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외계인과 요괴

신미나씨에게 

 

신미나씨가 없는 일본에서 다시 한 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신미나씨가 도쿄의 가구라자카에 체재하는 동안 실제로 만난 것은 이벤트로 두 번, 그 전후에 한국에서 온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가거나 후지산에 가거나 하면서 두 번. 사람들과 그다지 교류하지 않는 채로 이 세계의 귀퉁이에 살고 있는 나에겐, 같은 사람을 두 달 사이에 네 번이나 만나는 일이란 정말 어지간해서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매일 얼굴을 보고 있는 것도 아니니, 지금도 신미나씨는 가구라자카의 ‘스페이스 다다(Space-Dada)’라는 방에 있고, 시인으로서, 혹은 싱고(신미나 시인의, 시인이 아닌 분신)로서, 곰곰이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겠거니 상상하면 그것이 현실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서울로 돌아갔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신미나씨는 동시에 두 사람으로 존재하는지도 모릅니다. 신미나씨는 ‘요괴’니까, 그것도 가능하겠죠? 

서울의 신미나씨, 가구라자카에서 떠난 뒤 한 달 동안 어떤 기분으로 지냈나요? 

사람이나 생물의 존재와 부재가, 나는 항상 불가사의합니다. 일상적으로 함께 있던 사람이나 생물이 눈앞에서 사라지면 부재를 감지하고 쓸쓸해지거나 슬퍼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주 만나지 않는 경우, 그 사람을 생각하면 그 사람이 항상 그 자리에 존재하는 듯이 느껴집니다. 거꾸로 그 사람 생각을 별로 하지 않으면 그가 정말로 사라져버립니다. 

나의 아버지가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병환으로 병원에 있는 시간이 길었고, 언제부터인가 집에 없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열한 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나 친척들은 모두 울고 있었지만, 나는 그냥 뭔가 불가사의한 기분이었습니다. 

“울어도 괜찮단다.” 

숙모가 울면서 말씀하셨지만, 울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집에 없었던 지금까지의 나날과 무엇이 다른지 잘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시신은 인공적으로 보였고, 아버지와 닮은 모형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버지의 시신을 들어올리면서 마지막으로 작별을 고한 뒤, 장례식장 안의 모든 사람이 울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제야 나는 울었습니다. 많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감정의 파도에 나도 결국 휩쓸린 것입니다. 

그후로도 아버지가 죽었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고, 그저 어머니가 힘들어 보여서 그것이 내내 마음 아팠습니다. 너무 걱정한 나머지, 앞으로는 절약해야 하니 무덤은 만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가 어머니한테 엄청나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이제 오십 년 가까이 지난 옛날 일이고, 지금은 처음부터 나에게는 아버지가 없었던 것 같은 감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 일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가 죽은 것을 지금까지도 이해하거나 소화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앞에서 ‘요괴’라는 말을 썼습니다. 신미나씨는 이름 붙이기 천재죠. ‘싱고’도 ‘스페이스 다다’도 멋진 네이밍. 나는 ‘외계인’이고 신미나씨는 요괴. 나에게 녹색의 비브람 파이브핑거스를 신고 있는 ‘개구리’라고 그 자리에서 명명했고, 노랑과 하양의 두꺼운 보더 셔츠를 입으면 ‘횡단보도’라고 말했죠. 그 순간순간, 나는 개구리가 되고 횡단보도가 되고 외계인이 되었습니다. 나는 신미나씨가 이름 붙이는 데 따라서 현란하게 변신하는 자신이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신미나씨가 나를 외계인으로 보고, 자신을 요괴라고 부른 것은 단순한 농담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외계인도 요괴도, 어느 쪽도 인간은 아니지요. 혹은 인간과는 상대적인 위치에 존재하지요. 

신미나씨는 본인이 언제나 냉정하게 관찰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3월에 처음으로 서울에서 만났을 때 내가 느낀 신미나씨의 인상도 그랬습니다. 명랑하게 농담을 하지만, 때때로 냉철하리만큼 사람을 관찰하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감상을 이따금 툭 하고 입 밖에 내놓습니다. 그 작은 한마디에, 나는 내심 ‘오, 정말!’ ‘역시~’ ‘그렇게까지?’ 하면서 소소하게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시인 김현씨를 “지하철 2호선 같은 사람입니다”라고 표현했을 때는 내가 잘 설명할 수 없었던 김현씨의 매력을 한마디로 설명해준 것 같았습니다. 

신미나씨와 나,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며 고리를 잇는 김현씨. 어쩌면 우리는 같은 과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입으로 내뱉지는 않지만 나도 사람의 세세한 부분까지 관찰하는 편이고, 모두의 분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분위기를 타면서 그 환희의 열감과 자신의 감정 사이에 어느 정도 틈이 있는지를 항상 계측하곤 합니다. 

이 가설이 맞다는 것을 신미나씨의 다음 문장을 읽었을 때 확신했습니다. 신미나씨가 도쿄 체재 중에 웹에 공개했던 『신미나와 싱고의 교차일기』 중에 5월 20일 화요일의 글 「다시, 광장에서」. 한국 대통령 선거를 위해 재외국민 투표를 하러 갔을 때의 일기입니다. 

 

나는 정치를 멀리해왔다. 아니, 정치가 오히려 나를 밀어낸 적이 더 많았다. 선거철이면 사람들은 기대와 분노로 들끓었지만, 나는 늘 그 열기 밖에 있었다. 텔레비전 속 빨강과 파랑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선택은 했지만,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다. 내 표는 늘 ‘차악’을 고르는 자포에 가까웠다. 무력감이 마음 한 켠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계엄령은 달랐다. 국가 폭력을 대통령이 직접 공식화했다. 그것은 실망이나 분노가 아니라 실존적 공포였다. 가족과 친구, 나 자신마저도 보호받지 못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는 그 두려움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쌓여 있던 피로와 무력감을 마주하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며칠 뒤, 친구들과 여의도 광장에 나갔다. 

 

나는 마치 내 일기를 읽은 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물론, 일본은 대통령제가 아니고, 계엄령이 내려지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인용문 전반부는 내가 평소부터 일본의 정치나 유권자, 사회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후반부는 계엄령 뉴스를 들었을 때 나를 덮친 공포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소중한 친구들을 나는 이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만나더라도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인생 최대의 분기점에 선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좌불안석. 당장이라도 서울로 날아가 대통령의 계엄에 의한 궁극의 폭력을 막아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비행기편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신미나씨가 도쿄에 머물러준 덕분에 충만한 시간을 몇 번이나 함께했고, 이렇게 스스럼없이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한국의 시민들이 나서서 국가에 의한 폭력을 부정해준 덕분이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이렇게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몇 번이나 폭력을 물리치려는 노력을 거듭해온 결과이며,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폭력을 정당화하려고 한 일로, 사회 속에 맺혀 있던 증오가 선동되고, 그 폭력에 편승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사태에 이르기도 했지요. 일본에서도 7월 중순에 참의원 선거가 있었고, 배타주의를 외치는 극우 정당이 갑자기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대약진을 꾀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발생한 사건에 반향하는 현상이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내 주변에도 배타주의의 주장에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그것은 나에게 공포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 왜 그렇게 모두들 눈사태처럼 같은 행동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 이유랄지 메커니즘이랄지 그런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인생에는 무수한 분기점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알아채지도 못한 채 계속되는 갈림길 중 하나를 선택하면서 살아가죠. 분기점에서 만약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작은 선택의 차이로 결국에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나는 8년 전에 그 선택을 경력으로 시뮬레이션하여 「환승」이라는 단편소설을 썼습니다. ‘호시노 유키도모’라는 남성 번역가가 변두리 라면집에서 정치부 기자인 자신과 조우합니다. 대학 졸업 후에 보수 계열 신문사에 입사할 무렵까지는 같은 길을 걷고 있었겠지만, 한쪽은 기자를 그만두고 멕시코로 유학하여 번역가가 되었고, 한쪽은 그대로 신문기자를 계속하다 정치부로 가서 보수 쪽의 정치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정치를 움직이는 한 축을 담당, 결국에는 기자를 그만두고 보수파 정당의 지방의원 선거에 입후보하는 것입니다. 

리버럴한 사고방식을 가진 번역가인 호시노 유키도모와 보수파 정치가를 지망하는 호시노 유키도모는 전혀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정치가 호시노는 보수 정치가들과의 25년에 이르는 관계 속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했기 때문에 남존여비 사상이 있고 국수주의적이고 권력 지향적이며 공리주의적이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감각이 되어 사고방식뿐 아니라 비유나 단어 선택부터 번역가 호시노의 신경을 거스릅니다. 번역가 호시노는 그런 보수 정치가 호시노를 비판하지만, 정치가 호시노는 그 비판의 수사가 리버럴한 사람들이 오래도록 사용하여 정형화된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폭로하고, 리버럴한 사람들이 외면하고 무연한 척하는 리버럴 나름의 권력 지향을 지적합니다. 번역가 호시노는 반발심을 느끼면서도 정치가 호시노 또한 리버럴한 언행에 반발심을 느끼고 있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칩니다. 둘은 각자 시간을 축적해온 자기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며, 살아온 궤적이나 문맥, 그것으로 성립된 이치를 타인이 간단히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헤어질 때, 두 사람은 바뀌어 있습니다. 번역가 호시노는 자신의 선거를 생각하면서 귀가합니다. 뒤바뀐 것을 완전히 인식하지 못한 채. 

 

이 단편을 기초로 하여 나는 『사람이 아님(ひとでなし)』이라는 긴 장편을 2024년부터 14개월에 걸쳐 신문에 연재했습니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부터 ‘가공 일기’를 씁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땠을 거라는 얼터너티브한 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공 일기를 쓸 때마다 자신이 가지를 쳐서 다른 인생을 사는 자신이 동시에 몇 사람씩 병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분기점에서 어떤 길로 가는지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선택했다는 의식도 없이 그 길을 가게 되는 일도 있습니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느 대학에 시험을 치를 것인가, 졸업해서 어떤 직종에 취업할 것인가, 어떤 회사를 지망할 것인가, 누구와 파트너십을 맺을 것인가, 누구와 생활을 함께할 것인가, 가족을 만들 것인가 등등은 일단 의식적인 선택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런 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결정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까지나 정말로 ‘선택’인 것일까요? 예를 들면, 나는 구직 활동을 할 때 일반 기업은 문학부 출신자를 채용하지 않으니 언론사 시험을 쳤습니다. 문학부 친구들은 모두 그렇게 말했는데 입소문이나 선배들에게 들었던 “문학부 학생에게 일반기업은 무리”라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측면이 강했지만 만약 가고 싶은 업계가 있으면 도전해보아도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모두가 말하는 ‘상식’을 받아들여 언론사만 지망했습니다. 그리고 나와는 맞을 리 없는 보수 계열 신문사만 합격했습니다. 그래도 회사에 입사한 것은 취직에 대한 집념이 약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3년 정도 다니다가 그만두었지만 만약 그대로 10년, 20년, 그 회사에서 신문기자로 살았다면 정치부로 가서 보수 정치가가 되는 미래도 있었을 테지요. 지금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선택지이지만, 그 갈림길은 생각보다 훨씬 미묘하고 애매하며 길을 잃기 쉬운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선택도 연애도 사상도 나는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택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주변 환경에 휩쓸리거나 우연한 요소로 선택하는 쪽이 큰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 젊은이들의 취직 사정을 보면 선택할 수 있을 듯한 모양새 속에서 현실적으로는 선택지가 거의 없어, 정해진 길을 고를 수밖에 없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식물을 생각해볼까요? 식물, 특히 잡초라고 분류되는 풀은 어디에나 자랍니다. 흙이 없는 아스팔트 틈새라든가, 베란다 배수구라든가, 굵은 나무에 난 구멍이라든가, 그런 곳에서도 씨만 있으면 싹을 틔우고 자랍니다. 그곳이 너무 건조한 환경이라면 결국 말라버리겠지요. 위에 뭔가 있다면 옆으로 굽어져 자라겠지요. 오른쪽에 벽이 있는데 햇볕이 오른쪽으로 든다면 벽을 넘듯이 몸을 뻗겠지요. 환경에 맞추어 성장해가는 것이지 그 순간에 ‘구부러지자!’ 인식해서 구부러지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 식물의 의사(意思)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장애물이 있으면 피하는 것이고, 뚫고 나갈 구멍이 있다면 뚫고 나갈 뿐입니다. 

특히 집단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도 똑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치하의 미국을 시작으로 배타주의가 세계를 석권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지금 그런 흐름으로 거칠어지고 있고, 많은 사람이 그 파도에 말려들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아들인 것을 자신의 생각인 양 역설합니다. 그들의 행동은 어느 것도 자신의 의사가 아닙니다. 식물이 뿌리나 줄기를 환경에 맞추어 뻗어나가는 것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배타주의에 나부끼는 것은, 식물로 말하자면 햇볕이나 바람이나 벽과 같은 어떤 환경적인 요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끝까지 응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인간 행동의 대부분은 주변의 흉내를 내거나 의존함으로써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환승」의 ‘정치가 호시노’가 매일 교류하는 사람들의 말이나 태도나 생각을 흉내 내고, 그 무리 안에 몸과 마음을 의탁함으로써 안정되고 일관된 자신의 일상을 구축한 것처럼 말입니다. 

자기 의사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가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라고 한다면, 내가 보고 있는 인류는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의 흉내를 내는 다른 생물입니다. 사람이 아니므로 ‘비인간’입니다. 그러면 흉내와 의존으로 살아가는 비인간에게 정말로 의사는 없는 것일까요? 

식물은 자기가 환경에 맞추어 굽어지거나 가늘고 길게 뻗어나가거나 짧은 채로 무성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의식하지 않습니다. 의식하는 기관이 없으니까. 뇌도 심장도 없으니까. 그저 그렇게 살아 있을 뿐입니다. 사람은 어떤가요? 사람은 그것이 사실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그런 뇌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뇌와 심장이 개체별로 조금씩 다르니까요. 

나는 이것이 사람의 ‘의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인간은 훨씬 부자유스럽지만, 그래도 그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고, 인식함으로써 완전히 자동적으로 환경에 맞추어져버린 상태를 아주 조금은 바꿀 수가 있죠. 그쪽으로 뻗으면 머리를 부딪치게 될 거라는 걸 인식하면 멈출 수가 있습니다. 아주 작은 자유와 의사가, 인식하는 순간만큼은,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빛나는 기쁨과 해방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치겠지요. 물론 가치에 연연하는 것도 인간뿐입니다. 

행동 원리는 인간도 식물도 거의 같습니다. 나는 그런 ‘비인간성’을 사랑스럽게 느낍니다. 다만 인간은 그러한 자신을 인식하고, 인식한 순간만큼은 비인간의 삶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 역시 비인간임을 전제로 하면, 우리는 더 편하게 풍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드디어 외계인과 요괴 이야기에 다다랐습니다. 스스로가 꿈꾸는 것처럼 의지를 가진 ‘인간’이 아니고, 주변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우왕좌왕하는 부자유한 ‘비인간’임을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로, 나 자신을 외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존재들을 보고 있는 누군가인 것입니다. 나는 모든 비인간을 우주에서 보고 있지만, 그것을 이계(異界)나 저승에서 보고 있다면 요괴가 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물론, 나도 인간의 일부입니다. 그러니까 외계‘인’입니다.  

신미나씨는 어떤 갈림길을 지나 요괴에 이른 것일까요? 신미나씨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과는 또 다른 시간을 살았을 테고, 여기저기 이사도 하면서 지내지 않았나요? 

 

도쿄의 한여름은 예상대로 위험한 더위가 이어지는 나날입니다. 이것도 세계적인 경향이죠. 서울 역시 말도 안 되는 기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외계인이 아니더라도 우주로 이사하고 싶어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신미나씨도 좋아하는 드라마 <핫 스팟>의 다카하시처럼, 지구 출신에 지구에서 자란 외계인인 나 역시 이 별이 아니면 안 됩니다. 현세 출생, 현세에서 성장한 요괴인 신미나씨도 마찬가지겠지요? 모쪼록 몸이 상하지 않도록 이 잔혹한 더위를 잘 넘기기 바랍니다. 신미나씨의 답장을 기다리는 즐거움이 남은 여름을 살아남을 힘이 될 듯합니다.  

 

 

2025년 7월 25일(金) 

도쿄에서 호시노 도모유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