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그 사람은 긴 나무의자에 정물처럼 놓여 있었다

5.

그 사람은 긴 나무의자에 정물처럼 놓여 있었다. 칠십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신원 미상의 노숙인.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고 그냥 지나칠 법도 했다. 폭염과 폭우를 피해 지하철 역사로 들어와 잠드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문제로 B선은 여름 내내 골머리를 앓았다. 물리적인 개입을 하다가 시끄러워진 적이 있었기에 웬만하면 충돌을 피하라는 내부 지침도 있었다. 길들이며 적당히 익숙해져야 할 만성질환처럼 여기라는 거였다. 관리의 사각지대, 그러니까 민원이 들어올 가능성이 없는 한밤중에 노숙인이 역사에 머무는 정도는 적당히 눈감아주자는 게 B선 직원들의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그럼에도 종종 혼잡한 출근 시간대에 플랫폼에서 발견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민원 신고가 들어왔다.

‘70대 추정 남성, 지하철역에서 사망 상태로 발견’ ‘노숙인 사망, 범죄 혐의점은 없어’와 같은 제목의 기사는 다른 사건에 묻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외상도 없고, 외부의 개입이라 할 만한 것도 없어 보였던 그 일은 무수히 많은 변사 사건 중 하나로 지나갔다.

K선 안전실로 전화를 걸었던 그 승객은 매일 같은 시간대에 같은 열차를 이용하는 사십대 여성이었다. 출근길에 눈길을 끌 만한 특별한 일이 벌어지는 경우는 아주 드문데 그날따라 한 사람이 의자에 누워 있는 모습이 자꾸 눈에 걸렸다고 했다. 벽을 바라보고 새우처럼 몸을 웅크린 채 누운 사람. 그가 멘 가방은 여자가 러닝 대회 참가 신청을 하고 받은 오밀조밀 레이스팩과 같은 것이었다. 대회는 끝났지만 오밀조밀은 K선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광고중이었고, 저만치 보이는 오밀조밀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뭔가 싸한 느낌에 사로잡힌 건 누워 있는 사람의 자세 때문이었다. 불편해 보였다. 처음에는 그가 오렌지색 배낭을 베개처럼 베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베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배낭처럼 메고 있는 것이었고, 그렇다면 좀 이상한 광경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전날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이 떠올랐고, 저 사람을 본 게 처음이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여름용 소재는 아닌 듯한 겨자색 비니 모자, 오밀조밀 배낭, 무엇보다도 그의 뒷모습 실루엣이 마치 굳어버린 화석 같았다고 승객은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 화석을 지나쳐 빠르게 이동하는 동안에도 계속 께름찍한 느낌이 따라붙었고, 결국 ‘담당자’와의 통화 연결을 시도했다고. 비가 쏟아져 더 붐비던 오전이었다.

“전화 연결을 위해서 이메일 주소까지 하나하나 휴대폰으로 입력해야 했어요. 답변을 주시겠다는 의도인 건 알겠는데, 긴급한 상황에는 그게 다 장벽이에요. 그냥 바로 연결되는 방법이 왜 없죠? 물론 역무원과 직통으로 연결하는 버튼이 있다는 걸 알아요. 어딘가에 그게 있다는 건 들었어요. 열차 안팎 곳곳에 큐알코드가 보였고요. 그런데 출근길에 그거 접속하는 거 하늘의 별 따기예요. 연결해도 계속 통화중이고요. 그리고 휴대폰이 없는 사람도 있고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 사람들한테는 큐알코드니 그런 게 자물쇠를 달아둔 문이나 마찬가지예요.”

기자가 물었다. “지금 말씀하신 곳이 B선입니까, K선입니까?”

승객은 뭔가를 헤아려보려고 애쓰다가 결국은 다 뒤섞어버렸다. 나중에는 B선과 K선을 일부러 뒤섞어서 대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요”라고 그녀는 말했지만, 사실 그게 아주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이었다. B선과 K선은 삼 년 전에도 역 인근 하수도의 퇴적물 냄새 문제로 갈등을 빚은 적이 있었고, 지하철 노선 추가 개통 건으로도 첨예하게 대립한 바가 있었다. 어느 노선에서 벌어진 사건이냐에 따라 책임 소재가 달라지기 때문에 섣불리 관여했다가는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었다. 하나의 역사를 같이 쓰는 두 회사는 최소한의 소통만을 유지한 채 서로에게 얽히지 않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B선 역시 K선과 마찬가지로, CCTV를 촘촘하게 설치해 사각지대를 3퍼센트 미만으로 줄였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이 사망 사건의 경우 승객과 지하철 회사의 소통은 비교적 고전적인 방식인 전화로 이루어졌고, 그들이 내세운 자동화 시스템은 도리어 제보 속도를 지연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승객은 역무원과 통화 연결이 되기까지 팔 분가량을 자신이 로봇이 아님을 입증하는 데 써야 했고, 그다음 팔 분은 장난 전화가 아님을 알리면서 현재 온라인 시스템상으로는 자신이 신고하려는 내용을 접수할 마땅한 창구가 없다는 사실을 설명하느라 진을 빼야 했다. “이 제보를 이전에도 한 적이 있나요? 두 번 이상 같은 내용을 접수하면 취소될 수 있습니다”라든가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와 같은 질문이 반복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녹음된 멘트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자주 흘러나오는 까닭이 무엇인지, 그 의중을 파악할 수 없었다. 몇 단계에 걸쳐 승객의 확답을 받아낸 시스템은 그 사이사이에 사용자 만족도 조사와 같은 덜 시급한 항목들까지 끼워넣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고객과의 소통을 회피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통화를 계속하겠느냐는 질문을 너무 많이 했어요. 예와 아니오를 고르는 버튼은 계속 바뀌고요. 처음에는 1번이 예, 2번이 아니오였는데 그다음번에는 1번이 아니오, 2번이 예였다니까요. 이 정도면 승객을 갖고 노는 거 아닌가요.”

일 년 전에도 이 년 전에도 비슷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역무원의 얼굴’이었고. 그러나 폭우가 쏟아진 날 너무나 많은 사람이 역무원의 얼굴을 찾는 바람에 모두가 부재중이었다. K선 안전실에서 제보 전화를 받은 역무원이 B선으로 그 건을 이관했을 때, B선에서는 ‘확인 완료’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담당자가 선택하지 않으면 뜰 수 없는 메시지였다. 이렇게 ‘확인 완료’가 뜨고 나면 곧 ‘후속 조치중’으로 상태가 변경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평소처럼 문구가 바뀌지 않아 K선 안전실에서는 한번 더 재발송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곧 ‘후속 조치중’으로 B선의 상태가 전환되었고, 그렇게 그 일은 K선의 손을 떠났다.

이처럼 모든 과정이 매뉴얼대로 진행되었다는 것이 K선의 입장이었다. B선으로 민원을 전달했고 그들이 ‘확인 완료’라고 답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K선의 임무는 다한 것이라고. 최초의 신고는 아홉시 오분에 K선 안전실로 들어왔고, 그것을 B선으로 이관한 시각이 아홉시 칠분. B선에서 확인 버튼을 누른 시각이 아홉시 팔분, 그리고 후속 조치 중이라는 메시지가 뜬 시각은 아홉시 이십분. 아홉시 팔분과 아홉시 이십분 사이에 K선에서 ‘재발송, 처리 확인 요망’ 메시지를 다시 발송했다.

 

B선으로는 일주일에 몇 번씩 벤치에 누가 잠들어 있다는 제보 전화가 왔다. B선의 전화 연결 시스템도 승객 입장에서 수월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는데, 그렇게 고생스럽게 제보한 내용을 접수해 역무원이 현장으로 가도 사건이라고 할 만한 장면을 맞닥뜨리는 일은 많지 않았다. 대개는 예상 가능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잠든 노숙인을 깨워서 내보내야 하는 일 같은 것 말이다. 그러니 누군가 벤치에 누워 있는 일은 B선 담당자들에겐 그리 시급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다.

게다가 사건 당일 B선에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인력이 없었다.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그날 오전 여섯시에 B선의 출입구 두 곳을 마비시켰다. 그중 한 곳은 승객의 통행을 위협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는데 역사에서 지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의 천장 유리가 깨졌던 것이다. 이중유리였는데 위에 있는 유리가 깨져서 아래로까지 떨어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역무원들은 강풍과 폭우 속에서 깨진 유리를 가까스로 고정해 임시 조치를 취해놓고, 그 출입구를 폐쇄했다. 출근 인파가 다른 쪽 출입구로 몰리자 또다시 민원이 빗발쳤다. 역무원 두 사람이 그곳으로 가서 현장 대응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럼 대체 누가 확인 버튼을 눌렀다는 것인가? 안전실에도 물론 인력이 있었다. 안전실을 비울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B선은 안전실의 CCTV 녹화본을 공개하지 않았다. K선도 마찬가지였다.

B9는 통행량이 많은 역이었고, 기록이 넘쳐났다. 없어서가 아니라 늘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데이터는 넘쳐나는데 그것을 살피고 판단하고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불균형이 진짜 문제였다. 승객들은 구석구석 CCTV가 작동하고 모든 것이 녹화된다는 것에 안심했지만 이상이 감지되었을 때 바로 뛰어올 사람이 없다는 게 얼마나 큰 구멍인지 알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너무 흔한 세상이어서 금세 또 무뎌졌다.

나 역시 그랬다. 태오가 사망 상태의 남성을 발견했던 얘기를 내게 간단히 해주었는데, 놀라긴 했지만 그 일의 여파에 대해서는 어떤 예감도 하지 못했다. 현장에 갔던 태오가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염려했을 뿐. 만나기로 했던 약속이 취소되었을 때도 태오가 말한 것처럼 행정적인 절차들로 바쁘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태오에게서 메시지가 왔을 때, 나는 이런 문구를 쓰던 중이었다.

‘생존배낭이 집과 차에 하나씩 놓여 있다고 해도, 이동중인 지하철이나 모르는 건물의 엘리베이터에서 급작스러운 재난과 맞닥뜨리면 무슨 소용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처한 상황이 꼭 그랬는데도, 그때는 인지하지 못했다.

그것은 생존배낭 시리즈 ‘틈새’의 기획안이었다. 기존 것에서 부피와 무게를 절반으로 줄인 상품, 엄밀히 말하면 생존배낭이라기보다는 생존파우치 정도로 볼 수 있을 휴대용 상품이었다. 태오에게 답장을 한 후 나는 계속 기획안을 수정했다.

‘지름 15센티미터의 구 형태로, 호루라기와 발광스틱 등 기본 아이템 아홉 가지로만 채우면 무게가 520그램에 불과하다. 프레퍼족(prepper, 갑작스럽게 닥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재난 상황에 대해 철저하게 준비하는 사람들)보다는 출근 가방이나 장바구니에 키링 하나 매다는 정도로도 안심할 사람을 위한 미니 보험에 가까운데……’

그러다 고개를 들면 비어 있는 쇼케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오밀조밀 한정판은 그 정도면 성공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쇼케이스는 여전히 비어 있었고, 바로 그 앞에 담당자인 내가 앉아 있는데, 내게로 다른 업무가 투척된 것이 한마디로 어이 상실이었다. 급하다고 하니까 엉겁결에 받긴 했지만 이건 내 일이 아니라 땜빵 업무였다. 팀장에게 이 무질서의 이유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 역시 다른 팀 업무에 동원된 상태였다. “엉망진창이네요.” 내 말에 팀장은 “내가 이 꼴을 보려고 지금까지 그렇게―”로 시작되는 신세 한탄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위엄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중이라고 했다. 그 위엄, 어디 있나요? 묻고 싶은 것을 관두었다. 아슬아슬한 젠가놀이를 하듯 내 자리까지 걸어온 팀장이 어딘가 안쓰러워서. 폭력적인 리모델링 속에서 모두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많은 변사 사건 중 하나로 묻힐 뻔했던 그 일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 건 노숙인의 사망 전날 행적이 밝혀지면서부터였다. B선의 플랫폼에는 녹화 사각지대가 거의 없었지만 CCTV가 먹통이 된 시간대가 있었다. 폭우로 CCTV 녹화 파일이 일부 훼손되었고, 그렇게 구멍 뚫린 몇 시간 동안 노숙인이 같은 자리에 누워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B9에서 한참 떨어진 지역에 위치한 노숙인 쉼터에 그의 기록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쉼터에서 이루어진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수해 방지를 위한 대비 작업을 하고 그곳에서 밥을 먹었다. 또다른 쉼터의 이용 기록에도 그의 동선이 남아 있었다. 그는 주민등록이 말소된 칠십세 남성으로 노숙인 지원 시스템 안에서도 체계적인 관리를 받지는 못했고, 당뇨를 앓았다. 그러나 그는 비교적 건강한 편이었다고 쉼터 관계자가 말했다. 몇몇 사람의 기억 속에서 그는 꽤 활동적인 사람이었고, 사망 전날에도 그랬다.

사망한 사람의 사진과 사망한 사람의 이야기가 공개되면서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혹시 노숙인이어서 사건을 대충 종결한 것이 아니냐는 식의 의혹이 스멀스멀 피어올랐고, 최근 비슷한 사건들을 연이어 겪으며 여론이 부담스러워진 경찰은 종결된 사건을 다시 끌어올렸다. 국민적 관심에 충분히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했다. 부검 결과, 그의 죽음에 외부의 개입이 없다는 것은 사실로 밝혀졌지만, 여러 세세한 말들이 따라붙었다. 저혈당 상태로 의식이 소실되었을 가능성도 그중 하나였다. 의료계 전문가들이 언론 인터뷰를 했다. 저혈당이라면 수 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기에 무엇보다도 빠른 대처가 중요하다고.

“관할 구역이 사람 목숨보다 중요하냐!” 같은 댓글이 등장했고, 삽시간에 들불처럼 번졌다. 그동안 응축되었던 불만들이 동력이 되었다. 자동화와 무인화 시스템의 허점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까지 책임을 지려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 왜 전화를 받은 사람이 바로 달려가지 않았느냐,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만큼 이상해 보이니까, 보통 상황이 아닌 것 같으니까 전화를 한 게 아니겠느냐, 노숙인이니까 대충 응대한 것이겠지, 최초 제보자는 왜 지하철 안전실로 연락을 했느냐, 차라리 119로 연락을 하는 편이 낫지 않았느냐…… 그렇게 신고 전화를 한 승객에게까지 비난이 옮겨붙었다.

물리적인 거리만 헤아리자면 K선의 안전실이 B선의 안전실보다 사망 지점에 더 가까웠다. 러닝 대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그 1.1킬로미터 통로를 뛰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K선의 안전실이 있는 K5에서 K3까지는 비밀 통로로 연결되어 있고, 대회 때 그 통로를 뛰어본 사람들이 대략 만 명이나 됐다. 뛰어가면 십 분 이내로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K선의 역무원이 전화를 받자마자 B선의 승강장을 향해 내달렸다면? 바로 구급차를 불러 그를 옮겼다면? 그 질문은 태오에게 낯선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오만 가지 가정을 얘기하기 전에 태오 스스로 수없이 던지고 또 던졌던 질문이었으니까. 신고 전화를 받은 역무원이 즉각 현장으로 달려갔더라면, 그랬다면 그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내가 그곳으로 뛰어갔더라면?

“그 통로로 달려가면 오륙 분밖에 안 걸린다는 거야.”

최가 그렇게 말할 정도로 이 일은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는데, 그의 말속에 생략된 주어가 누구인가 생각하면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때 달려갔어야 했다고 이야기되는 그 역무원이 태오라는 것, 그것이 내게도 그러한데 당사자에게는 어떤 무게였을까. 태오는 매뉴얼대로 대응했지만, 그가 느끼는 압박은 매뉴얼 범위 밖에 있었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담당자들의 판단이 미흡했던 게 아니냐는 말 앞에서 태오는 움츠러들었다.

태오는 경찰에 출두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태오뿐 아니라, 현장에 함께 있었던 사회복무요원과 안주임도 함께였다. 안전실에 차곡차곡 기록된 CCTV 녹화본, 대화 녹취록, 근무 일지까지 모두 자료가 되었다. 안주임은 태오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별일 없을 거라고 긴장하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하철역에서 일하다보면 별별 일이 다 있거든, 하면서. 핵심은 그들이 매뉴얼을 잘 지켰는지 여부였고, 태오는 그대로 했으니 별일은 없을 거라고. 태오는 경찰 조사에서 최초 신고 시각이었던 아홉시 오분부터 현장에 도달한 열한시 사십분 사이를 몇 번이고 재구성해야 했다. 기억대로 얘기해달라는 것이었지만, 말할수록 태오는 지쳤고, 말을 해도 해도 자신이 변명하고 있다는 기분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급기야 경찰이 사망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는지 물었을 때 태오는……

 

두 노선의 역장과 회사 대표들이 사망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뒤늦은 입장문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내용이 너무 간략하고 평이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벌어진 사건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사 사례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K선이 먼저 그렇게 올렸고 B선의 입장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두 노선은 전혀 다른 회사의 것이었으나 입장은 똑같았다.

두 회사만이 아니었다. 오밀조밀 담당자로서 내가 느끼는 압박감도 점점 커졌다. 우리 회사의 생존배낭을 메고 잠든 이의 사망 사건은 그 자체로도 막연한 불안감을 주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실체가 되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저혈당이 그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원인이라면 생존배낭 안에 들어 있던 포도당 캔디의 무용함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포도당 캔디가 히든포켓에 들어 있었는데 그것은 왜 그를 구하지 못했는가, 무수히 많은 질문들을 인공지능 직원인 T가 던지고 있었다. 내 답변을 요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