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도 도희의 친구 중 하나였다. 도희의 친구들이 하나둘 멀어져갈 때, 도희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선택했다.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도희는 상대적으로 경쟁률이 낮은 본적지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애인과의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었다. 시험을 삼 개월 앞두고 애인은 문자메시지로 이별을 통보했다. 도희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얼굴 보고 얘기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애인은 답이 없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애인은 도착 역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예상치 못한 재회였다. 애인은 도희를 향해 활짝 웃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이었다. 그때도 애인은 백팩을 메고 있었다. 도희는 애인의 방에서 사흘을 머물렀다. 학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애인이 넌지시 물었다. 도희는 괜찮다고 답했다. 여기 더 있을래. 이후로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애인은 목요일이나 금요일쯤이면 이별을 통보했다. 그러곤 연락이 두절됐다. 도희는 그때마다 기차를 탔다. 애인과 이상한 대결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기차역에 백팩을 메고 나온 애인을 보면 안도감을 느꼈다. 정답을 맞힌 느낌이 들었다.
“가벼워 보이네.”
애인의 방에서 도희는 말했다. 그들은 방바닥에 마주앉아 있었다. 배달시킨 피자를 먹던 중이었다. 무슨 말이냐는 듯 애인이 도희를 쳐다보았다. 도희는 턱끝으로 행어를 가리켰다. 행어 끝에 도희와 애인의 백팩 두 개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도희의 것만 묵직했다.
“그냥. 가벼워 보인다고.”
시험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도희는 부탁했다. 애인은 더 집요하게 이별을 통보해왔다. 도희는 계속해서 애인을 만나러 갔다. 기차를 타는 한 시간 동안 하나라도 더 외우지 못하면 큰일이라는 생각과 애인이 이번에는 마중을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그 두 가지의 불안과 긴장감이 도희를 사로잡았다. 도희는 기차 안에서 필사적으로 공부를 했다. 제세동기 사용법 안내 영상의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창밖에서 무엇이 지나가는지 몰랐다. 도희는 간신히 시험에 합격했다. 취업에 성공했다. 애인도 도희를 떠나지 않았다. 시험에 합격한 이후로 애인은 헤어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도희는 애인과 헤어졌다.
기차가 다음 정차역에 도착할 것이라는 방송이 나왔다. 이번 정차역에서 기차는 분리될 것이다. 계속 안내되어왔던 대로, 1호차부처 8호차까지는 진주 방향으로 갈 것이다. 11호차부터 18호차까지는 포항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지금 무엇을 기다리라고 하는 것이냐고 노수녀가 도희에게 물었다.
"열차가 다 분리될 때까지 기다리라는데요.”
도희는 안내방송에서 들려오는 말을 반복했다. 별일 없을 거라고 덧붙였다. 열차가 어떻게 분리된다는 거냐고 노수녀는 물었다. 이 열차는 복합열차라고 도희는 답했다. 도희의 설명을 듣는 노수녀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래서, 이 칸은 어디로 가는데요.”
“포항으로요. 어디로 가시는데요.”
노수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진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반대 방향으로 가면 되느냐고 노수녀가 물었다. 다른 칸으로 건너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못 건너가요. 막혀 있어요.”
“언제부터.”
“처음부터요.”
정말로 기차가 막혀 있느냐고 노수녀는 물었다. 일단 내리셔야 한다고 도희는 말했다. 문이 닫히기 전에 앞쪽으로 가셔야 한다고 했다. 노수녀는 허둥지둥 짐을 챙겼다. 기차에서 내렸다. 도희는 노수녀의 자리로 옮겨 앉았다. 창밖으로 노수녀를 지켜보았다. 손가락으로 방향을 알려주면서. 노수녀는 도희를 보지 않았다. 엉뚱한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멈춰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군가를 붙잡고 무엇인가를 물었다. 어딘가를 향해 바삐 걸었다. 기차는 다시 출발했다. 속도를 높여갔다. 플랫폼에 노수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기차에 잘 올라탄 듯했다. 삼십 분을 더 가면 종착역이었다.
도희는 핸드폰을 꺼냈다. 엄마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대전에서 정동진으로 가는 기차는 없는데, 기차를 갈아탔던 기억도 없다고 적었다. 그때 어디에서 기차를 갈아탄 것이냐고 물었다. 그때 일을 기억하느냐고 엄마는 되물었다. 기억한다고 도희는 답했다.
—대전역에서 제천까지는 통일호를 탔지. 제천에서 다시 정동진으로 가는 0시 기차를 탈 생각이었어. 제천에서 시간이 좀 남았어. 의림지까지 택시를 탔어. 거기서 시간을 보내다가 기차를 타러 갔을걸.
의림지에 갔던 것을 도희는 기억하지 못했다. 엄마가 계속 메시지를 보내왔다.
—너가 정동진에서 물수제비 한다고 바다에 돌 던졌잖아. 잠수를 하고 놀던 애가 툭 튀어나와서 그 돌을 맞았잖아. 엄마가 그때 집에 돌아올 차비만 남겨놓고 지갑에 있는 돈 다 주고 주민등록증까지 복사해서 주고 난리도 아니었어. 무조건 싹싹 빌었어.
도희는 바다를 코앞에서 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빠는 여름철에 가족들을 데리고 강이나 계곡 같은 데로 피서를 갔다. 강에서 아빠는 물수제비뜨는 법을 가르쳐줬다. 계곡에서는 물안경을 쓰고 물속을 들여다보는 법을 알려줬다. 그날은 더욱 먼 데까지 갔고 바다가 코앞에 있는데 도희는 엄마 손을 꼭 잡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돌이라도 집어들어서 힘껏 던져보았다. 만약 도희가 돌을 던지지 않았더라면 정동진에 며칠은 더 있었을 것이다. 결국 엄마는 집에 돌아갔겠지만. 그때 돌을 던져서 오랫동안 미안했다고 도희는 말했다. 엄마는 아니라고 답했다.
"애가 얼마나 놀고 싶었으면.”
엄마는 예의 부모를 잘못 만나서로 시작되는 코멘트를 남기고 대화를 종료했다. 도희는 포털 창을 열어 조문할 때 국화의 꽃봉오리를 어느 방향으로 놓아야 하는지를 검색했다. 장례식에 갈 때마다 검색했었는데, 이번에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승무원이 도희에게 말을 걸었다. 승차권을 보여달라고 했다. 도희는 승무원에게 승차권을 보여줬다. 승차권에 적힌 자리로 옮겨 가라고 승무원은 지시했다. 승무원과 함께 도희는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잠들어 있던 여자를 승무원이 깨웠다. 자신의 자리가 맞는다며 여자는 승무원에게 승차권을 보여줬다. 승무원은 도희와 여자의 승차권을 번갈아 살펴보았다.
“이건 내일 티켓이네요.”
승무원이 도희에게 말했다. 객실 문을 열고 노수녀가 들어오고 있었다. 도희와 노수녀의 눈이 마주쳤다. 노수녀는 사색이 되었다. 당신이 왜 여기 있느냐는 표정이었다. 노수녀는 다급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갈아탔는데, 왜 또 여기냐고 노수녀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