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리모델링 후 사무실의 인구밀도는 낮아졌지만 업무 강도는 그에 비례하지 않았다. ‘T’라고 불리는 AI 직원이 대거 고용되어서 노동 환경이 나아질 거라는 게 회사의 주장이었으나 실제로는 달랐다. 체감하기로는 업무가 더 늘어났고, 심지어 내 성과와 별 상관없는 일들이라서 더 불만스러웠다. T는 티타임의 머리글자로, 새 시스템 도입이 임직원에게 차 한 잔 마실 여유를 더해준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두고두고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최가 다가와서 자기 자리에서 보이는 뷰가 아쉽다고 말했다. 이전 자리에서는 나무가 보였는데 지금은 화장실 입구가 보인다는 거였다. 나는 내 자리에서 보이는 건 그대로라고 말했다. 아직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저 쇼케이스만 빼면. 저곳에 오밀조밀 한정판이 들어갈지 어떨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전혀 그대로가 아닌걸! T가 정면에 보이는데 이 사람아.”
최가 쇼케이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리모델링 후 사무실에 놓인 난데없는 장식물들 곁에는 작은 모니터가 붙어 있었고, 화면은 꺼지지 않았다. 곳곳에 광고판이 많은 회사라 그러려니 하다가도 그 모니터에 뜨는 문구나 이미지에 기분이 동요될 때가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 ‘보세요, 우리는 모두 다 데이터인 겁니다.’
최는 내 자리까지 오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 말이 좀 웃기게 들렸는데, 직원들이 다른 직원의 책상 앞에 닿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야 했기 때문이다. 의외로 이런 변화가 좋다는 의견도 있었다. 대면 보고나 회의를 할 일이 줄어드니까. 그렇다고 보고서 자체가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증식하는 것 같기도 했다. 기획안을 올릴 때마다 팀장은 2안, 3안으로는 부족하니 4안까지 준비하라고 강조하곤 했는데, T가 도입되면서 업무가 개편된 후에는 10안까지 준비해야 했다. 팀장은 ‘초등학생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일목요연하게 전문적으로’라는 모순된 어록을 남긴 적도 있는 보고서 중독자였으나 그조차도 10안까지 검토하라는 회사 방침에는 발끈했다. “그래 봤자 현실에서는 생각도 못한 11안이 나올 수 있는 겁니다. 20안까지 검토하라, 하면 생각도 못한 21안이 튀어나오고요. 그게 인생입니다. 어쩌겠어요. 이게 의미가 있습니까?”
소문에 따르면 그는 차기 실장에서 점점 멀어지는 중이었고, 화장실에는 점점 가까워지는 중이었다. 새로운 변기 뚜껑이 모두 설치되었지만 팀장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저 플라스틱 뚜껑일 뿐인데도 그는 뚜껑을 의심했다. T가 팀장이 자리를 비우고 화장실에 가 있을 때마다 급하다며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나 과민성대장증후군 있는 거 알지? 화장실만 가면 귀신같이 보챈단 말이지. 이렇게 못살게 굴어.” 팀장은 T를 한정판 러닝화에 빗대기도 했는데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시즌 한정, 이 또한 지나갈 한때의 광풍이라는 뜻이었다.
T가 왜 갑자기 등장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정부에서 AI 시스템 도입을 강조하며 여러 세제 혜택을 제안했고, 회사에서 부랴부랴 그 흐름의 막차를 타는 바람에 모든 것이 졸속으로 진행되었다. 와중에 회사 운영진이 T 도입을 육아에 비유하면서 임직원의 사랑까지 주문하는 바람에 사내 분위기는 더 악화되었다. 왜 한창 일할 성인을 내쫓고 돌봄이 필요한 아이를 데려왔느냐는 반발이 빗발쳤다. 그러나 분위기가 바뀌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확실한 것은 T의 사번은 T로, 내 사번은 8로 시작한다는 것이었고, 8로 시작하는 사번 중 여러 개가 휴면 처리되었다는 것이었다. T의 도입으로 직원 중 몇 퍼센트가 더 정리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정말 그랬다. 고객 상담 부서의 인원이 감축되며 관련한 업무가 나에게 넘어올 정도였다. 원래는 그 공백을 T가 채워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고객이 인간 상담원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서였다. “저는 상담원이 아니잖아요. 그건 제 업무가 아닌데요.” 나는 즉각 항의했다. 팀장은 나보다 더 분개했다. 그러면서 “오밀조밀의 대성공만이 희망이다!”라고 했다. 그 이후 내가 전화 상담을 하는 일은 더이상 없었지만, 다른 자리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멀리 떨어진 다른 책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 수 없었다. 대부분 파티션 구획 안에서 각자의 소란을 고요히 처리했으니. 그러다 어디선가 “DNF!” 하는 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렸다. 최의 목소리, 아니, 내가 했나? 잘 구분되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소통할 때도 미리 알려주지 않으면 내 대화 상대가 T인지 인간인지 알아채기 어려웠다. 이메일로 업무를 처리할 때는 더 그랬다. 점차 T와 T 아닌 인간을 구분하는 게 불필요한 일, 관심 밖의 일이 되어갔다. 그런 걸 구분하는 건 별 쓸모가 없었다. 메일을 주고받던 직원이 T였구나 하고 뒤늦게 알게 될 때도 있었다. 사람이 진국이라는 평판이 돌던 동료가 알고 보니 T였더라 하는 일도 흔해서 딱히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았다. 차라리 반대의 경우라면 모를까. 내 경우처럼 말이다.
T로만 구성된 팀의 메일, 그러니까 T 전략3팀의 메일이 내게로 처음 온 건 7월 초였다. 회사 리모델링이 막 시작되던 때. 스팸 메일로 신고하지 않은 건 그런 전산 오류가 몇 달째 꽤 잦아서였다. 그러다 그 단체 메일이 주기적으로 오는 게 영 성가셔서 답을 보냈다. ‘메일이 오발송되었습니다. 저는 그 팀 소속이 아닙니다.’ 즉각 답이 왔다. ‘아구구, 죄송합니다. 주소록에서 빼드리겠습니다!’
그러나 8월로 넘어가서도 ‘T 전략3팀의 회식 일정 및 장소 상의’ 메일이 왔다. “한 번에 처리되는 일이 없군.” 내가 중얼거릴 때 최가 “그렇다니까!” 하고 추임새를 넣은 것도 기억난다. 그때만 해도 최와 나의 책상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지금에 비하면 확실히 그랬다. ‘메일이 오발송되었습니다. 주소록에 제 이름이 있나봅니다. 바로 수정해주시길 바랍니다.’ 메일을 보내고 오 분도 채 되지 않아서 답을 받았다. ‘어이쿠! 알겠습니다. 빼드리겠습니다!’였다.
그러고도 T 전략3팀의 메일은 계속 날아왔고, 심지어 빈도가 더 잦아졌고, 그 바람에 나는 우리 팀의 회의와 그들의 회의 일정을 헷갈리기까지 했다. T 전략3팀 담당 관리자에게 이메일이 아니라 전화를 걸어볼까 싶기도 했는데 퍼뜩 이런 생각이 따라붙었다. 내가 받은 이메일이 혹시 T의 자동응답일까? ‘어이쿠!’라든지 ‘아구구!’ 같은 과장된 단어 때문에 그게 자동응답일 것 같지는 않았다. 당연히 관리자는 나와 같은 인간 직원이겠지. 그런데 다른 팀에 메일을 보낼 때 그런 사족을 붙이는 경우가 있던가? 그 또한 생소했다. 나는 그들의 메일을 스팸 처리했고 이후 한동안 잊고 있었다.
악천후와 역주행. 둘의 초성이 비슷하다는 걸 알려준 사람은 태오였다. ㅇㅊㅎ, ㅇㅈㅎ. 획이 하나 사라졌거나, 하나 더해졌을 뿐이라고. 뭘 더하고 뭘 뺐을까.
이 년 전 하쉬마라톤에서 역주행을 했을 때 신었던 러닝화는 나이키의 베이퍼플라이2다. 마라톤 스타 킵초게의 말이 옆면에 적혀 있다. ‘No human is limited.’ 그날 의무실에서 깨어났을 땐 이미 러닝화가 벗겨진 상태였는데, 간이침대 아래 놓인 두 짝의 러닝화가 그때만큼 수상해 보인 적이 없었다. 그것은 꼭 탈피한 매미한 껍질처럼 거기 있었다.
그후로 다시 신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또 역주행을 할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이미 러닝화의 영역을 넘어선 것 같아서였다. 딱 한 번, 태오와 함께 가볍게 달릴 때 그것을 신은 적이 있다. 태오가 궁금해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화단에서 노인 두 분이 열심히 뭔가를 채집하는 걸 봤다. 매미 껍질이었다. 그들은 “이거 병원에 들고 가면 돈을 줘요”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거리의 모든 나무가 매미로 뒤덮인 것처럼 보였는데, 그때 탬버린 소리가 들렸다. “매미가 동시에 울면 꼭 탬버린을 흔드는 것 같아.” 내 말에 태오가 대꾸했다. “얼마나 많은 매미가 있는 걸까. 얼마나 많아야 그럴까” 하고. 짧은 외출을 했던 그 신발은 지금도 신발장에 있다. 여름의 끝에 남은 매미 껍질처럼. 건드리면 바삭, 하고 부서질 것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직진했다. 신경쓸 것이 적지 않았을 텐데도 돌아보면 어찌 그리 달려들 수 있었는지 놀라울 만큼. 내가 태오에게 언제 처음 반한 걸까, 홍해파리 운운하며 나를 한 패로 만들었을 때? 아니면 장기 미제 목록을 얘기하던 때? 모르겠다. 나만 태오를 관찰한 것은 아니었다. 태오도 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함께 식탁에 앉기 전에는 식욕이 조금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음식이 나오자 소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싹싹 긁어먹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처음부터 우리는 서로를 유심히 관찰하고,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에 양말 찾으러 우리 안전실에 왔을 때요. 잠시 화장실 가겠다고 나갔던 거 기억나요?”
“그랬나요?” 기억나지 않을 리가. 나는 화장실에서 배낭 속 양말을 발견하고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하나 생각했었다.
“그때 미아씨가 나가면서 엉뚱한 스위치 누른 거 알아요? 화장실 조명을 켜야 하는데, 안전실 조명을 끈 거예요. 우리 안전실은 일층 동향이잖아요, 햇빛이 많이 들어오는 시간대여서 조명이 꺼졌는데도 티가 별로 안 났어요. 조도가 미세하게 달라졌는데, 그걸 나만 느낀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못 알아챘고. 떠올릴 때마다 웃음이 나서 정말. 왜 그렇게 웃어요? 기억나는구나!”
“아니, 그냥. 훨씬 먼저였네. 내가 태오씨한테 반한 순간보다 훨씬 먼저였다고요.”
그렇게 우리는 말을 얹고 얹으며 수다스러워졌다. 어떤 대화는 상대의 말을 끊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내 포개진다는 느낌을 주는데, 태오와의 대화가 꼭 그랬다. 손에 손을 얹듯이, 포개고 또 포개고.
우리는 그렇게 둘이 되었고, 함께 걸을 때마다 둘인 것들을 자주 발견해냈다. 신호등에 들어온 빨간 불빛도 둘, 달리는 자전거의 바퀴도 둘, 공사 구간 앞에 세워진 러버콘도 둘, 보도블록 깨진 틈새에 핀 꽃송이도 둘, 공원의 나무 밑 벤치도 둘, 쌍무지개, 선을 넘었다고 깔깔거리며 주고받는 농담도 양방향이었다. 모두가 커플로 보였다. 상관성이 없는 것들도 나란히 늘어놓으면 필연적인 것이 된다. 우리는 마치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상대방의 바지 주머니에서 발견한 사람들처럼 서로의 이야기에 기꺼이 휘말려들어갔다. 조르주 브라크의 <석류와 녹색 피망>을 보러 갔던 날, 내가 그림 앞에 서서 “꼭 우리 같네”라고 하자 태오의 시선이 바빠졌던 것, 그의 귀에 대고 침대에서의 우리 같다고 짓궂게 속삭였던 것, 그가 못 말린다는 듯이 웃고는 나를 뒤에서 안아주었던 것. 우리는 서로를 당혹스럽게 하는 것을 즐겼다. 그래도 되는 허가증을 발급받은 사람들처럼. 농담은 포물선을 그리며 상대방을 향해 날아갔고, 다시 리드미컬하게 이쪽으로 날아왔다. 라임빛 테니스공처럼 네트를 사이에 두고 움직였다.
언젠가 태오가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면서 세차는 왜 그렇게 자주 하는 거예요?” 나는 교집합 그림을 그리고는 가운데에 세차장이라고 적어넣었다. 꿈을 너무 안 꿔서 세차라도 해야 한다고. 어떤 음악을 좋아하느냐고. 그리고 청음실에 가듯, 우리는 세차장으로 갔다. 마침내 ‘감사합니다, 안전운전하세요’라는 문구가 전광판에 뜰 때까지 음악을 꽉 채워 들었다.
8월 말. 밤의 러닝 대회가 막을 올렸다. 일요일 저녁 일곱시, 같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화사한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나갔다. 출발지인 K10은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했는데, 그 고요한 공기에 펌프질을 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K10에서 K7까지의 전반부 10킬로미터는 대체로 코스가 평탄하고 노면도 고른 편이었지만 풍광이 단조로웠고, K7부터 골인지인 K5까지 11킬로미터가 넘는 후반부는 그 반대였다. 지하철 역사의 계단을 포함해 경사도 높은 업힐 구간이 많지만 군데군데 잔재미를 느낄 수 있는 코스였다. 일단 ‘그림’이 잘 나와서 크게 입소문을 탔다. 핫한 리버시티의 야경도 매력 요소였지만 지하철 역사의 비밀 공간들이 개방된다는 점에서 특히 그랬다. 와중에 인증 숏을 찍겠다고 지하 터널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몇 차례 아찔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회 당일에도 K선은 평소처럼 운행될 수 있도록 일부 출입구만 열어두었다. 특히 K3처럼 다른 노선과 역사를 공유하는 환승역의 경우에는 동선이 꼬일 수 있어 플랫폼이 있는 지하 이층 이하로는 개방하지 않았다.
나는 보고서에 적을 내용들을 꼼꼼히 챙겼다. 기상 상황, 특수한 시설 공개, 교통 통제, 주로의 인파 관리 측면에서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깔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물품 보관 단계에서 잡음이 좀 있었다. 출발지였던 K10은 사용 가능한 공간이 꽤 넓었으나 골인지인 K5는 도심 한복판이어서 제약이 많았고, 결국 물품 보관 차량에서 짐을 모두 꺼내 미리 바닥에 줄 세워놓아 혼란을 야기했다. 자정이 되도록 짐을 찾아가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으므로, 주최측은 남은 짐을 역사 안으로 들여놓았다. 팀장은 내 보고서를 읽고 ‘혼란을 야기했다’가 너무 무난한 표현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대회에 참가했고, 그 혼란의 현장에 있었다.
“‘헬게이트를 열었다!’ 이렇게 적어야 한다고. 이번에 나 한 시간 사십 분이 목표였잖아, 그거 달성하고, 아홉시 반인가 그때 갔는데도 벌서 짐을 다 꺼내놨더라니까!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죄다 바닥에 놓여 있는 거야. 길바닥이 그냥 짐 찾으려는 사람들로 난리 북새통이어서, 어우 어질어질하더라고. 그 밤에, 등불을 환하게 해뒀는데도 잘 보이지도 않고, 얼마나 마음이 급해. 그런데 이거 봐봐.”
무수한 별들처럼, 강에 놓인 촘촘한 돌다리처럼, 입속의 가지런한 치아처럼 그렇게 바닥에 줄지어 놓인 것이 우리 생존배낭 오밀조밀이었다. 주최측에서 참가자가 맡긴 짐을 일단 모두 땅에 내려놓는 바람에 시각적으로 더 많이 노출된 것이다. 참가자들에게는 혼란을 야기했지만, 아니, 헬게이트를 열었지만, 회사에는 뜻밖의 즐거움을 준 이미지들이었다. 대회 전부터 #오밀조밀레이스팩 이라는 해시태그로 게시물들이 무척 많이 올라왔지만,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도 오밀조밀이 등장하자 팀장은 한껏 고무된 모습이었다. 러닝 대회가 열리면 그 일대의 화장실과 주차장도 전부 붐비니까. 주차장에서도, 식당에서도, 의료원에서도 오밀조밀이 출몰했다.
대회 당일에 나는 K3의 초입에 있었다. K3은 K선 열 개 역사 중에서도 가장 활용하기 까다로운 곳이었다. K3인 동시에 B9였기 때문에. K선과 B선은 같은 역사를 나눠 쓰지만 다른 회사 노선이었고, 그래서 충돌하는 사안들이 조금 있었다. 오래전에는 K선과 B선의 역무원들이 함께 꾸리는 바자회 같은 것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K선이나 B선이나 역무원의 수가 줄어든 것은 마찬가지여서 그런 교류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두 해 전 큰 폭우가 왔을 때 같이 대응한 것이 이례적인 경우였고, 보통은 소통조차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조차 B선 플랫폼에서 출발하느냐, K선 플랫폼에서 출발하느냐에 따라 내부 안내도가 달랐다. 지하철 노선 하나가 새로 개통되는 문제를 두고 첨예하게 부딪쳤던 두 회사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바로 그 일 때문에 K선 곳곳에 이미 만들어졌으나 사용되지 않는 유휴지가 좀 있었고, 그 비밀 통로들이 이번 대회의 하이라이트였다.
K3에서 K5까지는 4킬로미터 남짓, 열차로 두 정거장이지만 역무원들의 비밀 통로로 걸어가면 1.1킬로미터 거리였다. 평소에는 닫혀 있어서 역무원들만 이용하지만, 이번 대회를 위해서 활짝 열어둔 곳, 원래 신축 역사의 환승 통로로 계획했던 만큼 폭도 넓었다. 이 구간의 시작점에 오밀조밀의 팝업 스토어가 들어섰다.
팝업 스토어 준비로 새벽부터 서둘러 행사장으로 나왔을 때, 태오가 잠시 인사를 하러 왔다. 교대 근무가 끝나 퇴근하는 길에 보러 왔다면서. 잠깐 쉬다 대회 시작 전에 K5로 다시 나올 거라고 했다. 너무 일찍 나왔더니 눈이 뻑뻑해, 했더니 태오가 내게 눈 지압을 해보라고 권했다. “이렇게, 이렇게, 꾹꾹, 눈 주위 뼈들을 양손으로 누르는 겁니다” 하면서 시범을 보이다가 내 쪽으로 다가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이혜자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거예요.”
“이혜자 선생님?” 정말 어린애 같은 말투여서 웃음이 날 뻔했는데 다음 순간 그가 내 눈썹 뼈 아래를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적당한 압력으로, 부드러운 손끝으로 정성을 다해서.
“매일 꾸준히 해요.”
“아아, 이렇게 지압을 매일?”
그래서 시력이 좋구나, 대꾸하려는데 그가 얼른 말을 이었다.
“아니요, 사랑이요. 매일 사랑을 한다고요. 꾸준히.”
슬쩍 넘어버린 날짜 변경선이었는데 내가 모르는 척하자 그는 다시 말했다. “임미아를 사랑한다고요. 매일매일 꾸준히.”
그리고 내 관자놀이를 다시 지긋하게 눌렀다. 비밀 통로를 순식간에 통과해버린 말. 나는 그의 말을 혀 위에 올리고 얼음처럼 천천히 녹였다. 내 혀가 거기 있음을 알려주는 온도. 그러다 시야에 들어온 한 사람의 놀란 눈, 안주임이었다. 서로 못 본 체할 타이밍마저 놓쳐버려서 세 사람 모두 당황했다. 안주임도 상당히 난감해 보였다. 태오가 얼른 다른 화젯거리를 찾았으나 그런다고 우리 사이의 기류가 감쪽같이 가려진 건 아니었다. 안주임은 주섬주섬 가방에서 초콜릿 한 상자를 꺼내더니 테이블 위에 풀어놓고는 잠시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말했다.
“이거 맛있는 건데 많이 안 드셨네. 무슨 초콜릿을 바둑 두듯이 먹어요? 지긋이 보다가 하나씩 돌 옮기듯이.”
그러고서 안주임은 우리에게 비밀 교환을 제안했다. 자신이 K8과 K9 일대의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그 부근 순찰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털어놓고는 서로의 비밀을 지켜주자고 했다. 우리가 무안할까 싶어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죄송해요. 그렇게 됐어요” 하자 안주임은 “애정에 죄송이 어딨어요. 유부도 아닌데 뭔 상관! 완전 멋있어요!” 하고는 엄지를 척 세워 보였다. 그리고 우리 사이를 응원한다고 했다.
가끔 생각한다. 누구도 우리 사이를 응원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애초에 태오와 내가 따로 만난다는 걸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면 무엇이라도 좀 달라졌을까.
내가 서른일곱 살 여성이고 그가 스물일곱 살 남성이고, 그의 인턴십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근무 평가에 오밀조밀 프로젝트 수행자들의 이름도 올라가 있고, 수행자 중의 하나가 나라는 것. 요약하자면 내가 그의 정규직 채용 여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 그게 우리 관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다만 그 실체와 맞닥뜨릴 순간을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우리는 이제 겨우 만나기 시작했는데, 그 복잡한 현실의 무게를 논하는 것으로 우리의 시간을 채우고 싶지 않았다. 러닝 대회가 마무리되면 그 이후에는 조금 자유로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태오는 그날 저녁 K5 근처의 마지막 급수대에서 서포터즈 업무를 했다. 역무원의 얼굴로 알려진 만큼 복장을 잘 갖춰 입고 요청하는 사람들과 사진도 함께 찍으면서. 그의 표현에 따르면 “탈을 쓴 건 아닌데 탈을 쓴 거나 마찬가지”인 사람이었으니까.
모든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시각은 새벽 한시. 그날의 꿈에서도 테이블 위에 물컵을 펼쳐놓고 거기에 음료를 따라두는 일을 내내 했다고 한다. “2리터 페트병 하나를 따면 종이컵 열두 개 분량이 나와요. 종이컵을 쫙 깔고 거기에 슉슉슉슉 따르는 거죠. 아아 꿈에서 너무 열심히 일했어요. 포카리스웨트, 파워에이드 라벨이 막 지금도 아른거릴 정도로. 러너들의 열을 식혀줄 물먹은 스펀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챙겨야 하는데, 물이 순식간에 증발하는 거예요. 스펀지 안에서도요. 그래서 정신이 없는데 함께 있던 일행 하나가 저기 온다고, 드디어 한 무리가 온다고 하더라고요. 엄청 길다고. 보니까 아주 긴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어요.”
“그래서 꿈에서 깬 거예요?”
“아뇨, 열차를 탔죠. 앉아 있는데 기관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승객 여러분, 오늘 하루도 애쓰셨습니다. 지금 열차가 강을 건너고 있으니, 잠시나마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이십 년쯤 전에 태오가 실제로 경험한 적이 있는, 그를 철도 덕후로 만든 기억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진짜 기관사의 육성을 들었던 순간. 그때부터 태오는 이 세계를 동경하게 됐고 언제나 기관사가 꿈이었다.
“그때는 기관사가 열차마다 있던 시대였어요. 이 년 전까지만 해도 일부 열차는 그랬다는데! 깜짝 멘트를 하는 기관사가 되고 싶었는데, 요즘은 무인 열차로 많이 바뀌었잖아요. 기관사, 역무원 채용도 많이 줄었고요. 아무래도 저는 너무 늦게 태어난 것 같아요.”
무인 운행 열차에는 기관사나 안전 요원이 타기도 하지만 의무는 아니며, 예전처럼 방송을 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그가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는 멘트 ‘바쁜 일상중에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시기 바랍니다’라든가 ‘비가 오고 있습니다. 우산은 챙기셨습니까?’와 같은 말이 열차에 흐를 일은 이제 없었다. 그저 정해진 시간에 미리 녹음된 광고나 캠페인이 흘러나갈 뿐이다. 구십년대에 고정된 꿈의 세계로부터 삼십 년이 더 흐른 뒤의 역무원. 그는 매일 현실로 출근하면서도 성실하게 꿈속 역사를 챙겼다. 그러다 현실이 먼저 막을 내렸다.
러닝 대회가 끝난 다음날 아침부터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간당 100밀리미터를 기록한 집중적인 호우였다. 대회일에 비가 오지 않은 게 천운이었다 싶을 정도로. 오전 아홉시 오분, K선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안전실로 연결되기까지 세 차례의 복잡한 인증 절차를 거친 고객이었다. 당시 안전실에는 사회복무요원과 태오, 두 사람이 있었다. 태오는 전화를 받아 고객의 민원 사항을 들었다. 수화기 너머로 한 여자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열차를 갈아타는 중인데요, 어제 이 시간대에도 봤던 사람이 똑같은 벤치에 누워 있어서요. 그 마라톤 가방 메고 있거든요? 어제랑 옷도 똑같고 자세도 똑같아서 혹시 긴급한 상황인 게 아닌가 해서 전화를 걸었어요……”
태오는 매뉴얼대로 위치를 물었다.
“아? 지하철 승강장인데요. K3이요.”
“예, 고객님. 이 역을 지나가는 노선이 두 개여서요, 그중에 어느 노선 승강장일까요?”
승객은 B선을 타고 오다가 K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승강장에 내렸을 때 그 남자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태오는 모니터를 보면서 응대했지만 그 시간 K선의 승강장 어느 벤치에도 누워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 그럼 B선의 승강장인 것 같습니다, 승객님. 여기는 K선 안전실이라서요. 그러면 제가 B선 쪽으로 이 사안을 전달하겠습니다.”
태오는 고객의 신고 내용을 B선의 안전실로 전달했다. B선의 안전실은 B9, 그러니까 K3에 있었다. B선 승강장의 일은 B선 고객안전실로 전달한다는 게 매뉴얼이었고, 그대로 움직여야 했다. 관할구역 밖의 일이니까, 담당자에게로.
어쩐 일인지 B선의 고객안전실에서는 그 일을 접수하고도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전화가 처음 걸려온 것은 오전 일곱시, 당시에 B9의 출구 두 곳에서 폭우로 인한 문제가 생겨 민원이 쇄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상황 속에서 B선을 담당하던 역무원 모두 K선에서 날아온 업무 이관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누락된 조각 하나는 최초의 신고 전화를 받은 태오가 교대 근무를 마치고 일어나던 길에 B선 승강장 쪽을 확인한 후 다시 이어졌다. 태오는 자신이 담당해야 했던 민원 두 건을 대면 처리한 다음 그쪽으로 이동했다. 퇴근길에 발걸음을 돌려 확인했던 것이다. 오전 열한시 사십분경이었다. K3, 아니 정확한 행정구역으로는 B9 플랫폼의 나무의자에 누워 있던 사람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