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합궁구다궁따꿍 합궁구다궁따궁 이만한 진동이면 철근 대신 벽돌로 쌓아올려 시멘트로 미장한 뒤 크림색 페인트로 칠한 이 건물은 정말 무너질 수도 있었다

합궁구다궁따꿍 합궁구다궁따궁 이만한 진동이면 철근 대신 벽돌로 쌓아올려 시멘트로 미장한 뒤 크림색 페인트로 칠한 이 건물은 정말 무너질 수도 있었다. 현관문을 발칵 열었는데 수강생인 카즈하루와 나래도 맞은편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구경중이었다. 

“저기 누구세요? 뭐예요?” 

커트 머리를 한 여자애를 붙들고 물었지만 여자애는 “네, 촬영입니다”라고만 답하고 내 앞을 지나가려 했다. 고개를 약간 숙이기는 했지만 걸음이 바빴고 동작에는 어딘지 리듬감이 느껴졌다. 

“무슨 촬영인데요?” 

나는 문을 닫고 복도로 나왔다. 아래층에서 누군가 “왜 못 올라가?” 하고 소리쳤다. 줄줄이 물품을 든 사람들이었다. 

“그건 말씀드릴 수 없구요. 저희 허락받았습니다.” 

“제가 여기 사는 사람인데 무슨 허락을 받아요?” 

“소리판 일인데요?” 

“그니까 제가 소리판에 사는 사람이라고요, 지금.” 

그제야 여자애는 들고 있던 상자─샌드위치와 닭강정 따위가 보였다─를 바닥에 내려놓고 명함을 꺼냈다. ‘지수 리(Jisoo Li), 연예기획사 포아(FOA) 글로벌 아티스트 릴레이션스 디벨롭먼트 콘텐츠 앤드 이노베이션 크리에이티브 총괄 디렉터(Global Artist Relations Development Content & Innovation Chief Creative Director).’ 포아는 ‘퓨처 오브 아트’라는 안이한 브랜드명의 약자로 영도의 소속사였다. 서른 살도 안 돼 보이는데 이미 ‘치프’인 지수 리는 “화보 촬영이 있거든요” 하고 다소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간단한 영상과 사진 촬영이고 이미 선생님 허락은 맡았다고. 나는 거미줄이 레이스 커튼처럼 늘어진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나선형 계단을 휘감으며 올라오고 있는 스태프들만으로도 이미 간단치 않아 보였다.  

“엄마도 알고 계셔?” 

나래에게 묻자 약간 우려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아, 영도 오빠 친구시구나.”  

지수 리가 뒤돌며 “그분, 그분”이라고 하자 나에게 시선이 쏠렸다. 눈곱도 떼지 않고 나온 차림새인데…… 이게 다 저놈의 정고가 수선을 떠는 바람에…… 그래도 할말은 해야 했다. 

“이 건물, 안전진단에서 D등급 받았어요. D등급.” 

“그게 뭔데요?”  

한 번도 건물 안전진단 등급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단 말인가. 외국에서 살다 왔나. 그제야 지수 리의 관자놀이 부근에 새겨진 조그마한 별 문신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되었는지 피부결을 따라 흐릿해져 있었다. 매력적인 덧니, 갸름한 턱과 큰 눈, 데뷔를 준비하다 매니지먼트 팀으로 옮겨갔나 싶게 매끈한 얼굴이었다.   

“D면 데스죠, 데스. 잘못하다가는 죽는다.” 

“네?” 

눈이 휘둥그레진 그는 “야, 들었어? 오빠 괜찮은 거야?” 하며 자기가 아니라 영도 걱정을 했다. 직원이 담당 연예인에 대한 애정이 크구나. 나는 예의상 묵례로 대화를 마치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곧장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내 모습부터 확인했다. 굴곡 없이 땡땡한 평소 얼굴 그대로였다.  

낯선 자들의 침입이 벌어진 날이라 그런지 집안 곳곳의 오래된 것들, 한없이 한없이 오래된 것들이 눈에 밟혔다. 작은 소파 위에 올라 있는 모시 방석, 열한 개의 서랍이 달린, 기품 있는 고가구이지만 황동 장식들이 다 삭아버린 머릿장, 어디서 샀는지 받아왔는지 모를 모란무늬 백자 병(들)과 닭이나 달이 그려진 나무 액자, 장신구들을 무질서하게 담아놓은 자개함과 유럽 어딘가에서 엄마가 선물받았다는 붉고 파랗고 노란 보석으로 꾸며진 장식용 마스크. 소리판은 여기보다 더해서 낡은 병풍이며 옷걸이에 걸린 지 오 년은 된 한복이며 겉가죽이 느티나무 껍질처럼 다 일어난 북과 장구가 있을 텐데 저들 눈에 어떻게 보일까, 한숨이 나오고 차츰 화가 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대체 뭘 하기에 저렇게 몰려들어서 난리를 피워?” 

정고는 냉동고를 열고 먹을 만한 걸 찾고 있었다.  

“야, 이짝은 완전히 정글이다 정글, 워매 뭔 놈의 언 괴기가 이르케 많을까. 이건 족상을 보니 사슴 아녀?” 

설마 사슴고기가 거기 있을까, 나는 쏘아붙이려다 모를 일이라 참았다. 소리꾼은 대체로 대식가들이고 엄마는 더했으니 그런 동물이 충분히 발견될 수도 있었다.  

“촬영한다고 엄마가 거길 치웠을 리도 없고 나가 미리 알았으면 청소기라도 돌렸을 거 아냐.” 

“영주야, 니가 열불이 나는 건 그 때문이 아니여.” 

정고는 태평하게 식빵 봉지를 꺼내들었다. 살얼음이 끼어 식빵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라믄?” 

내가 묻자 정고는 식탁에 팔을 짚고 서서 무연히 건너다보았다. 비록 이 집에서는 냉동 고기로밖에 존재할 수 없지만 이 계절 숲의 어디에선가는 부드럽고 순한 수풀을 헤치고 있을 사슴 같은 눈이었다. 판소리 대회에서 일등을 휩쓸다 목청이 나가 더이상 노래할 수 없게 된 정고는 많은 고비를 넘고 넘어 고수가 되었다. 그 폭풍을 어떻게 지났는지 자세히 말한 적은 없었다. 싸움으로 징역을 살고 나와서야 방황이 멈췄다고 양이 이모가 알려주어서 그 혹독함을 짐작할 뿐이었다.  

“다릉 게 아니고 니가 배가 고파 그러는 거제.” 

뭔가 의미심장한 말이 나오지 않을까 긴장했던 나는 별수없이 웃었다. 영 틀린 소리는 아니니까. 주스를 따라 상 위에 놓고 정고와 나는 말없이 토스트를 씹기 시작했다. 해동도 않고 바로 토스터에 넣어 그런지 무척 질겼다. 초식동물처럼 꾸준히 턱을 움직여야 하는 먹이 활동이었다. 

“나도 이따가 가봐야 허네.” 

“니가 왜? 북을 쳐달라덩가?” 

“뭐 그렇겄지. 영주 니도 한번 들여다봐야지.” 

“내가 왜?” 

“한번 들이다봐. 선생님이 워너기 옹삭헌 소리 몬허니까 몰르잖어, 어떤 치들인지.” 

그후 말없이 신발창 같은 빵을 해치우고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았다.  

 

한 시절을 같이해서 그런지 영도는 예상보다 조용히 소리판에 스며들었다. 이상하게 잦아진 요 무렵의 봄비처럼. 엄마는 시작은 독선생보다는 다른 수강생이 같이 있는 게 낫다며 카즈하루와 나래, 양이 이모와 때론 나를 불러다 앉혀놓기도 했다. 가끔은 조용한 초보생들이 끼기도 했는데 대체로는 은퇴자들이었다. 다행히 그들 모두 영도를 잘 몰랐다.  

절대 안 마주치겠다고 결심했던 것과 달리 나는 시간이 되면 가서 앉아 있었다. 회피는 어떤 역할에 퇴행적으로 머물려는 연연함이라는 사실을, 방계에 방계에 방계를 뒤져도 조선 왕가와 인연이 닿기 어려워 보이는 이왕가복국에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별안간 나를 비운의 여주인공으로 만든 감정이 구부장 언니와 이야기하면서는 가뭇없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을, 그 밤 텅 빈 혜화동 거리에 서서 나는 흡연과 함께 여러 번 곱씹었다.   

성공한 전남친의 등장이 가져온 복잡한 애증의 서사에 사로잡힐 것인가. 해란씨와 현실의 임무를 완수하여 새 직장에서 번듯하게 성과급을 쟁취할 것인가. 그 둘은 어마어마한 차이였고 내게는 선택권이 있었다. 고통과 번민, 후회와 원망, 슬픔과 자괴감, 애틋하고 모호한 신호들을 해석하느라 소진될 욕망의 에너지. 그 헛된 드라마에 사로잡혀 옛 추억의 잔여 감정에 취하느냐 마느냐는 내 의지의 영역이었다.  

유명인과 함께 듣는 수업에 긴장 반 호기심 반으로 들어왔던 소리판 사람들은 금세 무뎌졌다. 며칠 지나자 별사람 아니구나가 되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영도의 삼선 트레이닝복 때문이라고 했다. 셀럽은커녕 평범한 남자 사람보다도 약간 떨어진다 싶은 차림새로 소리판을 오갔던 것이다. 양이 이모마저도 “옷이 날개긴 날개였나벼” 하고 그 눈부신 모습을 확인할 수 없음을 아쉬워했다. 엄마는 영도를 위해 특별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 낡은 방석을 그대로 사용했고 빨리 온 사람에 한해 등받이가 있는 좌식 의자를 이용할 수 있었다. 다 함께 목을 풀며 시작하는 방식도 같았다.  

엄마는 북을 앞에 두고 의자 위에 날름 앉아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별주부와 오징어, 달강어들을 죽 내려다보는 판소리 속 용왕처럼, 혹은 막 산에서 내려온 범처럼. 이윽고 엄마는 선창했고 우리는 따라 했다. 아아아아아 하고 평성으로 출발해서 아아아아아아 하고 중간음을 떨며 옥타브를 올려갔는데 한 음 죄었다가 정점을 찍을 때 영도에게서는 늘 낱낱이 해진 음이탈이 났다. 그래도 소리판 사람들이 예의가 발라서 웃지는 않았다. 웃다가 혼난 사람은 나였다.  

“누구 싸가지가 이렇게 외출을 했냐.”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텔레비전에 나올 때마다 영도의 발성을 일일이 평하던 자기 과거를 엄마는 잊은 모양이었다. 

“소리를 떨구는 게 문제지 나오는 소리를 탓허면 안 돼. 일단 질러야 일이 되니께.” 

“네.”  

그렇게 해서 우리가 2000년대에 이미 배운 노래들을 짚어나갈 때면 음률 덕분인지, 아니면 익숙한 것들이 주는 안정감 덕분인지 순간순간 평온이 찾아왔다. 내가 나에게서 분리되는 해방감. 그러고 보니 소리 수업은 거의 이십 년 만이었다.  

“오랜만에 하니까 좋긴 좋은데 힘들지 않냐?”  

집으로 갈 때쯤 영도는 해쓱한 얼굴로 물었다. 사실 나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어쩌면 엄마처럼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목이 쉬지 않는, 판소리 말로 천구성이라고 하는 재능을 물려받았는지도 몰랐다. 음색도 엄마처럼 허스키한 철성이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 나는 아프지도 않은 목을 아프다고 엄살 부리곤 했다. 부담 때문이었다.  

“저번 드라마 잘 봤다. 너 형사로 나와서 다 죽이는 거.” 

“……재미있던?” 

“재미나더라.” 

“나는 안 봤거든.” 

“너 나온 드라마를 안 봐야?” 

“응.” 

하기는 자기 얼굴을 화면으로 보는 일이 싫을 수 있지.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 들으면 귓속으로 듣던 소리와 완전히 달라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그건 타인의 것도 본인의 것도 아닌 기계의 것에 가까웠다. 그런데 영도가 자기가 나온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 않는 이유는 특이했다.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무슨 책임을 져?” 

내가 묻자 영도는 자기 차 타이어를 툭툭 차며 이말 저말 했는데 요약하면 그 작품의 흥행 결과와 무관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실적 압박이 당연히 있겠지, 권당 이삼십 프로 마진인 출판사도 그런데 그쪽이야 거의 도박 수준이니까.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그런 부담 외에도 뭔가 근원적인 회의가 엿보였다.  

“그래도 얼마나 좋냐. 나 같은 회사원들은 인생 자체가 참 각박하거든.” 

“아, 물론 그렇지.” 

영도가 ‘퍼뜩’ 긴장을 조이고 사회적 페르소나를 꺼내 뒤집어썼다. 마음의 변화가 얼굴에 다 드러나는 건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연예인 걱정하는 거 아니고 진짜 연예인 걱정할 필요 없거든. 근데 그러니까 내 말은 내 걱정을 하라는 건 아닌데 그게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지는 않거든.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한테는 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데 우리가…… 그니까 너는 소리 계속 안 한 거 후회한 적 있어?” 

“아니.” 

대답이 바로 나왔다. 그걸 계속해야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 세계에서 들고 나온 패배감이 문제였다.  

“나는 후회해.” 

“왜?” 

“내 거라고 할 만한 게 뭐 하나가 없거든.” 

그러고 떠난 영도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겨 아까는 미안했다고 사과했다.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나는 “밥 좀 먹고 다녀”라고 전부터 하고 싶던 말을 했다. 

“몸무게 앞자리가 6이 안 되면 큰일난다고 누가 그러더라.” 

원하던 답이 아니었는지 전혀 찬성할 수 없는 논리인지 영도는 답을 남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