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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기울어 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이인수는 코트 자락을 여미며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택시는 가파른 경사로를 올라 어린이 병동 앞에서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리자 호젓한 산책로와 함께 연갈색 벽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외래 병동은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달리 단층 건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보니 지하로만 육층까지 설계된 특수 병동이었다.
담임이 알려준 번호로 이인수가 전화를 걸었을 때 강문영은 막 진료를 마치고 나온 참이라 했다. 찾아갈 테니 만나줄 수 있겠느냐고 묻자 강문영은 잠시 생각해보는 듯하더니 수납처 인근에 앉아 있겠다고 했다. 어째서 병동 내 카페나 대기실이 아닐까 했는데,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이인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층고가 높은 복도의 한쪽 벽 전체가 LED 화면으로 뒤덮여 있었다. 아무래도 창문을 낼 수 없는 구조를 보완하기 위한 설비인 듯했다. 광활한 화면 위로 하와이의 선셋비치파크, 스위스의 알프스산맥, 파푸아뉴기니의 열대우림 같은 풍광이 제법 실감나게 펼쳐졌다. 다만 구도나 색감이 장식적으로 미화되어 있어서 실제 풍경을 기반으로 한 인공 이미지임을 알 수 있었다. 강문영은 그 화면을 감상할 수 있도록 놓인 장의자에 혼자 앉아 있었다. 이수희와 마찬가지로 연보라색 체육복 차림이어서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안녕.”
이인수가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강문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묵례했다. 강문영은 아담한 체구에 흰 피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어서 순한 양 같은 인상이었다. 그렇지만 이마와 손등에 큼직한 반창고를 붙여두었고, 왼쪽 귀는 멸균 거즈로 꼼꼼하게 테이핑해놓은 상태여서 누가 봐도 환자임을 알 수 있었다.
“입원했다고 들었는데, 왜 여기에 있니?”
이인수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으며 묻자 강문영은 희미하게 웃었다. LED 화면에서 뿜어져나온 빛이 강문영의 머리카락과 볼에 머물다가 스러졌다.
“마지막 검사는 이 병동에서 받았거든요. 이제 결과도 들었으니 퇴원하려고요. 이따가 부모님이 오셔서 수납만 마치면 집에 가요.”
이인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몸은 괜찮니?”
강문영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럼요. 기절 좀 한 거 가지고 입원을 시키질 않나, MRI 검사를 하질 않나. 저희 부모님이 원래 유난이에요. 죄송합니다.”
이인수는 죄송하다는 말에 조금 놀랐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측에게 할 법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자신을 그다지 경계하지 않는 듯한 강문영의 태도에 이인수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귀는 괜찮니? 피가 많이 났다고 들었는데.”
“아, 이거요.”
강문영은 무심코 손을 들어 귀를 만지려다가 다시 무릎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귓등이 찢어졌대요. 그래서 출혈이 있었던 거지, 다른 문제는 없어요.”
“청력에는 지장 없고?”
“네.”
이인수는 조용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심각하게 다치지 않았고, 강문영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하니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강문영의 유난스러운 부모를 설득하는 과정이 남아 있었지만 말이다.
“수희는 좀 어떤가요?”
강문영이 갑자기 물었을 때 이인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 걸 궁금해하리라곤 생각지 못했으니까. 이인수는 글쎄, 하면서 얼버무렸다.
“수희도 많이 놀랐을 텐데…… 걱정돼서요.”
그제야 이인수는 담임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제가 모르는 게 훨씬 많겠죠. 순간 이인수의 머릿속에도 강문영과 이수희 사이에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뭔가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지 않고서야 얻어맞은 사람이 때린 사람을 걱정할 수 있단 말인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이인수는 강문영의 안색을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수희를 왜 걱정하는지 물어봐도 되니?”
강문영은 아, 하면서 입술을 오물거렸다. 팔짱을 끼고는 상체를 앞으로 비스듬히 기울였다. 어느새 바뀐 LED 화면 속에서는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회백색 폭포가 거침없이 쏟아져내렸다. 강문영은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다가 예상치도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소설가시라고 들었어요.”
이인수는 잘못 들었나 싶어 강문영을 빤히 쳐다보았다.
“예전에 수희가 말해줬거든요. 외삼촌이 소설을 쓴다고. 그래서 같이 책도 읽어봤어요. 첫 장편소설이요.”
이인수의 눈이 조금 커졌다.
“놀라셨어요?”
“아, 아니.”
이인수는 작게 헛기침을 했다. 마른침을 삼키고는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수희가 너한테 그런 말을 했어?”
“네, 다른 이야기들도 들려줬고요.”
다른 이야기들이란 무엇일까. 이인수가 좀처럼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LED 화면은 하얗게 변했다가 어느 봄날의 공원 풍경으로 바뀌었다. 시푸른 강물 위에서 한가로이 보트를 타는 사람들과 너른 강줄기를 따라 분홍색 솜사탕처럼 늘어서 있는 벚나무들. 일본의 지도리가후치공원이었다.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운 정경이라 이인수는 기억하고 있었다.
“나왔네. 제가 제일 좋아하는 풍경이에요.”
강문영의 탄성에 이인수는 엷게 미소를 지었다.
“나도 저기 좋아해. 혹시 실제로도 본 적 있니?”
“네, 도쿄에 가족여행 갔을 때요. 그런데 저는 직접 봤을 때보다 이게 더 좋더라고요.”
강문영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좀 인위적이긴 해도 훨씬 아름답고 감동적이랄까. 가끔은 이게 더 진짜같이 느껴져요.”
그럴 수 있나, 라고 이인수가 생각하는 동안 강문영이 말을 이었다.
“이상하죠? 제가 이런 얘기하면 부모님은 관심 끌고 싶어서 헛소리한다고 생각해요. 일부러 괴짜같이 군다고요. 하지만 아니거든요. 정말 좋아서 좋다고 하는 건데…… 저도 제가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강문영의 옆얼굴이 사뭇 쓸쓸해 보였다. 이인수는 아래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 있었던 일을 모티프로 한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서 감동받을 때가 있지 않느냐고, 현실보다 그게 더 진짜같이 와닿을 때가 있지 않느냐고, 그러니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해도 괜찮다고 했다. 좋아하는 마음이 이상할 순 없는 거라고.
“이상할 순 없다라.”
강문영은 그 말을 나지막이 되풀이했다. 오래지 않아 슬며시 웃었고 팔짱을 풀며 이인수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쾌활한 어조로 말했다.
“조금 전에 수희를 왜 걱정하느냐고 물으셨죠?”
강문영은 이인수에게 오른손을 슥 내밀어 보였다.
“비밀 지켜주실 수 있나요?”
이인수는 강문영이 내민 손을, 정확히는 주먹 쥔 손에서 툭 튀어나온 가운뎃손가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비밀이라니?”
“지켜주신다고 하면 얘기할게요.”
이인수는 얼마간 망설이다가 그러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강문영이 고갯짓으로 제 가운뎃손가락을 가리켜 보였다.
“이게 뭔데. 욕하는 거야?”
이인수가 어리둥절해하자 강문영은 피식 웃었다.
“손가락 걸고 약속하자고요. 저는 어릴 때부터 새끼손가락 대신 가운뎃손가락으로 했어요. 뭔가 걸어야 한다면 제일 큰 걸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수희랑도 늘 이렇게 했어요.”
이인수는 내키지 않았지만 강문영이 하자는 대로 가운뎃손가락을 마주 걸었다.
“꼭 지키셔야 해요. 안 그러면 이거 잘리는 거예요.”
강문영이 엇갈린 손가락을 살짝 흔들면서 말했다. 이인수는 고개만 끄덕였다. 강문영은 이인수의 얼굴을 응시하다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LED 화면 속에서는 분홍색 꽃잎들이 슬로모션으로 아른아른 흩날리고 있었다.
“실은 말이죠.”
강문영은 강물 위로 하나둘 떨어져내리는 꽃잎들을 보며 말했다.
“이게 전부 다……”
이인수는 잠자코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제가 원해서 생긴 일이거든요.”
이인수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자 강문영은 조그맣게 숨을 뱉어냈다. 어느새 검게 변한 LED 화면에서 눈길을 돌려 이인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수희는 절 도와준 것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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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동을 빠져나오자 사늘한 냉기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인수는 몸을 움츠리며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후문으로 가기 위해 언덕길을 내려가면서는 또다시 이인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하다가 종료 버튼을 눌렀다. 방금 들은 이야기를 과연 이인애에게 전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비밀 꼭 지키셔야 해요. 이인수는 당장이라도 이수희를 찾아가 사실을 확인해봐야 할까 싶었다. 정말로 강문영이 원해서 벌인 일이냐고…… 대체 너한테 강문영이 뭔데 이런 짓까지 했느냐고.
강문영이 털어놓은 비밀의 조각들로 이인수가 머릿속에서 맞춰본 사건의 정황은 이러했다. 강문영은 자신이 멈추라고 말할 때까지 온 힘을 다해 때려달라고 이수희에게 부탁했다. 물론 멈추라고 말할 생각 따위 처음부터 없었다. 강문영은 심하게 얻어맞고 나면,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로 구타를 당하고 나면 자신의 성향이 바뀔 수도 있으리라 믿었다. 인터넷에서 그러한 경험을 통해 치유된 적 있다는 글을 본 영향도 있었다. 강문영은 낫고 싶다고, 평범해지고 싶다고, 그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이수희에게 거듭 청했다. 이수희는 강문영을 돕고 싶었지만 그런 부탁은 들어줄 수 없다며 거절했다. 정 원하면 다른 사람을 같이 찾아봐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강문영은 이수희를 고집했다. 그동안 이수희와 장난처럼 치고받으며 깨달은 성향이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기절놀이 할 때 네가 내 목을 조른 적 있잖아. 간신히 숨만 쉴 수 있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말이야. 벌칙을 주려고 내 엉덩이를 세게 걷어찬 적도 있지. 그때 허벅지까지 멍이 들어서 너는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나는 좋았어…… 그래서 일부러 내기에서 진 적도 있거든. 강문영은 다른 사람에게 맞거나 욕설을 들을 때에는 조금도 그런 기분이 아니라고 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너한테만 그래. 강문영은 이수희에게도 절반쯤 책임이 있다며 집요하게 몰아붙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정말 낫고 싶은 건지 그저 맞고 싶은 건지 분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탁을 들어주지 않자 강문영은 이수희를 없는 사람 취급하기 시작했다.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어버린 것은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일절 알은체하지 않았다. 다른 여학생과 보란 듯이 어울려 다니기도 했다. 이수희는 강문영을 잃게 될까봐 끙끙 앓다시피 했다.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이수희는 강문영이 원하는 대로 했다.
이인수는 머리가 지끈거리며 쑤셔오는 것을 느꼈다. 비틀대며 걷다가 겨우 벤치를 찾아 앉았다. 하루에 세 번이나 두통을 앓은 건 처음이었다. 이러다가 뇌졸중이라도 생기는 것 아닐까. 이인수는 호흡을 고르면서 통증이 잦아들길 기다렸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러자 머리 위로 길게 뻗은 나뭇가지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줄기마다 연분홍색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었다. 올해 벚꽃의 개화 시기가 사월 중순이라 들었던 것 같은데, 이 나무는 어쩌다가 벌써 꽃을 틔웠을까. 주변을 둘러보니 새순조차 돋아나지 않은 앙상한 관목들뿐이었다. 목련조차 꽃망울을 맺지 않은 시기였다. 희한하네. 이인수는 메마르고 황량한 언덕에서 저 홀로 해사하게 만개한 벚나무를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신기해…… 이런 일도 있구나.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꽃구경을 하던 이인수는 코가 간질간질하여 연거푸 재채기를 했다.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천천히 닦아냈다. 그러고 있으니 문득 이수희를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오늘이 아니고 아주 오래전, 이수희가 태어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날 저녁 이인수는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산부인과로 향했다. 면회 시간이 끝나 이인애를 만나지는 못했으나 지하 이층 접견실에서 두터운 유리벽 너머로 이수희를 처음 보았다. 투명한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긴, 우윳빛 무명천으로 여러 겹 감싸인, 쪼글쪼글하고 불그스름한 아기였던 이수희를. 그날 이인수는 갓난아이였던 이수희를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 생명이란 참으로 비현실적이구나, 하고 놀라워했다. 동시에 이 아이만큼은 자신이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난생처음 타인을 향해 그러한 마음을 느꼈다. 그날의 감정이 어째서 이 순간 다시금 일렁이는지 모르겠다고 이인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바람이 불어 벚나무 가지들이 잘게 요동쳤다. 이인수의 머리 위로 꽃잎들이 난분분 떨어져내렸다. 그중 하나가 느릿하게 팔랑거리며 눈앞에 긴 궤적을 남겼다. 순간 이인수는 무슨 생각이랄 것도 없이 손을 뻗었다. 그것을 꽉 움켜쥐었다. 손안에 여린 꽃잎의 감촉이 생생했다. 그렇지만 얼굴 앞으로 가져와 손가락을 하나씩 펴보았을 때, 조금 전까지 선명했던 감각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인수는 황망한 얼굴로 빈손을 내려다보았다.
“여기서 뭐해요?”
그때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인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는데, 순간 시야가 흐릿해지면서 머릿속이 핑 돌았다. 두통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했다. 이인수는 이마를 짚은 채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목전에서 연보라색 실루엣이 어른거렸다.
“괜찮아요?”
상대가 내민 손을 이인수는 얼결에 부여잡았다. 가늘면서도 단단한, 뼈마디가 불거진 손이었다.
“움직일 수 있겠어요?”
이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자세를 바로잡지 못해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는데 상대가 용케 이인수를 부축해주었다. 이인수의 팔꿈치를 받치고 어깨를 살포시 감쌌다. 결국 이인수는 상대에게 안기다시피 의지하여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좁은 보폭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꽃잎들이 성긴 눈처럼 휘날렸다. 이인수는 언덕길을 내려가는 내내 맞잡은 손을 꼭 쥐었다. 다시는 놓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후문에 가까워질수록 길은 완만하게 펼쳐졌다. 나뭇가지 끝에서 휘파람새가 작게 울었다. 어느덧 두통이 가셨을 때 이인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봄이 지척에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