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비스듬한 빛 (2)

마트에서 이연은 투플러스 한우와 노르웨이산 생연어를 구입했다. 샐러드용으로는 로메인과 방울토마토를 고르고 케이퍼와 올리브도 넣었다. 와인은 부르고뉴산 레드와 화이트를 둘 다 준비했는데, 노마가 어떤 종류의 와인을 선호할지 모르니까.

성철은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것이 취향이었다. 그거 취향 맞아? 그냥 습관 아니야? 하고 물으면 성철은 그냥 웃었다. 그럴 때면 이연도 성철을 따라 소맥을 마시며 웃었다. 그게 나쁘지 않았다. 이연 역시 어느 결에 소맥에 맛을 들였다고 해도 좋았다. 하지만 오늘은 노마가 몇 년 만에 방문하기로 한 날이다. 노마와 함께 소맥을 마시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와서 굳이 성철의 취향을 따라갈 필요도 없고.

노마를 만나는 일이 일종의 숙제로 느껴진다는 사실 때문에 이연은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 어쨌든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몇 해 전 성철이 스스로 세상을 등진 후 노마와의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조금씩 어긋나고 어색해지면서 노마를 보는 게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그건 노마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도…… 보고 싶을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 년을 같이 살며 돌본 아들이었으니까. 아니, 여전히 아들이니까. 이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노마를 텔레비전에서 목격하기 전까지는.

그날 텔레비전에 노마가 나왔을 때 깜짝 놀란 것은 아니었다. 저것이 노마인가. 노마가 맞는가. 그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뉴스 화면에는 관공서의 담을 넘는 사람들이 클로즈업되고 있었다. 난입이라고 했다. 계엄 이후 한 달이 더 지난 시점이었다. 녹화된 영상 속에 불현듯 낯익은 얼굴이 스쳐갔다. 블러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화면에서 이연은 노마를 보았다. 보았다고 생각했다. 노마는 경찰의 등뒤 길가 쪽에 서 있었다. 딱히 얼굴을 보고 안 것이 아니었다. 흐릿한 윤곽, 헤어스타일, 옷차림, 체형 그리고 모종의 느낌.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이연에게 말했다. 이것은 노마이다.

다음 장면에서는 관공서 안을 마구 휘젓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왔다. 그들은 소리를 지르고 집기를 던졌다. 관공서 안의 복도 어딘가에서, 이연은 다시 노마를 보았다. 보았다고 생각했다. 복도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남자의 뒷모습이었다. 뒷모습일 뿐이었지만 방금 화면에서 본 노마와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녹화 필름처럼 거친 질감의 화면 속에서 남자는 철제 의자를 들고 황급히 복도를 돌아 사라졌다.

저걸로 뭘 하려고……

이연은 유튜브로 들어가 뉴스를 다시보기하면서 그 화면을 캡처했다. 이것은 노마인가. 노마가 아닌가. 화면을 정지시켜두고 이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마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묻지는 않았다. 문자를 보내 확인하지도 않았다. 노마의 삶은 노마의 것이다. 게다가 노마는……

언제부터인가 이연의 말에 토를 달기 시작했다. 말수가 적은 아이였는데, 대학에 간 이후 무언가 변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향형이지만 사회성이 좋은 성철과 달리, 노마는 내향적이면서 사회성도 그리 좋지 않았다. 성철과 반대로 어딘지 늘 주눅들어 있는 느낌이었다. 노마가 글을 쓰면 좋겠다고 이연은 생각했다. 글이 아니더라도 노마가 좋아하는 뭘 좀 시켜보려고도 했다. 성철은 모든 것이 노마 자신에게 달렸으니 이제 그만두자고 했고, 이연은 동의하지 않았다. 당신이 리버럴인 건 알겠는데, 그런 건 자유가 아니라 무책임인 거야. 이연이 그런 말을 해서 다툰 적도 있었다.

이연이 프랑스에 대해 말할 때도, 프랑스 소설이나 프랑스혁명에 대해 얘기할 때도, 노마는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권이나 환경 문제 같은 진보적 가치에 대해 알아듣기 좋게 돌려서 말했을 때는 조용하지 않았다. 대학에 간 뒤로는 조금씩 다른 말을 덧붙였다. 지구환경이 이렇게 되어가는 걸 모두 인간 탓으로 돌리는 건 너무 나이브하지 않나요. 그렇게 반문하기까지 했다. 대답을 기대하는 반문은 아니었다. 이연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노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설명은 노마가 덧붙였다. 자본주의가 없었으면 정말 온난화도 없었을까요. 그럴 것 같지는 않아요.

대학에 간 후 일 년에 두어 번 집에 들르면서는 대화가 점점 줄어들었다. 유명 대학은 아니더라도 인서울은 가능한 점수였는데 노마는 굳이 지방의 대학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 대학에 자신이 가고 싶은 과가 있다는 이유였다. 성철도 이연도 말리지 않았다. 서울 중심주의가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다고 말한 것은 성철과 이연이었으니까.

두 사람은 노마가 노마의 삶을 살도록 최대한의 자유를 부여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핑계로 집을 떠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경제적 지원을 하면서도 간섭은 하지 않았다. 노마는 기숙사에서 지내다가 오피스텔을 얻어 자취를 시작했고 연애도 한다고 했다. 한번은 애인을 데려온 적도 있는데, 그때 이연은 희라는 이름의 그애가 마음에 들었던 것을 기억했다. 부분 탈색을 한 쇼트헤어에 스트라이프 롱스커트, 그리고 높낮이 없는 말투가 인상적인 아이였다. 다정다감한 쿠션어를 붙일 줄 모르는데다 어디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 그게 묘하게 도발적으로 느껴졌다. 저는 어른의 관점에 자신을 맞추는 전통적 여성이 아닙니다. 그렇게 어필이라도 하는 듯이.

이연은 그런 것이 다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대학 시절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이 아이도 삶에 익숙해지겠지. 많은 것에 적응하고 노련해지겠지. 이연은 쓸쓸한 마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여자애는 얼마 안 가 노마와 헤어진 모양이었다. 그렇게 되리라고 이연은 예감하고 있었다. 이런 여자애가 노마를 마음에 들어할까 하고 의아해한 건 이연 자신이었으니까.

 

노마는 혼자 왔다. 혹시 새로운 연인이 생겨서 연락을 해온 걸지도. 그런 기대 아닌 기대를 했는데, 노마는 혼자 왔다. 몇 년 만에 어머니의 집을 방문하면서 티셔츠 쪼가리에 후드집업을 걸치고, 집들이에 아무런 선물도 없이 빈손으로 오는 애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르는 스텝마더의 집이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예의는 갖춰야 하는 것 아닌가. 노마가 마당에 들어섰을 때 이연이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생각 이전에 이미 그럴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우선 마당을 구경시킨 후 거실 소파에 앉혀 차를 권할 생각이었지만, 노마는 이연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곧바로 현관으로 들어와 식탁 의자로 갔다. 마치 이 집에 사는 사람이 막 퇴근해서 하는 행동 같았다. 이연은 그런 노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

“식사 안 했지?”

“아까 조금 먹었어요. 저녁을 하자고 하셔서 많이는 안 먹고. 배는 안 고파요.”

노마는 왜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걸까. 노마와의 대화는 늘 조금씩 어긋난다고 이연은 생각했다.

“아버지 사진은 다 치우셨네요.”

노마는 식탁 옆의 장식장을 둘러보면서 심상하게 말했다. 심상하지 않은 얘기, 심상할 수 없는 얘기를 심상한 표정으로 하는 것도 노마였다.

“생연어랑 스테이크 있는데, 괜찮지?”

이연은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생각해두었던 대로 식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생연어는 냉장실에서 꺼내놓고 스테이크용 고기는 팬에 올렸다. 와인은 노마가 스스로 고를 수 있도록 미리 두 병을 식탁에 놓아두었다.

“집이 좋네요. 조용하고. 아늑하고.”

노마가 말했다. 처음으로 적절한 멘트를 하는구나, 하고 이연은 생각했다.

“그렇지? 괜찮아. 마당에 저녁 햇빛이 드는 것도 좋고.”

“옥탑은 없나요? 반지하는?”

노마는 엉뚱한 질문을 해왔다. 이연은 옥탑도 반지하도 없다고 대답했다. 옥탑이나 반지하 같은 것은 관리하기가 어렵다. 세를 놓을 것도 아니고 노마가 들어와 살 것도 아니고. 그래서 처음부터 그런 것이 없는 집을 골랐다. 지붕 아래 작은 다락방이 있지만…… 같은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는 YTN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마침 관공서에 난입했던 이들에 대한 리포트가 이어지고 있었는데, 수사가 본격화하자 벌써 변호사를 선임한 사람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내용을 같이 보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음악을 들을 걸 그랬나. 브라이언 이노나 에릭 사티를 틀어둘까 잠깐 고민했지만, 그런 것은 노마와 어울리지 않는다. 아니, 모자 관계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게 이연의 판단이었다.

노마가 어째서 갑자기 오겠다고 한 것인지 이연은 묻지 않았다. 때가 되면 제가 말하겠지. 한두 가지 가능성은 염두에 두고 있었다. 성철의 상속재산 유류분 문제를 확인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철이 남긴 것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겠지. 성철은 미술평론가로 한때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직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평론이나 기획 일도 한 시절이었을 뿐이다. 나이가 들어서는 여기저기 강의를 뛰기도 했지만 수입은 보잘것없었다. 그렇다고 유산이 있기를 했나.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이연이 성철을 돌보았다고 해도 좋았다. 그러니 상속할 것도 없다. 노마도 그런 것은 대략 감을 잡고 있을 것이다. 노마가 독립할 때 이미 꽤 많은 돈을 내어주기도 했고.

그게 아니면 높은 확률로…… 재판비용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 뉴스에 나오고 있는 저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재판을 받고 하려면 돈이 필요할 테니까. 그것도 상당한 액수가. 그렇게라도 해야 형량을 줄여 집행유예를 받든 말든 할 것 아닌가. 지금 분위기로 보아 무죄는 어려울 것이고. 그런데 내가 그런 비용까지 대줘야 하나. 이연은 그런 것을 고민하지는 않았다. 돈이 필요하면 줘야지. 그럴 용의가 있다. 어쨌든 아들은 아들이니까.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것이다. 벌을 달게 받으라고. 비용을 대주면서 말할 것이다. 돈은 줄 테니,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