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 개월 내로 건물에 이상이 생기면 류아씨가 다 책임지셔야 하는 거 아시죠?”
부동산 실장이 말했다. 가게를 내놓은 지 하루 만에 연락이 온 것인가 싶어 설렜던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처음 듣는 소리인데요.”
내 말에 실장은 “내가 어제 말하는 걸 깜빡했나보다”라며 웃었다.
“무슨 문제 있으면 빨리 처리해두세요. 언제 나갈지 모르니까.”
실장이 건물의 누수 문제를 알고 있나 싶어 뜨끔했다. 우선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큰일이었다. 가게를 접으면 이 골치 아픈 일에서 다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고민을 하다 관리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관리소장은 세 통째 걸었을 때에야 전화를 받았다.
“어차피 부동산에 내놨다면서.”
그래도 가게가 언제 나갈지도 모르는데 이대로는 못 지낸다, 그냥 내가 아는 업체에 수리를 맡기고 수리비를 청구하면 안 되냐고 말하자 관리소장은 그러면 수리비를 반반씩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게 어디 있냐 따졌지만 관리소장은 막무가내였다.
“그럼 언제 오시는데요?”
“그, 업체가 바빠서 다다음 주나 되어야 가능하대요.”
다다음 주라니. 그때까지 가게 매출은? 아무리 가게를 내놓았다 해도 그전까지 카페를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의 매출은 나와야 하지 않는가.
“건물주님은 아무 말 없으세요?”
관리소장은 이번에도 건물주님이 자신에게 다 맡겼으니 자신하고 연락하면 된다고 답했다. 이렇게 손놓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건물주랑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야 코인 지금 대박 올랐어. 당장 매도 ㄱㄱ
미리의 연락에 급하게 코인 거래소에 들어갔다. 미리가 추천했던 코인이 매수했던 가격의 두 배 넘게 올라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입구 쪽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하던 손님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죄송하다고 말한 뒤 다시 노트북 화면을 확인했다. 수익금이 이백만원이 넘었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지금 팔까? 더 묵힐까? 미리는 지금이 매도 타이밍이라고 했다. 곧장 매도를 걸었다. 코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절반이나 떨어져 백만원 손해였는데, 미리의 말을 듣고 팔지 않은 것이 잘한 선택이었다.
카페를 부동산에 내놓고 본격적으로 코인을 하기 위해 비상금을 모두 코인 거래소에 집어넣었다. 근수에게는 비밀이었다. 근수는 주식을 하는 것도 싫어했으니까. 재테크는 어디까지나 노동으로 돈을 벌면서 여윳돈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근수의 지론이었다. 자영업을 해보지 않았으니 할 수 있는 소리였다. 일을 해도 해도 몸만 축나고 빚만 쌓일 수 있다는 것을 근수는 이해하지 못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이 근방의 가게들이 대부분 폐업했다. 아직 영업중인 가게들도 거의 부동산에 올라온 상태였다. 빈자리에는 프랜차이즈 영업장이 들어오거나 있는 집 자식들이 가게를 차렸다. 노트 프롬 런던처럼. 부동산에 가게를 내놓으러 갔을 때, 부동산 실장이 노트 프롬 런던의 사장은 평창동에 사는데다 차도 벤츠라고 알려줬다. 하긴, 애초에 영국 유학 시절에 자주 가던 카페를 재현한 콘셉트라는 것부터 있는 집 자식이라는 뜻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으로 돈을 벌라니.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였다. 그런 점 때문에 근수를 만나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결혼을 전제로 소개를 받았을 때 내가 내건 조건은 하나였다. 내가 자영업을 하니 남자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어야 할 것. 그런 점에서 제약회사 정규직인 근수는 적당한 남편감이었다. 외모도 나름 호감형이었고, 지금까지 모아놓은 돈이 꽤 있다는 것도 플러스로 작용했다. 첫 월급을 받았을 때 시작한 적금이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근수와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근수와 결혼하면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쉬운 건 그게 장점이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큰돈을 만지려면 가끔은 도박을 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근수는 그렇지 않았다. 결혼 후에 살 신혼집을 전세로 구한 것도 근수 때문이었다. 대출 이자와 금리 등을 생각하면 지금 시기에 빚을 내서 집을 사는 것은 위험하다나.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어서 근수의 의견에 따랐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건 신중한 게 아니라 미련한 짓이었다. 나중에 아이도 낳아서 기르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돈이 필요할 텐데. 이자가 높더라도 대출을 최대로 받아서 아파트를 샀어야 했는데. 미리의 말처럼 아파트는 무조건 오르니까.
근수가 재테크를 하지 않으면 나라도 해야 해. 통장에 들어온 돈을 보며 다짐했다. 나는 미리에게 덕분에 많이 벌었다며 고맙다고 카톡을 보냈다.
—나만 믿지 말고 너도 공부 열심히 해. 주식이든 코인이든 남의 말만 믿고 하면 큰일난다.
미리는 매번 이런 식으로 대답했다. 그래서 오히려 미리에게 신뢰가 갔다. 그래, 공부를 해야 했다. 매일 사회 정치 경제면 뉴스도 챙겨 봐야 하고, 주식이나 코인 차트를 보며 플로우를 읽어야 했다. 꾸준히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할일이 많았다. 웬만한 사무직들의 업무량과 비교해도 절대 덜하지 않은 노동이었다.
띠링. 관리소장에게서 문자가 왔다. 월세 고지서와 관리비 고지서였다. 기가 차서 웃음이 나왔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도 해결해주지 않으면서 월세와 관리비는 꼬박꼬박 받아먹겠다고? 절대 그렇게는 못하지. 휴대폰을 보았다. 마침 오늘이 토요일이라 내일은 휴일이었다. 나는 임대차 계약서를 꺼내 건물주의 주소를 확인했다.
지도 앱을 보며 계약서상 주소로 찾아갔다. 낡고 허름한 주택이었다. 다시 한번 주소를 확인해보았다. 이곳이 맞았다. 정말 여기가 건물주의 집이라고? 철문 사이로 집안을 들여다보았다. 작은 앞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주택의 창문은 먼지로 뿌옜다. 사람 사는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대문 옆 우편함에는 우편물들이 가득차 있었다. 우편물들을 꺼내보았다. 부동산이나 건설사에서 보낸 우편과 분양 홍보물 같은 것들뿐이었다. 우편함 아래 놓인 아이스박스가 눈에 띄었다. 박스를 열자 그 안에도 우편물들이 들어 있었다. 내가 보낸 편지는 거기 있었다.
혹시나 해서 문 앞에서 한참 동안 기다렸다. 누구 하나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않았다. 밤이 되었는데 집안에 불이 켜지지도 않았다. 개를 산책시키는 노인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도 봤는데 왜 계속 여기에 있냐는 것이었다. 집주인에게 볼일이 있다고 하자 노인은 이 집은 사람이 안 산다며 아주 가끔 관리하는 사람이 와서 청소만 하고 간다고 말하고는 떠났다.
나는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온갖 생각이 들었다. 임대인은 건물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수리를 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건 법으로 보장된 것이다. 그래서 관리비를 받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 건물주는 자신의 의무를 회피하고 있다. 이건 불법이야. 맞아. 불법이라고. 내가 만만해 보이나보지? 젊은 여자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아나보지?
어차피 가게도 내놓았겠다, 이판사판이었다. 휴대폰에 변호사 온라인 상담 앱을 설치했다. 계약서의 내용과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모두 정리해 글을 올렸다. 한밤중인데도 답글이 달렸다. 변호사는 임차인의 돈으로 누수를 수리한 뒤 임대인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작년 한 해 동안의 가게 매출 내역, 손님들이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매장을 나가는 CCTV 영상 등을 증거자료로 제출하여 손해배상까지 청구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근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떻게 되었냐는 근수의 물음에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하며 소송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혼식도 얼마 안 남았는데 소송하는 게 괜찮은 일일까?”
근수는 소송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눈치였다. 근수에게 물었다.
“그럼 어떡하라고?”
“그냥 우리 돈으로 수리하고 청구서 보내놓고 기다리자. 설마 돈을 안 주겠어? 건물주라는 사람한테는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일 텐데.”
얼마 되지도 않는 돈. 그 말을 듣자 속에서 뭔가가 폭발했다. 그 얼마 되지도 않는 돈 때문에 매일 피가 말리는데. 어떻게든 손해 메꾸려고 주식이고 코인이고 지랄을 하고 있는데. 나는 이번달 매출이 얼마인지 아냐며, 월세도 내지 못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근수에게 하지 못한 얘기였다. 근수는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나 가게 내놨어.”
나는 그만 충동적으로 내뱉었다. 조만간 말하려고 했지만 이런 식으로 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근수는 “진짜?”라고 하고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뒤 물어왔다.
“그럼 이제 무슨 일 하게?”
이 년을 운영해온 가게를 내놨다는데 처음으로 하는 말이 그거라니. 나는 튀어나오려는 말들을 속으로 삼키고 우선은 좀 쉬면서 재테크를 공부하려 한다고 말했다. 사실 얼마 전부터 조금씩 하고 있는데 수익도 나고 있다고.
“그래, 좀 쉬면서 천천히 생각해봐.”
근수의 목소리에는 당황스러움이 가득 묻어 있었다. 그후로 우리는 의미 없는 대화만 몇 마디 주고받고는 전화를 끊었다. 똑, 똑. 어디선가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스타그램에 휴무 공지를 올렸다. 매장 안은 바닥이 물로 흥건해 엉망이었다. 아침부터 또 비가 내린 탓이었다. 벽에서 물이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폭포 콘셉트의 카페라 일부러 이렇게 만들어놓은 것처럼 보이겠다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관리소장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바닥의 물을 닦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누수 수리 업체를 부른 건 며칠 전 월요일 아침이었다. 수리 기사는 가게 안을 이곳저곳 살펴보더니 “이거는 여기 문제가 아니라 건물 자체가 문제라 위층을 좀 봐야겠는데요”라고 말했다. 위층은 공실이라 잠겨 있었고, 열쇠는 관리소장이 가지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관리소장에게 연락했다. 관리소장은 자기가 업체 불러준다고 했는데 왜 그새를 못 참고 마음대로 행동했냐며 화를 냈다. 나는 고쳐달라고 한 지 몇 주가 됐는데도 안 고쳐주니까 그런 거 아니냐, 피해 보상 소송할 거다, 라고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결국 관리소장이 알았다고 말했고, 나, 관리소장, 수리 기사 셋이 오늘 두시에 플로우에 모이기로 했다.
수리 기사는 약속 시간에 정확히 맞춰 도착했다. 관리소장은 두시 삼십분에 왔다. 나는 벽에서 흐르는 물길과 바닥의 물을 자랑스러운 양 가리켜 보였다. 관리소장은 “허, 참”이라고 할 뿐이었다. 우리는 함께 이층으로 향했다. 계단에도 물이 흘러 있어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난간의 손잡이를 꼭 잡고 걸어야만 했다. 관리소장은 열쇠 꾸러미를 한참 뒤적거린 후에야 이층 열쇠를 찾아냈다. 관리소장이 열쇠를 넣고 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문이 열렸다. 그러자 둑이 터지듯 안에서 물이 쏟아져나왔다. 문 앞에 서 있던 관리소장과 나, 수리 기사는 피할 새도 없이 물을 맞았다. 순식간에 바지 밑단과 신발이 모두 젖어버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어안이 벙벙한 채 서 있는데 수리 기사가 “아이고” 하며 말했다.
“이러니까 아래층이 물난리가 나지. 이거 봐요, 수영장도 아니고 무슨 건물에 물이 이렇게 차 있어.”
수리 기사가 혀를 찼다. 관리소장은 “여기가 왜 이러지” 하며 딴청 피우듯 말했다. 수리 기사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가더니 벽과 천장을 살펴보았다. 관리소장도 따라 들어가서는 거드는 척했다. 나는 문밖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내부를 살펴보던 수리 기사가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완전 빵꾸 뚫렸네.”
관리소장이 수리 기사가 가리킨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뭐라 더 이야기를 나눴다. 관리소장이 먼저 밖으로 나왔고, 수리 기사는 내부를 조금 더 살펴본 후에 나왔다. 수리 기사는 건물이 오래되어 천장에서 비가 다 새는데, 그게 이층 방 안에 고여서 일층에까지 흐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수도관도 터졌을 거라고.
“얼마나 확인을 안 했길래 물이 이렇게 차도록 몰라요?”
수리 기사의 말에 관리소장은 “내가 관리해야 하는 건물이 한두 개도 아니고…… 공실이니까 신경 안 쓰고 있었지”라고 중얼거렸다.
“수리하는 데는 얼마나 걸려요?”
내 물음에 수리 기사가 손사래를 쳤다.
“이거 수리하려면 하루 날 잡아야 하는데 오늘은 비 때문에 못해요. 비 그쳐야지 할 수 있지.”
“네?”
당황해하는 내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리 기사는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 가게는 저 상태로 둬요? 이번주 내내 비 온다는데. 보셨잖아요, 장사 못하는 수준인 거.”
수리 기사는 그럼 비가 오는데 어떡하냐고 하더니 관리소장에게 말했다.
“그쪽에서 보상이라도 좀 해줘요. 건물 관리 안 해서 이 아가씨만 피해 입은 거구만.”
나는 관리소장을 바라보았다. 관리소장은 우물쭈물하면서 건물주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당연히 보상해주셔야죠. 저 지난 일 년 매출이 얼마였는지, 지금은 얼마나 떨어졌는지 다 뽑아뒀어요. 카페에 물 흐르는 거 동영상도 찍어뒀고 여기 사진도 찍어둘 거예요. 보상 안 해주면 소송할 거예요.”
관리소장은 그제야 알겠다며 건물주에게 최대한 잘 말해보겠다고 했다.
수리 기사가 먼저 떠났고, 관리소장은 내가 이층 사진을 찍는 것을 지켜보더니 자신한테도 보내달라 했다. 나는 관리소장에게 사진을 전송한 뒤 다시 플로우로 내려갔다. 바닥은 여전히 물로 흥건했다. 내일 영업을 하려면 닦아야 했지만 그럴 기운이 나지 않았다. 비가 그칠 기미도 없어 보였다. 청소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노트북을 열어 코인 거래소에 들어갔다. 마이너스였다. 저번에 벌었던 돈뿐 아니라 원금까지 손실이 나고 있었다. 오픈 카톡방에서 나와 같은 코인을 산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오히려 지금이 매수 타이밍이라면서 코인을 더 산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고민을 하다 나도 물타기를 했다. 신혼여행을 위해 모아둔 돈이지만, 안 잃으면 되는 것 아닌가. 조금 잃는다 해도 나에게는 건물주에게 받을 피해 보상금이 있다. 이백만원 정도의 손실까지는 수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