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해란씨에게 맡길 원고를 고민했다. 부장이 우리 팀으로 넘긴 저자들은 대체로 연로했다. 어차피 기획 중심의 팀이니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는 판매 압박이 덜한 원고를 맡으라는 취지였다. 대학교재나 전문 학술서를 외주로 빼고 나니 상반기에 편집할 원고는 네 개였다. 하나는 저자가 잠수를 타서 내가 처리해야 할 책이고, 나머지는 회장과 친한 어느 변호사가 수십 개의 먹을 부러뜨려가며 이천여 장의 화선지에 썼다는 성경 필사집, 정년퇴직한 역사 교수가 취미로 국궁을 배우며 깨달은 소회를 적은 에세이, 번역자가 뭉개고 앉은 덕분에 유행이 지난 시점에 나오게 된 ‘저속 노화’ 관련 자기계발서였다. 그나마 해란씨가 재미를 느낄 원고는 마지막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의외로 국궁이었다.
“문체도 쉽고 주제도 음식이니까 이편이 낫지 않아요?”
나는 해란씨를 배려해 다시 권했다. “노화 유전자는 통제된다!” “실리콘밸리 오너들이 선택한 주치의, 리처드 케리 박사!” 표지에는 광고문구와 함께 저자 사진이 실려 있었다. 백인인데다 백발이고 흰 가운과 흰색 셔츠를 입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이트’였다. 해란씨는 표지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들고 답했다.
“저한테 선택권이 있다면 팀장님, 전 국궁이요.”
나는 테이블 한편에 놓인 원고 뭉치를 끌어당겼다. 난세(亂世)의 어지러움은 말하여 무엇하랴! 떠드는 자만 있고 불의를 한 살 쏘아내보려는 이 없으니 글 읽기 글 쓰기는 비루한 유자(儒者)가 할 일이요, 궁사는 충성충법측측(忠誠忠法則則) 깨어나 일궁(一弓)을 상현(上弦)한다.
“저 방송국에서 보조작가로 일할 때 편집실에서 사람이 죽었거든요.”
사무실 모두의 귀가 우리를 향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조용조용하게 대화하려 해도 파티션으로 구획된 사무실에서 각 팀의 대화는 공유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너무 놀랐겠네. 무슨 일이었는데? 살인?”
이제 사무실에는 타이핑 소리까지 그쳤다.
“아니요.”
해란씨는 흐릿하게 웃으며 네 손가락으로 티셔츠 소매를 쥐었다. 첫날의 정장은 사라지고 어느덧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복장 제한이 없는 터라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분 키가 백칠십이 넘는데 체중이 오십이 안 됐어요.”
해란씨가 소매를 쥐었던 손을 펴고 낙서를 하듯 손가락으로 테이블 표면을 문질렀다. 혹은 무언가를 지우듯.
“사흘 동안 우리 모두 몰랐어요. 창마다 암막 처리를 해놔서 깜깜하고, 칸칸이 들어앉아 다들 날밤 새우니까요. 제 바로 옆 편집실이었거든요. 죽은 사람을 옆에 두고 사흘을 일했다는 건데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될 일 아닌가 싶었어요. 산이나 바다에 갔다가 조난을 당한 것도 아니고 서울 한복판에서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암튼 몸무게 앞자리가 6은 되어야 해요. 그래야 안 죽어요.”
회사에서는 젊은 독자들을 흡수하기 위해 우리 팀을 신설했는데 과연 이 조직으로 ‘트렌디’ 한 책을 낼 수 있을까. 이미지 파일을 트리밍하듯 어떻게 해서든 자기 몸의 살을 발라내고 발라내고 발라내려고 몸부림치는 현실에 몸과 신념으로 역행하는 팀장과 팀원 아닌가. 상당히 심란한 대화였다.
“해란씨 많이 힘들었겠어요. 그런데 나는 보다시피 과체중이라 그렇게 죽을 일은 없어.”
사무실 어딘가에서 풋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국궁 원고 해요. 그리고 내일 세시에 교열국 미팅 있는 것 알죠? 조중균씨가 교정 원칙 설명해줄 테니까 브리핑 잘 받고 오고요.”
“……저, 호칭은 조중균씨라고 하면 돼요?”
해란씨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그럼 조중균씨를 조중균씨라고 부르지 뭐라고 할까?
“다른 분들은 직급이 있잖아요. 연세가 있으신데 모두들 그렇게 부르니까 이상해서요.”
나는 파티션 사이로 보이는 조중균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보풀이 일어난 스웨터를 입고 표준국어대사전을 뒤적이며 교정중이었다. 얇디얇은 박엽지를 착착착착 넘기는 소리가 어쩐지 입맛 다시는 소리처럼 들렸다. 어느 페이지에서 잠시 멈추고 그는 “목이 천오백 발”이나 나왔다는 수궁가 속 자라처럼 고심하고 있었다. 수궁가는 영도와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음악이었고 “고고천변……”으로 시작하는 대목이 ‘최애’였다. 한 사람이 소리하면 듣는 쪽이 아암, 그렇지, 으이 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수궁가는 배우는 대목 대목이 신났다. 심청가는 우리는 물론이고 엄마도 힘들다고 했다. 판소리판에는 심청가로 시작하면 그날 공연을 망친다는 속설까지 있다고. 그건 단순한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슬픔의 전염력 때문일 것 같았다. 회의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와 업무 일지를 쓰는데 양이 이모가 언제 오느냐고 문자를 보내왔다. 이모가 그런 연락을 할 때는 대개 술 생각이 나서였다. ‘어떻게, 오늘은 뭔 안주를 원하셔?’ 하고 입력하는데 ‘배우 온단다’ 하는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얼른 와야지, 택시 타고 와.
―이 시간에 택시 타면 내일 저녁에나 오라는 소리지. 그리고 나 오늘 야근.
메시지를 본 이모가 건 전화에 착신 거절을 누르고 ‘회의중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해란씨 퇴근 안 해?”
나는 서둘러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예, 저 이것 좀 보고요.”
빼곡하게 적힌 파일이 뭔가 했더니 조중균씨에게 건네받은 ‘일심출판 띄어쓰기 통일안’이었다. 그중 해란씨는 접두사와 접미사 항목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내일 보자는 인사를 나누고 회사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구부장 언니를 포함해 여기저기 연락을 돌렸다. 하지만 당장 시간이 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무조건 집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야겠다고 결정했다. 그러면 신촌 쪽이었다. 스커트 자락에 감기는 공기는 찬데 머리로는 열이 올라와 목덜미가 축축해졌다. 이내 겨드랑이에도 땀이 찼고 나는 몸에서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길 한복판에서 향수를 꺼냈다. 당장 누구를 만날 일이 없는데도 그렇게 정신없이 허비해야 뭔가를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아현동 가구 거리쯤 다다랐을 때 구부장 언니와 연락이 닿았다. 언니에게 외주를 맡긴 출판사에서 작업이 늦어지는 이유를 궁금해하길래 중간 점검 겸 미팅을 했더니 상황을 이해함은 물론 약간 ‘숙연’해지더라고 했다.
“그 교수는 어쩌고 있는데?”
“어쩌고 있긴 어쩌고 있어. 아직도 거기 서 있지. 아주 녹아내릴 듯 생각만 주야장천 하고 있지.”
나는 풋 웃었지만 이상하게 눈물이 어렸다. 이렇게 웃긴 얘기를 듣고도 왜 울고 싶은가, 아마도 볼로냐에서 가장 우울한 인간이었을 패포 교수가 강의를 못하고 있다는데, 벌금은 못 내도 옷은 깨끗하게 입어야 해서 세탁소에 외상을 긋고 아침마다 통 안에 들어가 빨래를 밟아대는 아델리나를 슬금슬금 피해 겨우 출강하고 있다는데.
“뭐지? 목소리가 왜 그래? 감기 걸렸어?”
“내가 몸이 넘 약해서 계절마다 감기를 앓네.”
나는 얼굴로 마주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답했다. 감정은 잦아들고 있었다.
“히레자케에 복국 한 그릇 해야겠구먼?”
나는 그만 걷기로 하고 집으로 향하는 택시를 탔다.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우리에게 기억이 주어진다는 것은. 망각으로 덮이지 않는 감정이 내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은. 갈대꽃이 눈처럼 희게 날리고 부평(浮萍)은 물에 둥실 어룡은 잠자고 자고새 훨훨 날아든다…… 앞발로 벽파(碧波)를 찍어 당겨, 뒷발로 창랑(滄浪)을 탕탕 요리조리 저리요리 앙금 둥실 떠 사면(四面)을 바라보니 지광(地廣)은 칠백 리요 파광(波光)은 천일색(天一色)…… 그 대목을 주거니 받거니 연습하다가 영도는 내 손을 잡았다. 비록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건 자라가 경험한 광대한 바다가 아니라 축축한 물이끼 냄새가 나는 이화장의 여름 연못 앞이었지만. 손을 잡았으니 그다음은 입맞춤이 아닌가 싶어 실행했더니 아주 기분좋은 광풍이 순식간에 불어닥친 것 같았다. 하지만 나중에 영도는 그렇게 깊어질 생각은 아니었다고 변명했다.
“간이 쥐새끼만해서 어따 쓰겄냐!”
그 무렵 같이 수업받고 있던 고수 선생을 흉내내면서 나는 최대한 무안함을 감췄다. 내가 원하는 건 그런 유치한 것이 아니라 별주부가 건너온 것처럼 넓고 깊고 아득한 사랑의 바다였으니까.
파도가 부서져 눈처럼 희게 날리고
새들이 훨훨 날아드는,
앞발로 푸른 파도를 찍어 당기고 뒷발로는 푸른 물결을 탕탕 치며 용감하게 나아가는,
사면을 둘러보면 육지 따윈 보이지 않고
새파란 세상에 오직 둘만 있는 것 같은
경이로운 사랑.
어두워진 거리에는 헤드라이트를 켠 차들이 느리게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