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을 덮고 누워 최대한 무용한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면 마음이 가벼워지니까. 다음주에 드디어 만나기로 한 저자나 해란씨가 탐탁지 않은지 자꾸 나를 찾는 국궁 저자나 십삼만구천원어치의 불길함을 가지고 있는 조중균씨를 지나 하필이면 우리 팀 담당이 된 휘발유통 디자이너……도 지나 하반기로 잡혀 있는 북페어와 성과급, 그런 일과 관련된 것들 말고 쓸데없는 것들을 생각하자. 그런데 호주에는 정말 그런 세리머니가 있을까. 자기 땅에서 쫓겨난 선주민들이 외지에서 왔을 뿐인 방문자를 위해 베푸는 정화의 의식, 그걸 치르는 동안 농담이 가능할까. 판소리에서 농담은 가창자 손에 들린 부채처럼 펼쳤다가 접었다가 듣고 보는 이들의 시선을 당기고 풀면서 긴장과 클라이맥스를 조련하고 눈물과 웃음을 풀고 묶고 그러면 패포나 아델리나도 농담을 할까. 신의 은총과 진리, 그를 통한 구원에 지나치게 천착한 나머지 정작 자기 자신의 구원은 내팽개친 패포와, 수로에 언 발로 서서 세탁이라는 ‘정결함’에만 삶을 걸어온 아델리나는 어떤 농담을 할 수 있나. 예를 들어 둘이 만난다면…… 그렇다면 거기에 농담이 끼어들 자리는…… 없을 것이다. 책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패포는 반미치광이가 되었다…… 며칠간 서기관은 양피지 기록장에 이런 말들을 써야 했다. 그는 강의실로 들어와 말루스(malus)! 페카토르(peccator)! 말레피쿠스(maleficus)! 임프로부스(improbus)! 하고 외치다 서너 명의 학생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홱 사라져버렸다. 모두 악인을 가리키는 말들이었다. 펜촉을 든 채 고심했는지 미세하게 옅어진 글씨로 서기관은 기록을 이었다. 그는 모든 위엄 있는 학자라면 제대로 갖추어야 할 망토조차 입지 않았고 몰골은 유랑인들만큼이나 형편없었으며 무엇보다 반미치광이처럼…… 이렇게 쓰다가 서기관은 심했다 싶었는지 칼로 마지막 표현을 사각사각 문질러 고쳐놓았다. 무엇보다…… 열병으로 인한 정신착란을 잠시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휴가를 주는 편이 공동체를 위해 이로울 것이다. 실수인지 일부러 그랬는지 꼼꼼히 지워놓지는 않아서 본심이 무엇이었는지는─반미치광이─양피지에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그 당시 볼로냐는 유랑민과 거지 그리고 유럽 각지에서 몰려든 학생들의 도시였다. 그 셋은 때론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패포 역시 그 셋을 크게 다르지 않게 대해왔다. 그는 비록 다른 귀족들처럼 자선을 베풀 재산은 없었으나 때리거나 침을 뱉거나 모욕하지는 않았다. 빈자에 대한 모욕은 신의 분노를 사기 때문이었다. 간음보다 더 용서받기 어렵고 때론 살인보다 큰 죄였다. 회개할 기회도 없이 일평생 저지르기 쉬운 죄악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패포는 자기 책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길거리로 나가 악인들, 악인들, 악인들, 하고 외치면서 진실을 캐묻고 다녔다. 전혀 위협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거지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그는 허리가 다 굽은 늙은이를 걷어차기도 했다. 늙은이는 진흙탕을 뒹굴더니 금세 패포에게 엎디어 용서를 빌었다. 패포는 가난하지만 누구나 알 만한 귀족 가문의 일족이니까. 유랑민과 거지들은 슬슬 눈치를 보며 그 앞에서 기기 시작했지만 그가 멀어져가면 “신이 너를 벌하실 것이다!”라고 외치며 달아났다. 눈을 뽑고 사지를 자르실 것이야, 연옥에 밀어넣어 불타 죽게 할 것이다. 그러면 패포는 뒤돌아 “연옥에는 죽음이 없어, 멍청이들아” 하고 대거리했다. “연옥의 불은 정화의 불이야!” 하지만 그런 거리의 연설은 복잡한 볼로냐 골목의 소음에 묻힐 뿐이었다.
어느 날 패포는 유랑민 아이 하나를 붙잡았다. 그의 집 근처 나무 위에 늘상 다람쥐처럼 올라가 있는 녀석이었다. 아이는 무서워 오줌을 싸면서 패포에게 말했다.
“수로에 가보세요!”
“어느 수로 말이야?”
“거대한 물레방아가 도는 수로요. 거기 세탁부가 어르신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어요.”
미친개처럼 떠돈 지 며칠 만에 겨우 단서를 잡았지만 패포는 아연해졌다. 아이에게 치아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아이는 먹이를 앞에 둔 개처럼 계속 침을 흘렸다.
“이가 왜 없지?”
두려움에 떨던 아이는 자기에게 던져지는 연민을 놓치지 않았다. 뭔가를 얻어낼 수 있을까 살피는 표정이 되었다. 육십 년은 삭아버린 늙은이의 얼굴이었다.
“뽑아서 팔았어요.”
아이 입안에 침이 담뿍 담겼다가 끊임없이 흘렀다. 그곳 역시 수로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았다.
“제 이는 싱싱하니까요.”
어린아이의 이는 더 깨끗하고 좋은 것으로 여겨져 인기가 많았다. 의치상들은 그런 이를 가져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치아가 빠졌을 뿐인 귀족들에게 팔았다. 그들에게 그것은 ‘씹는 용’이 아니라 ‘장식용’이었다. 순금줄로 잇새에 고정시켜 잠깐 모양을 내고 먹을 때는 빼놓았다. 정작 어린아이는 잇몸으로만 음식물을 섭취하느라 팔다리가 다 마른 나뭇가지 같았다. 패포는 수치심을 느꼈고, 구취가 심하게 나는 아이의 수로에 먹을 것을 공급하고 싶었지만 자신 역시 어제부터 끼니를 거른 상태이기에 돌아섰다. 몇 걸음 걸어가는데 아이가 “말루스!” 외치고는 옆집 지붕으로 올라갔다.
“페카토르! 말레피쿠스! 임프로부스!”
*
미팅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조중균씨는 해란씨 옆에 앉아 조용히 뭔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뭘 적고 있는 걸까 궁금했다. 손바닥만한 기자 수첩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적 저자들이 연이어 우리를 찾아올 예정이니까. 모두 부장이 맡았다가 우리 팀에 밀어버린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밀렸다는 생각은 못하고 이런저런 애로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윗선을 만나겠다고 한 것이다. 부장은 하루 일정으로 그들을 다 몰아버림으로써 귀찮다는 기색을 역력히 냈다. 그래서 아홉시 반에는 국궁이, 오후 세시에는 한동안 잠수 탔던 국립국어원의 공공언어 자문 간사가 찾아오게 된 것이다. 그래도 미팅 시간을 누가 아홉시 반으로 잡는단 말인가. 새벽 네시면 눈을 번쩍 뜨고 한강변 국궁장에 나가는 저자의 요구만 고려한 선택이었다. 그로서는 일과가 시작되고 한참이 지났으니, 일반 직장인의 오후 한시나 두시 같은 느낌일 것이다.
우리는 교정보고 수정사항 검토를 부탁하거나 원고 마감이 어려우면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연락했을 뿐인데 무슨 얘기들을 하려고 찾아오는지 예상이 안 됐다. 혹시 해란씨가 이메일에 뭔가 실수를 했을까. 참조도 걸리지 않았는데 부하 직원 이메일을 일일이 확인하는 인권유린 상사들도 있지만 나는 그런 타입은 아니라서 말로 확인해볼 수밖에 없었다. 해란씨는 이메일에 날씨 이야기조차 쓰지 않는다면서 “제 어떤 말에 저자가 화가 난 걸까요?” 하고 되물었다. 인문 쪽 저자들이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고 그저 편집자들이 알아주기를 원한다는 데 있었다. 체면을 따진달까, 기본적으로 대접받는 일이 디폴트가 되었달까. 차라리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인간들이 낫지 허허허허 웃다가 갑자기 안면을 바꿔 계약을 파기하겠다, 담당자를 교체해라, 판권을 다 파내가겠다, 뒤통수치면 정말 황당했다.
“책은 경이로우나 그 책을 쓰는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일 뿐이리니.” 구부장 언니는 이제 해탈해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래, 차라리 찾아와 따지는 것이 낫지.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썼다. 해란씨에게도 “그냥 우리는 가만히 듣기만 하면 될 거야”라고 일러주었다.
“어쩌면 안 들어도 될 얘기일 수도 있고.” 해란씨가 내 농담에 약간 웃어 보였다.
저자는 복도를 쩌렁쩌렁 울리며 등장했다. 꼭두새벽에 미팅 시간을 잡은 데서 그 기력을 짐작할 수 있듯,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엘리베이터를 놔두고 굳이 계단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김부장, 내가 김부장을 과장일 때 만났잖아. 그때 존경하는 인물이 이명박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러면 자, 이 명함 받으라고.” 그렇게 부장에 대한 정보가 하나 추가되었다.
“아 그때가 한창 대통령 선거할 때라서 제가 그렇게 둘러댔지요. 존경까지는……”
“무슨 소리야? 내가 다 기억하는데. 그때 회장님 앞에서 거수경례하며 ‘이명박 출근했습니다’ 간살부리지 않았어? 그날이 아마 대통령 선거 끝나고 다음날인가 그랬을 거야. 그때 회장님이 그쪽 후원회에 이름이 올라 있었지?”
“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교수님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죠.” 부장 말에는 어쩐지 힘이 하나도 없었다. 회의를 좌지우지하며 일장 연설해대는 평소 같지 않았다.
“에엥? 무슨 말이 그래? 정확하다니까. 엽진화락 피할 놈 없어도 내가 쌩쌩한 늙은이야. 그 옛날 한 말 밥에 열 근 고기 먹었다던 염파 못지않다고. 그러니까 활을 들지. 활 무게가 얼마나 될 것 같애?”
부장이 이미 계단을 올라오며 기가 다 빨린 건조 오징어 같은 표정으로 회의실에 들어섰다. 국궁은 복도를 쟁쟁 울리던 목소리가 완전 허세는 아니구나 싶게 건장한 백발의 홍안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람이 너무 제 나이 같지 않으면 도리어 이물감이 들었고 그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우파?”
내가 명함을 내밀자 그도 자기 명함집을 꺼내며 대뜸 물었다.
“네?”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묻자 그는 눈길을 길게 끌어 날 샐쭉하게 살피고는 명함을 건넸다.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놓이고 그 옆으로 ‘한미친선선린증강협의회(韓美親善善隣增強協議會)’ 위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해란씨에게로 시선을 옮긴 그는 “이십대 여성이니까 좌파?” 이렇게 말하고 다른 명함을 꺼내 건넸다.
“우파?”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틈도 없이 국궁 교수는 조중균씨에게로 넘어갔고 내가 받은 것과 같은 명함을 내밀었다. 조중균씨는 명함을 받아들 일말의 의지조차 없이 가느다란 팔을 늘어뜨린 채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조중균씨가 먼저 명함을 드려요.”
답답하다는 듯이 부장이 한마디하자 조중균씨가 자기 명함을 꺼내 건넸다. 교수는 명함을 눈앞에 바짝 가져다대고는 금테 안경 너머로 이름을 읽었다.
“에…… 조중균 선생, 이름이 기가 막히네, 무리 중(衆) 자에 고를 균(均). 무리 중 이거 웬만하면 이름에 쓸 일 없는 한자인데. 이름이란 게 나 이런 사람이요 떡하니 드러내는 용도인데 무리 속에 섞여 감감이 없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 되잖어. 기가 막힌 아이러니구만.”
조중균씨는 별 반응 없이 셔츠 포켓에서 볼펜을 꺼내 자기가 받은 명함에 뭔가를 표시하고는 교수에게 돌려주었다. 그 짧은 동작 하나에 모두가 긴장했다. 명함을 되돌려받은 교수는 입을 아래로 죽 내밀고 글씨를 읽었다. 단체의 영문명 속 ‘프렌들리’라는 단어가 ‘프렌드십’으로 고쳐져 있었다.
“이게 요즘 영어에서는 이렇게 쓰나? 내가 한번 알아봐야겠네.”
쓱 읽고 명함을 돌려주려는데 조중균씨가 방어하듯 손을 내밀어 거부했다. 우리는 두번째로 깜짝 놀랐다.
“글자가 틀리기는 했지만 글자만 틀린 것은 아닙니다.”
조중균씨의 목소리는 어딘가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이나 도로 위를 망연히 떠도는 포장끈 따위를 닮아 있었다. 항상 끄트머리가 흐리마리하고 정서적으로는 아련했다. 대체 무엇을 향한 상실과 그리움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그 점이 조중균씨를 흔한 회사 내 빌런이 아닌 사연 있는 직원으로 만들었다.
“미제는 미제죠.”
미팅도 전에 아작이 나겠구나. 나는 부아가 치밀었는데 국궁 교수의 표정은 도리어 밝아졌다.
“이 친구 좌파군그래.”
그는 해란씨에게 준 것과 같은 명함을 꺼냈다. 그는 요즘 세상이 하 수상하여 두 가지 명함을 준비해 다닌다고 했다. 우파들을 만날 때는 ‘한미친선선린증강협의회’ 명함을 돌리고, 좌파들에게는 ‘민주평화해직교사모임’ 명함을 돌렸다. 세월이 흐르며 그의 인간관계가 복잡해지고 분화되면서 명함도 점차 다양해진 것이다. 그는 국궁인들을 만날 때는 퇴임한 전 대학의 명예교수 명함을 쓴다고 했다. 국궁은 스포츠이자 전통, 하나의 예술이니까. 조중균씨가 수첩 위에 올려놓은 명함을 보니 판화로 새긴 팔뚝과 주먹이 그려져 있었다. 국궁 교수의 행위는 아이러니하고 다소 풍자적이고 장난 같기도 했지만 솔직히는 공격적인 느낌이었다. 세상에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인간들투성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