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십삼만구천원이면 크죠

십삼만구천원이면 크죠.”

내 귀에 경고음이 울렸다. 점심 식대를 돈으로 받든, 포인트로 받든 조중균씨 사정이지만 해란씨가 그 사실을 알고 심지어 그 돈에 관심을 보이는 건 나와 관련된 일이니까. 나는 삼치 살을 조금씩 발라내며 그간 여러 사람의 증언으로 종합한, 조중균씨에 대한 정보를 속으로 되짚었다. 그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마다 하나같이 입에 올리는 말이 가성비였다. 간부들이 하도 그 점을 높이 사서 대체 연봉을 얼마나 적게 주면 저럴까 싶었다. 영업부장은 조중균씨를 올려 치며 편집부의 무능을 탓하기도 했다. 이 역시 조중균씨가 지닌 가성비에 관한 얘기였다.

폼 잡는 웬만한 기획 도서들보다 낫더라고요. 우리 회사 편집자들 기획 너무 남발합니다. 하나 유행하면 죽 따라가서는…… 아무리 출판이 신간 입고로 돌아가는 회전문 사업이라지만 될 걸 해야죠. 신간 중쇄가 한 달에 한 번을 안 나오니. 우리 차이사님이 아이디어 잘 내셨죠. 복간본은 인쇄기만 돌아가면 되니까 황금알이 똑 떨어지죠.”

회사의 적극적인 영업을 통해 복간본들은 소생했다. 정년퇴임이나 고희연, 등단 몇십 주년 기념, 혹은 유족의 효심이나 본인의 여전한 명예욕 같은 명분을 부추겨 이루는, 사실상 자비출판이었다. 단군 이래 내내 불황인 출판계를 생각해 눈감고 지나가지만 회사의 네임 밸류를 생각하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는 했다. 하지만 신입사원의 애사심에 악영향을 줄 그런 얘기는 빼고 나는 부장의 말만 그대로 전했다.

인쇄기만 돌리면 되는 줄 아는데 거 영업에서 모르는 소리셔. 사람으로 치면 거의 파묘예요, 파묘. 자연사한 책 끄집어내는 일이니까 다를 바가 없지.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 현고오 학생부군…… 농사짓다 죽어도 죽으면 다 학생이야…… 한국인들이 정이 많어. 복간이 제문만 안 읊었지 발골부터 재안치까지 과정이 번거롭기가 꼭 같아요. 일례로 조중균씨는 종이 사전을 써요, 옛날식이지. 왜 그러냐, 복간본들이 한자 병기 정도가 아니라 죄 국한문 혼용에다가 요즘 사전에 없는 말이 많아요. 사전에 웬만한 말이 다 있을 것 같지? 천만에, 사전도 말을 버려요. 쭉정이들을 정리한다고. 그런 걸 우리 영리한 노계 같은 조중균씨가 톡 쪼아서 탁 하고 원고의 적재적소에 갖다놓는 거지. 그러니까 이 늙은 저자들이 와, 껌뻑 넘어가는 거야. 와 내가 산송장이 아니었구나 하면서 복간된 책을 막 사서 나누고 보내고. 어떤 건 만 부도 나가. 조중균씨를 그 일에 딱 꽂아놓은 사람이 나예요. 처음에 나는 조중균씨 뽑지 말자고 했거든. 경력이 이쯤인데 이 정도면 값싸다고 회사에서 들였지. 낼모레면 환갑잔치 치를 사람을 왜 뽑아. 에유, 결국 사달 났지. 젊은 필자들이 싫어해, 직원 융화 안 돼, 결국 내가 야 그럼 교열국 소속으로 가서 복간본 맡아라 했지. 그렇게 해서 흑자는 내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어. 조중균씨가 가성비는 높은데 가심비가 많이 들어. 아니다 싶으면 돌부처처럼 돌아앉아서는, 내 조마조마한 마음을 누가 알겠냐고.”

그런 분 같지는 않던데요.”

해란씨의 한마디에 한창 말을 전하던 내 목청이 멈췄다. 이제 한 달 지난 직원이 조중균씨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입사 때부터 지켜본 부장이 그렇다는데, 아무래도 얘기를 좀 해야겠군 싶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서소문 쪽으로 걷자고 했다. 십 분 정도 가면 공원이었다. 안 가려는 겨울과 오려는 봄이 줄다리기하던 날들은 지나고 이제 완연한 봄이었다. 벚꽃이 서서히 질 준비를 하고 장미 꽃눈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자연에 순차가 있는 건 축복일 것이다. 세상만사 그런 질서가 사라지면 그게 지구 종말이겠지. 만발도 절멸도 없는 텅 빈 무()의 상태.

팀장님, 연극 같은 것 하셨어요? 예전에?” 해란씨가 신발끈을 고쳐 묶다가 불쑥 물었다.

? .”

, 그럴 줄 알았어요.”

나는 쭈그려앉은 해란씨를 내려다보았다. 아주 새하얀 가르마를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터 느꼈는데요, 얘기를 너무 실감나게 하세요. 거의 그 사람 빙의 수준이에요.”

나는 별수없이 웃다가 중학교 2학년까지 판소리를 했다고 알려주었다. 이제 숨길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과거 일이었다.

판소리요? 멋있다. 살면서 판소리할 줄 아는 사람 처음 만났네. 유니콘 본 기분이에요. 그래서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시는구나.”

생선구잇집에서 한 말은 절대 유머를 위한 것이 아니었건만 결국 재미를 주는 상관이 되었구나. 나는 손으로 햇살을 가리며 구부장 언니를 떠올렸다. 내 첫 직장 상관이던 언니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탈회사하고 지금은 내가 늙어 언니 자리였다. 연이어 쓰는 필기체처럼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 닿고 이어지고 흘렀다.

그 시절 나는 학생회사원중간계쯤의 존재였다. 졸리면 사무실에서 엎어져 잤고 복도에서 전화통화하며 남자친구와 한 시간 가까이 싸우기도 했다. 고등학생일 때 시작된 우울과 감정적 불안이 사회인이 된다고 갑자기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어느 날은 지하철역에서 공황에 빠져버리기도 했다. 지하철을 잘못 갈아탄 실수가 트리거가 된 것이다. 이미 아홉시가 넘어 서둘러야 하는데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직장인이면 누구나 하는 지각, 그 대수롭지 않은 일이 내 발을 무겁게 묶고 놓아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게도 나는 휴대폰을 꺼내 사실 그대로지하철역까지는 왔지만 출근할 수 없다내 상관, 구부장 언니에게 말했다. 그러자 언니는 그럼 올 수 있을 때 오라고 심상하게 답했다. 호들갑스럽게 상태를 묻거나 채근하지도 않았다. 집에 가서 쉬라거나 연차를 내라거나 얼른 정신 차리고 출근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가능할 때 하라고, 이 또한 선택의 문제라고 열어두었다.

해란씨 이름은 누가 지어주셨어?”

저희 할아버지가 실향민이시거든요. 해란강을 그리워해서 지은 이름이래요. 팀장님은요?”

해란씨는 가로수들을 올려다보며 약간 앞서 걷기 시작했다.

, 나는 아빠가 지어주셨다는데 의도는 잘 모르겠어, 일찍 돌아가셨거든.”

아 괜한 걸 여쭤봐서 죄송해요.”

내가 먼저 물었잖아. 괜찮아.”

막상 공원까지 갔지만 해란씨에게 무슨 주의를 주려 했는지 잊어버린 후였다. 우리는 높이 솟은 십자가 형상의 탑을 등지고 잠시 앉았다. 이렇게 안으로 몇 걸음 들어오는 것만으로 주변 팔차선 도로의 소음이 지워진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면 저 밖의 모든 소음은 그저 허상인 걸까.

조중균 선생님이요, 시를 쓰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분 아닌 것 같다고 말씀드린 거예요.”

……

나는 두번째 직장이었던 문학 전문 출판사에서 겪은 작가들의 기행을 떠올렸다. 북토크중에 말이 길어져 끝내달라고 쪽지를 전달했더니 찢으며 날뛰던 작가, 다른 작가가 해외에서 상을 받아 자기 신간이 묻혔다며 새벽에 전화해 소리지르던 작가, 술에 취해 입간판 옆에서 아무렇게나 오줌을 누던…… 오줌을 누던…… 인간들을. 그 시절 문학 좀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문학의 종언이라는 담론이 대유행이었는데 내게는 그런 일들이 문학의 종언이었다. 책으로 읽었던 그들의 말, 문장이 서리 맞은 감처럼 땅바닥으로 뚝뚝 떨어져내렸다. 하지만 그런 내 사정을 알 길 없는 해란씨는 휴대폰으로 찍어둔 조중균씨 시를 보여주었다. ‘지나간 세계라는 제목이었다.

 

어머니 깃대를 들고 거리를 걷는다

러시아 공장촌에도

서울의 청계천에도

눈은 오지 않는데

 

어머니들 걱정 마세요

우리는 그저 책을 읽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어요

배부른 자들은 많아도 정직한 자들은 별로 없지요

 

지금은 밤이어요

아이들은 잠이 들었고

경찰들도 불심검문하지 않아요

숨죽인 듯 조용하니

그 세계는 이제 지나가버렸습니까, 어머니

돌아누워 꿈나라로

딴 세계로

이 세상의 더 좋은 것을 맛보는 망각으로

혼곤할 때

이제는 괜찮습니까

 

그렇게 물을 때 어머니,

친구의 얼굴에는

깎지 못한 수염이

털지 못한 보풀이

씻지 못한 탄 얼룩이

너저분하게 체면도 없이

 

죽은 친구들이 있었죠

너무 착해서 죽은 사람이라고

우리 눈가가 하양 침침하게 내려갈 때

어머니,

우리가 버린 꽃은 말이 없는데

괜찮습니까

왜 괜찮게 되었습니까

 

해란씨에 따르면 조중균씨는 매일 이 시를 쓴 다음 구겨서 개인 휴지통에 버린다고 했다. 미화 여사님들이 이분은 왜 종이를 여기다 버리셔!” 하고 신경질 내어 알게 되었다고. 해란씨는 일찍 출근했다. 탄력근무제도 아닌데 여덟시 정도에 출근하다보니 자연스레 여사님들과 마주친 모양이었다.

근데 시는 같은데 저자 이름이 매번 달라져요.”

그러면 조중균씨가 쓴 시가 아니네. 베껴 썼나?”

아니요. 며칠 전에 교정지 2차 검수 받으면서 물어보니 제가 쓰기는 했지만 제 시는 아닙니다, 이러시던데요.”

자기가 쓴 시이지만 자기 시가 아니라니. 음주운전은 했지만 술은 마시지 않았다든가, 주가조작은 했지만 주식은 모른다든가 하는 식이었다. 그러면 챗지피티가 썼단 뜻인가 싶었지만 아직도 실물 표준국어대사전을 쓰는 사람이 인공지능을 이용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사정까지 알아서 뭘 할까. 나는 해란씨에게 회사에서는 뭐든 적당한 게 좋다고 충고했다. 하지만 그 얘기를 하는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서로의 비밀 같은 거 알게 되면 무지 피곤해.”

.”

해란씨는 내 말이 심각하게 들렸는지 더이상 조중균씨 얘기는 하지 않았고 하늘이 정말 파랗다며 공중을 한번 휴대폰으로 찍었다.

 

*

 

떡쿵 하는 북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연이어 정고의 잔소리가 우르르 몰려왔다.

해 모가지가 중천을 넘어가는데 여즉 자고 있으면 어짜는가. 아침 닭이 우지지면 발딱 인나 호미 들고 세수하고 뒷동산 올라가지는 못혀도 일어는 나 있어야지.”

시계를 보니 겨우 여덟시가 넘어 있었고 오늘은 토요일이었다. 나는 문밖을 향해 외쳤다.

저게 회사를 안 다니니까 휴일 귀한 줄을 몰라. , 아무리 악덕한 인간도 주말 회사원 아침잠은 건들지를 않으니께 조용히 나가라, ?”

드르르르르르르…… 하지만 정고의 북은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더 본격적으로 울렸다.

지금이 아침이 아니란 말이여. 아까부터 제비가 지지지지 주지주지 거지연지 낙지각지 절지연지 은지덕지 우지배요 수지차로……

나는 견디다못해 문을 열고 나갔다. 소리판 고수이자 동갑내기인 정고가 굵은 나무 북채까지 쥐고 자세를 딱 잡아 앉아 있었다. 원래 이름이 있지만 모두들 그를 정고수라 불렀고 동갑인 나는 앞만 떼서 정고라고 했다. 정고는 짜증으로 붉어진 내 표정을 살피며 피곤해 보이네한마디했다.

피곤해 보이는 게 아니여, 피곤헌 거여.”

간밤에 뭘 했기에 피곤해부러야?”

나는 약간 주저했다. 지난밤 타박타박 새 소설을 써내려갔으니까. 소설의 장소는 엉뚱하게도 중세 이탈리아였고 구부장 언니와의 대화 때문인지 엉뚱하게도 주인공은 당시 대학교수였다. 이름은 패포라고 붙여주었는데, 실존 인물이었지만 현실과 소설에서의 존재 양태는 전혀 달랐다. 로마법 연구로 이름을 날려 볼로냐의 밝게 빛나는 추앙된 실제 패포와 달리 내가 써내려간 패포는 그저 빈한하고 빈한했다. 더 써내려가자 아델리나라는 여자도 빨래를 하느라 둘둘 걷어올렸던 치맛자락을 펴며 수로에서 등장했는데, 어디서 본 듯하지만 특정하기는 어려운 묘한 얼굴이었다. 그 역시 빈한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빨랫값을 받을 때만은 보조개를 살짝 드러내며 웃었다. 근육이 탄탄하고 뼈대가 굵은 여자였다. 정말 여자 같은 여자. 하지만 그런 예술적인 얘기를 정고한테 할 필요는 없어서 나는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준 다음 돌아섰다.

영주야, 잠깐 나가봐, 밖이 야단이여.”

이것이 또 거짓말을 하는구나 싶어 인상을 쓰는데, 뭔가 진동이 느껴졌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 건물의 낡고 위태로운 계단을 밟으며 한꺼번에 올라오고 있었다. 정고는 북채를 가볍게 잡고 그 발소리에 맞춰 북면을 건드렸다.

와중에 자진모리를 치네?”

내사 고수니께.”

동그란 뿔테 안경 너머로 정고가 헤살헤살 웃었다. 하긴 이 인간은 웬만한 일에는 심각해지지를 않았다. 엄마는 정고가 고수치고도 버드나무처럼 보드라워서 소리가 잘 앵긴다고 평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