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관공은 아침 여덟시에 온다고 했다. 그때가 아니라면 앞으로 일주일 안에는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했다. 그가 올 때까지 우리는 수돗물을 사용할 수 없었다. 낡은 펌프와 보일러가 동시에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나는 작은 냄비에 약간의 생수를 데워 얼굴을 씻고 물을 머리카락에 발라 머리를 빗었다. 이 이상은 불가능했다. 머리를 동그랗게 말아올려 목뒤에서 고무줄과 핀으로 고정했다. 흰색 꽃이 달린 핀을 꽂을까도 생각해보았지만 과도하다고 생각되어 그만두었다. 초록색 블라우스와 검은 스커트를 입었다.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한 블라우스와 유일한 긴 스커트였다. 마야는 내가 원한다면 자신이 젊을 때 입던 흰 실크 스커트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마야에게는 더이상 어울리지도 않고 또 작아서 입을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어차피 내게는 거의 필요가 없을 것이고 또 세탁도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물이 나오지 않으므로 아침은 먹지 않았고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 배관공이 곧 도착할 예정이라 그럴 만한 시간도 없었다. 블라우스 위에 걸칠 적당한 겉옷이 없었으므로 초록빛 엷은 천을 숄처럼 어깨와 목에 둘렀다. 나는 그 천을 몇 년 전 뮌헨의 어느 동양 물품 상점의 구석에 놓인 바구니 안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오래되어 큰 폭의 할인으로 팔리는 염가의 물건들이 종류 구분 없이 한꺼번에 들어 있는 바구니였다. 상점 주인은 그 천이 인도에서 온 사리라고 했다. 나는 인도에 가본 적도 없고 당연히 사리 역시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었다. 활용할 방법을 찾지 못한 사리는 그동안 뮌헨 체룹의 집 지하실, 내 여행가방 속에서 잠들고 있었다. 이날 아침 나는 뭔가 입을 만한 것을 찾기 위해 지하실에서 꺼내온 여행가방을 뒤지다가 까맣게 잊고 있던 초록 사리를 발견했다. 화려한 색상의 금박 무늬가 들어간 사리를 들고 조금 고민하다가, 가위로 길게 절반으로 잘라 숄처럼 둘렀다. 아무도 그것이 사리를 절반으로 자른 물건이란 걸 눈치챌 수 없었다. 체룹의 방에서 요란한 타이프라이터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한 통의 편지를 쓰고 있었다. 혹은 한 편의 시를 쓰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그는 그것을 끝까지 완성할 수 없었다. 여덟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 벨이 울렸기 때문이다. 벨을 누른 건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약속보다 이르게 도착한 배관공이 아니라 경찰이었다. 집 앞 길가에 세워둔 체룹의 차에 조금 전 작은 사고가 발생했고, 그래서 리포트를 써줄 테니 빨리 보험회사에 연락을 해보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지나가던 자전거 때문에 발생한 경미한 사고라고 했다. 할 수 없이 체룹은 타이프라이터 치기를 멈추고 밖으로 나가서 차를 살펴봐야만 했다. 체룹이 금방 돌아오지 않자 나는 그의 부재 시에 배관공이 올까봐 걱정이 되었다. 배관공에게 수도의 문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다행히 체룹은 배관공이 도착하기 전에 돌아왔다. 자동차의 피해는 크지 않고 단지 앞쪽에 작은 긁힌 자국이 있었노라고 했다. 그런데 그의 차는 원래 사방이 긁힌 자국투성이였으므로 과연 그 자국이 오늘의 사고로 새로 생긴 것인지 아니면 그와 무관하게 원래부터 있던 것인지는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경찰이 사고에 관한 쪽지를 주었으니 그걸 근거로 보험회사에 연락해야 한다는데, 그는 굳이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적어도 오늘 당장은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체룹의 자동차는 삼십 년이 넘은 낡은 차로 좌석도 두 개밖에 없고 냉난방 장치도 없었으며 심지어 조수석 창문은 열리지도 않았다. 그는 운전을 거의 하지 않았고 차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니 사실은 차가 더 많이 훼손되었다 해도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든 체룹은 안 그래도 할일이 유난히 많은 아침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경찰의 방문과 접촉사고 중에 그가 무엇을 더 큰 방해로 여기는지는 알 수 없지만―반갑지 않았고, 그래서 최대한 뒤로 미루거나 아예 없던 일처럼 잊어버리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체룹은 초조하고 좀 예민해 보였다. 그는 자동차를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담스러워했고 그 어떤 형태라도 관청과 얽히기를 싫어했는데, 우리는 하필이면 오늘 자동차를 사용할 계획이 있는데다가 관청에도 가야 했다. 차를 살펴보고 돌아오던 길에 이웃을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누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다시 벨이 울리고 이번에는 배관공이 왔다. 체룹은 펌프와 보일러를 보여주기 위해 배관공을 집 뒤편 창고로 데리고 갔다. 나는 거울 앞에서 화장을 했다. 그건 쓸데없는 짓이었다. 화장을 해도 거울 속의 모습은 그다지 나아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고 긴 시간을 날아왔고, 도착하자마자 피곤한 상태로 긴 산책을 했으며 잠도 거의 자지 못했다. 피부는 칙칙하고 거칠었고 눈두덩은 샐러맨더처럼 부은데다 입술과 뺨에는 흰 각질이 일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마구 문질러 각질을 없애버리려 했다. 배관공이고 화장이고 모두 그만두고 밖으로 나가 커피를 마시고 싶은 생각만이 간절했다. 우리는 늦어도 아홉시에는 집에서 나가야 했다. 관청의 약속은 아홉시 반이었고 우리는 걸어갈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배관공은 작업이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낡은 펌프는 이전에도 종종 문제를 일으켰다고 들었다. 하지만 창밖을 보니, 그밖에는 모든 것이 평화롭고 고요한 가을날이었다. 잘 보이지 않던 지빠귀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다. 나는 최후의 희망을 가지고 눈썹을 그려보았으나 그건 안 하느니만 못한 역효과만 불러일으켰을 뿐이다. 나는 손수건에 화장수를 적셔 눈썹을 닦아냈다. 그러자 이마 전체에 검은 얼룩이 번졌다. 배관공이 창고에서 나와 욕실과 주방의 수도를 틀어보라고 했다. 다행히도 수도꼭지에서는 꾸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진한 녹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으나 더운물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배관공은 보일러는 새로운 부품이 필요한데 그건 자신이 지금 갖고 있지 않으므로 당장은 고칠 수가 없다고 했다. 우리는 이 주일 후로 새 약속을 잡아야 했다. 체룹은 옷을 갈아입었다. 그는 내 초조함은 전혀 신경쓰지 않으면서 느릿느릿 움직였다. 자동차 때문에 쓰던 편지를―혹은 한 편의 시였거나―완성하지 못해서 좀 화가 났지만 사실 서둘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닫고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배관공이 일을 예상보다 빨리 마쳤으므로 관청까지 갈 시간은 넉넉하고, 우리는 늦지 않으리란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배관공이 장비를 들고 돌아가면서 작별인사를 했다. 집을 나선 우리는 걸었다.
우리는 시 경계선을 넘어갔다. 처음에 마주한 풍경은 황량하고 쓸쓸했다. 길 가장자리에는 아무것도 지어지지 않은 공터와 정체불명의 창고, 주차장, 공사중인 건물들이 나타났다.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갔다. 그리고 가을 들판이 펼쳐졌다. 키 큰 풀들 사이 야생 밀과 검게 색이 변한 자우어암퍼, 붉은색과 보라색 꽃들이 피어 있었다. 나는 초록색 블라우스 위에 초록 숄을 두르고 긴 끈이 달린 작은 손가방을 들고 걸었다. 바람이 불어와 검은 스커트와 초록 숄이 느린 춤을 추듯이 날렸다. 체룹은 검은 양복에 붉은 숄을 둘렀다. 지난밤 산책길에 나는 한국을 떠나기 전날 고향집을 찾아갔던 이야기를 체룹에게 했다. 마음속의 벅찬 놀라움 그리고 공포에 가까운 기이한 느낌까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위한 언어를 갖지 못했다. 그건 스스로도 신뢰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안도감이었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나를 편하게 해주지도, 기존의 뿌리깊은 상실감을 없애주지도 못했다. 내가 떠나온 집이, 거기 있다.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집이, 비로소 거기 있다. 지난밤 산책에서 체룹은 별말 없이 내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오늘 그는 나에게 여전히 집을 그리워하는지 물었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단지 언제가 아마도 집을 다시 찾아가고 싶을 거라고 말했을 뿐이다. 언젠가. 그가 내 말을 반복했다. 그래, 언젠가. 하지만 그때 집은 그 자리에 없을 거라고 나는 덧붙였다. 세상의 많은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왜냐하면 집은 과거로부터 온 이름이기에. 아니 어쩌면 한 번도 있지 않았던 것의 이름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말했다. 상실을 통해서 비로소 얻는 것이 있다고 체룹이 말했다. 아마도 너에게는 그것이 집일 거라고. 그리고 우리는 말없이 계속 걸었다. 길가의 야생 사과나무를 지나갔다. 주먹만한 사과 열매가 나무 아래 가득 떨어져 있었다. 낮은 가지의 열매는 이미 사라졌지만 높은 가지에는 아직도 제법 큰 사과들이 달려 있었다. 체룹은 팔을 뻗어 새들이 파먹은 자국이 없는 사과를 두 알 따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단맛이라고는 거의 없이 단단하고 씁쓸한, 하지만 싱싱하고 물기 많은 과육을 씹었다. 길을 걷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길가에 커다란 떡갈나무들이 나타났다. 나뭇가지와 이파리들의 그림자가 우리들 위에서 일렁이며 떨릴 때마다 눈부시게 환한 9월 오전의 태양빛이 조각조각 찢기며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공기는 벌꿀처럼 부드럽게 우리의 피부 위를 흘러내렸다. 다 먹은 사과를 들판 가운데로 던졌다. 벌들이 날아왔다.
관청 입구 접수대는 아무도 없이 비어 있었다. 우리는 미리 약속한 대로 이층 홀로 올라갔다. 흰 실크 블라우스와 회색 스커트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자 공무원이 우리를 맞았다. 그녀는 어제 뮌헨에 도착한 내게 긴 여행 때문에 피곤하지 않은지, 우리 둘 다 좋은 꿈을 꾸었는지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겨우 몇 시간뿐이지만 깊이 잠들어서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고 했다. 체룹은 어제 갑작스럽게 낡은 수도가 고장나는 바람에 급하게 배관공에게 연락하느라 정신없이 보냈고 오늘 이른 시각에 배관공을 맞아야 해서 잠도 충분히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제 모두 지나갔다고 내가 덧붙였다. 배관공은 다녀갔고, 비록 따뜻한 물은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최소한 수도는 수리되었다고. 작은 행사를 위해 마련된 홀에는 스무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긴 벤치와 흰 천을 씌운 탁자가 있고 탁자 위에는 이미 서명 준비를 마친 서류와 펜, 그리고 은색 촛대에 두 개의 양초가 타고 있었다. 우리는 탁자 앞으로 가서 섰다. 여자 공무원이 탁자 곁을 지나 우리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촛불이 흔들리며 펄럭였다. 나는 마치 잃어버린 빛을 불현듯 마주친 사람처럼 촛불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의례적인 질문을 시작하겠다고, 탁자 뒤에서 성직자처럼 우리를 마주보고 선 공무원이 말했다. 첫번째 질문. “당신들은 혹시 피를 나눈 가까운 친척 관계는 아니겠죠?”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우리는 서로 마주본 후 둘 다 아니라고 동시에 대답했다. 그리고 다음 질문. “현재 둘 다 미혼인 상태가 맞는 거죠? 신분 관련 서류야 당연히 이전에 받았지만 그사이 몇 달이나 지났으니 말이죠. 그리고 메레 당신이 어제 한국을 떠나기 전에 혹시라도 거기서 결혼을 했다면 지금 알려주셔야 합니다.” 물론 마지막 말은 여자 공무원의 농담이었지만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혹시 그녀는 내가 집을 만난 것을 암시한 걸까. 보통의 경우라면 두 명의 증인이 있어야 하지만 우리는 아무도 증인으로 출석시킬 만한 사람이 없다고 예외 신청을 했고 그 요청은 받아들여졌다. 이제 선서가 끝나면 서로 존중하고 신의를 지키며 곤경에 처했을 때 서로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고 여자 공무원은 말했다. 선서가 끝나고 나면 돌이킬 수가 없다고 했다. 우리는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우리의 선서가 끝나자 여자 공무원은 서류를 내밀며 읽고 서명하라고 했다. 그것으로 법적인 절차는 모두 완료되는 거라고. 서명을 마치자 그녀는 우리에게 증명서를 내주며 축하 인사를 했다. 영어와 독일어로 된 두 장의 증명서였다. 원래 증명서는 늘 그렇듯이 리본 장식에 꽃다발 양각 문양이 들어간 흰 앨범에 꽂혀서 건네질 예정이었으나 그런 형식을 결코 원치 않는 체룹이 미리 거절했다고 들었다. 체룹은 흰 리본이 달린 성스러운 앨범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경우에 흔히 인용되는 영원한 사랑과 언약에 대한 낭만적인 시나 아포리즘 낭독도 모두 사양한다고 미리 주문해둔 것이다. 음향 기기에서 나오는 감미로운 음악도 물론 사양하겠다고. 또 거기에 더해서 형식적인 증인이나 쌀과 포도주를 뿌려줄 가족이나 친구도 우리는 한 명도 데려올 수 없다고, 그렇게 분명히 말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의 행사는 무척 짧게 끝났다. 그날 관청의 홀에는 우리들뿐이었다. 홀의 벤치는 텅 비었고 실내는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로 냉랭했다. 높다란 천장까지 닿는 창에는 흰 커튼이 쳐져 있었다. 원한다면 사진을 찍어주겠노라고 여자 공무원이 제안했다. (“설마 사진까지도 거부하는 건 아니겠죠?”) 체룹이 주머니에게 카메라를 꺼내 건넸다. 우리는 촛불 앞에 좀 어색한 자세로 나란히 섰다. 여자 공무원이 사진을 찍는 순간 내 초록빛 숄이 어깨에서 미끄러지며 바닥에 닿을 듯이 흘러내렸다. 이제 모두 끝났습니다, 하고 사진을 찍고 난 후 여자 공무원이 말했다.
9월이었고, 나이든 여자의 머리카락처럼 길고 부드러운 흰 거미줄의 계절이었다. 우리는 관청 근처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늘 하던 대로 나는 초콜릿 크라상을, 체룹은 연어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체룹은 카페에 비치된 지역신문을 읽었고 내게 몇 가지 흥미로운 기사를 건네주었다. 그는 지역신문에 실리는 기사들을 관심 있게 읽곤 했다. 예를 들자면 우리 마을에 있는, 약간의 역사적인 배경을 가졌으나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지는 않은 이백 년 이상 된 낡은 주택을 철거해야 할지, 아니면 후손들의 바람대로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을지에 대한 논쟁. 보존할 경우 철거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이 들어가며 그것은 지역 예산으로 지불해야 한다. 후손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그 집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 고향집의 우물에 관해서 체룹에게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체룹은 다시 말할 것이다, 상실을 통해서 비로소 얻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우리에게 속하며 끝내 우리에게 남는다고.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인근 호수로 갔다. 그리고 각자의 숄을 바닥에 깔고 나무 아래서 잠시 게으르게 누워 있다가 물속으로 들어갔다. 아직은 물이 살짝 차긴 해도 햇빛이 있으면 수영을 할 수 있었다. 이날 우리는 수영복을 가져오지 못했으므로 옷을 벗은 채로 물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몸서릴 칠 만큼 물이 차갑게 느껴졌으나 일단 물에 들어가니 견딜 만했다. 물가에는 갈대들이 가득했고 고운 모래 바닥에는 짙은 붉은색과 황금색 나뭇잎들이 깔려 있었다. 호수는 몇 걸음만 내디디면 급격하게 깊어졌다. 우리는 물을 향해 몸을 던졌다. 멀리서 보트가 지나갔고 잠시 후 불안한 파도가 일렁이며 밀려왔다. 나는 햇살의 파편이 은색의 섬처럼 환하게 떠 있는 눈부신 호수 가운데를 향해서 곧장 헤엄쳐 갔다. 호수의 중앙은 수심이 깊고 수온이 급격하게 낮아지기 때문에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일이었다. 수면을 떠다니던 기다란 수초가 내 다리를 휘감았다. 헤엄을 칠수록 수초는 늘어나서 팔과 다리 그리고 온몸에 수초가 감겼다. 물속을 내려다보자 그곳은 무성하게 우거진 검은 수초의 밀림이었다. 다행히 나는 수초가 팔을 뻗어 내 몸을 아래로 끌어당기기 전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언젠가. 물위에 가만히 떠 있던 체룹이 다가오면서 말했다. 내가 대답했다. 언젠가. 그리고 나란히 기슭으로 헤엄쳐 갔다. 물에서 나온 우리는 체룹의 숄로 몸을 닦았고 햇빛 아래 앉아 몸을 말렸다. 그러나 곧 체온이 식으며 몸이 덜덜 떨려왔다. 우리는 서둘러 옷을 입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이웃이 포도주 한 병과 축하 카드를 문에 매달아둔 걸 발견했다. 그는 오늘 우리가 한 일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집안으로 들어간 체룹은 곧장 책상으로 다가가 중단했던 편지를―혹은 한 편의 시였거나―계속해서 쓰기 시작했다. 나는 블라우스 위에 체룹의 스웨터를 껴입고 주방의 작은 식탁에 앉아 뜨거운 차를 마시며 호수에서 차가워진 몸을 데웠다. 체룹의 집은 방이라곤 침실 하나뿐이지만 체룹이 글을 쓰는 거실 겸 작업실은 꽤 넓은 편이었고 지붕 밑에는 잡동사니를 쌓아두는 다락방까지 있었다. 체룹은 내게 다락방을 작업 공간으로 쓰라고 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체룹의 타이프라이터 소리를 견딜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거실 위쪽의 다락방은 벽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종종 나는 체룹을 잘 모른다고 느꼈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은 자기 자신도 가끔 낯설게 느낄 수 있다. 내가 차를 다 마시고 나자 체룹은 편지를―혹은 한 편의 시였거나―완성했다. 그는 타이프라이터에서 꺼낸 종이를 봉투에 넣고 봉했다. 이날 오후 우리는 산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관청에서 나오며 체룹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전에 우선 우체국으로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