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리나는 마지막 세탁물을 널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성당에서 종이 치는 것으로 보아 정오쯤이었다. 아델리나는 일부러 종탑 건물 앞을 지나갔는데 거기에는 예상대로 패포 이루넬리우스가 검정 카파, 망토 차림으로 서 있었다. 한낮의 햇살 아래 그는 가느다랗게 난 틈, 갈라지거나 붕괴한 건물의 손실처럼 보였다.
패포 교수에게 빚을 받아내기 위해 나선 길이었지만 아델리나는 그를 그대로 지나쳤다. 속옷까지 탈탈 털어봤자 동전 하나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돈은 그에게 없다. 돈(이 될 만한 것)은 그의 서재에 있다고 말베치 부인은 알려주었다. 역시 밀린 월세를 받지 못한 그는 그러나 먼 친척인 패포를 내쫓거나 물건을 압류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전노로 소문나는 건 질색이었다. 수전노들은 나중에 지옥에 떨어져 평생 무거운 바위를 굴리는 형벌을 받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 달에 2리라씩 자기 재산을 갉아먹고 있는 패포를 언제까지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그러다 패포가 도시 곳곳에 적지 않은 외상을 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사납고 인정사정없으며 자기 사업을 끔찍이 위하는 세탁소 주인 아델리나가 있었다. 부인은 아델리나가 찾아오면 패포의 집─하지만 결국 자신의 집인─문을 열어주겠다고 넌지시 제안했다. 일단 책 한 권을 빼다가 서점 주인과 흥정을 해본 다음, 마지막날에 필요한 양만큼 빼내자고 했다. 그것이 어떻게 해서 사라졌는지는 둘만의 비밀로 하고.
아델리나는 외상값을 잊은 것이 아니었다. 외상값만큼이 아니라 이자까지 치고 쳐서 받아낼 계산을 하고 있었다. 다만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고 있었는데 일단 패포가 너무 병약해 보여 추심중에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이 있었고 또 하나뿐인 아들이 좀더 자라면 공부라는 것을 하게 될지 모른다고 기대했다. 밀린 돈만큼 교육시켜달라고 패포에게 요구할 작정이었다. 그러면 그의 아들도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있는 직업을 갖게 될지도 몰랐다. 예를 들면 필경사 같은 것. 아주 조금의 지식만 갖추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듣고 놀란 적이 있었다. 아델리나는 필경사들이 그 방대한 책들을 줄줄이 꿰고 있는 학자들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마부가 알려주기 전까지는.
“전혀요.”
그는 손가락으로 턱밑을 쓸어 보였다.
“마치 귀부인의 초상화를 그려내는 화가 같은 것이지. 몸에는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해도 곳곳을 그려내잖아?”
‘곳곳’이라는 단어를 발음하며 그는 아델리나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 말발굽에 차인 흉터가 얼굴을 가르고 있는 늙은 마부였다. 하지만 아델리나는 필경사에 대한 꿈을 접고 외상값을 받아내기로 했다. 그 일을 하다 시력을 잃은 사람들 얘기를 들은 것이다. 어두운 촛불 아래 평생을 보내다보니 결국 눈에 고름이 차서 아무것도 못 보게 된다고 했다. 결국 이발사들이 시장에 차려놓은 부스를 찾아가 날카로운 쇠꼬챙이로 눈을 쓸어내는 시술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 비명소리가 볼로냐 귀족 집에 솟은 수백 개의 탑이 흔들릴 정도로 크다고 했다.
아들을 장님으로 만들 수는 없지, 결심하고 나자 패포는 자기에게 엄청난 빚을 진, 수로의 모기처럼 하찮은 인간일 뿐이었다. 아델리나는 귀족들의 집을 지나 포르티코의 길고 긴 회랑 그림자 속을 조용히 뚫고 나갔다. 가끔 반대편으로 가기 위해 길을 건널 때 말고는 양지로 걸을 일이 없었다. 이 도시는 그렇게 그림자로 가득찬 곳이었고 대부분이 그 음영 속에 살았다. 그러니 정수리를 지지듯 햇빛을 맞고 있는 패포의 모습이 도드라지는 것이었다. 아델리나는 패포나 자신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둘 모두 빛 속에 머무는 인간들이었다. 다만 대학의 현관이냐 수로의 빨래터냐 하는 차이일 뿐. 귀족이기는 하나 가난하고, 숙식을 해결해줄 먼 친척을 찾아 볼로냐까지 온 그의 인생을 아델리나는 속으로나마 마음껏 무시했다.
광장을 지나 산페트로니오가(街)로 들어선 아델리나는 패포의 집을 한 번에 찾아냈다. 붉은 직벽의 이층집이었다. 가만히 살펴보던 그의 눈에 유랑민과 거지들이 문 옆에 남긴 암호가 들어왔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자선을 베푸는 이들과 당장 도망쳐야 할 이들, 사나운 개나 관원이 있는 집에 관한 정보를 공유했다. 아델리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마치 날파리처럼 조그맣게 그려진 표식을 읽어냈다. 동그라미들로 이루어진 그 암호의 뜻은 ‘아무것도 없음’이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말베치 부인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무심결에 툭 쳐보니 문은 열려 있었다. 이러면 곤란해지지 않나 망설이다 아델리나는 받지 못한 어마어마한 빚─8리라─을 떠올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엉망이리라 짐작했던 집안은 그러나 매우 청결했다. 돌로 된 바닥에는 아침에 막 마친 듯한 비질 자국까지 남아 있었다. 하인을 두지도 못할 텐데 설마 스스로 했을까? 창턱에 가지런하게 놓인 피튜니아 화분을 지켜보며 아델리나는 자기 집에서보다 더 깊은 평온을 느꼈다.
아델리나는 목장 옆에 살았고 집 역시 그 연장이나 다름없었다. 동트기 전, 시 당국이 지정한 세탁용 수로로 나가 세탁부들을 닦달하고 옷을 맡기러 온 손님들과 흥정하고 세탁을 위한 잿물이나 목재 패들, 돌판, 크고 작은 자재들을 관리하고 나면 그녀의 하루는 수로 속으로 사라졌다. 아침 노동의 피로함 탓인지 안락한 분위기 때문인지 아델리나는 졸음이 몰려왔다. 하지만 지금 그는 빚을 받으러, 정확히는 외상값에 맞먹는 책을 가지러 오지 않았나. 절도가 아니라 회수였지만 떠들 만한 일은 또 아니라서 서둘러야 했다. 아델리나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침실 따위는 관심도 없고 알 바도 아니었다. 아델리나의 목적은 서재였다.
그리고 나무 널빤지로 된 문을 열었을 때 그녀는 순간 아연해졌다. 아름다운 독서대가 놓여 있고 그 오른편의 4단 보관함에는 책이 층층이 눕혀져 있었다. 심지어 대부분 가죽 양장이었다. 이 정도라면 양 몇 마리가 도살되었을까. 아델리나는 빠르게 다가가 만져보고는 소가죽 장정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아냈다. 소도 도살되었다. 돈으로 치면 얼마일까. 자기가 입은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와서일까, 아델리나는 맥이 탁 풀렸다. 그제야 방의 다른 집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두 쪽짜리 패널에 그려진 그리스도 수난화와 낡은 십자가가 어떤 절제와 경건함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델리나는 유랑민 부모에게서 버려져 세탁부가 되기 전까지 수녀원에서 꼬마 하녀로 일했다. 하루종일 석조 건물 전체에 울려퍼지던 복음 강독과 성가 소리 덕분에 그는 귀동냥으로도 꽤 많은 라틴어를 익혔다. Domine miserere nobis(도미네 미세레레 노비스), Sed tantum dic verbo, et sanabitur anima mea(세드 탄툼 딕 베르보, 에트 사나비투르 아니마 메아)…… 창을 향해 놓인 책상에서는 운하가 바로 보였다. 건물 사이를 구불구불 흐르는 물결은 한낮인데도 아주 어두웠다. 아마도 이 물길은 아델리나가 일하는 세탁장까지 흐를 것이다. 찬물에 발을 담근 열세 살 때부터 지금까지 아델리나는 한 번도 물 밖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지금의 세탁업자가 될 때까지. 방에서 지켜보는 물길은 아델리나가 몸으로 기억하는 것과 아주 달랐다. 마치 안락한 집 벽에 걸린 작은 풍경화 같지 않은가. 그 차이를 깨달은 아델리나는 책장 앞으로 간 다음, 자신이 읽을 수 있는 ‘기쁨’ ‘안식’이라는 라틴어가 적힌 책을 들고 집을 빠져나갔다. 패포가 평생을 다해 주석을 붙이고 있던『저녁의 토마스 아퀴나스 주해─기쁨과 안식에 관한 논고』였다.
우리말과 외래어 뒤에 오는 강(江), 광장, (대)성당, 교회, 궁(宮), 극장, 나무, 대로, 대학교(대학, 대), 도서관, 동(洞), 만(灣), 미술관, 박물관, 반도, 부(府), 부두, 산맥, 섬, 성(城), 성(省), 시(市), 약국, 양식(樣式), 역(驛), 왕, 요(窯), 유치원, 은행, 읍(邑), 주(州), 탑, 평야, 항공, 해협, 현(縣), 호(湖), 댐 등은 모두 붙여 쓴다. 김포평야, 호남평야, 마조레광장, 산페트로니오성당, 주장강(珠江), 도시마섬(利島), 대한해협, 도버해협, 몬테로사산, 경천사십층석탑…… 해란씨는 교정 규칙을 읽으며 이따금 작은 소리로 중얼중얼거리곤 했다. 완전히 얼어서 앉아만 있지 않는 게 반가웠다. 회사에 적응하고 있다는 신호 같았으니까. 교열국 미팅에서 돌아온 후 해란씨는 조중균씨의 도움을 받으며 일을 곧잘 해나갔다. 첫 교정지는 기대 이상이었다. 다만 문제는 조중균씨에 대한 개인적 관심 또한 더해졌다는 것이었다. 신장개업한 생선구잇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간 날, 해란씨는 조중균씨가 점심을 먹지 않고 있다고 불쑥 말을 꺼냈다.
“뭔데, 간헐적 단식?”
나는 잠수를 탄 필자의 새 연락처로 전화할 생각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칠 년째 원고를 못 쓰면서 계약금 백만원은 꼭 품고 있었다. 이런 일은 애초에 계약한 편집자가 처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가 바로 부장이었고 이제 추심은 내 몫이었다.
“아니요. 먹고 싶지만 참으신대요.”
“왜? 종교? 기아 돕기?”
“아아니요.”
해란씨는 말을 끌며 이해가 안 가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수백 명 직원 중에 점심을 건너뛰는 사람은 한시가 다 되도록 구내식당 배식대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요구르트 무더기만큼이나 흔한데 그의 결식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식대를 아끼려고 안 드신대요.”
“무슨 식대를 아껴? 구내식당은 무료인데.”
“팀장님, 안 먹는다고 하면 돌려준대요. 십삼만구천원.”
이미 연봉에 포함되어 있는 점심값을 무슨 수로 돌려받는다는 말인가. 해괴한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