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안녕.”
이인수는 인사를 건네고 흠칫 놀랐다. 가까이서 보니 이수희의 몸집이 자신보다 큰 탓이었다. 키가 족히 백칠십오 센티미터는 되어 보였다. 이수희는 마른 체형이었지만 어깨가 떡 벌어졌고, 양쪽 귀를 훤히 드러낸 쇼트커트여서 체육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대걸레 자루를 움켜쥔 손. 가늘지만 뼈마디가 불거진 두 손을 바라보며 이인수는 생각했다.
저 손에 맞고 기절했단 말이지.
이수희의 단단한 주먹이 힘껏 타격했을 몸을, 그 몸의 주인이 느꼈을 고통을 이인수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학창시절, 같은 반 남자애들에게 둘러싸여 가차없이 얻어맞은 기억 때문이었다. 이십 년도 더 지난 일이었다.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그것이 이수희를 만난 순간에 떠오르다니.
인사도 없이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하는 이수희에게 이인수는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밝혔다. 괜찮으면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 하고 물었는데 이수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인수를 응시하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가 대걸레를 탁 내려놓고는 연단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무슨 얘기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네.”
이인수는 적당히 떨어진 자리에 앉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연단이 꽤 높아서 두 사람의 발이 허공에 대롱거렸다.
“누나가 나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왠지 한마디도 안 했을 것 같은데……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거든.”
이수희는 강당 한복판을 건너다보며 눈만 깜박거렸다.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학교 다니는 건 좀 어떠니?”
“……”
“혼자서 여길 다 청소하는 거야?”
“……”
듣던 대로 이수희가 입을 열지 않자 이인수는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막상 이수희를 마주하니 사건에 대해서 좋지 않은 이야기라도 듣게 될까봐 조마조마했기 때문이다. 그냥 때리고 싶어서 때렸다고 하면 어쩌지. 존나 깝치길래 패버렸다고, 그년은 맞아도 싸다고 하면 어쩌지. 아까 본 여자애들처럼 말이야.
“오늘 내가 왜 왔는지는 알지?”
이인수는 애써 태연하게 질문을 던지면서도 이수희가 계속 침묵하길 바랐다. 그러면서 자신이 폭력의 이유를 알아내고 싶기는커녕 전혀 모르고 싶어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미 저지른 일, 무슨 변명을 해도 소용없을 일. 그렇다면 왜 그랬는지를 알아내기보다 어떻게든 수습할 방안을 마련하는 게 낫지 않을까. 우발적으로 주먹을 휘두르긴 했으나 이수희 학생 역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본디 내성적인 성격으로 다른 물의를 일으킨 적이 없는 점, 교내 봉사를 수행하며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는 점, 부모의 이혼과 잦은 부재로 엇나가기 쉬운 가정환경에서 자란 미성년자임을 고려하여 부디 선처해주십시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이인수는 사건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궁금했던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엄마는 요즘 무슨 일 하니? 누구 만나고 다니는지 알아?”
“연락이 끊긴 지는 얼마나 됐어? 일주일? 열흘? 이번이 처음도 아니지?”
“돈은?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 거야? 네가 얼마나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다른 사람들도 알아야 해.”
바깥에서 바람이 세게 부는지 창틀이 덜커덩하고 흔들렸다. 어디선가 끼익끼익 하는 쇳소리도 들려왔다. 이인수의 채근에도 이수희는 좀처럼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건너편에 널브러진 체육 도구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인수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다고, 그럼 자기가 알아서 상황을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정상참작을 받아서 퇴학은 피해보자고, 너무 의기소침해 있지는 말라고 하면서 이수희의 어깨를 살짝 짚으려다가 말았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별안간 이수희가 고개를 돌리며 이인수를 쳐다보았다.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다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이인수는 적잖이 놀랐으나 이수희가 입을 열어서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살짝 다가앉으며 귀를 기울였다.
“뭐라고?”
“……냐고.”
이수희의 목소리는 조금씩 크고 또렷해졌다. 마침내 온 강당 안에 나직이 울려퍼졌다.
“씨발, 외삼촌이 뭔데.”
이수희는 부릅뜬 눈으로 이인수를 쏘아보았다. 가까스로 감정을 억누르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인수가 당황하여 굳어버린 사이 이수희는 연단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강당 바닥에 착지했다.
“그냥 가요.”
이수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이제 와서 보호자 행세하지 말고.”
그러곤 출구를 향해 내처 걸음을 옮겼다. 이수희는 강당 한복판을 곧게 가로지르면서 걸리적거리는 매트들을 짓밟아 뭉갰다. 펜스는 어깨 위로 들어올려서 던져버렸고, 뜀틀은 팔꿈치로 밀쳐 와르르 무너뜨렸다. 탁구대는 있는 힘을 다해 뒤집어엎었으며, 배구공은 퍽 소리가 나도록 세게 걷어찼다.
이인수는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강당 문이 열렸다가 쾅 하고 닫혔을 때, 이수희가 걷어찼던 배구공은 천장 가까이 치솟았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몇 번이나 튀어올랐다. 이인수는 난장판이 된 강당 한복판에서 배구공이 제 발치로 데구루루 굴러오는 모습을 보았다. 순간 머리 안쪽에서 찌릿한 통증이 일었고, 이인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고개를 떨궜다. 얼마쯤 버티다가 그대로 연단 바닥에 드러눕고 말았다.
두통이 가라앉기를 꼼짝없이 기다리는 동안 이인수의 귓가에는 어떤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누나가 뭔데.
이인수도 그 말을 얼마나 자주 했던가.
너는 나한테 엄마도 뭣도 아니야.
*
이인애와 이인수가 마지막으로 통화한 것은 이인수가 장편소설 공모전에서 당선했을 때였다. 이인수가 소설가로서 첫 책을 출간하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예보에도 없던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오후, 이인애가 이인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오랜만의 통화였고, 이인애는 짐짓 점잖은 투로 안부를 물으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이인애가 자기 이야기를 허락도 없이 소설로 썼다며 볼멘소리로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작중 어머니의 에피소드를 조목조목 나열하면서 자기가 한 적도 없는 일까지 자기가 한 것처럼 써놓으면 어떡하느냐고 분개했다.
“내가 언제 너한테 그런 욕을 했어? 장롱에 가둬놓고 구둣주걱으로 때렸다는 건 뭐야?”
이인수는 소설일 뿐이라고 답했다. 제 감정과 경험이 녹아 있긴 하지만 극화되어 있다고, 서사적 완성도를 위해 하나같이 고안된 장면들이라고, 무엇보다 이인애는 어머니가 아니라고 말했다.
“누굴 바보로 아니? 우리를 아는 사람들은 다 나라고 생각할걸. 널 그렇게 못살게 군 년이 바로 나라고 말이야.”
이인수는 아니라고 거듭 설명하다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구나 싶어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이인애는 그 침묵이 잘못에 대한 인정이라 여기고 한층 언성을 높였다.
“왜 그렇게 나를 미워하니? 네가 그 모양 그 꼴로 사는 게 어째서 전부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너 같은 동생을 둔 내 심정은 헤아려봤어? 이 책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참담했는지 알기나 해?”
“더러워. 기분이 너무 더럽다고!”
이인애가 쏟아놓는 말을 이인수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듣고 싶었던 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책을 통해 이인수가 동성애자임을 알게 되었다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것을 이인애는 끝내 언급하지 않았다. 견고한 벽 같은 것이 느껴졌고, 이인수는 그 벽에 생채기라도 내고 싶어졌다.
“누나, 기억 안 나? 내가 어릴 때 학교에서 애들한테 맞고 오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지도 않았잖아. 오히려 머리를 쥐어박기나 하고, 계집애같이 굴지 말라면서 소리질렀잖아.”
“주말 아침에 거실이나 부엌에서 속옷 차림의 남자들을 마주칠 때마다 내가 무슨 생각 한 줄 알아? 그 남자들이 내 방에도 들어오길 바랐어. 누나보다 잘해줄 자신 있었거든.”
“솔직히 말할게. 누나를 미워한 적 없어. 한 번도 없지. 누나가 뭔데? 너는 나한테 엄마도 뭣도 아니야.”
그 통화를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구 년 넘게 소식을 주고받지 않았다. 당시 이인수는 앞으로 자기가 먼저 이인애에게 연락할 일은 없으리라 여겼다. 다시는 보지 말자고, 죽었다는 소식 외에는 아무것도 전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좋아, 바라는 대로 해주지. 하지만 지금은, 이수희가 씩씩거리며 강당을 박차고 나가버린 지금은 다시 한번 이인애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누나, 어떡해. 조금 전에 수희를 만났는데…… 애가 완전히 제멋대로야. 누나를 닮아서 그런지 대책이 하나도 없어. 성질머리는 왜 이렇게 고약한 거야. 나한테 욕을 하질 않나, 물건들을 집어던지질 않나. 아니 그런데 진짜 수희가 못돼 처먹어서 친구를 때린 거면 어쩌지? 방금 내 앞에서 하는 걸 보니까, 그동안 애들 패고 다녔을까봐 겁이 나. 이러다가 정말 퇴학당하는 건 아니겠지? 난 이제 뭘 해야 해?
이인애의 휴대전화는 여전히 꺼져 있었다. 이인수는 연단 바닥에 누운 채 맥없이 강당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 있으니 아치형으로 한껏 휘어진 부분에 미세하게 갈라진 균열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이었다. 벌어진 틈새로 한 줄기 햇살이 얼비쳤다. 이인수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빛을 응시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강문영을 만나러 병원에 한번 가보자는 생각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강당을 빠져나올 즈음에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