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어디에 있어?
이런 식으로 다시 연락하게 될 줄은 몰랐네. 다름이 아니라 조금 전에 수희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전화가 왔어. 모르는 번호라서 받지 않았더니 메시지가 연달아 도착하더라. 수희 담임인데, 수희가 며칠 전 방과후에 학교 체육관 창고에서 같은 반 친구를 폭행했다는 내용이었어. 뭘 어떻게 때렸는지 맞은 애는 의식을 잃어 병원으로 옮겨졌고, 보호자인 누나는 계속 연락이 닿질 않는다면서 나한테 수희 외삼촌 맞으시냐고 묻더라.
무슨 일인가 싶어 통화했어. 담임 말로는 수희가 그 일 이후로 입을 꾹 다물고 있대. 아무리 자초지종을 물어도 대답하질 않는다고 말이야. 같은 반 애들 중에서도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고 했어. 그러더니 죄송하지만 나한테 학교로 와줄 수 있겠느냐고 묻더라. 누나 대신 수희를 다독이면서 정황을 좀 알아봐달라고 부탁했어. 맞은 애 귀에서 피가 한참 흘러나왔는데, 청력에 손상이라도 입었다면 사태가 심각해질 거라면서 말이야. 그 애 부모가 교장실까지 찾아가서 길길이 날뛰었다나봐. 선생들은 대체 뭘 했느냐고, 제대로 처벌해서 본보기를 보이라고 을러댔대. 사정이 이렇다보니 수희한테 참작할 만한 사유마저 없으면 최악의 경우 퇴학 처분이 내려질 수도 있다고 했어.
혼자 거실을 서성이면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데 이마가 점점 뜨거워지더라. 구 년 전이었나. 누나가 전화로 나랑 말다툼하던 끝에 이렇게 말했잖아. 다 집어치우라고, 너랑 입씨름하는 것도 지긋지긋하다고, 이제 정말 그만 보고 살자고…… 그랬던 양반이 무슨 생각으로 딸내미 학교에 제출하는 비상연락망에 전남편도 아니고 내 번호를 적어서 낸 거야?
누나도 알다시피 나는 수희가 태어났을 때 말고 그애를 보지도 못했어. 수희는 내가 누군지, 어떻게 생겼는지 알기나 할까. 그런데 누가 누구를 찾아가서 다독이라는 건지…… 누나는 어디서 뭔 짓거릴 하기에 전화를 안 받는 거야? 또 날건달 같은 놈한테 정신 팔린 거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 음성 메시지 듣는 대로 연락해줘. 마음 같아서는 나도 누나랑 그만 엮이고 싶은데, 남보다 못한 사이라며 모르는 체하고 싶은데 말이야. 수희가 걱정돼서, 하나뿐인 조카가 퇴학당하는 건 막아야지 싶어서 일단 학교로 가볼게. 응? 그러니까 이거 들으면 바로 전화해라. 만에 하나 이런 상황을 다 알고도 연락을 피하는 거라면 너는 진짜 철면피에 구제불능에……
*
이인수는 휴대전화를 옮겨 쥐면서 가까스로 입을 다물었다.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쉰 뒤 화면 속 별표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 나니 목덜미가 뻐근해지면서 두통이 몰려왔다. 이인수는 소파에 눕듯이 기대앉았고 두 눈을 감은 채 한동안 꼼짝하지 못했다. 십여 년 전부터 그랬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신경성 질환으로 쓰러진 뒤, 이인수는 무리해서 일하거나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뇌 안쪽에 미세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발작적인 통증을 느꼈다. 심할 경우 눈앞이 흐릿해지면서 이명까지 들려왔는데, 더는 처방약도 효과가 없어 증상을 견디기만 했다. 그러다보니 이인수는 신체 컨디션을 조절하고 유지하는 데 점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제 몸 하나 건사하느라 심적인 여유랄 게 거의 없는 채로 지내왔다.
삼월 중순, 창 너머로 보이는 뒷산 풍경은 아직 을씨년스러웠다. 잿빛 언덕 위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찬바람이 휑하니 불고 있었다. 하지만 곧 날이 풀리려는지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여느 때보다 휘황한 햇살 아래에서 새들이 모여 앉아 지저귀고 있었다. 외출을 준비하던 이인수는 남색 모직 코트와 검은색 패딩점퍼 사이에서 망설였다. 코트는 작년에 새로 구입한 것으로 주로 학교 강의에 나가거나 출판사 관계자들을 만날 때 입었다. 점퍼는 육 년 넘게 착용한 것으로 편한 지인과의 약속이나 혼자 시장을 다닐 때 입곤 했다. 날씨 앱으로 기온을 확인한 이인수는 아무래도 점퍼를 입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이 이수희와 처음 만나는 날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영 신경쓰였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몰랐으니까. 조카에게 후줄근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진 않았다.
코트를 걸친 이인수는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시 한번 가다듬었다. 채비를 마친 뒤에는 현관 앞에서 머뭇거렸는데, 그것은 학교 폭력 가해자의 보호자가 학교에 방문할 때 무엇을 준비해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혹시 모르니 은행에 들러서 현금이라도 챙겨야 할까. 백만원? 이백만원? 준다면 누구한테 줘야 하지? 상담실에는 주스라도 사 들고 갈까. 수희를 달래려면 뭐가 필요하지?
이인수는 그런 걸 이인애와 상의하고 싶었다. 갑작스레 이런 일에 휘말려 당혹스러웠으나 기왕 한다면 제대로 하고 싶었다. 한 번쯤은 이수희에게 도움이 되고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인수는 학교 폭력 문제에 관해 무지하다시피 했고, 주변에 이런 일을 상의할 만한 지인도 없었다. 소설가이자 시간강사인 이인수의 주변에는 자녀는커녕 결혼한 적조차 없는 싱글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배우자가 있는 경우에도 슬하에 자식을 둔 이는 드물었다. 듣기로는 동거나 결혼식 전에 합의를 마친다고 했다. 정관수술이나 미레나 시술에 관한 후기도 종종 들었다. 그때마다 이인수는 생각했다. 이럴 거면 혼인과 혈연에 의한 가족제도는 무엇을 위해 존속되어야 하지? 동성애와 이성애를 구분할 필요는 뭐야.
현관문을 열자 말갛고 환한 빛과 함께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얼굴 위로 쏟아졌다. 겨울과 봄 사이, 경칩을 지나 춘분을 앞둔 시기의 온화하고도 서늘한 기운이 동시에 피부로 와닿았다. 이인수는 코트 깃을 세운 채 서둘러 비탈길을 내려갔다. 모퉁이를 돌자 건널목에서 기다리던 택시가 비상등을 깜박이는 게 보였다.
*
이수희가 다니는 여자고등학교는 이인수가 사는 동네에서 차로 삼십 분 남짓한 거리에 있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을 줄 몰랐네. 이인수가 작은 창문이 달린 문을 노크하고 열었을 때, 담임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보였다. 본관 이층 복도 끝에 위치한 상담실은 원형 테이블과 의자, 철제 캐비닛이 놓인 조촐한 공간이었다. 담임은 녹차 티백이 담긴 종이컵을 이인수에게 건넸고, 조곤조곤한 말투로 재차 정황을 설명했다. 어제부터 이수희는 수업에 참석하고 있지 않으며 교내 봉사 조치를 받아 강당을 청소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수희한테는 외삼촌이 오실 거라고 얘기해뒀어요. 저랑 반 애들한테는 입도 벙긋하지 않지만 외삼촌한테는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않을까요.”
이인수는 잠자코 듣기만 하다가 학교로 오는 길에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데요. 수희가 전에도 누굴…… 때린 적 있나요?”
담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덩치만 컸지, 내성적인 편이거든요. 제가 작년에도 수희랑 문영이 담임이었어요. 그래서 둘을 좀 알아요.”
좀 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인수가 생각해보는 동안 담임은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아니다. 애들 속을 어떻게 다 알겠어요. 제가 모르는 게 훨씬 많겠죠. 그나저나 수희 어머님은 왜 연락이 안 되는지 아시나요?”
이인수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아마도 여행중일 거예요.”
“여행요?”
이인수는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가 어려서 같이 살 때에도 누나는 걸핏하면 집을 비웠어요. 짧게는 사나흘, 길게는 보름 넘게 연락 두절이었죠. 남자친구들이랑 여행 다니는 걸 좋아했거든요.”
담임은 아, 하면서 눈썹을 실룩여 보였다.
“같이 사셨을 때라면, 부모님도 계셨던 거죠?”
음, 그게, 하면서 이인수는 시선을 늘어뜨렸다.
“제가 늦둥이였는데, 부모님이 사고로 일찍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저보다 열세 살 많은 누나가 엄마 노릇을 해야 했죠.”
담임은 눈을 굴리다가 말했다.
“그럼 두 분이 꽤 애틋하시겠어요.”
그 말에 이인수는 작게 헛웃음을 지었다. 담임이 의아해하는 얼굴로 바라보자 해명하듯 덧붙였다.
“그렇진 않아요. 원래도 사이가 좋진 않았는데…… 아예 연을 끊고 산 지 오래됐거든요. 그러다보니 명색이 외삼촌인데 수희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거기까지 말한 뒤 이인수는 반쯤 남아 있던 녹차를 한입에 털어넣었다. 빈 종이컵을 살짝 구기면서 내려놓았다.
“실은 누나가 저한테 했던 것처럼, 거의 방임하듯이 수희를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했어요. 걱정이야 늘 했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연락을 취하거나 따로 챙긴 적은 없죠. 그러고 보면 저도 참 못된 외삼촌이에요.”
이인수가 구겨놓은 종이컵을 담임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오래지 않아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각자 사정이 있는 거니까요. 이번에 수희 만나시면 그동안 왜 연락을 못했는지 이야기해주세요. 걱정했다는 말도 꼭 해주시고요. 그리고……”
담임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덧붙였다.
“문영이한테 왜 그랬는지도 물어봐주세요. 다들 이 일을 학생들 간의 단순 다툼으로 여기는데요. 제 생각은 달라요. 순전히 느낌일 뿐이지만, 수희가 그랬던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예요.”
이인수는 상담실을 나와 담임이 일러준 대로 강당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이수희가 저지른 잘못에 어떠한 사유가 있어야 벌이 경감될 수 있을지 헤아려보았다. 상대를 기절시킬 만큼 일방적으로 때리고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이유라는 게 대체 무엇일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담임은 폭행의 이유를 알아봐달라고 했다. 이인수는 새삼 그 점이 이해되지 않았다. 순전히 느낌이라곤 했지만 담임은 이수희와 강문영에게서 어떤 낌새를 알아차린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담임은 그동안 무엇을 보고 들었기에 이수희가 강문영을 때린 이유를 알아내고 싶어하는 걸까.
회랑처럼 이어진 긴 통로를 지나자 붉은색 쿠션이 달린 방음문이 보였다. 마침 그 문이 열리면서 푸른빛 셔츠에 포인핸드 넥타이, 회색 치마를 입은 여학생들이 강당을 우르르 빠져나왔다. 여학생들은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이인수를 흘긋 보고는 자기들끼리 속닥이며 곁을 지났다. 그중 한 여학생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앞서가던 여학생을 향해 닥쳐 걸레야, 하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여학생이 아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가 미친년이 또 지랄이네, 하면서 발길질을 했다. 다른 여학생들은 그들을 에워싸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치고받던 두 여학생은 서로 머리를 휘어잡은 채 놔라, 죽는다, 처맞을래, 하면서 옥신각신했다. 결국 수세에 몰린 한쪽이 뒤돌아서 도망치기 시작하자 나머지 여학생들은 낄낄거리며 저 새끼 잡아, 하고 뒤쫓아갔다.
여자애들도 이러고 노는구나…… 이인수는 얼떨떨한 얼굴로 강당에 들어섰다. 이수희는 건너편 연단 위에서 혼자 대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팔다리에 하얀 줄무늬가 그려진 연보라색 체육복 차림이었다. 강당 한복판에는 탁구대와 펜스, 뜀틀, 배구공, 매트 따위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체육 수업을 마친 뒤 정리하지 않은 듯했고, 이인수는 그것들을 피해 강당을 빙 돌아 걸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수희는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걸레질만 하고 있었다. 이인수가 계단을 딛고 연단에 올라섰을 때에야 삐거덕거리는 나무 바닥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