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토마스 아퀴나스의 『기쁨과 안식에 관한 논고』 필사본을 소중히 든 패포 교수는 후드 달린 검은 망토를 두른 모습으로 탑 앞에 서 있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기쁨과 안식에 관한 논고』 필사본을 소중히 든 패포(Papus) 교수는 후드 달린 검은 망토를 두른 모습으로 탑 앞에 서 있었다. 오늘 자기 강의에 몇 명이나 들어올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애써 외면하며 묵상을 하려다가 시간이 흘러 그림자는 늘어지고 곁으로 학생 몇몇이 지나가고 결국 그는 탑 입구에 떨어진 길고 검은 잉크 자국이 되었다. 담을 수도 지울 수도 없는 지식의 양태를 뒤집어쓴 가난한 영혼. 아…… 그는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고 생각했다. 그중 가장 시끄러운 인간은 대학의 서기관이었다. 서기관은 육성 대신 양피지 여백에 훌륭한 필체로 적은 주석을 통해 한번 들으면 뇌리에 박히는 독설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의 강의에 대해서는 이렇게 평했다. 이제 그는 더이상 벌금을 낼 돈도 없어 보인다. 대학에서는 수강생 수가 최소 다섯 명이 되지 않으면 교수에게 벌금을 매겼다. 한 회당 30솔리드였다. 연봉이 높으면 그만큼 벌금도 늘어났지만 그의 연봉은 15리라로 이 대학 최저임금이었다. 1리라는 20솔리드이므로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강의의 반 이상이 다섯 명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학생이 한 명도 오지 않아 휴강한 경우도 포함되니 그의 육성은 매일 아침 이 도시 여기저기서 짖어대는 까마귀보다도 고요했다는 얘기였다. 혹은 배수로에서 물을 길어와 들통에 붓고 세탁물을 퍽퍽 두들겨 때를 빼는 세탁부 아델리나만큼도 이 도시에 기여한 바가 없는 셈이었다. 그는 아델리나를 슬슬 피하고 있었다. 지난 사 년간 묵은 8리라의 외상 때문이었다. 아델리나는 세탁소 일이 너무 바빠 그를 채근할 겨를조차 없어 보였지만 정색하고 받으려 든다면 그는 가진 재산의 절반은 팔아야 할 판이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케이크 조각처럼 분할되고 말겠지. 침대도 절반, 카펫도 절반, 십자가도 절반 그리고 가장 심각하게는 그가 지닌 가장 고가의 자산인 책들이 반토막 날 것이었다. 그가 애써 모은 그 훌륭한 교부 저서들. 벌써 한 권은 은행에서 담보로 가져가버린 상황이었다.  

그러나 패포 교수는 인식의 방향을 그런 불안에서 돌려 앞으로 행할 강의 내용에 집중하기로 했다. 오늘도 대학 서기관이 참관을 오겠지만 벌금을 매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친구가 학생으로 참석해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왕왕 있는 일이기에 양심에 거리낄 것은 없었다. 부유한 교수들은 자기 집 하인들을 앉혀 머릿수를 채웠으니까. 손등에 크고 작은 흉터들이 낙서처럼 남아 있고 대개 뻐드렁니를 한 그들은 어떻게든 졸지 않으려 자기 볼따구니를 툭툭 쳐가며 강의를 들었는데, 그 노력은 너무도 가상했지만 대학 서기관은 그것에 관해서도 이렇듯 서늘한 평가를 남겨놓았다. 그는 단 여섯 명의 청중을 두고 있었으나, 그마저도 한 명의 이발사와 네 명의 하인 그리고 아무 사정도 모르고 앉아 있는 여행자였다. 우리 공동체는 외부에서 학자를 고용해오는 편이 나을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무자비한 강의 평가가 필경사들을 통해 기록되고 기록되고 기록된다는 것이었다. 서기관이 한 번 쓰면 수백 명의 볼로냐 필경사들이 정서된 글씨로 베껴서 마치 메아리처럼 유럽 전역에 울려퍼지게 했다. 이제 그는 벌금을 낼 돈도 없어 보인다. 원고는 벌써 원고지로 150매가 넘어가는데 아직 저자는 탑의 입구에 서 있고 구부장 언니는 잠을 못 자 붉어진 눈으로 낯설고 복잡한 라틴어들을 외래어표기법에 맞는지 하나하나 살피며 이 지루한 교정지에 대한 적개심을 누그러뜨리고 있었다. 이따금 혼자 해결할 수 없을 때면 국립국어원 카카오톡 채널로 문의했겠지. 아페티투스(Appetitus), 스크립툼 수페르 센텐티이스(Scriptum super Sententiis), 가우디움 데 베리타테(Gaudium de veritate), 라틴어는 원어 발음을 따르되 한국어 음운체계에 맞게 적고 탑 앞에서 자기만의 고뇌에 휩싸인 채 서성이는 교수의 잡념만으로 책 50페이지가 넘어가고 이 경우라면 나는 이미 단것을 먹었을 것이다. 얇고 보드라운 시트가 겹겹이 쌓인 밀푀유 케이크나 낙엽처럼 바삭거리는 비스코티, 슈거 파우더를 산처럼 뿌린 팡도르도 좋지만 가장 나은 건 약과나 곶감이겠지, 그건 ‘달다’고만 표현하기에 좀 불투명한 맛이라 죄책감이 덜하니까.  

아니면 튀김 음식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그 고소한 맛은 마치 신경안정제처럼 내면에 퍼져 어떤 날카로운 일들도 조금씩 뭉개버리니까. 불쌍한 이 중세 대학 교수는 빵 하나 사 먹을 돈도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다행히 나는 그렇게 가방끈이 길지 않은 덕분에 기쁨을 위해 미각을 동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절대 후지지 않은, 돼지 앞다리살로 삶은 수육 같은 것.  

 

“나는 영주만치 고기 요리를 잘허는 애를 본 적이 없어요. 선생님, 그렇지 않아요?” 

원래 충청도 방언을 쓰는 양이 이모는 오늘따라 말투에 매우 신경쓰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칭찬하려고 애썼다. 저 나이대 여자들은 상대의 자존심을 세워줘야 한다 싶은 상황을 빠르게 감지하고 곧장 실행에 옮겼다. 부러운 능력이었다.  

“요리를 잘허는 정도는 아니고 맛을 안다 이 정도재.” 

엄마는 대대손손 종로 인근에서 살아온 서울 토박이였지만 초면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라도 말을 썼으니까. 때론 나조차 고향이 그쪽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엄마는 동편제, 섬진강 동쪽 판소리 전수자였다. 통성으로 밀고 나가 끝을 쇠망치처럼 탁탁 끊어내는 남성적인 발성이 특징인. 소리 세월이 길다보니 엄마는 평소 말도 그렇게 길들여졌다. 하기는 옆집 소리 선생 집으로 ‘아그장아그장’ 걸어간 게 여섯 살 때라고 하니까. 

“모르는데 우째 만들어요? 이게 옛날로 치면 머시키냐 대장금이에요. 영주 사주도 풀어보면 엔간한 사주가 아니거든.” 

대화 주제는 나인 듯했지만 모두의 눈은 한곳, 영도의 얼굴에 꽂혀 있었다. 사람이 카메라 마사지로 문대고 문대면 얼굴이 저렇게 되는구나. 영도는 구면이지만 연예인 영도는 초면인지라 내 시선도 어쩔 수 없었다. 영도의 얼굴은 마치 요요 같았다. 쌈장에 고기 한 점을 찍어 입안으로 넣다가도 시선은 자연스레 하얗고 보드라운 그 얼굴로 향했다. 

“뭐 타고 왔습니까?” 

수줍음 많은 양이 이모부가 겨우 한마디 건넸다.  

“네, 저 운전해서 왔습니다.” 

“아, 그럼 술은 못 하겠구나.” 

“맥주 한 잔은 받을 수 있습니다. 주십시오.” 

“안 돼.” 

침묵 속에 식사하던 내가 입을 열며 손바닥으로 식탁을 탁 내리쳤다.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얼마나 많은 연예인들이 음주운전으로 나락을 갔는데 맥주 한 잔이라니. 이모부와 영도는 잔을 따르고 받으려다가 손을 내렸다.  

“내가 실수를 했네.”  

이모부가 사과했다. 나는 영도에게 가던 맥주를 내 잔에 받았다. 

“영주는 이번에 대형 출판사 팀장으로 고액 연봉을 받고 스카우트가 됐어요.” 

“아, 이모, 고액 연봉이라니 연예인 앞에서……” 

“저기 책 좋아하셨잖아요, 아니, 좋아했……잖아.” 

4월 가뭄처럼 부족한 사회성은 그대로구나. 나는 피식 웃었다. 어느 예능에서는 춤까지 추고 있더니만 직업 정신의 일환이었어. 

“그리고…… 맞아요, 소설도 썼었고.” 

“소설은 무슨.”  

나는 마늘을 꾹 씹어 삼켰다. 평생 비밀을 지켜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싶었다. 

“글짓기한 걸 네가 잘못 아는 거지.” 

“같이 대사도 치고 그랬는데 내 기억이 잘못된 건가.” 

내가 정색하니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영도는 한발 물러섰다. 나는 태연하게 말을 돌렸다. 

“다른 애랑 헷갈렸나보네. 기름장 더 해와?” 

영도가 괜찮다고 손을 내저었지만 나는 종지를 들고 부엌으로 내뺐다. 부엌장을 뒤지다가 엉덩이로 툭 쳐서 플라스틱 반찬통들이 우르르 무너져내렸다.  

“영주 많이 변했지. 길 가다가 스쳐도 알아보덜 못할 것이다. 너나 나도 그렇고.” 

“아니에요. 어떻게 못 알아봐요.” 

“연말부터 찍으려면 부지런히 와서 닦아야 헐 텐데, 니가 목을 안 쓴 세월이 있어도 배운 값이 있어서 생짜배기랑은 영 다를 것이다. 없던 목청을 내는 게 아니라 있던 걸 쓰는 것잉게.”  

엄마는 서울국악원 원장으로 돌아가 있었다. 무형문화재 강옥선 명창에게 흥보가를 사사받은 전수자의 위엄과 신중함 속으로.  

“다행입니다. 선생님, 국악원도 동네도 많이 안 변했어요. 오랜만에 오니까 좋아요.” 

“여기가 좋지, 사대문 안은 풍수적으로 다 좋은 곳이다.” 

“어매, 선생님, 풍수라는 게 그렇게 단순치가 안혀요. 명당 옆에 흉지 있다고 풍수적으로 보면 여기 음기가 음기가 말도 못허지. 그래서 선생님처럼 창하는 사람이나 이짝 같은 배우, 이렇게 광대들이 다 모여 있는지 몰라도.” 

풍수에 일가견 있는 양이 이모가 한마디했다. 이모의 힐링우리문화센터는 다업종 업체였다. 장구도 치고 소리도 하고 전통주 판매와 다도 수업도 했으며 사주 풀이와 작명업, 풍수 상담까지 겸했다. 대학에서는 역사교육을 전공했다는데 어쩌다 다업종의 자영업자가 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광대는, 이 사람. 선생님이랑 유명 배우님헌테.” 

“아이고매, 옛날로 치면 그렇다는 거지.” 

양이 이모부는 이 자리가 너무 불편해서 금방이라도 기절할 듯한 얼굴이었다. 심약함, 사실 이모는 저 심약함에 반해 오십에 결혼을 감행한 거였다.  

“부모님은 잘 계시지? 종구래기 시절 흥보가 가르치면서 네 아빠가 돈을 벌려고 매 맞으러 간다고 생각을 혀봐라, 볼기짝에 피가 철철 나게 맞는다고 상상혀봐라 하니까 고만 니가 울었어야.” 

영도는 자기가 그랬느냐며 묻고는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그건 엄마의 예상과는 다른 맥락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 영도는 아버지를 매우 싫어했으니까. 어쩌면 그 순간 영도는 그저 뭔가를 ‘연기’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지금도 그러고 있을 수 있고.  

“영비는 어때?” 

나는 대화를 끊고 물었다. 영도는 “괜찮게 지내” 하고 답했다. 자리가 파할 때 엄마는 영도를 건물 출입구―문도 없이 그저 뻥 뚫린, 그래서 아직도 밤이면 시베리아급의 찬바람을 건물 안으로 불러들이는―까지 배웅하며 다음에는 꼭 매니저를 데리고 오라고 당부했다.  

“선생님, 왜요?”  

어두컴컴한 건물 현관에서도 영도의 얼굴은 눈부시게 빛났다. 마치 알전구처럼.  

“이렇게 혼자 다니다 일 당허면 어짜려고.” 

영도는 아무도 못 알아본다며 괜찮다고 웃었고 내게는 “또 보자” 하고 인사했다. 내년에 크랭크인하는 영화에서 소리꾼 역할을 맡아 앞으로 자주 수업을 받으러 올 거라고.  

“그래.”  

내가 답하자 영도는 비니를 뒤집어썼고 건물 뒤에 세워두었던 작은 경차를 몰아 떠났다. 사람들이 못 알아보는 이유는 차 때문일 것 같았다.  

“돈도 많은 애가 왜 저런 차를 타?”  

내가 한마디하며 투덜댔다. 엄마는 영도의 차가 깜빡이를 켜고 도로로 합류하는 걸 보며 서 있다가 “인호상이이 자작허여” 흥얼거리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한단침 돋우 비고, 장주호접이 잠깐 되어, 방춘화류 찾어가니, 이화 도화 행화 영산홍 자산홍 왜철쭉 진달화 가운데 풍류랑 되어, 춤추며 노니다가 세류령 넘어가니 황조편편환우성이네.  

시소처럼 기울어진 밤의 계단을 우리는 올랐고 엄마의 흥얼거림은 “내일은 비 오겄다”로 끝을 맺었다.  

 

다음날 오전, 해란씨와 임원진 방을 돌며 인사했다. 해란씨는 출근 시간 삼십 분 전에 검정 재킷과 슬랙스 차림으로 출근했고 그것만으로도 일단은 청신호였다. 단발머리를 잘 손질해 빗은 그는 사무실 슬리퍼와 텀블러, 오거나이저를 챙겨와 자기 자리에 세팅했다. 출입문과 와이파이, 창고와 문서실에 설정된 각종 비밀번호, 사내 키오스크 사용 방법과 근태 관리 시스템 등을 설명하자 일일이 적어 모니터 옆에 붙여놓았다. 아주 익숙하네, 하고 생각했다가 뭐에 익숙하다는 걸까 싶으면서 마음이 소슬해졌다. 해란씨에게 회사 내부를 안내하며 걷다가 계단참에 서 있는 조중균씨와 마주쳤다. 휴대폰으로 통화하면서 마치 뭔가를 ‘작살’내듯 한쪽 손날을 세워 허공을 연거푸 내리치고 있었는데, 곁을 지나며 잠깐 들으니 내용은 또 그렇지 않았다. 형수…… 그렇지, 그렇지, 맞지, 맞지. 형수랑 무슨 얘기를 저렇게 간절히 할까. 해란씨도 뭔가를 느꼈는지 고개를 길게 빼어 뒤돌아봤다. “형수, 오늘은 술 그만 먹고……” 하는 당부였다. 아무리 소곤거려도 복도는 울리기 마련이라 소리는 위층까지 다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