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4. 집으로 가는 길―(2)

나는 그 길을 알았다. 일직선으로 곧고 넓은 길이었다. 나는 궁전의 지붕처럼 생긴 모래색 둥근 분수대를 알고 있으며, 이 햇빛과 파리떼와 먼지를 알고 있었다. 바다 냄새, 그리고 햇빛에 그을린 얼굴들과 포장되지 않은 길의 자욱한 먼지, 공기 중의 시큼한 땀냄새, 목재 전신주, 초록색 우체통, 먼지투성이 아이를 업은 먼지투성이 여자들, 먼지를 뒤집어 쓴 한여름 소녀들을 알고 있었다. 이 먼지와 이 냄새, 바다에 반사된 섬광과도 같은 햇빛 속의 도시를 내가 안다는 사실을, 나는 길을 걸으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배가 고프고 많이 지치고 불안했지만 동시에 나는 기묘하게 들뜬 상태였다. 나는 마치 매혹적인 새 어휘를 알게 된 순간처럼 흥분했다. 나는 이 도시를 안다! 그리고 아마도, 나의 아버지의 집 역시 알고 있을 것이라는 예감, 도저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가 가슴을 채웠다. 아무도 나를 마중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래서 홀로 걷기 시작한 이후로, 놀랍게도 나는 더이상 전혀 불안하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포플러나무가 늘어선 길은 희미한 바다 냄새 섞인 먼지와 바닷가 여름 특유의 습기 찬 열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내가 아는 집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서울에서 우리가 사는 집을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우리의 집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는 거의 일이 년에 한 번 꼴로 자주 이사를 다녔으므로 사는 곳에 딱히 정을 붙일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항상 피곤해했고, 넓게 퍼진 기미 때문에 더욱 어두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어머니는 세번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의 집은 내 최초의 장소였다. 최초의 말, 최초의 어휘, 최초의 매혹이 그곳에 있었다. 거기서 탄생한 최초의 걸음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나는 꽤 오랫동안 걸었다. 그처럼 먼길은 단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었다. 거리에는 태양이 잔인한 빛을 쏘아댔고 사람들의 땀에 젖은 피부는 거무스름하면서도 얼룩진 황동빛으로 번들거렸다. 고개를 숙인 나는 내 그림자를 밟으며 갔다. 흰 수건을 머리에 쓴 여자들은 서로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똑같은 구릿빛 얼굴을 가졌다. 그들의 얼굴과 마찬가지로 젊음과 나이듦 역시 구분할 수 없었다. 교복 차림의 중학생들이 나를 지나쳐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어디선가 날아온 벌들이 설탕이 묻은 내 손 주변으로 잉잉거리며 몰려들었다. 길가의 어린 개가 구토를 했다. 살아 있는 돼지를 짐칸에 실은 자전거가 지나갔다. 그날 하루는 영원할 것처럼 길었다. 당시에 나는 영원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익숙하게 느꼈으므로, 기나긴 하루 역시 낯설지 않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가 일생 동안 끝나지 않는다고 누군가 말했다면 나는 그 말을 믿었으리라. 하루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면 일생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영원과 일생. 새로운 어휘를 알게 되면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가방에서 일기장을 꺼내 무릎에 펼치고 연필로 꾹꾹 눌러가며 단어를 기입했다. 이 도시에 친척들이 산다는 말을 나는 들었다. 나를 마중나오기로 한 친척 아주머니나 내가 얼굴을 모르는 사촌들, 군인이거나 대학에 다니는 젊은 삼촌들, 집안일을 돕기 위해 새벽부터 나의 아버지의 집을 찾아오던 젊은 여자들. 그녀들은 모두 먼 친척들이라 들었다. 네가 혼자서 그 먼 거리를 정말로 걸어갔다고?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어! 하고 어머니는 나중에 나를 야단쳤다. 화난 어머니의 눈썹은 이마 가운데로 높이 치솟았다. 어머니는 나를 혐오했다. 정직하지 않은데다 고집까지 세다, “너는 거짓말 재주를 타고난 게 분명해.” 하지만 나중에는 정반대의 이유로 야단쳤다. “네가 그날 너무 많이 걸어서 하루 사이에 발이 갑자기 커진 거라니깐, 신발이 하루 만에 작아진 게 바로 그 증거야.” 오, 그러나 나는 분수대가 있는 큰 사거리를 발견했고, 내가 분명 그곳을 안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자연스럽게 왼쪽 방향으로 걸었다. 행인이 가르쳐주어서가 아니라 내 몸이 저절로 그렇게 한 것이다. 바다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바닷가를 향해 나 있는 길은 모래로 덮였다. 나는 단단한 지면을 떠나 일부러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위를 디디며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낡은 구두끈이 끊어져버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는 길가 바위에 걸터앉아 신발 속의 모래를 오래오래 털어냈다. 배낭에서 노트를 꺼내 연필로 글자를 썼다. 영원과 일생. 마침내 늙은 느릅나무가― 아니 그것은 느티나무였던가―서 있는 큰 대문 집을 발견했고, 내가 그곳에서 태어났으며 한동안 거기서 자랐던 일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나는 대문 옆 기둥에 붙어 있던 나의 아버지의 문패를 기억해냈다. 어머니가 내게 그 문패를 가리키며 나의 아버지의 이름을 여러 번 반복하던 것을 기억해냈다. 나는 말수 없는 떠돌이 사진사와 그의 낡은 바지, 그가 갖고 다니던 헝겊 말을 기억해냈다. 검고 알이 작은 포도와 시큼한 석류가 열리던 정원을 기억해냈다. 나는 땀과 먼지로 더러웠고 다리가 떨리고 마비될 정도로 피곤했다. 그러나 모종의 희열에 사로잡힌 채 녹슨 대문으로 다가갔고, 마침내 집에 왔다는 기쁨에 들떠 문을 밀자, 예상대로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나는 이 집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한여름 풀들이 높이 자란 정원은 숨막히게 눅눅했다. 꽃과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난 화단에는 마치 소나기가 오기 직전과 같은 농축된 기운이 가득했다. 저녁이 다가오는 시간 식물은 가장 진한 독과 색과 향기를 뿜어냈다. 그 향기에 끌린 벌레들과 모기들이 풀숲 사이에 보라색 구름을 이루고 있었다. 공기는 뜨끈했고 탄력 없는 살처럼 무겁게 늘어졌다. 짙은 풀냄새에 섞여 도시 전체에 고여 있는 하수구의 은은한 악취가 느껴졌다. 나는 화단 사이로 난 길을 지나 문이 열린 마루를 향해 다가갔다. 모기들이 덤벼들었다. 작은 뱀 한 마리가 풀 사이를 재빨리 기어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내가 태어난 방을 안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제 곧 우물에서 길어올린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루종일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나는 이미 한참 전부터 목이 찢어지는 듯한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물은 부엌에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마루로 올라서서 곧장 집 뒤편의 부엌으로 달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마루에 누워 있는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낡은 이불이 놓인 줄 알았으나 그건 누워 있는 여자였다. 머리칼은 완전히 백발이고,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두부처럼 희고 창백한 피부에는 커다란 갈색 반점이 흩어져 있었다. 앙상하게 마르고 주름진 얼굴과 몸에는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는 죽은 게 아니었다. 커다랗게 뜬 두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은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단지 아무 목적 없이 시선을 향하고 있던 공간에 내가 뛰어들어왔으므로 계속해서 그 방향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여자는 스스로 고개를 돌리거나 몸을 돌려 눕는 행위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여자는 아이인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늙었고, 아마도 깊은 병에 들었거나 아니면 너무도 나이가 많아 육체가 저절로 소멸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듯 보였다. 처음에는 여자가 나를 지켜보는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여자는 나를 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여자의 팔다리는 가느다란 뼈와 엷디엷은 가죽뿐으로, 심지어 내 것보다도 더 여위고 가늘었다. 나는 그토록 늙고 쇠약한 육체를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다. 엷은 요를 깔고 누운 여자의 몸에서는 숨길 수 없는 배설물의 악취가 났다. 나는 그녀를 아는가? 혹은 그녀가 나를? 나는 여자에게, 나는 여기서 태어났고 그리고 예전에 이 집에서 살았던 메레라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메레입니다.”) 그녀가 나를 침입자로 여기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내 말을 알아들은 것 같지 않았다. 여자는 아무런 반응 없이, 심지어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않은 채 낡은 종이 인형처럼 누워 있었다. 여자의 초점 없는 눈은 여전히 나를 향하고는 있었으나 그 무엇도 보고 있지 않았다. 모기와 파리가 여자의 얼굴과 팔다리에 끊임없이 내려앉았으나 여자는 미동도 없었다. 죽은듯 꼼짝도 안 하던 여자가 갑자기 기침을 터트렸을 때 나는 다시 깜짝 놀랐다. 여자의 몸이 요동치자 커다란 파리들이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쪼그라든 가슴에서 터져나온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둔중하고 고통이 짙게 농축된 크고 무시무시한 기침소리였다. 여자가 가슴을 부여잡고 기침을 할 때마다 여자의 온몸이 불에 타는 벌레처럼 진저리치며 경련을 일으켰다. 여자의 기침은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났다. 계속해서 그 모습을 지켜보기에는 너무도 두려웠기 때문이다. 복도를 지나 집 뒤편으로 가자 부엌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둑한 한구석 우물 역시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있었다. 모든 것이, 망각으로부터 불려내진 기억 속의 풍경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우물에는 묵직한 나무 뚜껑이 덮여 있었다. 우물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자 거기 내가 있었다. 우물물에 비친 나를 말하는 것이다. 물은 깊고, 검고, 거울처럼 나를 반사했다. 누군가로부터 나는 두레박 사용법을 배웠음이 틀림없다. 그리 어렵지 않게 나무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해, 하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우물은 어린아이들을 잡아먹고 산단다. 자칫 잘못하면 우물에 빠지게 될 거야. 그러면 아무도 네가 어디에 있는 줄 알지 못한단다. 그 말이 들려오는 순간 내 몸은 두레박의 무게 때문에 우물 안쪽을 향해 크게 기울어지며 휘청거렸다. 나는 여덟 살이 채 되지 않았고, 우물의 돌벽은 낮았으며, 미끈거리는 이끼가 층을 이루며 두텁게 덮여 있었다. 내게는 너무도 무거운 두레박을 끌어올리다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으면 내 몸은 머리를 아래로 하여 우물 속으로 떨어질 것이다. 나는 두레박을 들고 물을 마셨다. 시원하고도 살짝 씁쓸한 이끼와 돌 맛이 나는 물이었다. 최초의 물방울이 목을 넘어가는 순간 나는 내가 이 물을 마시고 자랐음을 알았다. 
마루에서는 여전히 여자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생선 가시처럼 앙상하게 마른 채 눈만 커다랗게 보이는 여자의 얼굴은 내가 아는 누군가를 연상시켰다. 아니 어쩌면 그건 바로 나 자신의 얼굴이었던가. 그 생각이 떠오르기가 무섭게 나는 반사적으로 기침을 했다. 너무 급하게 물을 마신 탓이었다. 집안에는 병들어 누워 있는 나이든 여자 외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마룻바닥은 끈적거렸고 부엌뿐 아니라 집안 전체가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은 것처럼 정돈되지 않고 어수선했다. 어둑한 집안에 처음 들어설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천장에는 먼지와 거미줄이 길게 늘어져 찢어진 모슬린 드레스처럼 너울거렸다. 부엌 살강의 사기그릇들은 희게 반짝이는 대신 전부 먼지가 낀 듯 칙칙한 회색빛으로 보였다. 늘 켜져 있던 촛불도 없었으며 촛농이 겹겹이 말라붙은 촛대용 사발만이 창가 까치발 시렁에 놓여 있었다. 양초는 이미 쥐가 물어가버린 뒤였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이 모든 것들을 살펴보거나 알아차리기 전이다. 혹은 사물의 표정을 인식하기에는 너무 부주의하고 경솔했으며 너무 어리고 피곤하기도 했다. 갈증이 가신 다음에야 나는 부엌이 찜통처럼 후덥지근하다는 걸 깨달았다. 땀에 젖은 더러운 옷을 벗고 속옷 차림으로 화덕 옆에 앉아 한참을 기다렸으나 예전처럼 우물에서 물을 길어 나를 목욕시켜줄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피를 토하듯 들려오던 기침소리가 아득하게 잦아들었다. 그것은 평화로운 종말은 아니었다. 고통스럽게 뒤틀리는 기침을 더이상 뱉어낼 힘이 없게 되자 여자의 목구멍은 아무런 소리를 끌어내지 못했고, 고통스럽게 끅끅거리는 신음과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한참이나 이어지더니 마침내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다. 아무도 치우지 않아 재가 가득한 화덕 역시 불을 지핀 흔적이 없이 축축하고 차가웠다. 재 위에는 쥐 발자국이 선명했다. 부엌 창으로 흐릿한 저녁 빛 속에 잠긴 정원이 보였다. 높이 자란 풀과 함부로 뻗어나간 장미나무의 가지와 줄기들. 말라서 죽어가는 식물들은 허공에 최후의 검은 씨앗을 미친 듯이 퍼뜨리고 있었다. 나는 여인의 신발처럼 날아가는 한 마리 제비를 보았다. 이웃집 검은 개들이 컹컹 짖으며 바다로 갔다. 마침내 내가 완전히 잠들기 전에. 

어머니는 말했다, 내 신발의 밑창이 거의 떨어져나갔다고. 구두끈이 떨어진데다 앞코도 틈이 벌어져 구멍이 생겼다는 것이다. 조심성 없이 모래 위를 디뎌서 구두가 망가졌다, 신발과 같은 물건을 소중히 다루지 못하는 건 나쁘다고 했다. 버스 터미널의 진창과 돌투성이 비포장길, 지쳐서 신발을 질질 끌며 걸었던 분수대 주변의 번화가, 발목까지 푹푹 잠기는 바닷가의 모랫길,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낡은 가죽신발을 흠뻑 젖게 만든 오물투성이 수렁. 신발은 어머니에게 귀하고 소중한 물건이었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은 반드시 죽을 만큼 오래 심사숙고한 다음 검소한 것으로 구입해야 했다. 생활에 필수적인 물건이 아니라면 그건 처음부터 아예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 모든 잘못 중에서도 가장 나쁜 건, 과도하게 걸은 덕분에 내 발이 갑자기 커진 거라고 했다. 그래서 구두가 더더욱 심하게 찢어진 거라고. 어쨌든 너무 오래 걸어다닌 건 변명의 여지없는 명백한 부주의라고. 나는 버스 터미널에서 친척 아주머니를 기다리고 있었어야만 했다고 어머니는 여러 번이나 말했다. 그러면 아주머니와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을 테니 구두는 아무런 문제 없이, 내가 서울에서 버스에 올라타던 그때와 마찬가지로 멀쩡했을 거라고. 개미들이 설탕 묻은 내 손바닥을 향해 모여들었다. 밤은 숨막히게 답답하고 무더웠고 어둠 속에서 모기들은 극성이었다. 깊은 밤 나는 잠에서 깨어났고 온몸이 땀에 젖어 있음에도 한기를 느꼈다. 열린 부엌문 틈으로 마루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불안하게 움직이는 불빛과 벽에 비친 커다란 그림자들이 보였다. 달빛을 받은 키 큰 풀들의 실루엣이 높이 치켜든 쇠스랑이나 검, 혹은 거대한 낫처럼 보였다. 금속성으로 무거우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꿈속으로 휘발되는 그림자였다. 
나중에 나는 그 집에서 혼자 살던 여자가 그날 밤 죽었다는 것을 들었다. 내가 부엌에서 잠들어 있는 동안에. 근처에 사는 몇몇 친척들이 혼자 사는 여자를 돌봐주고 있었는데, 그날 저녁 일을 마치고 들러보니 여자가 마루에 누워 죽어 있었다고 했다. 여자는 이미 나이가 많았고 자식들은 집을 떠난 지 오래라고 했다. 몇 년 전부터는 아예 거동이 불편해 대부분 누워서 지냈다. 나는 여자가 건강하던 시절을 기억해냈다. 여자는 마당의 변소 옆에서 돼지를 길렀고 정원의 꽃들을 가꾸었다. 석류와 오이, 사과를 수확했으며 매일 아침 닭장에서 달걀을 꺼내왔다. 마루를 닦고 부엌의 촛불과 화덕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신경썼다. 매일 끼니때마다 기름을 넉넉히 두른 무쇠 프라이팬에 신선한 달걀로 프라이를 만들었다. 아, 그녀가 기르던 돼지의 이름은 내 이름과 같았다. 아마도 돼지가 우연히도 나와 같은 날짜에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메레는 그녀가 내게 준 선물이었다. 흰 몸에 검은색과 분홍색 점이 있는 돼지였다. 물론 지금 돼지는 없다. 대문 옆에는 작은 우리가 있던 흔적만이 남았다. 나는 돼지 장수가 오던 날을 기억한다. 메레를 내게 선물해준 여자는 마루에 앉아서 말없이 콩을 까고 있었다. 돼지 장수에게 메레를 넘긴 건 그녀가 아니라 어머니였다. 어머니에게 몇 장의 지폐를 건넨 돼지 장수는 분홍 점박이 메레를 자전거의 짐칸에 끈으로 고정한 뒤 싣고 갔다. 우리에서 끌어내져 자전거에 실려나갈 때까지 메레는 네 다리를 공중에서 버둥대며 쉴새없이 귀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어머니는 지폐를 주머니에 넣었고 돼지 장수의 자전거가 쉽게 나갈 수 있도록 대문을 활짝 열었다. 나는 대문에서 멀찍이 떨어진 정원 화단 옆에 서 있었다. 메레는 떠났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랐다. 나는 늘 메레를 무서워했으므로 메레의 우리 근처로 가는 일이 없었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자는 늘 메레가 내 것이라고 말했으나 나는 메레를 피해 다니기만 했다. 메레를 사랑한 건 내가 아니라 여자였다. 콩을 까던 여자가 말없이 일어서서 부엌으로 갔다. 여자의 치마에서 콩깍지가 우수수 떨어졌지만 여자는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누구도 기르지 않았지만 한두 마리의 고양이가 늘 정원을 돌아다녔다. 어머니는 돼지나 개를 소름 끼치게 싫어한 것과 마찬가지로 고양이도 싫어했으나 적어도 고양이는 부엌과 정원의 쥐들이 사라지게 하는 장점이 있다고 여기는 듯했다. 
어머니는 말했다, 신발을 험하게 신고 너무 많이 걸어다니는 건 발을 위해서 좋지 않다고. 그러면 신발은 금세 해어지고 발에는 유릿조각이 박히며 발톱이 빠지고 발바닥에 굳은살이 생긴다고 했다. 발뿐만 아니라 더 나가서 성격도 삐뚤어지게 만드는 나쁜 습관이다, 못생기고 망가진 발은 못되고 심술궂고 뾰쪽하고 음흉한 성격을 나타내는 거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날 내 발은 모기와 개미에게 물린 자국투성이였다. 나는 양말을 벗고 끊임없이 발을 긁어댔다. 어머니는 내 신발을 쓰레기통에 내다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건 어머니의 주장일 뿐이었다. 나는 다른 신발이 없었기에 구멍이 나고 끈이 떨어지고 밑창까지 망가진 신발을 질질 끌면서 계속해서 신어야 했다. 장례식이 끝난 뒤에야 구두 수선공에게 가져가 떨어진 끈과 밑창을 수선하고 구멍을 바늘로 꿰맬 수 있었다. 하지만 신발은 이미 내 발에 너무 작았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가죽이 또다시 찢어지는 일을 피할 수 없었다. 터미널로 나를 마중나갔던 친척 여자는 나를 발견하지 못했고, 그래서 내가 버스에 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들었다. 어머니는 화가 났다. 어머니는 흰 한복을 입고 있었다. 어머니뿐 아니라 집안은 흰 한복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놀랍게도 어머니는 내가 도착한 다음날 항구도시에 있는 우리의 옛집으로 왔다. 원래는 서울호텔의 일 때문에 당분간은 서울을 떠날 수 없다고 했었으나, 어머니의 어머니가 갑자기 죽었고, 그래서 장례식이 열릴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침 누군가 깨우는 바람에 나는 눈을 떴다. 집안과 부엌에는 이미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며 목소리를 낮춰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들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심각하거나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굶주린 나는 집안의 방문을 하나하나 열고 안을 살펴보았다. 낡고 더러운 이불과 옷가지, 망가진 가구, 흐트러진 교과서와 책들,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한 교복 블라우스 등이 아무렇게나 방바닥에 쌓여 있었다. 가장 큰 방에는 병풍이 쳐져 있었고 병풍 뒤에 내가 마주쳤던 늙은 여자가 흰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원래는 이불이 얼굴까지 덮여 있었으나 내가 병풍 뒤를 보았을 때 무슨 이유에서인지 여자의 경직된 몸이 저절로 움직여 바람에 이불이 벗겨지는 바람에 나는 여자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더이상 기침을 하지 않았다. 경련이라도 일으킨 듯 여자의 앙상한 발 하나가 이상한 각도로 휘어지며 이불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우물로 가서 다시 물을 마셨다. 부엌에는 그사이 흰옷을 입은 몇몇 여자들이 아궁이에 불을 피웠고 큰 솥에는 물이 끓는 중이었다. 까치발 시렁에는 촛불이 타고 있으며 밀가루 반죽을 입힌 생선이 프라이팬의 끓는 기름 속으로 계속 들어갔다. 그들은 튀김 요리를 하는 중에는 내가 부엌을 자유롭게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고 했다.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그중의 한 여자가 내 팔을 붙잡고 멈추어 세우더니 머리에 작은 삼베 리본이 달린 핀을 꽂아주었다. 그들은 내가 누구인지 묻지 않았고, 리본을 달아준 걸 제외하면 내게 관심도 갖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내가 거기 없다는 듯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는 화덕 옆에 않아 허공에 뜬 발을 흔들면서 여자들이 사발에 담아준 뜨거운 생선튀김을 맨손으로 허겁지겁 먹었다. 밤이 되자 우는 남자들이 왔다. 그들은 밤늦도록 울었고 다음날 아침 죽은 여자를 수레에 옮기면서 울었다. 남자들의 울음이 끝나고 나면 여자들이 그뒤를 이어서 후렴처럼 울었다.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나 울음소리는 그들이 행렬을 지어 묘지로 이동하는 내내 끊이지 않고 노래처럼 이어졌다. 슬픔의 흔적이라고는 한 방울도 없는 충실한 의례였다. 갑자기 텅 빈 집에 홀로 남은 나는 부엌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셨다.
그러면 우리는 계속 고향집에서 사는 거냐고 내가 묻자 어머니는 차갑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이제 이 집은 우리집이 아니야.” 당연히 우리가 서울을 떠나 고향집에서 머물게 되리라고 기대한 나는 좀 놀라고 실망했다. “집이 팔렸단다. 우리는 여기서 살 수 없어. 여기 어디에도 우리의 자리는 없다.” 어머니는 나를 홀로 버스에 태워 내려보낼 때 한 말을 모두 잊은 것일까? 고향은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어머니는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서둘러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 어머니는 지체 없이 짐을 싸기 시작했다. 큰 회사가 이 집―나의 아버지의 집―을 샀고, 이 집뿐만 아니라 이웃의 집들도 모두 팔렸으며, 회사는 집들을 모조리 허물 예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사원들을 위한 기숙사를 지을 거라고 했다. 나의 아버지가 빚만 남기고 죽었으므로 가족들은 완전히 무일푼이 되었고, 이 집이 마지막으로 팔리면서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고 피부는 뻣뻣하고 건조했다. 바싹 말라 각질이 일어난 핏기 없는 입술로 어머니는 말했다, 가족들은 빚이 많았다고. 나의 아버지가 남긴 빚이다. 그는 빚을 갚는 대신 가족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재산인 토지와 산을 죽기 직전에 시 산하의 어업대학에 모두 기부해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어업대학의 본관 로비에는 나의 아버지의 이름이 금박으로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어머니는 나의 아버지가 남기고 간 빚을, 세월이 흐르면서 이자가 붙어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빚을 서울호텔에서 일하며 갚아야만 했다. 그러나 룸 메이드인 어머니의 빈약한 수입으로는 도저히 이자조차 감당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어머니의 어머니가 죽고 난 뒤 집을 파는 것 말고도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너도 이제 알아야 할 텐데, 어머니는 잠시 말을 끊고는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네 동생이 또 태어날 예정이란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 어느 날 나는 체룹을 알게 되고 그리고 체룹과 함께 살기로 한다. 체룹의 집은 뮌헨에 있었다. 서울을 떠나기 전 나는 문득 고향을 찾아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고향집을 도망치듯 떠나온 이후 단 한 번도 항구도시를 방문하지 않았다. 고향을 거의 잊은 채 살았다. 나이가 들수록, 사실 나는 고향이 없는데 어머니가 내게 거짓말을 했고, 다른 많은 일들처럼 고향집이라는 환상으로 나를 속였을 거라는 확신이 강해졌다. 우연히 보게 된 어머니의 오래전 앨범에는 서울의 한 산부인과에서 내가 태어났다고 적혀 있었다. 사실 이제는 큰 상관없는 문제처럼 보였다. 나는 고향이나 태어난 집의 여부보다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체룹과 함께 살 것이다 우리는 함께 글을 쓰면서 살아가리라.”) 게다가 어차피 집은 오래전에 팔렸으며, 철거 후에 집이 있던 자리는 기숙사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들었으니 이미 오래전부터 집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집이 없다면, 고향은 어디까지나 추상적인 이미지로만 남는다. 이 모든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으나 한국을 완전히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더 그 바닷가 도시의 길을 걷고 싶었다. 오래전 그랬던 것처럼, 과거 버스 터미널이 있던 시 외곽에서 원래 집이 있었다고 내가 믿는 그 자리까지 걸어가보기를 원했다. 과거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원래 있던 어머니도 없고, 처음부터 없었거나 혹은 정확하지 않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던 고향집도 사라졌으며,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나의 아버지도, 그리고 내게 깊고도 어두운 기억을 만들어주었던 우물 역시 사라졌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 역시 그렇게 사라진 것들의 뒤를 따를 것이다. 그러나 설사 내가 이미 사라진 상태라고 해도, 어린 시절의 영원했던 하루, 어느 숨막히는 한여름날의 고통스럽고도 기나긴 산책은 나를 넘어서 살아남는다. 그 하루로 인해 나는 지금 여기 있는 것이다. 나는 여행가방을 쌌다. 나는 떠난다. 어쩌면 이제 두 번 다시는 서울에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예감이 있었다. 나는 불안했고, 종종 숨막히는 꿈에서 간신히 깨어나곤 했다. 낮의 꿈에서는 밤보다 더 깊은 어둠이 나를 엄습했다. 나는 집에 있었다. 나는 맨발이다. 젊은 어머니가 내 곁에서 말한다, 집이 팔렸고 집은 더이상 우리의 집이 아니며, 게다가 완전히 헐려서 쓰레기와 찌꺼기 그리고 오물과 먼지로 변해 땅속으로 묻히게 될 것이다. 
한국을 떠나기 전날, 나는 항구도시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과거 어린 내가 타고 갔던 버스와는 비교할 수 없이 쾌적하고 안락했다. 나는 나의 아버지의 집주소를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제 나의 아버지를 아는 사람은 항구도시에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며 옛 주소 역시 그사이 번지와 거리 이름이 모두 바뀌어서 전혀 유용한 정보가 아니었다. 항구도시에 도착한 나는 마치 눈을 감고 걷듯이 집으로 가는 길을 감각의 기억에 의지해 다시 한번 더 시도해보려고 했다. 집은 없겠지만, 나는 집의 혼령을 불러낼 것이다. 집은 아마도 없겠지만, 나는 집을 볼 것이다. 아아, 집은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을 테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홀로 먼길을 걸어서 집을 찾아왔다. 아무도 집을 모를 테지만, 나는 폐허가 된 집에 있을 것이다. 손으로 한줌씩 흙을 파내며, 마침내 최초의 폐허인 집에 있게 될 것이다. 
긴 비행을 마치고 뮌헨 체룹의 집에 도착한 뒤 늦은 저녁을 먹은 후 우리는 산책을 했다. 시내를 관통하여 시 반대편 경계에 있는 숲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긴 산책이었다. 내 구두가 긴 산책에 적당하지 않다는 걸 알아챈 체룹은 창고에서 꺼내온 들판용 장화를 건넸다. 장화에는 늪지의 진흙이 두텁게 말라붙어 있었다. 그는 장화가 자신의 발에는 너무 꽉 끼어서 잘 신지 않는다고, 그러니 어쩌면 내게는 맞을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럼에도 장화는 내 발에 너무 컸지만 두꺼운 양말을 신고 입구의 끈을 단단히 조이고 나니 심하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집을 나서기 전 체룹은 늘 하던 대로 지갑을 탁자 위에 놓았다. 밤의 산책중에 강도를 만나게 될까봐서였다. 나는 커다란 들판용 장화를 신고 잠든 도시를 천천히 걸었다. 밤이었다.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쇼윈도의 불빛은 꺼졌다. 거리에는 가로등 불빛에 비친 우리의 그림자뿐이었다. 그림자들은 서로 겹쳐졌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천천히 움직였다. 무의식중에 가까워졌다가도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뭔가를 갑작스레 의식한 듯 거리를 유지했다. 그림자들은 미래에서 온 우리 자신이었다. 미래의 어느 날, 마치 잇몸에서 어금니가 소리 없이 빠지듯이 모든 형상과 상상들이 한꺼번에 무너질 것이다. 불가해한 세계의 힘 앞에서. 우리는 강도를 만나지 않았다. 단지 두 마리의 붉은 여우가 광장을 가로질러가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한국을 떠나기 전날 마지막으로 무엇을 만나고 무엇을 했는지 체룹이 물었다. 나는 고향으로 갔다고 대답했다. 버스 터미널로 갔고, 거기서 고향인 항구도시로 가는 표를 산 후 바로 출발하는 버스에 올랐다고, 나는 체룹에게 말했다. 
버스는 내가 태어났다고 알려진 항구도시로 갔다. 물론 출생증명서를 비롯한 모든 서류에, 심지어 어머니의 오래된 앨범 속 메모에조차 내가 서울의 한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고 어머니 자신의 필체로 기록되어 있지만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내가 항구도시, 그것도 나의 아버지의 집인 고향집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므로 항구도시는, 그 어느 서류에도 기록되지 않은 내 비밀의 고향이다. 충분히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항구도시의 모습은 너무도 드라마틱하게 달라져서, 낯익은 그 무엇도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달리 말하면, 다른 여러 도시들과 아무런 차이점이 없었다는 의미이다. 밀려드는 자동차들, 사각형의 주거용 고층건물들, 아우성치는 간판들, 서둘러 어디론가 가는 행인들, 소음들, 신경질적인 분주함, 자전거를 탄 갈색 제복 차림의 노동자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바다 냄새가 나는 방향을 찾은 후, 그곳을 향해 걸었다. 그리하여 한 시간 반 후 내가 발견한 그것은 정말로 오래전에 내가 살았던 집이었을까. 놀랍게도 분수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심지어 모습조차 거의 변하지 않은 듯했다. 단지 주변에 들어찬 고층건물과 엄청난 양의 자동차들이 분수대를 과거보다 훨씬 더 작고 소박하게 보이게 할 뿐이었다. 마치 누런 갈색의 파도처럼 움직이는 제복 차림의 노동자들은 아마도 고향집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기숙사에서 살 것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인파에 섞여, 노동자들이 향하는 방향으로 따라 걸었다. 집이 있던 거리는 알아볼 수 없게 변해 있었다. 과거 고향 도시는 그야말로 바닷가의 소도시에 불과했다. 사람들의 피부는 햇볕에 타고 바닷바람에 풍화되어 가죽처럼 검고 두꺼웠으며 어부와 하급 공무원, 소규모 상인들과 군인들과 수공업자들이 살았다. 여자와 아이들은 낯선 사람을 만나면 두려워 달아나버렸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공장이 끊임없이 노동자들을 빨아들이고 뱉어내는 산업도시로 바뀌었다. 모든 도로는 포장이 되었고 노동자들을 위한 기숙사인 저층 아파트들이 낮고 누런 파도처럼 펼쳐져 있었다. 햇빛 속에서 모든 것이 새것처럼 번쩍거렸다. 사람들의 얼굴과 태도가 번쩍거렸다. 편평한 지붕과 유리창, 내 구두가 번쩍거렸다.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 두려워한 건 죽음도 고통도 아니고, 단지 나의 아버지 곁에 묻힐 수 없으리라는 예감, 그 하나뿐이었다고 나중에 나는 체룹에게 말했다. 일생 동안 소박하고 검소하고 스스로 뒤로 물러나고 스스로 포기하고 모든 번쩍이는 것을 회피하고 끝없이 절제하기만 했던 어머니의 유일한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나는 체룹에게 말했다.) 그때 내 눈은 일순간 보이지 않았고, 눈을 뜨고 있었으나 모든 사물들이, 어머니가, 흰 돼지 메레가, 흰빛의 실루엣 속으로 빠르게 휘발되고 있었다. 똑같은 모양으로 늘어선 기숙사 건물들 안쪽 한 구석진 골목에 놀랍게도 집이 있었다. 내 발길은 커다란 늙은 느티나무 앞 낡고 녹슨 대문 앞에―아니 그것은 느릅나무였던가―멈추어 섰다. 번쩍거리는 유리창들 사이에, 금속과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와 플라스틱, 번쩍거리는 자동차와 사람 들 사이에서 허물어지고 갉아 먹힌 너덜너덜한 몰골의 늙은 집이 있었다. 믿을 수 없게도 분명 여전히 그 자리에, 색채도 형체도 거의 잃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내 눈이 본 것의 정체를 인식하기까지, 나는 한참 동안이나 집 앞에 서 있었다. 새빨간 녹으로 뒤덮인 대문은 살짝 비틀리고 일그러져 있었다.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과 나는 마주쳤다. 대문 옆 기둥에는 나의 아버지의 나무 문패가 수십 년의 세월을 견디며 그대로 달려 있었다고, 나는 체룹에게 말했다. 문패는 비바람과 세월에 조각조각 갈라졌으며 글자를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닳아버린 상태였다. 그래서 내가 잃어버린 그 이름을 손으로 만질 수는 있었으나 읽을 수는 없었다고, 나는 체룹에게 말했다. 
비현실의 감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새로운 주거 구역에 포함되지 못한 집과 주변 골목길은 인기척이 없어서 낮인데도 불구하고 소름이 돋을 만큼 스산한 느낌이었다. 근처의 몇몇 집들도 철거되지 않고 남아 있긴 했으나 다들 마찬가지로 더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상태로 보였다. 대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어차피 잠금장치가 녹이 슬어서 아예 떨어져나간 상태였다. 나는 홀린 듯 정원의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고, 그렇게 체룹에게 말했다. 그처럼 쇄락하고 황폐한 장소를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이 없었다. 섬뜩할 만큼 무성하게 높이 자란 풀들과 썩어가는 하수구의 악취가 진동했다. 우거진 덤불들 사이로 사람들이 내다 버린 듯한 헌 가구와 옷가지, 유리가 깨어진 창틀, 부서진 나무토막 등이 나뒹굴었다. 까마귀가 울었다. 집은 꿈과 마찬가지로 과거로부터 왔다. 지붕이 절반쯤 허물어졌고 부서진 기와와 흙과 나뭇잎, 온갖 쓰레기 더미가 집안으로 쏟아져내린 상태였다. 흙과 죽은 식물들이 쓰레기와 더불어 산더미를 이룬 화단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다. 나는 그나마 온전한 마루로 다가가 먼지와 잡동사니를 치우고 앉았다. 잠시 동안 나는 마치 다른 행성에 있는 듯이 느꼈다. 집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일생 동안 나는 집이 사라졌고, 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고향이 없었다. 실제로 이렇게 집을 다시 발견하게 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문득, 여기서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나는 체룹에게 말했다. 
물론 집은 더이상 어머니나 나에게 속하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어머니는 죽었으며 집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의 아버지가 죽은 지는 너무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처럼 비어 있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상태라면, 내가 살지 못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나는 먼 여행을 앞두고 있었다. 외국으로 가는 여행이다. 나는 이미 여행가방을 싸두었고, 대부분의 짐들을 진작에 국제우편으로 체룹에게 미리 보낸 다음이었다. 나는 최초의 먼 여행을 눈앞에 둔 사람과 같았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그랬다. 두려움이나 주저, 망설임은 없었다. 내 여행이 돌아오지 못할 여행이란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내가 최초의 먼 여행을 포기하고 당장의 이끌림에 따라 그 집에 머물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날 이후 내 일부는 이미 그렇게 한 다음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있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버석거리는 얼굴을 만지면서, 나는 있다. 집안에 쥐들이 들끓을 것이 분명했지만, 그리고 원치 않는 불쾌한 위험과 마주칠 가능성도 있었지만, 나는 복도를 따라 집 뒤편에 있는 부엌으로 갔다. 복도의 벽은 푸르고 검은 곰팡이가 가득 피어 있었고 습기 찬 벽지가 떨어져서 너덜거렸다. 코를 지르는 독한 곰팡내가 가득했다. 집안은 너무 어두워 손으로 모퉁이를 돌 때 벽을 더듬어야 할 정도였다. 지붕이 무너져내린 방들과 다르게 다행히도 부엌은 유리가 깨어져나간 뒤창으로 어슴푸레한 빛이 들어오고 있으며 그리 심하게 훼손된 건 아니었다. 부엌 바닥과 화덕 주변에는 쥐똥이 잔뜩 흩어져 있었다. 악취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나는 불을 밝혀보려고 시도했다. 전등은 없거나 불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서울에서 버스를 타기 전 상점에서 양초와 성냥을 구할 수 있었다. 물론 특별한 기대가 있어서는 아니고 단지 갑자기 떠오른 영감을 따른, 오직 상징적인 행위였다. 아주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양초에 불을 붙여 까치발 시렁 위의 사기 사발에 올렸다. 눅눅하고 부패한 공기 속에서 촛불이 타올랐다. 이가 빠진 사기 사발과 거기서 불안하게 흔들리며 타는 촛불을, 나는 마치 기적의 현현을 마주한 사람처럼 바라보았다. 촛불이 타올랐다. 나무판자 뚜껑이 덮인 우물은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우물로 다가갔다. 뚜껑을 들어올렸다. 그 안에서 나타난 건 흙으로 가득 메워진, 한때 우물이었던 구덩이의 흔적뿐이었다. 나는 내 눈으로 본 것을 믿지 못하며 한동안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서 있었다. 추측컨대 위생상의 문제였거나, 혹은 빈집에 들어온 누군가 우물에 빠지는 사고가 있었고, 그래서 조치를 취해놓은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호기심에 충동된 아이들이었을까. 하지만 이 집은 어머니의 어머니가 죽은 이후로 새로운 사람들이 살았던 것 같지는 않은데, 만약 정말로 우연히 집안으로 들어온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졌다면 과연 그걸 누가 발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았다. 혹은 아이는 혼자가 아니고 둘이었다. 두 아이가 우물에 빠졌고, 다행히 빠져나온 한 아이는 무서워하며 달아났을지도 몰랐다. 아이는 함께 빠진 친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누설하지 않았다. 시청에서 나온 사람들이 우물을 봉쇄했다. (“두 사람이 숲으로 갔다네, 그러나 돌아온 건 한 사람뿐.”) 이날을 잊을 수 없다. 그날 이후 나는 스스로를 유령처럼 느꼈다. 나는 고향집의 유령이었다. 촛불이 펄럭이며 타올랐다. 갑자기 마른기침이 터져나왔다. 기침은 영영 그칠 줄을 몰랐다. 화덕 앞 그늘진 바닥에 악취의 진짜 원인이 있었다. 죽어 있는 한 마리 작은 고양이였다. 고양이의 몸은 훼손되어 있었다. 아마도 쥐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고양이의 몸에 절반쯤 깔린, 원래는 초록색이었으나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변색되고 끈이 찢어진 낡은 어린아이용 신발 한 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