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이 생기면 어떤 아이는 숨고 어떤 아이는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다. 더한 나쁨 속으로 스스로를 내던지는 경우도 있지. 생각해보면 영도와 연락이 끊긴 2009년은 정말 이상한 해였다. 수선을 해도 입을 수 없는 옷들을 쓰레기봉투가 터져라 밀어넣고 있는 열일곱의 내가 생각난다. 그렇게 비닐봉지에 쑤셔놓고 나자 비로소 사람이 입던 물건이라는 사실이 실감되던 기이한 순간을.
‘스노비즘’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교사가 수업 자료로 나눠준 신문 기사를 들고 화장실에서 일을 보는데, 그 글자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나는 ‘속물’이라는 단어를 되새겨보았다. 마치 그 단어를 처음 들은 애처럼. 예고를 지망하다 갑자기 일반고로 진학한 나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중학교 때는 동네 친구들이 있었지만 고등학교는 달랐다. 돌이켜보면 완전히 주눅들어 있었고 다만 자존심 때문에 스스로 그 사실을 부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기죽어 있다가도 그에 대한 반동이 일어나 순식간에 주변 애들을 깔보고 싶어졌으니까. 그러다 ‘속물’이라는 단어를 환기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학교 애들에게 붙여주었다. 내가 오랫동안 머문, 내가 잘하고 능숙한 세계에 대해서는 무지하고 관심도 없으면서 나를 ‘내신 깔개’로나 알 애들…… 뭘 좀 가졌다 싶으면 가까워지고 싶어 몸 달아하고 그 반대일 때는 무섭게 무관심해지는…… 눈물겹도록 분하고 억울하구나, 나에 대해 밤톨만큼도 모르면서…… 수업시간이면 혼곤하게 졸다가 나는 옥 속의 춘향이처럼 생각했다, 답답하고 원통하다, 누가 날 살릴까.
예고로 진학한 영도는 지방에서 자취를 하고 가끔만 본가에 들렀다. 연락은 줄고 어느덧 사랑은커녕 친구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 광화문에 갔다가 나는 엄청난 군중과 맞닥뜨렸다. 스스로 세상을 떠난 대통령의 장례 행렬이었다. 사람들은 마치 적벽가의 패배한 군사들처럼 울었다. 당신이 왜 가야 합니까? 코끝이 빨개진 남자가 소리질렀다. 당신이 왜 가야 합니까? 나는 인파를 겨우 헤치고 나와 집까지 걷다가 현대미술관 안마당으로 들어가 숨을 골랐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영도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 만에 통화가 이루어졌다.
“나 여자친구 생겼어.”
적막하게 대화를 이어가다 영도가 말했다. 이별 통보인지 아닌지는 헷갈렸다. 그럴 권리가 있는지 불명확했으니까.
“여기 인파가 어마어마해.”
나는 그런 얘기나 하며 이별을 피했다. 남겨지고 싶지 않았다. 그때는 그런 걸 선택할 수 있는 줄 알았다.
“조심해.”
영도가 말했고 나는 그 당부에 비로소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그러니까 이 전화를 끊고 나면 더이상 우리가 만날 일이 없으리라는 사실이. 몸이 떨렸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뭐야, 이름이?”
나는 겨우 그런 걸 물었다.
“루비.”
“속물 같은 이름이네.”
“화난다고 아무 말이나 하지 마.”
통화에 드문드문 임하던 영도가 그 순간에는 발끈했다.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몇 분간의 말싸움 끝에 우리는 전화를 끊었다. 광화문 쪽에서 사람들이 행진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왕가복국에는 구부장 언니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멀거니 텔레비전을 올려다보고 있던 언니가 “여기” 하고 손을 들었다. 나와 한 회사에 다닐 때는 구부장님이었지만 퇴사 후 도로 동네 아는 언니가 됐고 그렇다고 이름만 부르기는 뭣해서 ‘구부장 언니’였다.
우리는 늘 먹던 메뉴에 늘 마시는 술을 시켰고 밑반찬인 복껍질무침에 이어 전골냄비가 나왔다. 그리고 날씨 얘기를 나누는 잠깐 만에 주방장이 양철 주전자와 점화구 부분이 가느다랗게 나온 토치를 들고 왔다. 복어 지느러미를 태우더니 데운 청주가 담긴 주전자 안에 넣고 복어 향이 술에 배기를 기다렸다. 이렇게 하면 히레자케에는 비린 냄새 없이 고소한 감칠맛만 남았다. 가장 보잘것없는 것으로 가장 사치스러운 것을 만드는 마술이라며 구부장 언니가 또 한번 감탄을 했다. 이런 기적은 오로지 술상에서만 일어난다고. 앞섶을 끈으로 여미는 일본식 청색 상의를 입은 주방장은 말은 없었지만 기분이 좋은지 술을 잔에 따른 다음 성냥을 그어 잔 위에 푸른 불꽃이 번지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그래, 새로 온 직원은 어때?”
해란씨가 어떤지를 생각하다가 나는 좋은 사람 같다고 말했다.
“나는 좋냐고 묻지 않고 어떠냐고 물었는데. 우리 이영주씨가 또 사람을 호오로 가르네.”
나는 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술잔을 들며 카카카카 하고 웃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금방 사랑에 빠져버리는 습관과 믿고 싶은 대로 사람을 믿어버리는 성격 때문에 얼마나 상처받아왔던가. 그것이 결국 관계에 대한 자신 없음의 방증임을 때마다 충고해준 사람도 구부장 언니였다. 그 말은 영 들리지 않다가 어떤 일을 계기로 심각한 숙고의 대상이 되었다. 이십대의 마지막 해, 일 년 남짓한 연애를 끝내고 우연히 전 애인의 친구―그는 불행히도 나와도 절친이었다―와 만났는데, 돌고 돌아 망설이다 내가 물은 말이 “걔도 웃니?”였던 것이다. 아주 절절한 헤어짐이었기에 나는 전 애인이 인생을 작파하지는 않아도 적어도 ‘웃음’ 같은 일상적 행위는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리라 믿었다. 질문을 받은 그의 당황한 표정과 금요일 밤 삼겹살집의 소란을 순식간에 잠재우는 듯하던 어색한 정적은 지금도 얼굴을 화끈거리게 했다.
그때 정신 차리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형편없는 인생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처럼 되었겠지. 엄마 인생이 형편없다는 뜻이 아니라 엄마처럼 현실 저편에 머물며 춘몽중에 수천 리 인생길을 가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그러면 우리 모녀는 어떻게 되나, 말 그대로 먹고사는 일, 경제활동과 그 오래된 건물의 소유권 문제 등은. 그러니까 생활이라는 것은. 그제야 구부장 언니 말이 귓구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른을 지나고 나서였으니 물론 나이나 호르몬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 직원은 뭐랄까, 농담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나는 해란씨가 출근한 첫날 구내식당에서 나눈 대화를 꺼냈다. 그리고 조중균씨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를 묻던 오늘의 일화도.
“아 그 직원 말마다 뼈가 있네.”
“뼈 없는 사람 없지, 요즘. 다들 자기 세계가 있고 주장이 있고 뜻도 있고.”
“자기 직원이라고 이 사람 벌써부터 편드네.”
“그런 건 아니고 언니.”
나는 며칠 전 간부 회의 때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그때 부장은 자기 우려보다 해란씨가 무난하다며 날 안심시켰다가 돌연 말길을 틀었다.
“그런데 어딘가가 꽉 얼은 동태처럼…… 싸늘해…… 고생 많이 하고 쌀집 딸이라니 눈치 빠르고 싹싹할 줄 알았더니만. 올해 들어온 수습들이 야, 너 백 점이다, 싶은 직원이 없어요. 불안불안 삐쭉빼쭉. 거 있지, 디자인팀 꼴통, 휘발유통.”
나는 해란씨가 디자인팀 ‘휘발유통’보다는 낫지 않나 싶었지만 말이 길어질수록 뒷담화 시간만 느는 터라 참았다. 그 신입은 본인 텀블러를 휘발유통과 똑같이 커스터마이징해서 사용하다 문제를 일으켰다. 디자이너답게 ‘화기 엄금’이라는 경고 라벨까지 부착해 무려 일 리터짜리로 제작했는데, 그걸 들고 벌컥벌컥 마시는 모습에 부장이 놀란 것이었다.
“저번에 보니까 직원들이 회사 슬리퍼를 신고 밖을 나갔다 오더라고요. 왜 그런 기본적인 위생 관념이 없는지.”
“전화를 받을 때 누구냐고 물어야 자기 이름을 밝혀요. 아주 꺼려하면서. 여기가 회산데 그런 것도 개인정보라고 생각하나.”
“며칠 전에 물류팀이랑 회의를 했거든. 회의 마친 다음날 나한테 웬 전화가 와. 그러더니 정말 죄송한데 회의실에 지갑을 두고 왔는데 혹시 못 보셨냐고 묻는 거야. 자기네 팀장이 가장 마지막에 나간 사람이 부장님이라고 했다나.”
직원들 일거수일투족이 불만인 건 비단 편집부장만이 아니었다. 간부들은 “나이든 우리가 뭘 알아” 하고 신입들 앞에서는 립 서비스 하고는 정작 뒤돌아서는―주로 우리 같은 중간 간부 앞에서―“나이든 우리가 다 알아”로 돌변했다. 그런 얘기를 듣고 있자면 결국 그들이 못 견뎌하는 건 자기 자신 아닌가 싶기도 했다. 자기들 나이가 자꾸 되비쳐서 이러나저러나 트집잡지 않고는 못 견디는 것 아닌가. 무겁게 끌어야 하는 삶의 수레가 버거워 이제 밥솥 정도를 싣고 막 출발한 신입 직원들의 ‘꽃가마’를 질시하는 건가. 그런데 또 이쪽에서 보자면 부동산과 주식, 자가 아파트와 달마다 통장에 꽂히는 오피스텔 월세, 가족 재생산의 성공과 보장된 연금, 허상일지언정 인생 2막을 떠들어라도 볼 수 있는 상관들의 수레야말로 ‘황금 가마’였다.
“세대 갈등이지 뭐.”
언니는 새콤달콤하게 무친 참나물을 삭삭 긁어 먹으며 요약했다.
“근데 참 아쉽지. 어른이란 말은 ‘얼’에서 나왔다던데 그러니까 나이들면서 제정신을 갖춘다는 건데, 제정신은 둘째 치고 일단 늙기조차 안 하려고 난리니. 나는 제발 사람들이 순순히 늙기나 좀 했으면 좋겠어. 요즘은 그것만 해도 성불이야.”
우리는 착잡해하다가 텔레비전 뉴스에 시선을 돌렸다. 대통령과 각료들의 모습이 등장했는데, 얼마 전 총선에서 참패한 대통령치고는 표정이 지나치게 해맑았다. “쇄신 같은 소리 하네……” 언니가 중얼거리며 술잔을 마저 비웠다. 몇 년 전 항암을 끝낸 언니는 술만은 졸업하지 못했다. 병이 언니에게서 가져간 것을 생각하면 음주의 기쁨마저 포기하라고는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직장, 신체, 경력, 돈 그리고 모두가 결혼하리라 생각했던 애인까지…… 나는 몸은 어떠냐고 물으려다가 요즘도 소설을 쓰냐는 질문으로 바꿨다. 언니는 무슨 소리냐는 듯 손사래를 쳤다.
“어후, 안 써, 미련도 없고. 미친 작가들한테 하도 데였더니 만정이 떨어졌어, 내가.”
이왕가복국에서 나온 우리는 꽤 취해 있었다. 다음 술자리를 갈까 말까 의논하다가 그냥 귀가하기로 합의했다. 언니는 『저녁의 토마스 아퀴나스 주해』를 좀더 교정보다가 자야겠다고 했다. 내가 그 원고는 대체 언제 저녁이 되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언제 나오며 주해는 언제 하느냐고 묻자 언니가 그러게 하며 킬킬 웃었다.
“언니, 근데 이상하지 않아?”
“뭐가?”
밤바람이 쌀쌀해서 나는 어깨를 움츠렸다. 추위에는 무게가 있고 더위에는 없다. 그건 단순히 바람 속 수분의 결빙과 증발의 차이일까. 뭔가 우리가 모르는 작용이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어떤 온도를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외부의 도움 같은 것. 가게가 대부분 문을 닫아 골목은 적막했다. 옛날에는 호객 때문에 지나가기가 힘들던 대학로도 텅 비어가고 동숭아트센터도 없고 왜인지 연애가 끝날 때마다 관람했던 뮤지컬 <지하철 1호선>도 없는 이 동네에 우리가 남아 있었다.
“이왕가복국인데 사장님 성씨가 이씨가 아닌 거.”
내가 나오면서 사업자등록증을 봤다고 하자 언니는 웃기 시작했다.
“야, 소설은 너 같은 애가 써야 해. 아이러니랑 페이소스가 있는 애.”
언니는 “간다” 하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담배를 마저 피우고 갈 생각에 골목에 남았다가 모든 걸 알고 있는 언니가 오늘 영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