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꿈보다 더 선명한 것을 우리는 섬이라고 불러요

0.

꿈보다 더 선명한 것을

우리는 섬이라고 불러요.

 

1.

“태초에는 음악이 정육면체였대. 손바닥만한 사각 비누를 떠올려봐. 사용할수록 모서리가 마모되어 둥글어지다가 나중엔 손톱만큼 작아지잖아. 음악도 그렇게 닳아 없어질 수 있었대. 그래서 이걸 아는 사람들은 음악을 함부로 감상하지 않았다는 거야. 꼭 필요한 순간을 위해서 아껴 들었대. 늘 남겨둔 거지, 미래에 들을 음악을. 미래에도 음악이 깃들 자리를.”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열네 살이었다. 수학 선생님은 ‘지금은 음악이 닳아 없어지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이니’로 말을 맺었지만, 그때부터 나는 음악이 닳아 없어질 가능성을 늘 대비하게 되었다. 음악을 덜 듣게 된 건 아니고, 미래에 들을 음악을 더 자주 생각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생존배낭 안에 넣어둘 최소한의 플레이리스트에 대해서.

요즘에는 세차 터널 안에서 그 생각을 이어간다. 일종의 의식이다.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자동 세차장이 있는데, 때로는 세차보다도 음악이 목적이다. 똑같은 차 안에서 똑같은 음악을 들어도 노터치 세차장의 자동 레일 위에 올라 있을 때는 전혀 다른 음악이 된다. 차가 청음실이 되는 것이다.

차 한 대가 세차 터널을 완전히 통과하는 데 드는 시간은 오 분. 한 곡을 듣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PH 농도가 제각각인 세제들이 차례로 전면유리를 향해 날아온다. 파란색 세제가 먼저고 그다음은 자주색이다. 마치 성운이 폭발하는 듯한 세차 퍼포먼스가 유리창 너머에서 벌어진다. 차 안에는 음악이 흐른다. 재생할 때마다 귀퉁이가 닳는 음악, 거품을 내며 줄어들다가 마침내 소멸하는 음악. 오 분이 다 되면 차는 자연스레 세차 터널 끝으로 밀려나고, 곧 초록 불빛이 뜬다.

 

생존배낭에 넣을 플레이리스트는 오롯이 일인용이다. 어떤 곡이든 그것이 극한의 플레이리스트에 꼭 들어가야 하는 이유를 타인이 가늠할 수는 없다. 그 음악을 넣은 이유는 오직 당사자만이 아는 것이다. 매뉴얼이 없는 세계. 그래서 이런 가정 자체가 진지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회사의 박람회 부스에서 ‘생존배낭 속 플리’라는 이벤트가 열렸을 때 한 관람객이 이렇게 물었다.

“이게 두려움을 이길 떼창을 위한 건가요? 그럼 누구나 알 법한 노래여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생각해도 되지만, 홀로 간직할 최후의 음악을 떠올리는 것도 재미있을 거라고 대답했더니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재생기기를 쓴다는 건가요, 아니면 실제로 흥얼거린다는 건가요? 어느 쪽이든 에너지가 소모되겠네요. 배터리든 칼로리든. 비상시에는 사치 같습니다만.”

생존배낭은 극한의 상황에서 우리의 끝을 지연시킨다. 한 사람이 구조를 기다리며 버틸 수 있을 만큼, 대략 칠십이 시간을 살게 하는 최소한의 물품으로 가방을 채운다. 중요한 것은 그 가방을 짊어지고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런 제약이 있으니 음악 하나에도 야박해지는 것이겠지만, 파이어스틱과 방독면 같은 것만 떠올리는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이제는 그런 기본값 말고도 취향을 더해야 살아남는 시대라는 걸.

‘오밀조밀’은 그렇게 해서 생겨난 모델이다. 15리터 배낭을 포함해 기본으로 제공되는 물품은 다섯 가지뿐이다. 나머지는 사용자가 선택적으로 넣고 뺄 수 있다. 배낭 꾸리기가 그 자체로 놀이가 되는 이유는 공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멀티 기능을 가진 제품이 답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한 가지 기능이 망가졌을 뿐인데 물건 전체가 무용지물이 될 때도 있다. 물건의 원래 용도와 전혀 다른 용도를 알아두는 것이 더 안전한 접근일 수 있다. 이를테면 우비는 내복처럼 옷 안에 입으면 체온 유지를 돕는 방한용품이 된다. 공기층을 만들어 방독면으로 사용하거나 긴급할 때는 끝을 묶어 물통으로 쓸 수도 있다. 콘돔도 부피 대비 효율적인 물통이다. 그 안에 1리터가량의 물을 채울 수 있으니까. 바람을 불어넣으면 풍선처럼 부풀기 때문에 폭이 50미터 미만인 강이나 호수를 콘돔의 부력으로 건너갈 수도 있다.

우비를 방독면으로 쓸 일이 있겠느냐고? 50미터 폭의 강을 건널 일이 있겠느냐고? 그게 생존배낭에 필요한 상상력이다. 사소한 생활용품이 히어로가 되는 것을 발견하는 기쁨은 꼭 그 상황에 처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짐을 꾸리면서 그런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하찮은 일상이 확장된다. 낚싯줄이나 은박 담요, 비닐봉지가 얼마나 다양한 용도를 가졌는지 안다면 누구든 그것들을 가방에 넣길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생존배낭을 꾸려본 후, 우주 멀리 날려보낸 골든레코드를 떠올렸다는 고객 후기도 있다. 1977년 보이저호에 실린 지구인의 타임캡슐 말이다. 그 타임캡슐이 미지의 생물체에 의해 개봉되는 순간이 올까? 그런 순간이 오지 않더라도, 골든레코드는 그것을 꾸릴 때의 심리적 동요만으로도 충분한 자극이었을 것이다.

얇은 원판에 담아낸 것이 인류의 정체성 일부였다면 이제 우리는 생존배낭에 담는 것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구조대가 올 때까지 한 사람을 살아 있도록 할 뿐 아니라,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보여줄 수 있는 생존배낭. 그게 이 과포화된 시장에서 우리 회사의 생존을 짊어질 진짜 생존배낭이기도 하고.

 

우리 팀 여섯 명의 생존배낭은 도합 열아홉 개나 된다. 최다 보유자는 팀장으로, 그는 재난의 용도와 장소별로 하나씩 배낭을 꾸려두었다. 이 세계가 그렇다. 모르고도 살 수 있지만, 알면 하나로는 부족한.

나는 평균을 깎아먹는 쪽이다. 생존배낭 기획자치고는 내 것을 꾸리는 데 소홀한 편이어서 칠 년 전에 꾸려둔 10리터 배낭 하나가 전부다. 차의 트렁크에 들어 있다. 아마 있을 것이다. 원래 육 개월 단위로 내용물을 점검하고 업데이트해야 하지만, 열어보지 않은 지 한참 됐다. 그 안에 든 식량의 유통기한은 이미 과거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몇 년 사이에 내게 견과류 알레르기가 생겼기 때문에 초코바나 비스킷의 성분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미룬다. 아마 사람들 대부분이 이렇게 살 것이다. 생존배낭에 관심이 없거나, 있어도 돌보지 않는다. 바쁘니까, 그리고 위기 상황이라는 게 너무 많으니까.

우리 회사는 19층 건물의 여덟 개 층을 쓰고 있는데, 지난해 연말에 그 여덟 개 층만 좌변기 뚜껑이 모두 사라졌고 그 이유를 아무도 몰랐다. 변기 뚜껑을 덮고 그 위에 앉아서 조는, 이른바 ‘화캉스족’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정말 그럴지도 몰랐다. 화장실 좌변기의 뚜껑만이 아니고, 티타임을 하던 공간에도 CCTV가 설치되어 마치 의자를 없앤 것과 비슷한 효과를 주었으니까. 회사는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익명 게시판에는 이 또한 리모델링의 일환이라는 걸 믿을 수 없다는 말들이 쏟아졌다. 이러다 차 한잔 마시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모두 체크될 거라고들 했다.

몇 년 전에도 회사가 우리를 감시한다는 의심을 품을 만한 일이 있었다. 최대 여섯 명까지 팀을 짜 회식비를 받아가도록 하면서 팀 구성은 자율에 맡겼던 것이다. 직원들의 관계를 파악하려는 의도란 말도 있었고, 무리에 소속되지 못한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섬세하지 못한 처사라는 말도 나왔다. 나 역시 어느 그룹에도 들어가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나는 솔직히 그게 더 좋았다. 그룹에 포함되지 않은 경우엔 삼만원어치 포인트를 받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걸 더 선호했고 나도 그랬다. 포인트는 회사의 제휴 쇼핑몰에서 쓸 수 있었다. 선택지가 많지는 않았다. 비용을 더 내지 않아도 되는 상품은 식빵 아니면 달리기 대회 참가권뿐이었다. 지금이야 달리기 대회 참가권의 인기가 치솟았지만, 당시만 해도 그렇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 대회에 참가하면 자동적으로 사내 러닝 동호회에 가입되는 분위기도 기피 요인이었다. 어쨌든 식빵이 먼저 소진되었기 때문에 결국 나는 10킬로미터 달리기 대회를 선택했다. 며칠 후 기념 티셔츠와 양말, 기록용 칩이 달린 배번표가 배송됐고, 그게 시작이었다. 한때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하게 만들던 사람-팀장과 달리기 기록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마치 다른 우주에서 만난 것처럼.

 

팀장은 거의 모든 사람을 몇 가지 러닝화 유형으로 분류하는데, 그에 따르면 나는 ‘악천후용 러닝화’다. 나이키 페가수스41 고어텍스나 아디다스 테렉스 아그라빅 같은. 구름, 비, 눈, 번개가 표기되기도 하는 신발들이다. 묵직해서 궂은날에는 적합하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부담스러운.

“악천후용 하나는 반드시 필요해. 우중런도 해야 하니까. 이런 신발들은 바닥이 미끄럽지 않기도 하지만, 마모도 잘 안 된단 말이야. 밑창이 아아아주 두껍거든.”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고 해도 악천후 전용이라니, 밑창이 아아아주 두껍다니…… 그의 말에 뼈가 있나? 팀장이 곧 부서를 옮기게 될 거란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그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해 오래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다른 팀으로 건너가면 그냥 동네 아저씨지 뭐. 그러나 그가 차기 실장 후보라는 소문 또한 여전히 있었다. 같은 팀 동료인 최는 ‘내가 임과장이라면’이란 말을 두 번이나 하면서, 자기가 나라면 그 라인을 잘 활용할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은 곧 내가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고. 따지고 보면 팀장과 나는 공통점이 많았다. 같은 중학교, 같은 고등학교, 같은 사내 동호회. 지금이야 회원수가 불어나 큰 의미가 없지만, 초창기 러닝 동호회는 확실한 차기 실장 라인으로 통했다. 식빵이 떨어져서 그 무리에 들어간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야심덩어리였다.

지하철 회사와의 협업 건은 꽤 큰 프로젝트였다. 생존배낭 오밀조밀 만 개가 지하철 회사에서 주최하는 러닝 대회에 깔리는 것이었으니, 홍보 효과도 컸다. 팀장은 나를 그 일의 적임자로 추천했다. 급조된 대회라 시간이 많지 않지만 내가 있으니 든든하다면서. 최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거봐!” 하고 속삭였다. 직장인에게 필수적인 서바이벌 덕목 중 하나는 역시 인맥이고, 이번이 내 실력을 보여줄 기회라고 했다.

우리의 오밀조밀 한정판 만 개는 러닝 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기념품으로 제공될 예정이었다. 그중 백 개의 특별판에는 러닝화도 한 켤레씩 넣기로 했다. 내가 소통할 지하철 회사 담당자는 안서현 주임이었는데 그녀는 러닝화가 생존배낭에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라고 믿고 있었다. “가볍잖아요, 엄청난 장점이죠?” 그렇게 묻길래 엄밀히 말하면 러닝화는 생존배낭에 어울리는 신발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가볍고 편하지만 러닝화에 주로 쓰이는 메시 소재는 험한 길 위에서 발을 보호하기엔 역부족이니까. 그렇지만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고립된 주인공에게 가장 중요한 물품은 배구공이었고, 그것은 그냥 공이 아니라 ‘윌슨’이었다. 그러니 생존배낭에 변기 뚜껑을 넣어둘 거라는 팀장의 농담도 그저 허튼소리는 아닌 것이고.

어쨌든 이 생존배낭은 진짜 비상 상황이 아니라 러닝 대회를 위해 준비된 이벤트 상품이었고, 거기에 러닝화가 들어가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대회 홍보 모델은 Z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78세의 마라토너였다. 그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그의 유튜브 채널에 몇 차례 출연했다. 그와 나의 러닝 기록이 비슷했기에 10킬로미터 대회에서 두 번, 하프코스 대회에서 한 번, 그렇게 세 번이나 내 모습을 그의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 이 년 전 하쉬 마라톤에서도 그랬다. 그가 ‘무지개 아파트 보이죠! 무지개 아파트 102동에서 코너를 돌면!’이라고 말하고 있을 때 화면에 잡힌 러너 중 하나가 나였다. 머리끈이 끊어졌을 때인지 산발 상태였다. 통제할 수 없는 게 그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41킬로미터 지점, 6047번 배번표를 단 러너가 멈춰서는 듯하다가 돌연 몸을 반대로 돌린다. 마치 두고 온 게 있는 사람처럼 40킬로미터 지점을 향해 뛰기 시작한다. 그 돌연한 전환 때문에 바로 뒤에서 달려오던 사람이 순간 멈칫한다. 응원하던 사람들이 그 역주행을 인지하기까지 몇 초가 더 소요된다. 뒤로! 뒤로! 역주행이에요. 반대쪽으로! 6047! 역주행이야! 사람들이 외쳐도 뒤로 달리는 러너는 멈추지 않는다.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6047의 달리기에 속도가 붙는다. 거대한 야자수가 태풍에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기어코 쓰러지듯 바닥으로 쿵.

그게 나였다.

그 대회에서 내가 뛴 거리는 42.195킬로미터를 조금 넘었는데 방향이 문제였다. 경로를 이탈해버린 것이다. 41 다음에 40이 올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내게 마라톤 풀코스의 마지막 구간에서 왜 거꾸로 뛰었는지 묻지만 당시에 나는 그게 역주행인 줄도 몰랐다.

가까운 화장실이 뒤쪽에 있어서 역주행을 했다, 뒤에서 달리는 지인을 만나 같이 결승점을 통과하려고 했다, 탈진 상태에서 방향을 혼동했다…… 6047의 역주행에 관한 많은 말들이 오갔지만, 그중에 어떤 것이 사실에 가까운지도 나는 얼른 알아채지 못했다.

과거의 어느 지점을 자꾸 맴돌다보면, 그 끊임없는 복기 자체가 파동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저 아래 잠들어 있던 심해어들을 깨우고 결국 수면 위로 솟구치게 한다. 그렇게 뒤늦게 알게 된 것이 있다. 40킬로미터를 넘어서면서부터 내가 줄곧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 그건 이미 지나쳐버린 한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40킬로미터 급수대 앞에 서 있던 사람을 본 것이 균열의 시작이었다. 방금 지나친 사람이 너무나 ‘나’여서, 보자마자 내가 왜 저기 있지 싶을 정도의 서늘한 충격에 휘말려버린 것이다. 그 얼굴은 혼자만 다른 화질로 표현된 것처럼 이질적이었다. 그러나 환영이라기엔 너무나 선명했고, 무엇보다도 나를 보고 있는 게 확실했다. 그 강렬한 스침이 마치 돌멩이처럼 러닝화 안으로 튀어들어왔고, 점점 커졌다. 결승점을 향해 달리고 있었으니 그 사람으로부터 내내 멀어지는 중이었을 텐데도, 사그라들지 않고 계속. 페이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오른쪽 러닝화의 설포舌布가 진짜 누군가의 혀처럼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그러다 그 오렌지색 설포가 불길처럼 위로 치솟았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굽혀 그것을 잡았고, 다시 일어설 때 홀린 듯이 뒤를 돌아봤다. 그것으로 마지막 제어장치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짧은 일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달려나간 것이다. 40킬로미터 급수대를 향해, 거기에 뭔가를 두고 온 사람처럼. 방향을 돌리자 속도가 붙었다. 몸 내부에 숨어 있던 탬버린들이 일제히 금속판을 흔들었다.

나를 홀린 것이 한 사람의 얼굴이었다고 말하면, 뛰면서 본 얼굴 하나 때문에 역주행을 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농담으로 받아들인다. ‘사랑이었어? 아니면 가해자?’와 같은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완주를 겨우 1킬로미터 남짓 남겨둔 시점에서 역주행이라니,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첫 풀코스의 41킬로미터 지점에서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볼 여유가 있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시력이 나빠서 저만치의 누군가가 나를 향해 오는 것인지 아니면 내게서 멀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가늠할 수 없을 때가 많은데, 그런 내가 달리며 스친 누군가의 얼굴에 사로잡힌다는 것이 가능한가? 착각이었나? 탈진으로 인한 환각 같은 것이었나? 어쨌든 나야말로, 주로의 다른 러너들에게 방향성의 혼란을 불러왔을 것이다. 뛰다가 그렇게 방향을 바꾸면 모든 사람이 나와 충돌할 것처럼 온다.

그래서 그 사람을 다시 봤느냐고? 모르겠다. 의무실에서 깨어났을 때, 내 앞에는 서포터즈 티셔츠를 입은 여자가 있었다.

“괜찮으세요? 바로 제 앞에서 쓰러져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 감사합니다.”

말해놓고 보니 너무 많은 말을 생략한 것 같아 얼른 몇 마디 더 붙이려 하는데, 서포터즈는 다 안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고는 말했다.

“계속 선생님 닮은 분을 찾으시던데, 그랬던 거 기억나요? 그런데 40킬로미터 급수대에 저까지 다섯 명 있었거든요? 여자는 저 하나였고요. 성별 상관없다고 해도, 선생님 닮은 분은 못 본 것 같은데. 혹시 저는 아니겠죠?”

여자는 자못 진지하게 말했지만 누가 봐도 우리는 너무 다르게 생겨 나는 그게 농담이란 것을 알았다. 덕분에 조금 웃었고, 팽팽한 긴장감이 좀 풀어졌다.

“가끔 그런 게 보인대요. 도플갱어, 그거잖아요. 저분도 보셨다는데?”

“예?”

내 뒤에 누워 있던 사람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거 흔해요” 했다. “뛰면 다 비슷해지니까”라면서.

손목시계와는 다르게 대회 기록용 칩에는 어떤 기록도 담겨 있지 않았다. 마치 내가 달린 모든 시간이 휘발되었다는 듯이. 애초에 불량이었던 걸까.

그 이후로 회사 동료들은 내 역주행을 마치 친목용 다과처럼 꺼내 쓴다. 거의 공공재가 된 셈인데, 그래서 상처받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출처를 잊지 말았으면 싶을 뿐이다. 어찌나 이야기가 뻗어나갔는지 이제는 옆 팀 직원이 내게 그 얘기를 들려줄 정도다. 내용이 많이 각색되어서 하마터면 그게 내 경험이라는 것을 못 알아차릴 뻔한 적도 있다. 그러면 나는 30킬로미터 지점이 아니고 40킬로미터, 정확히는 41킬로미터 지점에서 뒤로 뛰기 시작한 거라고, 그렇게 사실관계를 수정해주기도 한다.

농담처럼 주고받는다고 해서 내가 그날의 기억으로부터 완전히 헤어난 건 아니다. 그날의 내 모습을 담은 영상이라면 무엇이든 되돌려보면서 여전히 실마리를 찾는 중이니까. 그럴 때마다 매번 낯선 골목의 초입에 선 사람이 된다. 대회 속 자신의 얼굴을 찾아준다는 앱에서도 내가 아니면서 나처럼 생긴 사람을 찾을 수는 없었다. 선수라면 거기 가만히 서 있었을 리도 없겠지. 행인이었을까? 확실한 것은 내 삶 속으로 누군가가 쿵쿵거리며 들어와 지나갔다는 것이고, 그게 실낱같은 스침에 불과하더라도 나는 그전과 같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루 중 어느 때에, 지나간 얼굴 하나가 풍선처럼 붕 떠오른다. 점점 팽창해서 표면의 무늬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K선은 서울의 동쪽 끝 리버시티부터 서울 밖으로 뻗어나가는데, 출퇴근 시간대가 아니면 이용객이 많지 않았다. 돈 먹는 하마라는 오명을 쓴 노선의 이미지를 어떻게든 소생시키겠다는 절박감으로 부여잡은 기획들이 꽤 효과를 냈고, K선의 열 개 역사를 잇는 하프코스 러닝 대회도 그렇게 탄생했다. 역 계단이나 환승 통로, 역 앞 광장이나 그 뒷골목이 코스에 포함되었다. 러닝 대회가 며칠에 한 번씩 열리는 세상에서 확실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그간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뛰게 하는 것, 새로운 경험을 선점하게 하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지하철 회사 측에서는 폐쇄된 역무실이나 출입금지 카드가 붙은 텅 빈 공간까지도 대회에 열어두었다.

대회는 8월 말에 열릴 예정이었다. 첫 회의 때, 우리 회사의 강필 팀장과 K선의 안서현 주임은 죽이 척척 맞는 한 팀처럼 보였다. “서울이 어떤 도십니까, 지하철을 타고 산 입구까지―” 강필 팀장이 이렇게 말을 꺼내면 그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갈 수 있는 도시지요” 하고 안 주임이 치고 들어왔다. 다시 강필 팀장이 입을 열었다. “전 세계를 다 둘러봐도, 이 정도 규모로 산과 지하철을 다 품고 있는 도시는 흔치 않지요. 지하철역마다, 그러니까 이 생존배낭 오밀조밀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 주임이 또 치고 들어왔다. “하나둘, 쫙 깔린다! 상상해봅시다.”

팀장은 자신의 말을 자꾸 끊고 들어오는 안주임 때문에 당황하다가 후반부에는 거의 포기한 듯 보였다. 안주임은 자신의 그 언어 습관에 대해서 ‘마중나가는 마음’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대부분 그런 마중을 원치 않았지만 말이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팀장은 안주임을 카본화로 규정했다. 카본 플레이트를 밑창에 넣은, 그래서 초보자보다는 중급 이상의 러너에게 권하는 신발. 일 처리 빠르고, 시원시원하고, 그런 면에서 높이 산다고.

“나이키 베이퍼플라이3 정도? 카본화가 반발력이 좋잖아. 다른 거 신다가 그렇게 카본 들어간 걸 신으면 기록이 이십 초 이상 단축된단 말이지.”

그러나 회의가 끝난 후 팀장은 거기에 몇 마디를 더 보탰다. “역시 카본화것들하고는 일상 대화를 하면 피곤해. 대회용, 대회용. 카본화를 걷는 용도로 신으면 불편하잖아? 출렁거리는 트램펄린 위에서 걷는 것처럼 불안정하다고. 사람 말을 그렇게 잘라대니 대화가 안 되지, 대화가. 그래, 카본화 중에서도 특히 그 설포, 그 텅, 텅, 텅이 유독 흐물거리는 유형이지. 말만 많지, 영양가 있는 말은 하나도 없어.”

팀장의 평가와는 달리, 나는 그날 안서현 주임이 했던 말을 그후로도 종종 생각했다. 안주임의 말에 따르면 도플갱어를 만나는 것은 겨우 몇 초간의 일이다. 그러므로 내가 40킬로미터 급수대 앞에서 쓰러지지 않았더라도 나를 홀렸던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방금 떨어진 빗방울 하나를 만나려고 저 바닷가까지 가는 거나 마찬가지죠. 찰나에 불과하다고요. 금세 흘러가니까. 왜, 빛이 나뭇잎에 닿을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보이잖아요, 살아 있는 건 늘 뒤척이는 거잖아요. 그러다 아주 잠깐 같은 꼴로 겹치기도 하는 거고.”

“모두가 서로의 도플갱어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예요?”

글쎄요, 하고서 안주임은 자신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지하철이었는데, 나랑 똑같은 사람이 옷만 다르게 입고 서 있더라고. 한 2미터쯤 떨어져 있었나?”

아무리 그 사람을 쳐다봐도 그는 절대 이쪽을 쳐다보지 않으려는 듯이 있더니 얼마 후에 하차했다는 것이다. 절대, 라는 건 그녀의 해석이 들어간 말이겠지만, 그때 눈을 껌벅껌벅하면서 바라봤던 경험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과장님은 완주를 포기하고 따라갔는데, 나는 그냥 그게 전부예요. 봤다, 는 거.”

“무서웠어요?”

“설마요, 난 모든 자극에 둔감한 사람인걸요.”

“그럼 왜 따라가지 않았어요? 어차피 찰나의 일이라서?”

“피곤해서요.”

안주임은 시큰둥한 어조로 답했다. 지옥철에 앉아 퇴근중이었고, 겨우 확보한 자리를 포기하기 싫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