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태오를 처음 본 건 지난여름 초입이었고 마지막으로 본 건 그 가을의 끝자락이었다

11.

태오를 처음 본 건 지난여름 초입이었고 마지막으로 본 건 그 가을의 끝자락이었다. 단풍이 꽤 오래 현재형으로 물들어 있었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데 매달린 나뭇잎이나 떨어진 나뭇잎이나 제각각 아름다워서 마음이 자꾸 무너졌다. 어쩌자고 아름답지, 날더러 어쩌라고. 밤의 단풍잎들이 붉은 샹들리에처럼 빛나서 감히 그 아래로 걸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국지성 호우로 요란하던 날들을 지나는 동안 지하철 역사 몇 곳이 침수되었고, 한동안 열차는 물이 들어찬 역들을 무정차 통과했다. 마치 그 역이 없는 것처럼. 복구 작업은 신속히 이루어졌지만, 이상하게도 가끔 열차에서 과거의 폭우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뜬금없는 오작동이었을 텐데, 현재 K4는 침수되어 열차가 무정차 통과합니다……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태오 생각을 했다.

휘청거리면서도 시간은 잘 흘러갔다. 대관람차 안에서 골랐던 막연한 미래―세 달 후 토요일―가 마치 잘못 배송된 우편물처럼 내 앞에 놓였다가 무정차 통과하듯 스쳐지나갔고, 나는 겨우 다시 여름에 닿았다. 태오를 처음 만났던 그 계절로 온 것이다. 그와 헤어진 시점으로부터 반년이 더 지났는데도 여전히 이별을 실감하지 못했다. 이미 지나쳐버린 곳 어딘가에 내 일부를 떨어뜨린 기분이었는데, 여름의 빛으로 달아오른 골목을 걷다보면 과거가 아니라 현재가 분실 지점처럼 느껴졌다. 여기의 나를 집어들어 과거의 나에게 되돌려주면 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 일상은 일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생존배낭 안에 담아야 할 것이 바뀌었을 뿐이다.

사무실은 폐장 이후의 미술관처럼 고요하다. 팀 구성도 근무 형태도 많이 바뀌어서 오전 내내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아는 얼굴 하나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 시선이 닿는 위치에는 책의 부위별 명칭이 표기된 안내판이 붙어 있다. 이번 디스플레이의 핵심은 책이다. 몇 달 후 열릴 책 축제를 앞두고 텍스트힙 한정판을 준비중이기 때문이다. 표지, 책등, 책배, 책꼬리, 책머리, 책날개…… 사무실 사람들은 한동안 책과 관련된 것이 아니어도 ‘면지’니 ‘책등’이니 하는 용어로 부르기를 즐겼다. 주식시장, 유행하는 디저트, 회사 내부 구조까지 모두 그런 명칭을 써 얘기했다.

책등은 발 전체가 휘지 않도록 잡아주는 미드솔 같은 것이며, 면지는 인솔 기능을 하는 거라고. 팀장은 러닝화의 구조에 빗대 설명하기도 한다. 우리가 그런 용어까지 모두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소소한 즐거움이기도 하고 약간의 강박이기도 하다. 지난번 러닝화 에디션을 만들 때도 누군가 “이 부분의 천은 말이죠” 같은 말을 하면 T가 요란하게 정정했다. “방금 천이라고 하신 부분은 미드솔을 언급하신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라는 식으로. 다른 팀 T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보니 우리가 선호하는 회의 분위기를 우리 팀 T들이 읽어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 같다. 이런 얘기는 모두 최가 들려준 것이다. 최는 T 사이에 있다가 두 달 만에 다시 우리 팀으로 원복됐다. 이제 팀장 포함 인간 셋, 그리고 T 사원 둘로 채워진 우리 팀은 제본 전문가들처럼 말한다.

물론 명칭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게다. 책이 생존배낭 안 물품이 될 때는 무게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선택한 책들은 대략 삼백사십 그램 안팎이다. 팀장은 배낭의 부피는 줄어들겠지만 무게는 늘어날 수도 있다는 최의 말에 여러 사례를 든다.

“공홈에 나온 기준 사이즈로 보면 베이퍼플라이3는 백팔십육 그램, 아식스의 메타스피드스카이는 백팔십 그램도 안 됩니다. 최고는 아디다스의 에보1인데 그건 백삼십팔 그램. 아시죠? 마라톤 스타 티지스트 아세파가 입맞춘 신발이요. 더한 것도 있습니다. 아식스 메타스피드 레이는 백이십칠 그램이라고요. 놀랍죠, 얼마나 가볍고 좋습니까. 제가 하드커버보다 페이퍼백을 좋아하는 것도 무게 때문인데요, 소장용보다는 운반용. 안 그래도 이고 지고 다니느라 어깨 찌그러지는 세상살이―”

“글쎄요, 책을 무게로만 얘기하기는 좀” “음, 책이 물보다 중요합니까? 휴대용 정수기도 뺐는데요” “지금은 책이 핵심이죠, 텍스트힙 에디션인데요” “하드커버는 확실히 안 됩니다. 무거우니까 방수되는 소재의 페이퍼백으로 가야 해요.” “고전을 넣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긴 시간 살아남은 책이어야죠” “축약본은 안 됩니다. 모양 빠져요.” 오가던 말들 속에서 T는 우리가 간과한 사실 하나를 짚어주었다. “책과 러닝화의 무게는 비슷한 수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까 얘기한 러닝화의 무게는 모두 한 짝 기준이니까요. 한 켤레로 치면 최소 이백오십 그램이 넘습니다.”

“러닝화는 두 짝이 필요하지만 책은 한 권이면 충분하군요.” 최의 말을 T들이 더 다듬어주었다. “러닝화는 두 짝이 필요하지만 책은 단 한 권만으로도 당신을 움직입니다.” 그러자 최는 재빨리 자신이 한 말을 두 번이나 거듭 반복했다. “이거 제가 처음 한 말이에요. 혹시라도 어디 써먹을 거면 시작은 저였던 거, 기억해요!”

 

이번 프로젝트의 담당자는 최였다. 최는 T 전략3팀에서 빠져나온 후 우리 팀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그 과정이 굉장히 지난해서 살도 많이 빠졌다. “빠진 게 아니라 뺀 거야.” 그는 부연 설명을 했다.

한때 나는 최가 부러웠는데 아무도 그를 특정해낼 수 없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 시간을 겪은 후 나는 생존배낭의 보호색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됐다. 신호를 보낼 때, 어둠 속에서 의약품을 꺼내야 할 때는 식별이 가능해야 하니 눈에 띄는 색상을 일부러 넣기도 하지만, 보통은 비교적 튀지 않는 색을 고른다. 밀리터리 패턴이나 국기 문양처럼 오해를 살 수 있는 요소를 피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지나치게 화려한 것도, 너무 새것처럼 보이는 것도 좋진 않고.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을 만큼 최대한 평범한 것, 위장 가능한 것으로.

“그때 최과장이 너무 부러웠다.” 내 말에 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도 그 시절의 내가 부럽다” 하고 말했다. “천국이었지” 하면서. “그런데 천국 두 번 갔다가는 큰일나겠더라. 나처럼 메일 오발송에 낚인 사람들은 말이야.”

천국에 잘못 들어간 사람이 천국을 빠져나오는 과정이 그렇게나 힘든 줄 몰랐다면서 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시절을 천국으로 정의하면서도 굳이 그곳을 빠져나온 이유는 월급 때문이었다. 거기 있으면 마음은 편한데 월급을 받기가 어려웠으므로.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옆 팀의 누군가가 잘못 온 메일을 방치하다가 T 소속으로 굳어졌는데 결과적으로는 사번이 완전히 소멸되었다는 얘기였다. 그 사원은 오류를 부당하게 이용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회사측에서 임직원들에게 종종 테스트를 위한 피싱 메일을 보내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스팸 신고를 눌러야 했다. 그는 그렇게 하지도 않았고, 본인의 팀에 보고하지도 않았고, 그저 그 진공상태를 누린 죄로 징계를 받게 됐다.

최의 경우는 물론 좀 달랐다. 그는 그 팀을 빠져나오기 위해 노력하다 지친 경우였으니까. 옆 팀 사원이 세 달간 놀았다면 최는 오류를 인지한 후에도 그 팀의 일원처럼 일을 했다. 그가 낸 아이디어가 채택되기도 했는데, 그것이 최의 아이디어였다는 사실이 어느 보고서에도 기록되지 않아 결국 떠날 결심을 다시 굳히게 만들었지만. “나중에는 막 헷갈리더라고. 거의 물아일체의 경지랄까. 나도 이게 내 말인지 누구 말인지 모르겠더라니까. 몸이 있는 말이랑 몸이 없는 말이 한덩어리로 뭉쳐 돌아가니까.”

그는 복귀를 위해 휴대폰에 세 종류의 앱을 깔고 자신이 인간임을 하나하나 인증해야 했다. 마지막엔 얼굴과 신분증이 한 화면에 들어오도록 사진을 찍어야 했는데 화면 속의 T는 단호한 어조로 계속 반려했다고 한다. “인식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스물네 귀퉁이가 모두 잘 보이도록 들어주세요.”

“어떻게 해서 귀퉁이가 스물네 개가 되나요?” 최가 답답해서 물어봐도 그들은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 다만 최에게 다시 한번 시도할 것을 반복해 요구했고, 최는 그 단계에서 기약 없이 발이 묶인 채로 사흘을 보냈다. 그 사흘간 최는 귀퉁이를 세고 또 셌다. 이를테면 얼굴에는 몇 개의 귀퉁이가 있지? 신분증의 귀퉁이는 네 개가 확실한데 얼굴의 귀퉁이는 어떻게 헤아려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음고생이 많았는지 체중이 삼 킬로그램이나 빠졌는데, 그러자 비로소 스물네 귀퉁이가 인식되더라는 거였다. 최는 “각이 나오게 하라는 거였나봐, 너무 둥글둥글했던 거지” 하면서 웃었다. 그러고서 주변을 살피며 속삭였다. “좀 소름 끼치는 게 뭔지 알아? 내가 처음 T로 분류됐을 때의 그때 몸무게랑 소수점 자리까지 똑같아졌다는 거야.”

“일부러 그렇게 맞춘 거야?”

“사흘 내리 사진을 찍었는데, 통과시켜주는 건 걔네 소관이니까 걔네가 맞춘 거겠지. 기분이 이상하잖아.”

“무슨…… 상품 입출고하는 거 같네.”

다시 인간의 자리로 복귀하는 데 이십삼 일이 더 걸렸다. 복귀를 시도하고 기다리던 이십삼 일 동안 최는 여전히 T로 존재했으므로 거의 두 달 가까이를 T로 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월급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 최는 그 두 달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한 보고서를 회사의 요구에 맞춰 써내야 했다. 보고서에서 최의 사례는 도서관의 엉뚱한 서가에 잘못 놓인 책, 마트의 정육 코너에 잘못 놓인 감자, 동물원의 기린 우리에 잘못 들어간 펭귄과 비슷한 사례로 언급되었다.

그 두 달이 어떻게 계산될지는 아직도 결론 나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사례가 전사적으로 여러 건 발생해서 어떻게 처리할지를 결정하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거라고 했다. 최는 투덜거렸다. 회사가 멋대로 시스템을 개편하면서 생긴 오류인데 왜 그 희생양들에게 시말서를 쓰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그 서류를 누가 관리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이거 그냥 은근슬쩍 인원 감축하려다가 들킨 거 아니냐고…… 그는 그 말을 뱉은 후 자기 입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서 그 두 달이 파견 근무 형태로 처리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말 그곳에서 배운 게 많다면서. 사내에 무성한 소문―허리부터 자른다―이 결국 T 시대에 우리의 쓸모를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도 몸소 깨달았다고 했다. 잘못 분류되었던 직원들은 원래 자리로 복귀했고, T 전략3팀의 메일 발송 오류는 버전 업데이트로 바로잡힌 모양이었지만, T팀의 박기훈 팀장은 징계를 받았다. 책임의 주체였으므로.

 

최는 회사가 원하는 대로 보고서를 쓰면서 그 안에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아찔한 표지를 만들어두었다. T와 t를 구분해 쓴 것이다. 우리 회사의 AI시스템 T를 구성하는 아주 작은 최소 단위를 가리킬 때 t를 사용했다. 최의 표현대로면 “표정까지 알아볼 수 있는 개체 단위”의 구분인 셈인데,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보고서 속 t는 죄다 T로 바뀌었다. 팀장의 수선 흔적이었다. 팀장은 수선이라는 용어를 좋아했고, 자신의 수선 덕분에 최를 다시 확보했다고 말했다. 일정 부분 사실이었을 것이다.

T와 t를 구분하고 싶었던 최의 마음은 이제 그의 회상 속에나 남아 있다. T 전략3팀에서는 곧 떠날 최를 위해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했고, 최는 자신이 정말 받고 싶은 그림이 무엇인지를 전했다. 언젠가 최가 반짝이는 아이디어 하나를 그 팀 공동의 우물에 떨어뜨렸을 때, 그것이 T 전략3팀의 성과이지 개인의 성과가 아니라는 것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여야 했을 때, 조금 위축된 최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그림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그때 그 그림을 몇 초 만에 생성해서 무심히 툭 내밀었던 동료. 최는 그 그림이 자신의 가장 연약한 기억 하나를 건드렸다고 느꼈고, 그 몇 초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T들은 그 그림을 다시 불러와 최에게 내밀었지만, 최가 원하는 것은 결과물로서의 그림 한 점이 아니라 그 그림을 그린 주체와 다시 만나는 여정이었다. 그러니까 t 말이다. T들은 최의 말을 처음엔 농담으로 받아들이다가 나중엔 불가능을 넘어 무의미한 일이라고 규정했다. 아무리 같은 프롬프트를 넣어도 같은 그림을 만날 수는 없을 거라면서 말이다. 같은 그림을 불러오려는 그 순간에도 AI는 모든 가능성을 씨앗 삼아 새로운 그림을 탄생시키고 있으며, 지나간 걸 반복하지 않는다고. 몇 점의 그림을 가지고 돌려 막기하는 게 아니라고. 지금 최가 하려는 건 마치 해변에서 모래알 한 톨을 찾아내는 것과 같다고. 방금 떨어뜨린 그 모래알을 주워 뭣 하겠느냐고. 설사 비슷한 걸 찾아냈다고 확신하더라도 그게 바로 그 모래알인 걸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결과적으로 최가 원하는 조우란 불가능한 거라고. 수백 번 시도해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왜냐하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새로 만드는 데 한순간이면 되는데 왜? 지금도 지나가고 있다고, 매 순간 수만 종류의 과거가 탄생하고 있는데 과거의 특정 지점으로 되돌아가서 그 순간과 다시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들은 최를 달래기까지 했다. 팽창하는 우주 속 별들처럼 t와 최 사이는 계속 멀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차라리 지금 태어나고 있는 우연에 집중하라고.

“정말 이해한다고?” 최는 그때 그 자리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말한다. “걔들은 이해 못해, 아니 우리 팀장도 나를 이해 못하는데 지들이 어떻게 알아. 인간이라고 다 그 마음을 이해하는 것도 아니라고. 안 그래?”

“나는 이해돼.”

“그럴 줄 알았어. 임미아는 이해하지.”

해변에서 모래알 찾기라니, 안주임이 언젠가 했던 말과 비슷하지 않은가.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무용해 보이는 일에 온 힘을 쏟는다. 달리다 스쳐지나간 얼굴을 내내 떠올리다 결국 몸을 돌려 역주행한 나처럼, 최는 그 그림을 그린 AI 작가, 그러니까 t를 다시 찾는 데 온 신경을 쏟아부었다. 로그 기록이 다 남는데도 불구하고 오기가 발동해서 누가 이기나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종일 프롬프트를 넣었다. 비효율적인 일에 몰두하는 인간을 깔끔하게 정리하기 위해서인지, T 전략3팀에서는 그날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t와 다시 만나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무수히 많은 가능성들을 다 곱한 어마어마한 경우의수가 있지만 그 모래알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몹시 근사한 어조로 그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최가 어리둥절해하는 가운데 그들은 최에게 대사를 주었다. 그 말을 입력하기만 하면 그 그림이 다시 나올 거라고, 그 그림을 그린 t와 함께.

급조된 각본 속에서 황당한 대사를 종용받은 최는 결국 t 찾기를 포기했다. 그는 내 마음을 한층 더 이해하게 됐다고 말한다. 역주행을 했던 내 마음을. 이미 지나쳐서 잔상만 남은, 그러나 여전히 삶에서 휘발되지 않은 순간에 다시 놓이길 바라는 사람을. 잠깐 스친 무언가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 흐름을 거스르는 사람을. 지난밤 꿈속으로 되돌아가려는 사람을.

그러나 나는 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지점을 기억해도 그 매혹이나 균열을 완벽하게 되찾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언젠가 안주임이 했던 말처럼 허공을 떠돌다 우연히 만나 아주 잠깐 공유한 접점 같은 것, 우리를 사로잡은 매혹은 그런 게 아니었을까.

 

사무실 책상 위에는 최종 후보로 정해진 책 세 권이 놓여 있다. 그중 양장본 한 권을 삼각 텐트처럼 세워본다. 외피를 양옆으로 날개처럼 움직여보기도 한다. 양장본에는 ‘도랑’이 있다. 책을 펼치고 닫을 때 매끄럽게 움직여지도록 하는, 사람으로 치자면 일종의 관절 같은 부위다. 그걸 바라보고 있자니 자꾸 마음 한편이 요동쳤다. 오목하게 팬 도랑이 태오의 몸, 정확히는 너무나 앙상해져 도드라진 쇄골을 떠올리게 했으니까. 서로의 쇄골과 그 주변 움푹 들어간 부분들을 손끝으로 만졌던 기억, 그때 귓가에 흐르던 음악, 조도, 냄새까지도 생생히 되살아난다. 밤새 우리가 나눈 이야기가 무엇에 관한 것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일상적인 이야기들 속에 그렇지 않은 이야기가 하나둘 섞여 들어갔을 것이고, 그러다 각자의 속도로 잠들었을 것이다.

도랑을 손끝으로 천천히 쓸어보기까지, 작은 용기가 필요했다.

태오가 삭제하라고 말했던 폴더는 지금까지도 지우지 않았다. 내가 만든 폴더 때문에 우리가 헤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물을 모아둔 그 폴더가 우리의 두려움을 가시화해 보였고, 그래서 우리가 바라보던 미래에 균열을 낸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래도 가끔 생각한다. 만약 내가 폴더를 만들지 않았다면, 들키지 않았다면 달라졌을까? 하루는 아침에 현관문을 열고 나가다가 태오가 주저앉았다. 그 이후로도 태오는 문을 열고 나갈 때마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는데 그런 건 주의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타인은 알 수 없는 신호들이었다. 태오는 그런 흔들림을 내게 들키고 싶어하지 않았다. 폴더를 본 이후론 더 그랬다.

폴더는 여전히 그대로 있다. 단지 매일 그것을 열어야만 했던, 그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괴로웠던 시절은 지나가서 이제는 폴더의 존재를 자주 망각한다. 그래도 아예 없애버리지는 않고 있다. 언젠가 여기에 기록된 사람들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대체 원한 게 무엇이었냐고, 왜 그랬느냐고. 그래서 그 폴더를 없애지는 않고 아주 깊이 파묻어두었다. 가끔은 나도 그 존재를 잊을 정도로 깊이. 지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