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돈이라면 그야말로 먹고 죽을래도 없는 구름 위에도, 돈 먹는 귀신은 어느 집에나 하나씩 살고 있다. 우리집의 경우에는 할아버지다.
할아버지에게는 병이 있다. 폐의 조직이 서서히 섬유화되는 병이라는데, 구름에 사는 노인들에게 흔히 발생한다고 했다. 어쨌든 구름은 유독한 것들로 이루어진 덩어리이고 그 위에 누워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의 폐에는 좋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까.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약을 타오지 않으면 할아버지의 폐는 완전히 돌덩어리가 될 것이다. 죽는다는 뜻이다.
그것이 나쁜가, 하고 자주 생각한다.
일단 도대체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꼭 폐 문제가 아니더라도 할아버지는 늙고 이곳저곳 병들었기 때문에 혼자서는 구름을 내려가지도 못한다. 어쩌다 병원에 갈 때에도 아빠의 몸과 할아버지의 몸을 친친 얽어 함께 내려가야만 한다. 그렇게 땅에 내려가고 나서도 의사를 만나기까지는 늘 요원하다. 부축해서 택시에 태우고, 비싼 요금을 내가면서 병원 앞에서 내린 뒤, 들어가서는 진료 대기표를 뽑고 또 한참을 기다린다. 그동안 넝마 같은 옷을 걸친 할아버지는 끊임없이 기침을 해대며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다. 깨끗한 병원 바닥에 몰래 새까맣고 진득한 가래침을 뱉기도 한다. 그러다가 겨우 번호가 불리면 의사의 얼굴을 삼 분 정도 보고 나온다. 약국에 들러 베개만한 크기의 한 달 치 약 봉투를 받아 집으로 돌아온다. 발판 앞에서 다시 한번 서로의 몸을 묶는다.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부터 검질기게 아빠의 몸에 엉겨붙는 할아버지의 가느다란 팔.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그게 할아버지가 하는 유일한 외출이다. 보통은 매일 온종일 집에 누워만 있다. 의사는 집에 드러누워만 있지 말고 운동도 하고 가끔은 외출을 하라고 했지만 소용없는 소리다. 할아버지의 다리로는 구름 위에 쌩쌩 부는 바람을 버티면서 걸을 수 없으니까. 하긴 괜히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넘어져 어디가 부러지고 터지느니 그냥 집안에 얌전히 있어주는 게 모두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모두를 위한다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 같으면 어서 죽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삶에 대한 그의 집착은 엄청난 수준이다. 할아버지는 이가 다 빠진 입으로도 끊임없이 음식을 씹어 삼킨다. 따로 부드러운 음식을 준비해줄 필요도 없다. 내가 고깃집에서 갈비 뼈다귀를 갖다줘도 할아버지는 어떻게든 먹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식사하는 모습은 꼭 민달팽이가 뭔가를 먹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천천히, 느리지만 집요하게 음식을 녹여 빨아먹는 점이 꼭 그렇다.
매달 할아버지 앞으로 들어가는 돈이 어마어마하다. 할아버지의 병은 구름으로 인해 생긴 지 얼마 안 된 난치병이라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치료법도 없다. 어마어마하게 비싼 그 약도 폐의 섬유화를 조금 늦출 수 있을 뿐, 아예 멈출 수는 없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 식구 중 누구도 할아버지에게 이제 약을 끊자거나 그만 죽으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언젠가 우리 중 다른 누군가가 병에 걸리거나 다쳐 거동을 못 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처럼. 할아버지를 버린다면, 언젠가 자신에게 그런 일이 닥쳤을 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버려지게 될 것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식구란 그런 것이니까. 먹을 식, 입 구. 말 그대로 서로의 먹는 입을 책임지는 사이.
할아버지는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땅 생활을 해본 사람이다. 할아버지가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던 시절에는 구름이 희고 뽀얗고 부드러웠다고 했다. 모양도 제각각이라 뭉게구름, 새털구름, 양떼구름 같은 귀여운 이름을 가진 것들도 있었다고 들었다. 양떼구름이라니! 나는 푸른 하늘을 뛰어다니는 양떼와 그 아래 서 있는 어린 할아버지를 상상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그때도 할아버지는 가난했어요?
돈이야 먹고 죽을래도 없었지.
할아버지가 푸헐헐 소리를 내며 웃는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가 하나도 없는 할아버지의 입에서 지독한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이빨마저 빠져버린 이후로 할아버지는 양치질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빨이 있던 시절에는 양치질을 잘 했던가. 모르겠다. 어쨌든 할아버지도 나처럼 튼튼한 이를 가졌던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의 할아버지는 어땠을까.
아마도 나와 비슷했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면 왠지 역겨움을 참을 수가 없다.
나, 엄마와 아빠, 그들의 엄마와 아빠, 그리고 그 위로 아무리 거슬러올라가고 올라가도 우리집에는 가난하지 않았던 사람이 없다. 어떻게 된 노릇인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돈이 없고 어딘가 아프고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고, 또 귀신같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짝을 지어 똑같은 아이들을 낳았다. 나도 그렇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원과 결혼해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는 나처럼 분홍빛 구름 위를 뛰어다니며 얼굴과 폐가 새까매진 채로 자라겠지. 아래를 내려다보며 뛰어내릴까 고민하는 어른으로 크겠지.
끈적하고 더러운 액체에 허벅지까지 잠겨 있는 기분이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를 잘 쳐다보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주름지고 새까만 얼굴은 우리 집안의 거지같은 역사와 지저분한 삶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사진 앨범처럼 보인다. 다시는 기억하기 싫은 것들이 갈피마다 담긴 낡고 더러운 앨범.
7
어느 날 동생이 쭈뼛거리며 다가와서는 리코더를 한 개만 사달라고 한다.
쓰던 거 있잖아.
그거 친구 건데 안 빌려주려고 한단 말이야.
니가 못 부니까 그렇지.
나 잘 불어.
나 잘 분다고. 나 진짜 잘 분다고 씨발. 무심코 욕을 하고 난 뒤 동생은 몸을 움찔하며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린다. 나는 머리 대신 배를 때린다. 동생은 신음소리도 내지 않고 맞는다.
그날 저녁 돌아오는 길에 문구점에 들러 리코더를 하나 산다. 길쭉한 새 비닐에 싸여 있는 연두색 리코더. 만 오천원이었다. 이깟 게 뭐라고. 집에 돌아와 동생에게 리코더를 내밀자, 동생은 초콜릿을 받을 때처럼 리코더를 낚아채 구석으로 도망치려고 한다. 그런 동생의 목덜미를 잡아채 앞에 앉힌다.
야, 한 곡 불어봐라. 너 잘 분다며.
……뭐 불어?
아무거나 잘하는 거 불어봐. 친구들이랑 부는 거.
동생은 조심스럽게 비닐을 뜯고 리코더를 꺼낸다. 입에 대는 곳에다 코를 갖다대고 킁킁 냄새를 맡는다. 그러고는 이를 히 드러내며 웃는다.
새것 냄새 난다.
닥치고 빨리 불어봐.
동생은 어른 흉내를 내는 것처럼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리코더를 문다. 후후 소리 내며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를 차례로 한 번씩 분다. 나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본다. 동생의 볼이 새빨갛다. 왜 속절없이 빨간색일까, 아이들의 얼굴은.
분다. 진짜 아무거나 불 거야.
그리고 동생은 불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 노래를 아느냐고 묻는 듯이 눈짓을 해온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래도 동생은 삐익 삐익 소리 내며 열심히 분다. 나는 눈을 감고 듣는다. 잘 부는 것 같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멋이 있다.
다 불고 나서 동생은 리코더를 바닥에 대고 툭툭 턴다.
존나 잘 부네. 연습했냐?
응. 애들 중에서 내가 제일 잘 불어.
빌린 리코더로도 잘하는데 왜 사달랬냐, 그럼.
말을 뱉고 나서 후회한다. 동생은 눈을 크게 뜬 채로 침방울이 튄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한 곡 더 불어봐.
이제 끝까지 할 줄 아는 거 없어.
씨발 그럼 중간까지라도 불어.
동생은 리코더를 다시 입에 갖다대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이윽고 커다란 눈물방울이 동생의 볼 위로 뚝뚝 떨어진다. 동생이 숨을 씩씩거리며 울 때마다 리코더에서 삐, 삐 하는 작은 소리가 난다. 나는 그것을 눈을 감고 듣는다. 마음이 아프다.
8
구름에서 내려오는 것이 무섭지 않느냐고 누군가 물은 적이 있다. 내가 구름 사람임을 알아본 고깃집 손님 중 하나였다. 그 손님은 매일매일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일 것 같아요, 말하고는 다들 그렇지 않냐는 듯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차례로 들여다보았다. 나는 별로 무섭지 않아요 매일 하는 거니까, 라고 무심히 대답하곤 그 테이블을 떠났다.
그런데 그날부터였다, 구름을 오르내리는 것이 무서워진 것은. 정확히는 무섭다기보단 이것을 무섭게 여겨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에 가깝다. 이건 무서운 것. 무서워야 정상인 것. 1.5킬로미터 높이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물론 롤러코스터를 타본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테지만.
어느 날 일을 마치고 평소처럼 구름 밑에 도착해 춘 여사가 내려보내준 발판에 올라탔는데 둥실, 몸이 떠오르는 순간 갑자기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무섭다. 무서워. 나는 점점 멀어지는 지상을 내려다보며 되뇐다. 무섭다. 무섭다.
그런데 정말 무서운가?
이런 걸 무섭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이럴 때 무슨 생각을 할까. 좋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지 않을까. 나는 열심히 좋은 것들을 생각한다. 이번 달 월급날. 숨겨둔 인형들.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 코를 고는 소리. 고깃집 뒤편을 자주 들락거리는 고양이. 그러다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건물과 사람들, 차들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내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날린다. 시원하고 개운해. 아니, 이것을 시원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건 거지들이나 하는 생각이고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것을 무서워한다.
아, 무서워.
나는 중얼거리며 눈을 꼭 감는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무섭지 않다.
무섭기로 따지면 땅 사람들의 출근길이 더하다. 그들은 몇천만원짜리 자동차를 몰고서 몇천만원짜리 자동차들이 넘치는 도로로 나간다. 어떻게 그게 맨정신으로 가능한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차체를 긁히면 수십, 수백만원이 날아가는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운전을 할 수가 있다니. 땅 사람들은 심지어 운전석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휴대폰을 보기도 한다. 만일 나라면 무서워서 눈이 튀어나오고 말 것이다.
그에 비하면 구름으로 올라가는 길은 평화롭기 이를 데 없다. 손잡이를 잘 잡기만 한다면 사다리에서 떨어질 걱정도 없다. 오늘 저녁은 뭘까, 가족들은 뭘 하고 있을까, 원은 일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차분히 발판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이딴 게 뭐가 무섭다고. 나는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모아쥐고 아래를 보며 침을 뱉는다. 침이 빙글빙글 돌며 지상으로 떨어진다. 자유롭고 자유롭게.
9
우리집은 대부분 주워온 물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바닥은 발로 밟아 단단하게 다진 구름 위에 얇은 나무판자를 깔아놓은 게 전부다. 이곳은 밤이 되면 여름이건 겨울이건 살을 에는 찬바람이 불기 때문에 집을 굳이 넓게 만들 필요가 없다. 기다란 나무판자 열 장 넓이의 방 한 칸이 우리집의 전부다. 그 위에는 땅 사람들이 버린 이불과 카펫을 가져다 두껍게 깔아놓았다. 빨래를 하는 일은 없다. 그대로 두었다가 천조각이 해져 발톱에 걸릴 정도가 되면 맨 위부터 벗겨내어 버리면 되니까. 가구들 역시 두서없이 놓여 있다. 앉은뱅이 밥상, 부직포로 된 옷장, 식료품을 보관하는 서랍장 같은 것들. 역시 대부분 주워 온 것들이다. 벽돌로 쌓은 벽 위에 얇은 플라스틱 판을 지붕 삼아 덮어놓았다. 처음에는 햇빛을 그럭저럭 가려주었는데, 하도 바람이 불다보니 판과 판의 틈 사이가 벌어져 빛이 새어드는 곳이 많아졌다. 쉬는 날 어두운 방구석에 앉아서 그것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좋다. 거지같은 집구석에 일직선으로 내리꽂히는 빛줄기들. 빛이 자주 닿는 벽 부분은 일자로 색이 바래 있다.
그리고 밖에는 우리집에서 제일 비싼 것이 놓여 있다. 태양광 패널이다. 이것은 일부 땅 사람들의 호의로 갖춰진 것이다. 원리는 잘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이걸 설치해주고 간 땅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낮 동안 넘쳐나는 햇빛을 전기로 바꾸어주는 장치라고 했다. 이게 없었다면 구름 위는 밤이 되면 코앞도 볼 수 없을 만큼 깜깜했을 거다. 냉장고나 세탁기까지 돌릴 수는 없지만 전구 한두 개 정도는 충분히 켤 수 있고,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할 수도 있다. 이 소중한 태양광 패널에 먼지가 앉지 않도록 매일 닦는 것은 동생의 일이다.
집은 강한 바람과 햇빛에 매일 조금씩 허물어진다. 아빠는 공사장에서 벽돌을 주워와 집을 고친다. 나는 개어놓은 시멘트가 든 양동이를 들고 아빠 옆에 서 있다. 새빨갛게 익은 아빠의 뒷덜미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것을 바라보면서. 아빠는 벽을 이룬 벽돌 중 부서진 것을 빼내어 등 뒤로 던진다. 바닥에 떨어진 벽돌이 서로 부딪히면서 파사삭 깨져나간다. 저렇게 약한 물체가 집을 구성하고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아빠는 부서진 벽면에 시멘트를 바르고 그 위에 벽돌을 꾹 누른 뒤 삐져나온 것을 솜씨 좋게 닦아낸다. 닦아낸 것은 다음 벽돌에 사용한다.
아빠는 그런 거 어디서 배웠어요.
너도 살다보면 다 하게 된다.
아빠는 벽돌을 하나 얹을 때마다 끙, 소리를 낸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다. 일 나가서도 저럴까. 힘들어서 그러는 건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건지 알 수 없다. 자기 자신을 덜어내어 쌓는 것만 같은 소리다. 처덕, 쿵, 끙, 처덕, 쿵, 끙. 벽돌을 모두 쌓고 난 뒤 우리는 장갑을 벗고 서로의 손에 물을 부어준다. 물이 연분홍빛 구름 위에 스며든다.
아빠, 구름이 내려앉으면 어떡해요.
구름은 절대 부서지지 않아. 봐라.
아빠가 발을 탕탕 구른다. 말마따나 구름은 아무렇지도 않다. 대신 집이 흔들린다. 지붕 위에서 덜그럭, 뭔가가 굴러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땅에 내려가서 살고 싶어요.
여기도 좋은데 왜.
덥고 바람 불잖아요.
땅도 똑같이 덥고 바람 분다.
할말이 없어진 나는 입을 다문다. 아빠는 젖은 손을 바지에 문질러 닦는다. 나도 똑같이 한다. 닦은 손이 다시 더러워진다.
아빠는 내가 평생 구름 위에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빠는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찌그러진 담뱃갑을 꺼낸다. 한 개비 불을 붙여 물고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연기를 휘익 뿜어낸다. 매캐하고 새하얀 연기가 내 얼굴을 비껴 지나간다. 꼭 연기에 얻어맞은 것 같다.
인마, 너도 니 동생도 나중에 부자 됐음 좋겠지.
연기 너머에서 아빠가 말한다. 부자가 뭘까. 부자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나는 그것을 묻지 않는다. 아빠도 모를 게 뻔하기 때문이다. 담배 연기가 내 머리카락에 배어든다. 원이 담배를 피울 때는 그 냄새가 달큰하다고 느꼈었는데, 아빠가 피우는 것은 왜 다를까. 나는 묵묵히 아빠가 담배 한 대를 다 태울 때까지 기다린다. 아빠는 꽁초를 구름에 쿡 쑤셔박는다. 치익 소리가 난다.
아직 멀었어?
벽 너머에서 엄마가 소리쳐 묻는다. 이 벽 바로 뒤는 부엌이다. 라면 봉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 점심은 라면인 모양이다.
다 됐어.
아빠는 대답하곤 다시 한번 끙 소리 내며 목을 이리저리 돌린다. 달걀이 있던가 집에. 나는 아빠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간다. 라면에 식구 수대로 달걀을 넣어 먹는 것이 우리집에서 부리는 유일한 사치다. 노른자를 휘젓지 않고 덩어리 그대로 익혀서 한 사람 앞에 하나씩. 라면 국물과 달걀을 생각하자 입안에 군침이 돈다. 달걀을 생각할 때, 나는 더이상 부자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10
동생이 갖고 있는 휴대폰은 내가 훔쳐다 준 것이다. 아니, 훔쳤다고 말하긴 좀 애매하고, 가져왔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손님이 고깃집에 두고 간 것이었는데 두어 달이 지나도 찾으러 오는 사람이 없었고 전화도 걸려오지 않았다. 오래된 기종이었고 화면엔 이리저리 금이 가 있었다. 아마 찾기를 포기한 거겠지. 나는 그것을 카운터 안쪽에 처박아둔 채 눈여겨보고 있다가, 몰래 가져와 동생에게 줬다. 동생은 휴대폰을 받고는 꽁지에 불이 붙은 닭처럼 소리를 지르며 구름 위를 뛰어다녔다. 나는 흐뭇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구름 위 또래 아이들 중에서 휴대폰을 가진 아이는 내 동생밖에 없다.
그걸로는 전화도 문자도 할 수 없지만 동생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동생이 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동생은 그 휴대폰으로 인터넷 방송을 본다. 예전에 태양광 패널과 함께 땅 사람들이 설치해주고 간 공공복지 와이파이 덕분이다. 더럽게 느린데 최저화질로 보면 볼 만해. 동생은 뻐기듯 말하며 내게 화면을 들이민다. 웬 빡빡머리 남자가 세숫대야만한 그릇에 가득 담긴 짜장면을 꾸역꾸역 입에 처넣고 있다. 온 얼굴이 짜장면 양념으로 범벅이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휴대폰을 노려본다.
이딴 걸 왜 보냐.
재밌잖아. 봐봐. 이 새끼 짜장면 열 그릇 먹는다.
그걸 다 먹어?
어. 진짜 다 먹어.
동생의 대답은 왠지 의기양양하고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도로 뺏을까.
애들한테 이거 보여주면 좋아서 미친다.
누가.
응?
누가 좋아서 미치는데.
그냥…… 애들.
그제야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동생이 내 손에서 슬그머니 휴대폰을 가져간다.
이딴 거 보지 말고 좀 인생에 도움이 되는 걸 봐라.
어떤 거?
몰라. 알아서 찾아봐.
동생은 휴대폰을 꼭 쥐고는 묵묵히 제 손아귀를 바라본다. 그러다가 불쑥 말한다.
나도 이런 사람 되려고.
뭔 사람?
인터넷 방송하는 사람.
뭐? 개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얘 봐봐. 앉아서 짜장면만 먹는데 돈 진짜 많이 벌어.
얼마 버는데?
어…… 몰라, 아무튼 엄청 많이. 봐봐.후원 터지면 대박이야.
후원? 그런 거 거지들이나 받는 거잖아.
아냐. 후원은 그냥 돈이라는 뜻이야.
동생이 나를 힐끗 쳐다본다. 이런 것도 모르고, 안타깝다는 듯한 눈빛이 스쳐간 것을 나는 알아차린다. 때릴까. 팰까. 흠씬 두들겨 패서 아주 곤죽을 만들어놓을까. 나는 주머니 속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푼다. 동생은 그것도 모르고 다시 휴대폰에 열중해 있다. 음식 씹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대머리 남자가 입안 가득 욱여넣은 짜장면을 꿀떡 삼킨다. 화면 한쪽의 채팅창에선 댓글이 빠르게 올라간다. 가끔 귀퉁이에서 알록달록한 무언가가 팡팡 터지기도 한다. 동생이 그것을 가리킨다.
이게 후원이야.
이게 왜 돈이야?
돈으로 바꿀 수 있으니까.
사람들이 이 새끼한테 돈을 왜 주는데?
재밌으니까.
이게 재밌냐?
동생은 대답하지 않고 실실 웃으며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이번에는 남자가 입속에 든 짜장면을 울컥 뱉었다가, 하얗게 양념이 닦인 면을 다시 입에 집어넣는다. 더럽고 역겹다.
얘 팬 진짜 많아. 방송할 때마다 와서 돈 엄청 주는 애들.
너도 돈 내냐?
내가 돈이 어딨어.
나는 안심한다. 동생에게 용돈을 준 일은 없지만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재밌는 거 하면서 돈 벌고 싶어. 나도 크면 비제이 될 거야.
한마디만 더 해라. 존나 패버릴 거니까.
동생은 목을 움츠리고 휴대폰을 꼭 쥔다. 그러면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 꼴이 더 화가 난다.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남의 후원이나 바라고. 좆 같은 일로 돈 벌 생각이나 하고. 글러 먹었다. 완전히 글러 먹었다. 나는 오른손으로 동생의 머리를 잡아채서 몸통과 팔 사이에 끼운다. 밤톨 같은 머리통을 쿡쿡 쥐어박는다.
아! 아파! 잘못했어!
뭘 잘못했는데?
대답을 들으면 풀어줄 작정이었는데 동생은 얼른 대답하지 못한다. 머리통이 꽉 낀 채 눈알 두 개가 데굴데굴 구른다. 자기가 뭘 잘못해서 맞고 있는 건지를 고민하고 있는 어린애. 이유를 모르겠으면 지어내기라도 해야 그만 맞을 텐데 도무지 말이 떠오르지 않아 괴로운 얼굴을 한 어린애. 동생의 머리통에서 후끈, 열기와 함께 땀 냄새가 올라온다. 동생이 떨어뜨린 휴대폰이 발밑에서 계속 음식 씹는 소리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