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의 눈동자는 앞좌석 등받이에 고정되어 있었다. 철도공사에서 발간하는 잡지가 눈에 들어왔다. 도희는 고개를 돌렸다. 노수녀와 눈이 마주쳤다.
“콘센트가 노래 부르는 거 있잖아요.”
노수녀가 도희에게 말을 걸었다. 차창 아래에 설치되어 있는 콘센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노수녀는 말을 이었다.
“내가 여기 콘센트를 보다가 생각이 났어요. 광고 말이에요. 콘센트가 노래를 하는데. 본 적 없어요?”
새로 출시된 스마트폰 광고를 말하는 듯했다. 도희는 물론 그 광고를 본 적 있었다. 유튜브에서든 TV에서든 시도 때도 없이 나왔으니까. 콘센트의 코드 구멍은 사람의 눈처럼 표현되었다. 콘센트는 슬픈 표정으로 노래를 했다. 스마트폰의 배터리 성능이 강화되어 자주 충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홍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콘센트가 슬플 지경이 된다는 걸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콘셉트였다.
“콘센트가 뭐라는 거예요?”
“네?”
“영어로 노래를 하잖아.”
노수녀가 말했다. 도희는 그 광고를 유심히 본 적이 없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몰라요?”
노수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말했다.
“걔가 뭐라고 하는지를 알고 싶어. 자막이 나오잖아요. 읽고 싶은데, 너무 빨리 지나가요. 근데 젊은이들도 모르는구나. 나는 다들 아는 줄 알았지. 아무한테도 못 물어봤어요. 그걸 못 읽는 게 부끄러워. 그래도 매번 끝까지 읽어보려고 해요. 걔가 슬픈 얼굴로 뭐라는 걸까.”
“저도 끝까지 읽어본 적 없는걸요.”
도희는 답했다. 콘센트의 코드 구멍이 사각형이었다는 것은 기억났다. 저기는 한국이 아니구나. 콘센트를 보며 생각한 적이 있었다.
“거기는 한국이 아니잖아요.”
도희가 노수녀에게 콘센트의 코드 구멍이 동그라미가 아니라 네모였다고 부연설명했다.
“아니야.”
옛날에는 다 네모였어, 노수녀는 중얼거렸다.
“집에 불이 난 적이 있었어요. 며칠 집을 비웠다가 돌아갔는데, 집이 새까매져 있었어. 그걸 아무도 몰랐어요. 소방차는커녕 근처 이웃들도 모르고. 내가 처음 발견한 거야. 집이 쬐끄맣고 주변에 워낙 뭐가 없기는 했어요. 연기는 났을 텐데 아무도 못 본 거지. 그냥 불이 저 혼자 났다가 집만 다 태우고 저 혼자 알아서 꺼져 있었어요. 콘센트 때문이었던 것 같아.”
노수녀는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쩌면 노수녀에게 이야기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도희는 생각했다. 왜 이 기차에 탔는지. 지금 어디에 가고 있는지. 도희는 이전에도 옆자리에 앉아 있는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해본 적이 있었다. 혼자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있다보면 으레 생기는 일이었다. 위협적인 기억으로 남은 적도 있었다. 특별한 얘기를 들려준 사람도 있었다. 별 얘기는 나누지 않았지만 친구가 된 사람도 있었다. 뭘 그렇게 먹어요? 맛있어요? 그게 친구가 던진 첫 질문이었다. 어떻게 두 사람이 친구가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친구는 깔깔 웃으며 답하곤 했다. 아니, 나 남대문에서 알바하는데 앞에 쉼터가 있었거든. 관광객들 쉬라고 의자 몇 개 놓아둔 덴데, 얘가 거기 구부정하게 앉아가지고 뭘 맛있게 먹어. 입 모양이 아주 맛있어 죽어. 아작아작거리면서. 몇 시간을 그러고 있더라니까. 또 사 먹고 또 사 먹고. 너 그때 그거 얼마나 먹은 거야? 그건 베트남 땅콩 과자였다. 오징어땅콩과 비슷한 과자였는데, 크기가 손톱만큼 작고 더 고소했다. 그때 도희는 종종 그랬다. 길을 걷다 지친다는 생각이 들면 아무데나 앉아 무엇인가를 먹었다. 안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씹었다. 운이 좋았던 덕에 친구를 만났다고 도희는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친구가 늘어난 이후에야 단순히 운만은 아니었다고 고쳐 생각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친구를 찾아냈다. 술꾼은 술꾼과 친해졌다. 사이클링을 하는 사람들은 사이클링을 하는 사람과 가깝게 지냈다. 잘 노는 사람은 잘 노는 사람을, 우월한 사람은 우월한 사람을 알아보았다. 도희도 그런 식으로 친구들을 만났다. 같은 노선을 택한 누군가가 옆자리에 앉는 식으로. 그들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친구들과 딱히 뭘 하지는 않았다. 틈이 날 때마다 공원 벤치에 죽치고 앉아 있었다. 핸드폰으로 음악을 커다랗게 틀어놓았다. 서로의 눈동자가 고양이 같은지, 강아지 같은지, 송아지 같은지 메기 같은지에 대해 토론했다. 메기 비웃지 마라, 행운의 물고기다. 그건 잉어 아니야? 종아리에 앉는 모기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오, 내가 잡았어. 매일매일이 비슷했다. 시간의 흐름도 안 느껴졌다. 그러기 위해 함께 있었다. 그게 그들의 본업이었다. 그리고 한 명씩 떠나갔다. 기숙사가 있는 공장에 취직을 하거나 친척이 운영하는 펜션 일을 도우러 가거나 갑자기 결혼을 하는 식으로. 그들은 송별회를 했다. 무슨 미국 가냐, 기차로 한 시간 정도밖에 안 걸려. 잊지 않으려는 듯 그들은 말했다. 강남에서 차 막히면 한 시간도 더 걸려. 맞아, 서울 안에서 이동하는 게 더 걸려. 진짜. 그들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뿔뿔이 흩어져갔다.
도희는 서른이 조금 넘어 친구들과 다시 만난 적이 있었다. 한 명이 결혼을 하며 친구 모두에게 청첩장을 보냈다. 오지 않은 친구들도 물론 있었다. 하나도 안 변했네, 완전 똑같아, 같은 말을 식당에서 주고받았다. 누군가 중얼거렸다.
“근데, 쟤는 정말 그대로인 것 같네.”
친구 모두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다. 정말로 그대로인 것처럼 보이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여전히 공원 벤치에 죽치고 앉아 종아리에 앉는 모기를 내리치며 지낼 것 같은 친구가. 그들은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자리에 오지 않은 친구들을 도희는 생각했다. 그들은 그대로일까. 너무 많이 변했을까. 친구들은 상관없다고 되뇌었다. 난 상관없어. 그럼, 당연하지. 다들 똑같이 아무 상관 없다고 말을 했다. 그 주제에 대해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대로인 것처럼 보이는 친구가 접시에 음식을 담아 테이블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도희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콘센트가 등장하는 스마트폰 광고를 검색했다. 노수녀의 말대로 옛날 모양이었다. 영상 속 콘센트는 색이 바래 누런 빛을 띠었다. 콘센트 옆에 스위치가 있었다. 위아래로 올리거나 내려 꺼야 하는 구식 모델이었다. 스위치 옆에는 누군가 놓아둔 열쇠 뭉치가 있었다. 요즘은 그런 열쇠 뭉치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도희는 콘센트가 부른 노래를 찾아냈다. 원곡의 번역본을 노수녀에게 보여줄 생각이었다. 노수녀의 팔뚝을 톡톡 쳤다. 말씀하신 게 맞았다고, 스위치도 열쇠도 다 옛날 것이라고 말했다. 가사를 찾아보았다며 노수녀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노수녀는 도희의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눈을 가늘게 떴다. 손을 뻗어 핸드폰을 조금씩 멀리 내밀었다. 한두 줄을 읽는 듯하다 노수녀는 핸드폰을 도희에게 돌려주었다.
“됐어요.”
“왜요?”
“안 볼래요.”
노수녀는 고개를 저었다.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희는 십오 초 남짓한 광고 속 노래를 노수녀가 몇 번이나 들었을까를 생각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반복해서 듣게 될지를 생각했다. 창밖으로 신축 아파트 단지 옆의 신축 아파트 단지가 지나갔다. 맹금류 스티커가 붙어 있는 방음벽들이 지나갔다. 맹금류를 피해 날아가주기를 바란 메시지가 날아갈 수 있는 경로처럼 오인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방음벽에 부딪혀 죽은 새를 도희는 몇 번 발견한 적이 있었다. 신문기사에서도 그렇게 죽은 새를 본 적이 있었다. 기자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죽은 새. 날개를 접은 채 비교적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던 새. 도희가 방음벽 아래에서 발견했던 처참한 형상의 새와는 달랐다.
기차에서 정차역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얼마의 사람이 짐을 챙겨 내렸다. 얼마의 사람이 짐을 들고 탔다. 기차의 출발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모니터에서 열차 내 금지행위에 대한 안내가 나왔다. 이어 제세동기 사용법에 대한 안내 동영상이 나왔다. 화면에는 마네킹이 바닥에 눕혀져 있었다. 마네킹 옆으로 한 사람이 앉았다. 제세동기 사용법 안내를 볼 때마다 도희는 그 내용을 기억하려 노력했다. 그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때에 생긴 버릇이었다. 그때 도희는 자주 기차를 탔다. 비가 자주 왔다. 차창에 빗방울이 죽죽 그어졌다. 망할 거 같아. 기차 안에서 빗방울을 보며 도희는 생각했다. 진흙탕에 처박힌 거 같아. 동그랗던 빗방울은 차창에 부딪혀 두 갈래 세 갈래로 갈라졌다. 도희는 앞쪽 등받이에서 접이식 테이블을 펼쳤다. 백팩에서 시험 교재를 꺼냈다. 밑줄을 그어가며 교재를 읽었다. 문장을 읽으면 문장은 휘발됐다. 핸드폰을 꺼냈다. 애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에도 제세동기 사용법 안내가 나오고 있었다. 통화 연결음이 계속됐다. 심폐소생술이 시작됐다. 도희는 영상을 따라 머릿속으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팔꿈치를 곧게 폈다. 두 손가락을 깍지 끼듯 포갰다. 일정한 간격으로 환자의 가슴을 압박했다. 강하고 빠르게. 온 체중을 실어서. 통화 연결음이 계속됐다. 애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도희는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다. 역에 정차할 때마다 제세동기 사용법 안내 영상이 재생됐다. 도희는 반복해서 그걸 보았다. 두 개의 패드를 어디에 부착해야 하는지가 계속 헷갈렸다. 패드 하나는 오른쪽 빗장뼈에. 다른 하나는 왼쪽 겨드랑이 중앙선에. 도희는 되뇌었다. 또 잊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재 속 문장들을 못 외워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에서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 속 마네킹은 이목구비가 없었다. 마네킹은 스스로 숨을 쉬지 않았다. 도희는 애인의 백팩을 떠올렸다. 대학생이나 회사원들이 즐겨 메는, 쌤소나이트 블랙 백팩이었다. 노트북과 문구류를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교재나 서류를 넣을 수 있도록 내부가 넓었다. 우산을 넣을 수 있는 히든 포켓도 있었다. 가장 평범해 보이는 가방을 애인은 특별히 여겼다. 노트북도 문구류도 넣을 필요는 없었다. 애인의 백팩은 거의 비어 있었다. 애인에게는 그런 물건들이 있었다. 폴로 옥스퍼드 셔츠나 케이블 니트 같은 것들. 도착지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도희는 접이식 테이블을 등받이에 넣었다. 자신의 백팩을 열고 교재를 넣었다. 묵직한 백팩을 메고 기차에서 내렸다. 승강장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출구 쪽으로 향했다.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 애인은 서 있었다. 블랙 백팩을 메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