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회

13

준은 전날 내가 내린 정류장에서 자신의 몸집만한 배낭을 메고 손을 흔들었다. 꽤 멀리 있었음에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새로 샀을 법한 배낭을 내게 보여주기 위해 뒤로 돌며 크게 웃었다. 나는 서둘러 뛰어가 오랫동안 품속 깊이 그를 안았다. 준은 숨이 막힌다며 등을 쳤다. 마치 처음 몸을 맞댄 것처럼 낯선 감촉이 느껴졌고, 나는 그때 그동안 약간의 틈도 없이 서로 너무 분명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준은 숨막혔던 것이 아닐까, 최소한의 거리가 우리에게도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준의 배낭을 대신 짊어지며 생각했다. 준은 이러한 나의 생각이 기우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내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겼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을 보며 준은 연신 감탄했다.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라벤더가 줄지어 핀 호숫가를 걸었다. 준은 에메랄드빛으로 물든 호수 저편을 오래 바라보았다. 파도에 신발이 젖을 것 같았다. 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에 손을 담그며 입으로 가져가는 시늉을 했다. 내가 말리자 얼굴에 물을 뿌렸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 호숫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선한 목자의 교회로 향했다. 테카포 호수는 은하수를 관찰하기에 최적의 장소라 알려져 있었다. 선한 목자의 교회를 찍은 사진엔 언제나 은하수를가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작고 아담하게 건축된 건물을 돌며 준이 물었다.

여기 은하수가 왜 잘 보이는지 알아?

글쎄.

인공 빛이 거의 없어서래.

준은 건물 외벽을 손으로 쓸며 말했다.

새벽에 나올까?

그래.

우리는 그날 새벽 다시 호숫가로 나왔지만 은하수는 보지 못했다.

해가 지기 전 마트에 장을 보러 들어갔을 때 준은 식재료와 와인을 잔뜩 집어 카트에 넣었다. 주방에서 함께 고기를 굽고 샐러드를 소스에 버무리며 음식을 만들었다. 평소보다 많은 양의 요리와 값싼 와인을 먹고 마시며 계속 떠들었다. 아무런 걱정도 들지 않았다. 밤은 예상보다 일찍 찾아왔고 아침까지 긴 시간이 남아 있었다. 준은 살짝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배낭에서 스피커를 꺼냈다. 음악을 듣지 않는 준은 내게 스피커를 건네며 요즘 듣는 음악을 틀어달라고 했다. 음악이 시작되자 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췄다. 나도 준의 손에 이끌려 춤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이상한 움직임을 보였고 준은 소파에 드러누워 한참을 웃었다.

우리 막 사귀기 시작했을 때 음악 자주 들었던 거 기억나?

준이 물었다.

네가 같이 듣자고 들려줬잖아.

그랬지.

그랬어.

나는 준을 일으켜세워 의자에 앉혔다.

그때 많이 들어줄걸. 같이 할걸. 그런 생각이 들어, 요즘.

볼이 빨개진 준은 물을 한 컵 마시곤 다시 말했다.

그래서 여기 왔어.

나는 얇은 모포를 가져와 준의 무릎에 덮어줬다. 그러곤 테이블 위에 놓인 식기들을 정리했다. 준은 잠이 오는 듯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문에 걸친 커튼을 젖히고 거실 전등을 껐다. 저멀리 호수 위를 수놓은 별들이 보였다. 그렇게 얼마간 다시 대화를 나눴다. 서로 기억하는 예전 일들을 하나씩 꺼냈다. 좋았던 시간, 싸웠던 시간, 슬프거나 즐거웠던 시간,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시간 들을 얘기하다보니 자정이 훌쩍 지났다. 은하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숙소를 나섰다. 가는 길이 어두워 휴대폰 랜턴에 의지해 걸었지만 은하수는 볼 수 없었다. 다음에 다시 오자, 라는 말은 서로 꺼내지 않았다.

 

마운트 쿡 후커밸리로 향하는 차를 타기 위해 오전부터 분주했다. 집합 장소는 마트 옆이었는데 둘 다 늦잠을 자서 출발 시각에 겨우 맞춰 도착했다. 키위새가 그려진 미니버스 앞에 가이드가 서 있었다. 테카포에 거주한다는 가이드는 자기소개를 마친 뒤 인원을 확인했다. 준은 출발과 동시에 내 어깨에 기대 잠들었다.

정오쯤 트레킹이 시작되는 장소에 도착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해 트레킹을 건너뛰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우리는 버스에서 내렸다. 가이드는 다음 집합 장소가 체크된 지도를 건넸다. 주차장에 덩그러니 남겨진 우리는 우의를 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후드를 뒤집어쓰고 걷기 시작했다. 도착점에 다녀온 사람들이 힘내라며 인사를 건넸다. 생각보다 비가 많이 내려서 준이 괜찮을지 걱정했으나 이미 성큼성큼 앞장서서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전날 사전 정보 없이 덜컥 패키지를 예약했다. 같이 걷자, 준은 휴대폰으로 예약 창을 보여주며 말했다. 비를 맞으며 높게 솟은 설산을 배경으로 걷고 또 걸었다. 정확한 도착지를 알지 못한 채 그저 말없이 한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선인장들과 가시나무 덤불을 지나 언덕을 넘었을 때, 우리는 난생처음 빙하를 봤다. 골짜기 사이로 집채만한 빙하가 떠내려오고 있었다. 자잘한 빙하 조각들도 각자의 속도로 계곡을 향해 갔다. 준은 너무 놀란 나머지 내 뒤로 숨었다. 나는 준을 달래면서 언덕 제일 높은 곳으로 향했다.

지금 같이 보자.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관광객이 없는 구릉까지 올라 자리에 주저앉아 빙하를 내려다봤다.

 

21

 

골목 어귀 전봇대에 쓰레기봉투를 내놓으러 집을 나섰다. 늦은 밤까지 엽이 들어오지 않아 잠에 들지 않고 있었다. 인기척에 놀란 고양이가 쓰레기 더미에서 뛰쳐나와 다른 골목으로 달려갔다. 수능이 며칠 남지 않아서인지 밤공기에서 겨울이 느껴졌다. 나는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한동안 서 있었다. 길모퉁이에서 엽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엽은 더이상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 수능에 응시하지도 않았다. 엽의 아버지는 졸업식만 마치고 본격적으로 공장 일을 배우라고 말했다. 졸업장은 있어야 하니까, 그때까지 쥐죽은듯이 살아. 엽이 어떤 대답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엽은 매일 늦은 새벽에 들어와 잠만 자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다. 연락을 해도 받지 않았다. 나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엽을 기다렸다. 교실 옆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반 친구들은 나를 멀리하는 것 같았다. 나는 혼자 급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매점은 가지 않았다. 수업 중간에 교실에서 나와 중창단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선배들이 두고 간 시디를 하루종일 들으며 하교시간을 기다렸다. 취업을 나간 현은 방학쯤에야 학교에 온다고 연락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다니던 교정을 피해 다른 길로 걸었다. 방학이 되기만을 기다렸지만 하루하루가 너무 더디게 흘러갔다.

발가락이 시려질 즈음에 길모퉁이에서 엽이 나타났다. 나는 기다렸던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쓰레기봉투를 다시 들고 이제 막 버리는 것처럼 내려놨다. 엽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아까부터 서 있던 거 다 봤어.

엽은 치킨이 든 봉투를 들고 먼저 집으로 향했다.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엽이 욕실에서 나오길 기다렸다. 엽이 거실에 벗어놓은 옷을 보자 까만 얼룩 같은 것들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수건을 목에 걸치고 나온 엽은 옷을 세탁기에 넣으며 말했다.

아파트 건설 현장은 심부름만 해도 돈 주더라.

나는 젓가락을 건네려다 멈추고 엽을 바라봤다.

수시 붙은 애들이 학교 안 나가고 알바하는 거랑 비슷한 거야.

엽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으로 치킨을 들어 먹기 시작했다. 손톱에 까만 때가 잔뜩 끼어 있었다.

네 잘못 아니야.

엽은 말했다. 나는 그런 엽의 손을 바라봤다.

네 잘못 아니라고.

맞잖아.

엽은 대답하지 않고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빠르게 음식을 먹었다.

내일도 아침 일찍 나가야 돼.

대충 자리를 정리한 뒤 이불을 깔았다. 창문 사이로 찬바람이 스며들었다. 엽은 손톱을 자르기 시작했다. 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말했다.

밤에 손톱 자르면 안 돼.

왜?

쥐가 손톱 먹고 사람으로 변한다잖아.

누가 그래?

우리 동네에서. 그래서 몇 번 혼났어.

시골 미신을 누가 믿냐.

엽은 손톱을 자르다 말고 서둘러 불을 끄고 누웠다. 한동안 조용하길래 잠든 줄 알았는데 이내 말을 걸어왔다.

그래도 쥐가 먹었으면 좋겠네.

그러게.

창문이 떨리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잠에 들었다. 그날 밤이 엽과 내가 마지막으로 함께 보낸 시간이었다. 며칠 뒤 함께 살던 집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부모님들끼리 연락을 주고받아 결정했다. 엽은 예정보다 일찍 아버지 공장이 있는 지역으로 가기로 했고, 나는 졸업까지 남은 몇 개월만 다시 기숙사에서 지내기로 했다. 짐을 빼는 날 엽은 오지 않았다. 할머니가 말려놓으라던 곶감 몇 줄기를 그대로 집에 두고 나왔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아버지 장례식에 반 친구들과 현이 찾아왔다. 나는 상복 위에 완장을 찬 채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선생님이 전해주라고 했다며 십시일반 모은 부조금이 담긴 봉투를 친구가 건넸다. 그들은 아버지 영정 사진에 절을 한 뒤 나와 맞절했는데 그때 왠지 웃음이 나서 나는 엎드린 상태로 피식 웃었다. 방에서 쉬고 있던 엄마와 누나가 옷매무새를 고치고 나와 친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머리가 덥수룩하게 자란 현은 별다른 말 없이 나를 안았다. 나는 그들을 식사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현은 숟가락으로 육개장 국물을 몇 술 뜨다 말곤 나를 찾았다. 오랜만에 만나 할 얘기가 많았는데 마침 조문객이 없는 시간이라 오래 대화했다. 현은 취업으로 간 공장 일이 힘들어 조만간 그만둘 거라고 말했다. 다른 친구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현이 물었다.

걔 소식 알아?

현이 장례식장에 들어올 때 혹시 엽도 오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현의 어깨 너머를 바라봤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집을 나갔다는 말도 있고, 외국에 갔다는 말도 있고.

현은 턱짓으로 친구들이 앉았던 자리를 가리켰다.

얘네도 모른다네.

옆 장례식장에서 누군가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연락하는 줄 알았어. 둘이 친했잖아.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사이 조문객들이 찾아와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며칠간 제대로 자지 못해 조금 비틀거렸다. 현은 장례식장을 나서기 전 다시 나를 찾았고 우리는 함께 장례식장 밖으로 나갔다. 현은 공장에 출근하느라 졸업식엔 못 가지만 청주에 오면 연락하라고 말하며 택시를 탔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인사를 건네며 배웅했다. 얼굴이 따가울 정도로 매서운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러, 엽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부고를 들었을 때 나는 오랜 시간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22

 

온라인으로 주문해둔 박스에 짐을 넣으며 빠트린 건 없는지 재차 확인했다. 준의 집에 사는 몇 년 동안 쌓인 책들이 공간을 많이 차지한 것 같아 내내 마음이 쓰였다. 중간중간 내가 사는 집에 갖다놨는데도 양이 많아서 대부분을 노끈으로 묶어 길가에 내놨다. 음식물 수거함이 엎어져 있어 도로 세워놨다.

옷은 종류별로 개어서 캐리어에 넣었다. 캐리어 손잡이에는 몇 년 전 함께 다녀왔던 여행지가 적힌 수하물 바코드 스티커가 아직 붙어 있었다. 나는 스티커를 떼지 않고 그대로 캐리어를 닫았다. 짐을 다시 확인하는 동안 준은 욕실에서 나와 수건을 펼치며 물었다.

이거 누구 거지?

그거 누구 결혼식이었는데.

가져갈래?

박스 다 찼어.

우리는 한동안 그렇게 이건 누구 물건인지, 저건 누구 옷인지 주인을 찾았다. 선물로 주고받은 건 그대로 갖기로 했다. 커플링으로 사준 반지는 어떻게 할까 묻기에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크라이스트처치공항에서 환승 수속을 마친 뒤 준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갑작스럽게 변경된 환승 게이트로 걷던 와중에 대뜸 말을 꺼냈지만 준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다시 말했다.

들었지?

응, 들었어.

준은 뒤로 돌며 대답했다.

나는 웃었다.

현관문 쪽에 박스를 쌓아놓고 개수를 셌다. 생각보다 양이 많아 용달차를 부르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준은 거실을 둘러보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 용달차 기사는 전화해 오 분 뒤 도착이라고 말했다.

이제 갈게.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눈을 오래 들여다봤다. 그렇게 오래 눈 마주친 적이 언제였는지 떠올리며 입 밖으로 꺼내는 말보다 더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인사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건강해, 잘살아, 아프지 마, 고마웠어, 이런 말들로 한 시절을 정리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잊을 것이다. 마지막 인사말로 그 미래를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기사와 함께 박스를 내리는 동안 준은 거실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용달차에 시동을 걸고 마지막으로 거실에 갔을 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것이 우리가 만난 시절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박스들을 대충 집에 쌓아둔 뒤 그대로 누워 잠깐 잠에 들었다. 눈을 떴을 때 창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무엇부터 하면 좋을지 머릿속으로 순서를 정하다가 문득 막막한 마음이 들었다. 막막하다, 입으로 읊조리며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다 휴대폰으로 불쑥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딘지 묻자 엄마는 집이라고 말했다. 지금 가도 돼? 엄마는 별다른 질문 없이 그저 알겠다고만 답했다. 나는 서둘러 일어나 옷을 걸친 뒤 기차역으로 향했다.

평일 저녁이라 한산할 거라고 생각했던 기차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나는 가장 빠른 대전행 기차표를 끊고 플랫폼 벤치에 앉았다. 엄마는 저녁 안 먹었으면 밥을 해두겠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기차가 대전역에 도착할 때까지 음악을 듣지도 책을 읽지도 않았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엄마는 마당에서 잡초를 뽑고 있었다. 상추가 잘 자라지 않는 게 다 잡초 때문이라며 나더러 손을 거들라고 말했다. 밤이라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옆에 앉아 잡초를 뽑았다.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잡초를 뽑다가 손을 씻고 집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온 본가는 변한 것 하나 없이 그대로였고 이대로 며칠 지내다가 갈까 생각했다. 엄마는 내 생각을 읽었는지, 안방에서 티브이를 보다 며칠 있다가 갈 거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준과 헤어졌다고 말했다. 티브이가 꺼지는 소리가 들렸다.

애썼어.

엄마는 말했다. 그 한마디가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누나 불렀어. 애랑 올 거야.

말을 하자마자 벨소리가 들렸다. 누나는 아이를 안은 채 집으로 들어섰다. 안아보라며 아이를 불쑥 내 품에 건넸다. 아이의 숨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