칠 뒤에 우편으로 사진을 보내준다고 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주소를 말하기가 무섭게 사진사는 버스 창밖에서 나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카메라 위에 달린 커다란 은색 쟁반이 펑 하는 소리를 냈으므로 나는 깜짝 놀라서 눈을 감았다. 사진사가 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버스는 검은 매연을 풍기면서 승강장을 떠나는 중이었다. 음식이 든 바구니를 머리에 인 행상인 여자들이 다음 버스가 도착할 승강장으로 몰려갔다. 한 젊은 여자는 머리에 커다란 놋쇠 주전자를 올리고 있었는데 그녀가 달리자 주전자 입구에서 우유색 술이 방울방울 흘러내려 여자의 머리를 적시는 것이 보였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배불리 먹고 마신 다음 지루함을 잊기 위해 담배를 피우거나 잠이 들었다. 유리창에 머리를 기댄 나도 다시 잠이 들었다. 어디선가 축축한 조개와 해초 냄새가 났고, 나는 처음 느끼는 그것이 바다 냄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드디어 원래의 내 목적지인 항구도시에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버스는 어느 도시의 터미널에 접근하는 중이었다. 규모가 큰 터미널은 어수선했고 휘발유와 젖은 쓰레기의 악취가 진동했으며, 늘 그렇듯이 버스가 도착하자 타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바람에 내리는 사람들과 뒤엉켜 승강장은 매우 혼잡했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간신히 버스에서 내린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나를 데리러 온다던 아주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버스 주변에 서 있는 나이든 여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았지만 어차피 나는 그녀를 몰랐으니 소용없는 짓이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고 아무도 내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는 인파에 밀려 버스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의 손이 불쑥 내 눈앞으로 튀어나왔다. 소매로 미루어보건대 제복 차림의 경찰관이었다. 그는 비닐에 든 반쯤 먹다 남은 빵을 내게 건네며 먹겠느냐고 물었다. 하얗게 굳은 설탕이 씌워진 빵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건네는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빵을 받아들고 허겁지겁 베어먹기 시작했다. 집을 떠나온 후 식사다운 식사를 하지 못해서 배가 매우 고팠기 때문이었다. 빵을 먹으면서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마중나온다는 친척 아주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거의 본능에 따라 무작정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터미널 건물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누군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녀는 내가 타고 온 버스의 차장이었다. 세상에, 네가 내려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야, 종점은 한 시간은 더 가야 한단다, 내가 화장실 다녀오는 길에 널 봤으니 망정이지 큰일날 뻔했구나. 그녀는 다시 버스로 데려가기 위해 내 손을 잡았다. 사탕이 녹아내리고 설탕이 묻은 내 손바닥은 견디기 힘들 만큼 더럽고 끈적였다. 얼굴을 찡그린 차장은 내 손을 놓고는 자신의 손바닥을 치맛자락에 문질러 닦았다. 우리가 올라타자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버스는 바다를 따라 달렸다. 부둣가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노인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는데 이가 하나도 없었으므로 나는 무서움을 느꼈다. 그 노인이 나를 계속 집요하게 바라본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들을 자루에 넣어 잡아간다는 노인 이야기가 떠올랐다. 잡아먹기 위해서였다. 노인은 지금 배가 고픈 걸까. 갑자기 버스가 충분히 빠르게 달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깊숙한 자루처럼 컴컴한 노인의 입. 그물로 만든 자루를 든 노인이 웃으며 나를 쫓아오는 것만 같았다. 한여름 태양빛 속에서 바다는 무수한 유릿조각처럼 반짝였다. 나는 불안한 가운데서도 파도에 매혹당했다. 파도를 바라보기를 멈출 수 없었다. 버스 유리창을 기어오르던 무당벌레 한 마리가 내 얼굴로 떨어졌다. 잠이 막 들려던 순간 나보다 훨씬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바닷가 길을 걷는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놀랍게도 그녀는 내 어머니처럼 보였다. 어머니가 동생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고 나는 믿었다. 그런데 이제야 떠오르다니, 내게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가. 어머니는 세번째 아이를 임신중이었다. 
왜 내가 그것도 혼자, 기억나지 않는 옛집으로 가야 하느냐고 물으니 어머니는 대답하기를, 어쩌면 우리는 서울을 떠나 잠시 고향에서 지내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 집에서 우리―어머니와 나를 말하는 것이다―가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의 첫 호흡이 시작된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어머니는 세번째 아이를 낳기 위해서 고향에 가려고 한 것이리라. 그 아이에게도 최초의 호흡과 마찬가지로 최초의 집이 역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니라면 당시 우리가 살던 서울의 방 하나뿐인 셋집을 비워주어야 해서, 혹은 내가 상상해낼 수 없는 다른 모종의 이유 때문에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는지도 몰랐다. 어머니는 말했다. 그 집을 본다면 너도 모두 기억이 날 거야, 너는 거기서 태어났고 최초의 말과 최초의 걸음을 거기서 배웠으니까,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겠니. 물론 나도 마찬가지로 그 집에서 태어났고, 그건 나의 아버지의 집이니까, 우리는 그 집을 모를 수가 없어. 아마 꿈속에서 마주치더라도 금방 알 수 있을 거야,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것, 기억하지 않아도 아는 것, 그게 고향이란다. 네가 어디에 있든 너는 집을 금방 알아보게 된단다, 그건 바로 너 자신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어. 잠이 눈꺼풀 위로 덮였다. 
어머니는 이른 새벽부터 일을 시작해야 했으므로 우리는 어머니의 일터인 서울호텔에서 멀리 떨어져 살 수는 없었다. 서울호텔은 시내의 중심가 구시가지에 있었고 우리는 구시가지 대형 시장 안의 건물 사층에서 살았다. 주거용 집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만한 그런 장소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는 소음과 번잡함은 하루종일 이어졌으며, 밤이 되어 모든 점포가 문을 닫으면 시장 전체가 불빛도 인적도 없이 캄캄했다. 고양이와 쥐들, 바람에 날리는 헌 신문지, 비둘기 똥과 썩은 야채 냄새, 이것이 밤의 주인이었다. 우리가 사는 건물의 일층은 야채가게였고 이층은 창고였으며 삼층은 야채가게 주인 가족의 거주지였다. 우리는 삼층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신발을 손에 든 채 야채가게 주인 가족이 저녁 식사중인 삼층 거실을 지나 우리가 세 든 사층 다락방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손바닥만한 그 다락방이 우리가 사는 집이었다. 다락방 천장은 일반 집보다 낮았고 타일이 깔린 작고 좁다란 발코니에는 지붕 위 옥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다. 어머니는 수도가 있는 발코니에 화구가 하나뿐인 가스버너와 조리대를 놓고 주방을 꾸몄다. 집이 작고 낮아서 가구를 들일 수가 없던 우리는 커다란 궤짝 세 개에 옷과 이불과 살림살이, 개인 소지품을 보관했다. 저녁이면 궤짝을 책상으로 삼아 숙제를 하고 일기를 썼다. 삼층 현관에서 신발을 챙겨 올라오는 걸 잊으면 어머니로부터 벌을 받았다. 저녁이면 미나리를 넣은 향긋한 생선국 냄새가 삼층에서 올라왔다. 우리는 살았다, 어느 해 겨울 큰 화재가 일어나 시장 전체가 검은 잿더미로 변해버릴 때까지. 
네가 불필요한 행동을 한 탓이야, 하고 나중에 어머니는 결론지었다. 내가 터미널 대합실 구석에 숨어 있는 바람에 친척 아주머니는 나를 찾지 못했고, 아마도 계획에 변경이 생겨서 내가 버스에 타지 않았으리라 여기고는 돌아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듣기로는, 어머니의 부탁을 받은 친척 아주머니는 갑자기 사정이 생겨 그날 버스 터미널로 나올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듣지 못했다. 그런데 마중나올 거라던 친척 아주머니가 누구인지, 나는 영영 알지 못하고 말았다. 어머니는 그 화제를 꺼내기 싫어했으므로 나는 두 번 다시 묻지 못했다. 나중에,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다음에, 아마도 나를 마중나오기로 되어 있었다는 친척 아주머니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짐작이 들기는 했으나. 그날의 버스 여행에서 기억나는 건 내가 그때 처음으로 바다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 순간을 기억한다. 춤처럼 움직이는 끝없는 푸른 물. 무한이나 영원, 아득함을 떠올리게 하는 허공의 빛. 그 순간 나는 고향에 대한 어머니의 말을 이해했다. 설명도 기억도 없이, 나는 그것을 알았다. 한 달쯤 후에 버스 터미널에서 떠돌이 사진사에게 찍힌 내 사진이 청구서와 함께 집으로 도착했다. 어머니는 벌컥 화를 내며 내 뺨을 때렸다. 내가 불필요한 행동을 한 거라고 했다. 사진 속은 무더운 날이었다. 굵은 설탕이 뿌려진 사탕을 움켜쥐고 있는 내 손바닥은 지옥처럼 끈적였다. 대합실에서는 휴가를 나온 군인들이 절도 있게 움직였고 승강장의 행상인 여자는 머리카락과 뺨에 방울져 흘러내리는 우윳빛 술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그녀를 지켜보는 내 이마는 땀으로 촉촉하게 젖었다. 사람들로 가득한 버스 안은 무더웠고, 남쪽으로 갈수록 바깥은 점점 더 뜨거워지는 한여름이었다. 그러나 나는 땀을 닦아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긴장한 나는 단 한 순간도 더위나 땀을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버스 터미널에서 내가 홀로 나의 아버지의 집까지 걸어갔다고 한다. 처음에 나는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모두 흩어지는 동안 터미널 대합실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 누구도 나를 마중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실해질 때까지. 그리고 나는 망설임 없이 타박타박 걷기 시작했다. 내 초록색 구두는 낡았고,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으나 이미 오래전부터 발을 꽉 조일 만큼 작아져 있었다. 머리 위에는 절대로 죽지 않을 것만 같은 한여름의 기나긴 태양이 있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고, 어디로 가야겠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나는 걸었다. 놀랍게도 최초로 마주친 행인에게 나는 나의 아버지 집의 주소를 말하며 길을 물었다고 한다. 게다가 나의 아버지의 이름까지 말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고향집을 기억하지도 못했고 나의 아버지의 이름 역시, 지금까지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를 언제나 한 번의 예외도 없이 항상 나의 아버지라고만 불렀고 심지어 편지봉투에도 그렇게 썼다. 물론 그때 이미 나의 아버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굳이 편지봉투에 매번 그의 이름을 쓸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행인은 중앙로를 따라서 가다가 분수대에서 왼쪽 방향으로 꺾어 끝까지 가면 해변으로 향하는 큰길이 나오는데 거기서 오른쪽 방향으로 가라고 했다. 대문 앞에 커다란 느릅나무가―혹은 그건 느티나무였던가―있는 집을 찾아가면 된다고 했다. 어차피 나는 느릅나무와 느티나무를 구분할 수 없었다. 찾기 어렵지 않을 거다, 눈에 띄는 집이니까, 하고 행인은 말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그런데 네 어머니는 어디 있는 거냐? 나는 서울호텔에 있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당시 어머니는 서울호텔에서 룸 메이드로 일했기 때문이다. 몇 년 뒤 일어난 객실 도난 사건의 범인으로 의심받고 해고되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