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회

나누지 않고 나뉘는

막 둥지를 벗어난 어린 까마귀 무리가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여름이 왔습니다.

올해는 남자 월드컵이 열리는 탓에 어쩐지 차분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즐길 수만은 없는 월드컵.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탐닉하는 월드컵. 마음속의 검열관에게 핑계를 대는 날이 계속됩니다.

 

그런데 신미나씨는 태양계 행성 중에서 어느 별을 가장 좋아합니까?

나는 금성도 아주 좋아하지만, 역시 목성에 마음이 갑니다.

목성이라는 단편소설도 썼습니다. 친구들이 세상에 발을 맞추어 일관성 없이 변용되어가는 가운데, 홀로 남겨진 마루코는 목성을 올려다보는 것을 낙으로 살아갑니다. 올려다보면, 거기엔 언제나 목성이 있죠. 틀림없는 목성이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고, 시간조차 멈춘 채로.

며칠 전, 금성과 목성이 초근접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죠?

그날 나는 금성에 있었기 때문에 목성을 향해 점프해서 훌쩍 날아올랐지만, 연습을 게을리 한 탓에 목성을 코앞에 두고 우주로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우주는 땅이 아니라 하늘이기 때문에, 나는 하늘을 나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신미나씨의 눈에는 목성과 금성 사이를 꼴사납게 둥둥 떠다니는 작은 점이 보였을지 모르겠네요. 도쿄는 하필이면 장마로 흐린 하늘이었기 때문에 금성과 목성이 만나는 걸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사이 지구는 신미나씨의 시어머니가 여행을 떠나신 시간과 장소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우주에서는 반란반묘를 부감할 수 있었습니다.

비스듬히 위에서 반란반묘와 아이와 개, 1세대 번역기인 앵무새 로봇은 댐 한가운데를 걸어갔다. 그림자는 생기지 않았다라는 광경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것이 시인의 힘이구나, 하고 감탄했습니다.

우리의 편지가 아름답고 요기에 넘친 이야기를 담은 시가 되고 있다니.

내가 시의 일부가 되다니.

신미나씨가 네번째 편지에서 이미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말하자면 긴 연시를 써온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그것을 연소설이라고 부르고 싶기도 합니다.

목성에서 금성으로, 금성에서 목성으로, 이정표 없는 허공을 아슬아슬 왕복하면서 미지의, 하지만 바로 옆에 있었던 장소에 가닿는 일이라니,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편지를 시작했을 무렵, 나는 쓰는 일에 지쳐 있었습니다. 나에게는 이제 소설이 필요 없게 되어, 소설별의 중력이 약해지고 나는 위태롭게 우주를 표류하며 남은 인생을 언어가 없는 공간에서 끝도 없이 떠돌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주 공간에는 먼지도 빛도 별도 가득합니다. 그것이 말이라는 것을, 신미나씨의 시라는 별자리 판이 가르쳐주었습니다. 나는 조금씩 환각이 아닌 언어를 얻고 있고, 아무래도 새로운 소설의 별자리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 소설이 쓰고 싶어졌습니다.

오래도록 그것은 소설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모습의 소설을.

시일지도 모르는 소설을.

 

포기 나누기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나에게는 일인칭이 없습니다

태초에 내가 있었습니다

내가 나뉘어 내가 되었습니다

내가 시들어도 나였습니다

 

시장에서 권하기에 사게 된 나를

데치면 맛있다는 말을 듣고

나는 끓는 물에 담갔다가 나누었더니

나들은 눈물나게 맛있어서

내 안에 그것을 심고 물을 주었습니다

 

내 뿌리에는 내가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그것을 공생이라 한다지요

어디까지가 나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알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에게는 이인칭이 없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사랑을 하고 있다,

라고 당신은 당신을 힐난했습니다

당신이 갑자기 당신의 뺨을 두드리면

당신이라는 소리가 울려퍼지다 떨어져

당신 안에 그것을 심고 물을 주었습니다

 

삼인칭은 이제 잃어버렸습니다

태고에는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돌을 파면 드물게 의 형태가 어렴풋이 나타납니다

그것을 나로 착각한 것은 착각이 아닙니다

그녀를 당신으로 삼아 우리들은 사라져갈 듯하니

 

그러므로 사인칭은 없습니다

살아 있는 몸을 해부하지는 말아주세요

죽으면 인칭을 새에게 던져주세요

대명사 없는 돌이 덮쳐오겠지요

아침해가 떠오르면 노을이 불타겠지요

 

그러므로 일인칭밖에 없습니다

―「포기 나누기*

 

* 호시노 도모유키, 「韓国現代詩への旅」, 『現代詩手帖』 20264월호.

 

검열관 원숭이가 꼬리로 물음표를 만들고, 놓치지 않겠다는 듯 작정하고 문자를 찾고 있습니다. 중얼중얼 의기양양 혼잣말을 하면서.

물론 소설가로서 광수 아버지 이야기를 썼겠지만, 당신에게는 광수 아버지를 비유로 써온 전과가 있죠? 이야기를 위해 혹사해왔을 뿐이죠? 어차피 같은 짓을 되풀이해왔을 게 뻔합니다. 문학이란 원래 비유이기를 그만두는 게 불가능하니까요. 그러니 우리 검열관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을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오독과 고독은 같은 말, ‘오독을 오독하면 고독’. 오독이 없어지면 고독도 없어진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오독하지 않도록 쓰려고 하지 않고 비유에 의존하는 소설가들이란, 정말이지 언제까지 자기 멋대로일지.

검열관 원숭이는 진실밖에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검열관 원숭이는 시를 읽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놓치고 지나갑니다. AI로 그럴싸하게 만들어본들, 좋은 시 같은 게 될 수가 없는데 말이지, 라고 검열관은 아는 체하며 시치미를 뗍니다.

검열관은 자신이 AI 원숭이인 것을 모릅니다. 검열관 원숭이는 자신이 AI인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은 그저 알고 있는 것일 뿐, 자의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인칭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풍화되어 부스스 가루가 되고, 골짜기에서 끌어올린 바람에 날려 흩어졌습니다.

알아들을지 어떨지 알 수 없는, 희미하게 읽을 수 있을지 어떨지 알 수 없는.

 

그러므로 일인칭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잊을 무렵엔 그윽한 메아리가 되어 산골짜기를 울리며 퍼져갑니다.

너도밤나무가 듣고, 흰눈썹뜸부기가 쪼아먹고, 붕어가 삼키고, 모래에 스며듭니다.

 

너인지 나인지 우리인지 묻지 않는 시를 쓰자**

 

** 신미나, 「생체」, 주간문학동네 『지구에서 반걸음』 6.

 

그 계절에는 이름이 없지만, 일인칭의 봉오리가 일제히 피어납니다.

빛이 어디에서 비치는지, 그림자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색도 모양도 향기도 소리도 달라서 같지 않은 일인칭이 난만(爛漫)합니다.

검열관 원숭이는 그것을 같은 사람이라 여깁니다.

때때로, 같지 않다고 판단했던 일인칭을 구속합니다.

검열관 원숭이는 시를 읽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일인칭이 없으면 인칭 따위 필요 없을 테니, 그까짓 거 새나 줘버리라지요.

새들에게도 육아의 계절, 무수한 새들이 무리 지어 부지런히 인칭을 쪼아다가 땅속에 감춥니다.

 

신지이케(心字池)*에는 마음이 묻혀 있다고 한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다. 새들이 천년만년을 모아서 지면에 감추었다고 한다. 파헤치고 들추려 해도, 원형이 남아 있지 않다.

때가 왔는지 하나가 싹을 틔웠다. 피리 소리에 맞추어 일어서는 뱀처럼 가늘게 몸을 뻗고, 남아도는 기세로 뿌리마저 빠져나가 연못에 떨어지자, 뱀은 좌우로 몸을 흔들며 수면을 건너간다.

한 마리 두 마리 싹을 틔우더니, 뻗어나가고, 날고 헤엄쳐, 연못 밖은 구불구불 선투성이.

별자리처럼 문자가 나타나 산책하던 사람들은 제멋대로 소리 내어 읽는다.

저것은 이치요(一葉), 이것은 홍고(本郷)**, 그것은 시노이에*** 카페.

날이 저물면 문자는 어둠에 녹고 모든 마음이 사라진 연못은 이름을 잃고 그저 물만 담고 있다.

―「이름을 잃고****

 

* 마음 심() 자 모양으로 만든 연못. 여기서는 도쿄대학교 구내에 있는 산시로 연못을 뜻한다.

** 도쿄대 본 캠퍼스를 뜻한다.

*** 시인 요쓰모토 야스히로의 개인 출판사 이름. 그는 친구들이 자주 드나드는 자신의 집을 카페라고 부른다.

**** ‘한일중년회의에서 발표한 호시노 도모유키의 시. 이장욱, 요쓰모토 야스히로, 요시카와 나기와의 홍고 산책에서 지었다.

 

인칭을 잃은 이치()’는 뱀이었습니다.

뱀은 신의 사자. 그렇게들 말합니다. 하지만 뱀은 그것을 모릅니다.

울창한 숲속 연못에는 그림자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 물가에 그늘도 얼룩도 없이 금빛으로 빛나며 우뚝,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다란 나무가 서 있습니다.

나무의 잎과 가지와 몸통은 금으로 되어 있는 것인지, 단풍이 들어 전체가 금빛으로 반사되고 있는 것인지, 나무 그 자체가 빛인지 알 수 없습니다. 김석희가 그림으로 그린, 실존하지 않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뱀은 그 나무를 휘감고 올라가 한 가지에 녹아들었습니다.

 

일인칭의 싹이, 가지가 갈라지는 분지에서 뻗어나와 펼쳐집니다.

일인칭의 싹은 각각이 잡초로 자랍니다.

잡초라서 잡담을 배우고, 금빛 나무에서는 끊임없이 술렁대는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그것은 이런 속삭임입니다.

 

이 행성에서는, 하늘에서 처음으로 태어났다

날개는 바람을 거스르지 않지

방금 교체한 날개가 오늘의 나에게 딱 맞는다

날아볼까, 어디든 내 날개 아래인 것 같아

날개는 없고 다리는 있는 사람들은 왜 하늘을 볼까?

이것은 거짓말이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what was you bone?* what are you wings,

거짓말은 어쩌면 진실은 달렸지만 사실은 없는 것

90세의 다리는 날개처럼 가슴을 끌어안고 있다

시인의 존재를 관통하려고 하는 존재의 무리들이

농장을 만들었습니다

나는 날개는 달렸지만 다리는 없는 시인의 친구가 되고 싶고

목련이 피는 저쪽으로 날아가볼까요?

―「날개는 달렸지만 다리 없는 시인**

 

* 속초에서 발표한 호시노 도모유키, 「본」에서.

** 양양군 간곡리에서 밤새 쓴 연시. 호시노 도모유키, 김석희, 이와모토 타이이치, 박성진, 김현, 신미나, 정고요, 이소연, 유현아, 김보나, 시미즈 치사코, 무라타 마이가 한 행씩 이어서 썼다.

 

검열관 원숭이가 꼬리로 금색 가지에 매달린 채 전신을 물음표로 만들며 경고합니다.

이거 봐요, 남의 목소리를 도용하면서 모른 척, 자기 것인 척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연시입니다. 참가자 전원의 이름을 명기하면, 내가 첫 줄을 쓴 시에 대해서는 내가 발표해도 좋다는 규칙인 것입니다. 그렇게 설명해도 검열관인 원숭이는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가 아니라 우리라고 하세요, ‘를 쓰면 도용이 되는 겁니다.

 

검열관 원숭이는 시를 읽지 못합니다.

시를 읽지 못하는 자는 모두 검열관 원숭이입니까?

시를 읽지 못하는 검열관 원숭이는 자신이 AI라는 것을 모릅니다.

시를 읽지 못하는 검열관 원숭이는 자신이 AI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은 그저 알고 있는 것일 뿐 자의식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칭은 없습니다.

인칭이 없는 AI인 검열관은 원숭이도 인간도 식물의 싹도 아닙니다.

검열관은 연못을 부지런히 파헤치고는 인칭의 좀비를 되살립니다.

좀비이므로 물어뜯은 상대를 좀비로 만듭니다.

그들은 일인칭의 싹들을 물어뜯고는 나와 그녀와 우리로 변해갑니다.

그리하여 이 별에는 인칭을 이야기하는, 인칭 없는 검열관이 만연하는 것일까요?

 

검열관 원숭이는 아직 꼬리를 물음표처럼 치켜올리면서 금색 오렌지를 먹고 있습니다. 금색의 나무에는 오렌지가 종을 울립니다.

검열관 원숭이는 속삭이듯이 를 입에 올려보았습니다.

죄책감과 환희가 몰려와, 검열관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질 것 같습니다.

꼬리로 가지를 붙잡으려 했건만, 꼬리는 뱀이었습니다.

검열관인 원숭이는 낙하하며 어떻게든 해보려고 손을 휘저었는데, 그것은 날개였습니다.

날개가 돋은, 꼬리 없는 시인이었습니다.

검열관은 날개를 퍼덕이면서 다시 한번, ‘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그 순간 잡초들, 젊은 까마귀들의 수다가 소란스럽게 머릿속에 울려왔습니다.

검열관 원숭이는 자신이 검열관 원숭이인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검열관 원숭이라는 사실에, 이제 자신의 일부가 아닌 꼬리 뱀이, 물음표 모양이 되었습니다.

나는, 자신이 일인칭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검열관인 원숭이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늘에서는 반란반묘, 아이, , 앵무새 로봇이 댐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연못은 댐이 있는 호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일행은 물위를 걷고, 그림자는 비치지 않습니다.

커다란 숨소리가 일면에 반향하고 있습니다.

호흡과 함께 수면이 파도칩니다.

귀를 기울이면 편지를 묵독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편지를 다 쓰고 나면 언제나, 신미나씨가 묵독하는 목소리를 상상합니다. 그것은 한국어도 일본어도 아닙니다.

소설을 쓰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시가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것이 소설로도 느껴집니다.

 

이제 조금 더 선회하면 우리의 편지도 고도를 올릴 때가 오겠지요.

그때까지 한동안 하늘을, 우주를, 물속을, 땅속을 춤추겠지요?

작열하는 혹성의 여름이 닥쳐오는데, 신미나씨도 건강히 지내시기를.

 

2026621()

도쿄에서 호시노 도모유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