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플로우 (1)

 

한창 주식 차트를 보고 있는데 여자 두 명이 플로우에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여자들은 카페 안을 둘러보다 창가 쪽으로 향했다. “손님!” 나는 다급히 여자들을 불렀다.

“지금 건물 문제로 창가 쪽에 물이 새서요. 죄송하지만 다른 곳에 앉아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여자들은 그제야 창가 테이블 옆에 놓인 플라스틱 양동이를 발견하고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곳만이 아니었다. 단체석 테이블과 출입문 옆자리와 카페 가장 안쪽 자리에도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블랙 앤드 화이트로 꾸민 모던한 인테리어와 어울리지 않는 형광 파랑의 플라스틱 양동이들이 카페 곳곳에 놓여 있었다.

“아.”

여자들은 자기들끼리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더니 말했다.

“다음에 올게요.”

그리고 여자들은 나갔다. 나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오늘만 벌써 세번째였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카페라니, 나 같아도 그런 카페에 앉아 있고 싶지는 않을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건너편의 대형 카페 노트 프롬 런던을 보았다. 방금 나간 여자 두 명이 그 카페에 들어가고 있었다. 씨발. 욕을 해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이게 다 그 멍청한 관리소장 새끼 때문이었다.

물이 떨어지기 시작한 건 이 주 전이었다. 여름이 끝나가는데도 장맛비가 그치지 않은 날이었다.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이 카운터에 와서 바닥에 물이 흥건하다고 말했다. 나는 손님에게 죄송하다며 피낭시에 두 개를 서비스로 줬다. 건물이 오래되어 창틀에서 비가 새는 줄 알았다. 우선 관리소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창틀에서 비가 샙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관리소장은 답이 없었다. 창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안 건 다음날이었다. 비가 그친 후에도 창가 쪽에서 물이 흘렀다. 나는 손님에게 또 서비스로 피낭시에를 줬다. 하나에 삼천칠백원짜리를 두 개나. 영업을 마치고 창가 쪽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물은 창틀이 아니라 벽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천장에서. 나는 관리소장에게 다시 연락을 넣었다.

—창틀이 아니라 천장에서 물이 떨어집니다. 언제 오실 수 있나요?

다음날이 되어서야 관리소장에게서 답장이 왔다.

—이틀 후에 가겠습니다.

관리소장이 왔을 때는 테이블 열 자리 중 세 자리나 사용하지 못하게 된 후였다. 나는 관리소장에게 물이 떨어지는 천장을 가리켜 보이고는 지난 며칠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관리소장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물이 떨어지는 천장을 살펴보았다.

“건물주님한테 말씀드릴게요.”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관리소장한테서는 아무 연락도 없었다. 매일 새로운 곳에서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이소에서 플라스틱 양동이를 사와 물이 떨어지는 곳 아래에 두었다. 나는 다시 사진을 찍어 관리소장에게 보냈다. 관리소장은 건물주가 답장을 안 줬다는 말만 했다. 내가 직접 연락해볼 테니 건물주의 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자 관리소장이 말했다.

“건물주님의 개인정보는 드릴 수 없습니다. 하실 말이 있으면 저한테 하세요.”

매번 똑같았다. 플로우를 오픈하고 지난 이 년 동안 임대인인 건물주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계약을 할 때도 관리소장이 대리인으로 와서 도장을 찍었고 건물에 문제가 있을 때도 관리소장이 확인했다. 관리소장이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었으면 건물주가 얼굴을 비치든 말든 상관없었을 것이다. 건물을 여러 채 가진 건물주들은 관리인을 따로 둔다고들 하니까. 문제는 관리소장이 건물을 관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건물 공용 화장실의 변기가 막혔을 때도 관리소장은 하루종일 전화를 받지 않았다.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는 건 손님뿐 아니라 나에게도 불편한 일이었기에 나는 우선 내 돈으로 수리를 한 후 관리소장에게 수리비를 청구하는 문자를 보냈다. 관리소장은 그제야 전화를 해서는 “이층은 공실이라 화장실 쓰는 건 그쪽뿐인데, 그쪽에서 수리해야죠”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일주일 동안 관리소장과 실랑이를 했지만 결국 수리비를 받지 못했다. 이후로도 공용 화장실의 변기는 종종 막혔고, 나는 그때마다 내 돈으로 변기를 수리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진다니, 이건 분명 건물 문제 아닌가. 무슨 일이 있어도 수리비를 받아야 했다. 우선 내 돈으로 수리하고 비용을 청구하겠다고 관리소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곧 답신이 왔다. 절대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거래하는 업체가 있다면서. 언제 올 수 있냐고 묻자 대답이 끊겼다.

골머리를 앓는 사이, 차트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삼만원을 뚫지 못하던 녀석이 드디어 삼만원을 뚫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 따위는 잊고 노트북 화면에 온 신경을 쏟았다. 삼만원을 뚫는 데는 한세월이 걸리던 놈이 순식간에 매도를 걸어놓은 삼만이천원을 넘었다. 아싸!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거의 사만원이나 이득을 봤다. 오늘 오전 치 매출은 벌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놓였다.

카페는 갈수록 적자였다. 원래였으면 성수기라 평일 하루 매출이 사십만원은 나와줘야 하는데, 바로 건너편에 대형 카페가 새로 생긴데다 천장 누수 때문에 손님들이 오지 않아 매출이 십만원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주식이라도 안 했더라면 월세니 관리비니 전기 사용료니 재룟값이니 뭐니 하는 것들 때문에 꼼짝없이 빚만 늘었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주식에만 기댈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야 했다. 나는 서랍에서 임대차 계약서를 꺼냈다. 건물주의 전화번호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이름과 주소는 적혀 있었다. 관리소장이 계속 이렇게 무시로 일관하니 나도 강경책을 써야지 어쩌겠는가. 나는 물이 새는 카페의 모습과 임대차 계약서의 관리비 항목을 휴대폰으로 찍었다. 소장과 주고받은 메시지도 캡처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노트북으로 옮겼다.

 

수리를 요청하는 글을 써서 프린트한 뒤 사진들과 함께 건물주의 주소로 보냈다. 일주일이 지났다.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관리소장에게서조차. 슬쩍 떠보기 위해 관리소장에게 건물주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냐고 물었지만 곧 사람을 불러준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그사이 누수는 더 심해져 테이블 열 자리 중 절반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창가 쪽은 물이 흘러내리는 수준이었다. 노트 프롬 런던은 점점 사람이 늘었다. 인스타와 유튜브에 ‘비행기 안 타고 갈 수 있는 런던’이라는 식으로 글과 영상이 올라오더니 핫플이 된 듯했다. 주말에는 웨이팅까지 있었다. KTX 타고 지나가면서 봐도 바이럴 글이겠던데. 카페 바로 맞은편에 카페를 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바이럴까지 돌리다니, 너무 치사한 것 아닌가? 나는 노트 프롬 런던을 살펴보았다. 통창 너머로 손님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스무 명은 족히 넘는 듯했다.

카페가 저렇게 크니까 임대료도 비싸고, 전기세도 많이 나오고, 직원들 월급도 엄청 나가겠지. 바이럴에 쓰는 돈도 많을 거고. 정작 순이익은 얼마 되지 않을 거야. 한 달도 안 갈걸? 오픈빨 빠지면 월세랑 직원들 월급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온갖 저주를 퍼붓다 나만 비참해지는 기분이 들어 그만두었다. 노트 프롬 런던에 비하면 플로우는 너무 작고 초라했다. 물이 새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하얀색으로 페인트칠한 벽은 곳곳이 오염물로 착색되어 있고 검은색 테이블은 기스로 희끗희끗했다. 건물 자체도 문제였다. 주택을 개조한 건물은 한눈에 보기에도 낡고 지저분했다. 관리라도 잘하면 모르겠는데 관리소장이라는 놈은 대충 건물 안만 청소할 뿐 외벽에는 신경도 안 썼다. 비가림막은 깨져 있고 테라스 쪽 울타리에는 거미줄까지 쳐져 있었다.

카페를 그만두는 게 맞을지도 몰라.

아무리 일해도 몸만 축나고 돈도 벌리지 않는데 카페를 계속할 필요가 있을까? 문득 희재가 떠올랐다. 카페를 그만두고 자신처럼 복지 혜택을 찾아서 살라던.

설령 카페를 접는다 하더라도 결코 희재처럼 살지는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그건 사지 멀쩡하면서 일도 안 하고 복지만 받아먹는 세금 도둑이지 않은가. 내가 돈을 빌려주지 않겠다고 한 이후로 희재는 수영장에 나오지 않았다. 연락도 없었다. 안 그래도 얼굴 보기 껄끄러웠는데 알아서 사라져준 것이 다행이었다.

밤 아홉시가 되어 간판의 불을 껐다. 영업을 마감해도 카페 청소, 그라인더와 머신 세척, 양동이 물 비우기 등 할일이 잔뜩이었다. 다 끝내고 집에 도착하면 열한시. 운동이고 취미생활이고 할 틈도 없이 씻고 자야 했다. 매출이 줄어 아르바이트생을 쓰지 못하게 되는 바람에 오전부터 출근해야 했으니까. 이런 삶을 살게 된 지 어느덧 한 달이나 되었다. 그나마 취미였던 수영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하루 있는 휴일도 근수를 불러 집에서 쉬는 게 전부였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포스기 마감을 했다. 오늘 매출은 팔만사천오백원. 이 정도 수익으로는 내 몫은커녕 월세도 낼 수 없었다.

접자.

엉망으로 엉켜 있던 끈이 팽! 하고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카페를 접기로 결심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희망이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참에 제대로 경제 공부를 하는 거다. 주식이든 코인이든 부동산이든. 미리가 한 말이 맞다. 요즘 세상에 누가 일해서 돈을 버니? 이 년 만에 만난 미리는 그렇게 말했다. 돈을 벌고 싶으면 주식, 코인, 부동산 셋 중 하나를 하거나 세 개를 다 해야 한다고. 미리는 이 년 전에 결혼을 하면서 산 아파트가 이억이나 오른 덕분에 대출을 다 갚고도 몇천이 남았다고 했다. 부동산 카페에서 재건축 이슈가 있는 지역을 미리 봐뒀다며 지금 아파트도 곧 팔고 그곳에 아파트를 살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대출이니 이자니 그런 거 무서워하면 아무것도 못해.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대출받았어야지. 야수의 심장 몰라?”

미리는 결혼하면 무조건 재테크를 해야 한다며 주식과 코인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려주었다. 미리의 말을 들을수록 내가 바보 같았다. 이 년 전에는 분명 미리와 나의 처지가 비슷했다. 하지만 지금 미리에게는 아파트가 있고 나에게는 망해가는 카페만 있다. 이 년 전에 카페를 여는 게 아니라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샀더라면 지금쯤 나도 몇천은 벌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속이 쓰렸다. 신혼집을 전세로 계약한 것도 후회됐다. 대출을 풀로 받아서라도 매매를 할걸. 미리 말대로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무조건 오르기 마련인데.

그후로 미리에게 물어가며 주식을 시작했다. 잃을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소액이라 타격이 크지는 않았다. 미리는 처음에는 다 잃어가며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미리가 추천한 책을 통해 단타니 장타니 하는 단어도 배우고 차트 보는 법, 호재 찾는 법도 배웠다. 한 달 정도 지난 후부터는 작게나마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하루에 오천원, 운이 좋은 날은 오만원까지도. 미리는 내가 주식에 재능이 있다고 했다. 이참에 오픈 카톡 채팅방에도 들어와보라고 링크까지 보내줬다.

다들 이런 식으로 돈을 벌고 있었구나.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느낌이었다. 오픈 카톡방에는 생각보다 내 또래 여자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전업으로 주식과 코인만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남편이 벌어오는 돈보다 자신이 재테크로 버는 돈이 더 많다고 하기도 했다. 카톡방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과 정보들을 들으며 내가 지금껏 헛수고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이야 열심히 일하면 돈을 벌 수 있었겠지만 미리의 말대로 세상이 달라졌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투자를 해야 했다. 경제 공부도 안 하고 재테크도 안 하면서 세상이 불공정하니 노력해도 가난하니 하는 사람들은 멍청한 사람들이었다. 아니, 최소한의 노력도 안 하는 게으름뱅이들이었다. 마르크스? 라는 사람도 말했다지 않은가. 돈이 돈을 낳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