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플로우 (마지막)

관리소장에게서 연락이 온 건 삼 일 후였다. 나는 그동안 평소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나와서 이층에 고여 있는 물을 양동이로 퍼 날랐다. 하지만 플로우에 흐르는 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매일 비가 내리고 있으니 당연했다. 손님이 한 명도 없을 때면 나 혼자 물속에 갇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영을 할 때는 물속에 있는 것이 그리도 상쾌했는데, 카페 안에서는 꼭 수장을 당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관리소장은 문자로 할 말이 아니라며 통화를 하자고 했다. 전화를 걸자 관리소장이 말했다.

“수리비는 우리 쪽에서 다 부담할 테니까 영수증 받아두세요.”

드디어!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드디어 끝이었다. 이 지긋지긋한 물하고도, 멍청한 관리소장하고도. 이대로 매장을 넘기고 나가면 나는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관리소장이 한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피해 보상 말인데, 그건 좀 어려울 거 같아.”

“왜요?”

내가 따져 묻자 관리소장이 말했다.

“아가씨, 주인집 찾아간 적 있지?”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요?”

심장이 철렁했다.

“아니 내가 대문 CCTV 보니까 집 앞에서 몇 시간 동안 서 있으면서 우편물도 다 뜯어보고 그랬더만. 그거 스토킹인 거 몰라?”

스토킹이라니,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우편물은 겉봉투만 봤지 뜯어보지도 않았는데. 나는 그게 어떻게 스토킹이냐고 물었다. 관리소장은 이미 변호사 통해서 알아본 거라고 했다.

“특히 미성년자 스토킹은 처벌 높은 거 알지? 괜히 문제 크게 만들지 말자고.”

관리소장의 목소리에는 뻔뻔함이 묻어 있었다. 무슨 말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계약서에 임대인이 1970년대생으로 쓰여 있는데 어떻게 미성년자예요.”

“그건 전 주인이고. 작년에 아들한테 증여해서 건물주가 바뀌었어.”

처음 듣는 소리였다. 황당하다못해 화가 났다.

“건물주가 바뀌었으면 저한테도 알려주셨어야죠.”

내 말에 관리소장은 기분 나쁘게 웃었다. 내가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듯이.

“어차피 관리도 다 내가 하고 있고 계약 기간도 남아 있는데 뭐. 그리고 임대인이 바뀐 거를 임차인한테 고지할 의무도 없거든.”

말문이 막혔다. 내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자 관리소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대신 이번달 월세랑 관리비는 면제해줄게. 그걸로 퉁치자고. 그럼 됐지?”

무슨 대단한 선심이라도 쓰는 듯한 말투였다. 관리소장은 그렇게 알고 있으라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코인은 계속 하락세였다. 피해 보상금만 믿고 있었는데, 근수에게는 뭐라고 말해야 하지? 고민하다 미리에게 연락했다. 지금 살 만한 코인이 있냐고 묻자 미리는 “그런 거 알려주면 서로 의만 상해”라면서 대신 믿을 만한 정보가 가득하다는 새로운 오픈 카톡방에 나를 초대해주었다. 카톡방 상단에 방장이라는 사람이 앞으로의 전망, 코인 분석, 지금 매수해야 하는 코인 등을 정리한 글이 공지로 띄워져 있었다. 이런 걸 혼자만 알고 있었다니. 미리에게 고마운 동시에 화가 났다. 어쩐지 혼자만 계속 잘 벌더라. 다 정보가 있었던 거야. 나는 원래 가지고 있던 코인을 모두 팔고 그 돈으로 방장이 추천한 코인을 샀다. 손해가 아깝긴 했지만 괜찮았다. 이것만 오르면 복구할 수 있으니까. 확실한 정보라고 하지 않았는가.

코인은 플러스가 되었다 마이너스가 되기를 반복했다. 하루종일 차트를 보느라 피낭시에도 굽지 못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하나 팔아봤자 이천원도 남지 않는 피낭시에 따위. 코인만 대박 나면 된다. 코인만 대박 나면.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가게를 보러 오고 싶은데 언제가 괜찮냐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당장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곧 부동산 실장이 젊은 여자 한 명을 데리고 찾아왔다. 여자는 나보다 몇 살 어려 보였다. 여자는 바닥에 놓인 양동이들과 벽에서 흐르는 물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수도관 공사중이라서 그래요. 지금 건물 싹 고치는 중이거든요. 들어오실 때는 아무 문제도 없을 거예요. 오히려 새 건물 같아지겠죠.”

내 말에 부동산 실장이 맞장구를 쳤다. 어차피 들어올 때 리모델링해야 하는데, 이미 공사중이니 건물주랑 상의해서 리모델링 비용을 깎을 수도 있는 기회라면서.

“걱정하지 마요. 문제 생겨도 육 개월 이내면 이전 세입자가 다 책임지거든. 그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실장은 여기 입지가 얼마나 좋은지를 설명하며 이 근방에 이만한 곳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초조함을 애써 숨기고 여자의 표정을 살폈다. 여자는 조금 더 생각해보겠다며 카페 밖으로 나갔다.

 

내내 오르락내리락 줄타기를 하던 코인은 이틀 만에 완전히 마이너스로 변해버렸다. 지금이라도 팔아야 하나? 하지만 지금 팔면 정말 몇백만원을 잃는 거였다. 카톡방에서도 아직 괜찮다고 했다. 급등 전에 잠깐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걸 견디는 사람만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더 버텨보기로 했다. 미리가 그러지 않았는가.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주는 곳이라고.

오랜만에 플로우에 온 근수는 매장의 꼴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비가 오는 동안에는 아무리 청소를 해도 소용이 없으니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말이었다. 퍼내도 퍼내도 차오르고 닦아도 닦아도 다시 흐르는 물에 지쳐버렸다. 이제 손님이 오든 말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포기한 카페였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지.”

대답도 하기 싫었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한 줄 알아?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얼마나 힘들었는데!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것을 꾹 참고 피곤하다며 말을 돌렸다. 근수는 카운터에 놓인 노트북을 쳐다보았다.

“뭐하고 있었어?”

나는 급하게 노트북을 덮었다.

“그냥 주식이랑 이것저것. 손님도 없는데 이런 거라도 해야지.”

주식도 싫어하는 근수에게 코인을 하는 것을 들킬 수는 없었다.

“그래.”

근수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냥 소소하게 하는 거고 잃은 돈도 없다고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환전하기 전까지는 잃은 게 아니었으니까.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뭐라도 만들어줄까?”

내 물음에 근수는 괜찮다고 답했다. 더 할말이 없었다. 비가 많이 오네. 그러게. 폭우 경보 알림 왔더라. 오후에는 더 많이 온대. 그리고 우리는 입을 다물었다. 카페 안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피곤해 보이니까 먼저 갈게. 일찍 마감하고 집 가서 좀 쉬어.”

나는 알겠다고 답하고는 조심히 가라며 근수를 배웅했다. 피곤했다. 조금만 쉬어야지. 아주 조금만. 나는 카운터에 엎드렸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밖이 어두워진 후였다. 노트북을 열고 급히 코인 거래소에 들어갔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십 프로였던 손해액이 삼십 프로가 되어 있었다. 카톡방을 보기 위해 휴대폰 화면을 켰다. 두 통의 부재중전화와 함께 카카오톡 메시지가 와 있었다.

—나는 당연히 맞벌이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결혼하자고 한 거였어. 집에서 주식이나 할 생각이면 우리 결혼 다시 생각해봐야 할 거 같아.

근수에게서 온 것이었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나는 근수에게 카톡을 보냈다. 잠깐 잠이 들어 전화를 받지 못한 거라고, 예식장까지 잡고 집 계약까지 다 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근수는 메시지를 읽었지만 답장을 하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근수를 만나야 했다. 곧장 플로우의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9월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이 기후 위기가 어떻니 저떻니 하며 날씨가 미쳤다고 떠들어댔다.

김포로 가는 버스는 삼십 분이 지나서야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 안은 비에 젖은 사람들로 가득차 기분 나쁜 비린내가 났다. 한강을 지나자 겨우 사람이 줄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근수는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금 너의 집으로 가고 있다는 메시지에도 답이 없었다. 버스 기사가 틀어놓은 라디오 뉴스에서 영끌족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왔다. 부동산 가격 하락과 높은 대출 이자로 인해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들이 빚을 떠안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코인 거래소를 확인했다. 근수한테 증명해야 했다. 코인을 하는 게 나쁜 건 아니라고. 요즘 세상에선 재테크를 안 하는 게 바보 같은 거라고. 하지만 한 번 하락세를 탄 코인은 롤러코스터처럼 아래로 떨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오픈 카톡방을 다시 열었다. 코인이 떨어졌다며 화를 내는 사람들과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모르냐며 추천해준 대로 무지성으로 따라 사는 사람들이 잘못된 거 아니냐는 사람들이 싸우고 있었다. 방장은 말이 없었다. 나는 그 안에서 미리를 찾았다. 미리는 어느샌가 카톡방에서 나가고 없었다. 미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몇 번을 전화해도 받지 않아서 카톡을 보냈다.

—카톡 봤어? 왜 나간 거야?

잠시 뒤 미리에게서 답장이 왔다.

—원래 이 판이 잃는 사람이 있어야 버는 사람도 있는 곳이야. 잃을 수도 있는 거 알고 있었잖아.

버스가 멈췄다.

“이거 더 못 갑니다. 여기서 내리세요.”

버스 기사가 말했다. 서울 밖이었다. 창밖을 보니 비 때문에 도로가 물로 가득차 있었다. 사람들을 따라 버스에서 내렸다. 발목까지 찬 물에 신발이 다 젖어버렸다. 지도 앱을 켜서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근수의 집까지는 한 시간을 걸어가야 했다.

한참을 걸어나갔다. 우산을 써도 들이치는 비는 막아지지 않았다. 도로 곳곳에 버려진 차들이 세워져 있었다. 근수의 집에 가까워질수록 바닥에 차오른 물이 점점 높아졌다. 종아리, 허벅지, 허리.

전화가 왔다. 나는 거센 비에 화면을 보지도 못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근수? 미리? 하지만 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그 둘 모두 아니었다.

“저 그저께 상가 보러 갔던 사람인데요. 거기 매출은 좀 괜찮나요? 임대인이 관리 같은 건 잘해줘요?”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행복에 겨운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그럼요. 건물도 싹 고쳐주시잖아요. 관리소장님도 따로 계셔서 신경쓸 것도 없어요. 소장님이랑 연락도 잘되고요. 매출은 하루 육십만원 정도 나왔어요. 이번에 결혼해서 이사가느라 가게 내놓은 거예요.”

여자는 알려줘서 고맙다고 하고는 계약 전에 다시 한번 방문하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었다. 웃음이 나왔다. 이번엔 진짜였다. 가게를 넘기고 권리금을 받으면 잃은 돈을 모두 복구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코인이든 주식이든. 이번엔 실패했지만 다음엔 잘할 자신이 있다. 원래 잃어가며 배우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한 번만 대박나면 된다. 한 번만. 그러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다. 근수와의 결혼도.

그래. 내가 쉽게 망해줄 줄 알아?

나는 다시 앞을 보았다. 세상이 물에 잠겨 있었다. 꼭 수영장처럼. 뒤돌아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떻게든 나아갈 수 있다. 나는 수영을 잘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