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나서도 우리는 그의 사담을 길게 들어야 했다. 끝이 없었다. 원고에서는 난세의 어지러움은 떠들어 무엇하냐며 개탄하더니 현실에서는 온갖 일에 사자후였다. 정작 책 이야기는 별로 없고 자기 과거사가 초점이었다. 국궁이 화제이면 책 작업에 도움이라도 될 텐데, 해란씨에게 던졌던 농담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듣지 않아도 될 얘기들이었다.
“민주화운동 보상도 그래.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인생 값을 쳐주는 건데 왜 우리더러 증명하래? 내 친구들 중에는 차라리 초근목피 씹겠다며 신청도 안 한 놈들이 많아. 나는 그 시절에 공권력으로 희생된 시민들을 위해 묵념하라고 조회시간마다 교육하다가 모가지가 날아갔지. 그래도 그 녀석들 중 서울대도 가고 검사도 되고 의사로 자리잡아서 한풀이가 좀 됐어요. 강남에 건물 두 층을 다 쓰며 치과를 운영하는데 나는 거기 가면서 예약이고 뭐고 일절을 안 해봤어. 하하하하하하하, 가보면 예약한 치들도 목을 빼고 기다리는데 나는 가서 어이 나 왔다, 하면 끝. 기가 멕히지.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았다. 그가 받아야 하는 의치 시술 같은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누구나 나이들면 이가 썩고 빠지고 결국 가짜 이에 기대어 산다. 대체 저자가 요즘 강남의 치과 체어에 앉아 받는 시술의 내용을 왜 출판사 직원이 알아야 한단 말인가. 부장은 이명박을 존경했던 과거가 들통나서 그런지, 원래 자기보다 힘있는 사람 앞에서는 침묵이 금과옥조인지 이 중구난방의 대화를 조율할 의지가 없어 보였고 하는 수 없이 내가 말을 꺼냈다.
“교정지는 수정중이고, 다음주에 마지막 교정사항 확인해주시면 5월 중순이면 인쇄 들어갈 듯합니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갔다. 이제 정말 하고픈 얘기가 나오겠구나 싶었다.
“전연 넘어갈 수 없는 문제가 시정이 안 되었는데 인쇄를 해요? 아니 책이 왜 죄다 흑백이야? 국궁은 있잖아, 과녁이 쨍하거든.”
“흑백이 아니고 별색을 함께 쓰는 작업이지요.”
사교적 미소와 함께 설명했지만 감정이 실려 목소리가 흔들렸다. 양볼 근육을 억지로 밀어올렸더니 어금니까지 힘이 들어갔다.
“별색? 그런 건 모르겠고, 진작에 내가 이 책의 심각한 문제를 기별했는데도 통 변화가 없어요. 그러니 이 늙은이가 직접 올밖에. 그전에 내 담당자 응, 여기 이십대 좌파 여성분한테 통변을 해도 일언반구가 없더라고.”
지목당한 해란씨는 앞에 놓아둔 출력물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아까부터 뭔가 궁금하더라니 그간 주고받은 이메일들이었다.
“선생님과 나눈 대화 중 그런 언급은 없는데요.”
나는 사람들만 없다면 꽉 끌어당겨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기특함을 느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런 준비까지 해왔다는 말인가. 보통은 그럴 리가 없는데요, 하고 느적느적 휴대폰을 꺼내다 수비 타이밍만 놓치게 마련인데. 더 최악은 어떤 이메일이죠? 하며 못 찾고 시간만 끌거나 지금 앱이 불안정하네요, 하며 포기하는 결말이었다.
“내가 말을 했어요.”
국궁 교수는 입술 양 끝을 턱에 닿을 듯이 죽 끌어내리는 특유의 샐쭉한 표정을 짓더니 이메일 뭉치를 가져갔다. 그런데 몇 달 사이 저렇게 많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는 말인가. 갑오징어의 투혼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국궁은 착착착착 출력물을 넘겼다. 자기 말을 증명해야 하는 진지함이 깃든 순간, 그의 진짜 얼굴이 나왔다. 그는 늙은 사람이었다.
“여기, 여기 있잖아. 내가 말을 했다고.”
우리는 그가 가리키는 부분을 받아 읽었다. 이메일은 “강해란군, 방춘화시 연래지절에 기거만승을 축”으로 시작했다. 해란씨가 왜 날씨 안부조차 묻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해 가지 않는 상황을 이해하려 들거나 거기에 자신을 끼워맞추려 하지 않고 ‘패싱’하는 것이 내가 아는 요즘 신입들이었으니까. 편지는 이어져 “송부 교정지 수신 후 사적(射的)이 여전히 ‘혼암’하나 당자 제안의 수용으로 별절사법의 효과는 거둠”으로 맺었다.
이런 이메일을 매번 받으면서도 앓는 소리 한 번 하지 않은 해란씨가 한편으로는 믿음직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웠다. 모든 걸 알아서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건 책임감이 있거나 당찬 것과는 다른, 어차피 내가 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고립감일 수도 있었다. 어두운 파티션 안에서 누군가의 죽음도 모른 채 보낸 시절의 상흔처럼.
“교수님 뜻을 저희가 헤아리지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교정지를 직접 보며 말씀 나누면 좋을 것 같은데요. 저기, 남궁 디자이너!”
나는 일어나서 휘발유……를 불렀다. 회의실 밖 자기 자리에 앉아 헤드폰을 쓰고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재깍 알아듣고 일어났다.
‘교정지!’
내가 입 모양으로 말하자 디자이너가 책상 서랍에서 원고를 추려 들고 왔다. 교정지에는 해란씨 글씨보다 조중균씨 특유의 조그마한 초파리체가 더 자주 등장했다. 아까 이메일에서 본 별절사법이 뭔가 했더니 ‘과녁을 마주보며 쏘는 활쏘기법’이었다. 교수는 남궁 디자이너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좌파 명함도 우파 명함도 내밀지 않았다.
“지금 수정중이라…… 어느 페이지가 문제인가요, 교수님.”
“일체!”
책에는 꽤 많은 과녁이 등장했고 인쇄 상태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사무실 프린터로 출력하다보면 토너가 떨어져 흔히 흰 줄이 가는데 그런 조각만한 데이터의 손실도 없었다. 아주 또렷하고 뚜렷했다.
“흑백 과녁이 어? 세상에 어딨냐는 말이야. 이 사람들아. 여기 보라고.”
국궁은 확고했다. 그러다 안 되겠는지 남궁 디자이너까지 끌어들였다.
“디자이너! 이 두발이 옛날 존 레넌 스타일이시네. 자네, 말해보라고. 세상에 과녁 색이 이래서 되겠어?”
“2도라서 그런 건데요.”
휘발유가 답했다. 그의 말에는 틀린 게 없었다. 검정 잉크만 쓰면 1도, 색 하나를 지정해 같이 쓰면 2도.
“2도건 3도건, 필요없고 결론적으로 약(約)하자면 국궁 과녁판은 컬러로 내시오.”
컬러라면 CMYK, 싸이언(Cyan) 마젠타(Magenta) 옐로(Yellow) 키(Key), 네 가지 색을 혼합한 인쇄. 그러면 단가가 두 배 넘게 올라갔다. 원고량이 적어 양장 제본을 하지 않으면 책 꼴이 나지를 않는데 그러면 제작비가 대체 얼마인가. 국궁인 수가 대한민국에 얼마나 되고, 이 책이 독자들의 지갑을 얼마나 열게 할지는 모르겠으나 가장 민감한 부분이라 편집부 선에서 결정하고 말고의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사실을 말할 수 없는 우리는 국궁 과녁판에 대한 많은 얘기를 묵묵히 또 듣기 시작했다. 활시위 한 번 당겨본 적 없는데도 활터에 나가면 당장 뭐라도 쏘아 떨어뜨릴 수 있을 듯한 느낌이었다. 컬러여야 한다는 국궁 교수와 제작비 때문에 컬러로 찍을 수 없는 우리가 대화를 무가치하게 이어갈 즈음, 파티션 위로 머리들이 속속 올라왔다. 점심시간이었다.
“자, 우리도 밥들 먹지.”
부장이 주위를 휘 둘러보며 말했다. 국궁 교수도 허기가 지는지 그러자고 응했다. 어디 식당을 예약해야 하나 알아보려는데 부장이 “저희 구내식당으로 모시겠습니다, 교수님” 하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맛집이거든요. 웬만한 아이돌 기획사 구내식당 못지않습니다.”
“어? 할말도 많은데 그러자고. 격식 차려서 어디 나가고 그런 거 나도 딱 질색이야. 가자고.”
정말 부장은 우리 식당 밥이 맛있는 걸까. 하긴 입맛은 다 다르니까. 그래도 저자를 구내식당에서 대접하다니. 출판밥 십이 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그 맛없는 점심을 먹으러 모두들 일어서는데 남궁 디자이너가 사무실에 남겠다고 했다. 인원수가 줄어드는 게 싫은지 부장은 어느 순간보다 정색하며 권했다. 입맛이 없어서 안 먹겠다는 사람에게 “그러니까 만날 병든 닭마냥 꾸벅꾸벅 졸죠. 밥을 드세요. 그래야 회사 일을 똑바로 하지” 하고 콕 찔렀다. 무언가 말을 하려다 남궁 디자이너는 순순히 따라왔다. 자주 존 건 사실이니까 거부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조중균씨!”
이번에는 부장이 조중균씨를 불렀다. 슬그머니 자기 자리로 돌아간 그는 이미 의자에 걸터앉은 채였다.
“저는 점심을 먹지 않습니다.”
조중균씨가 조용히 말했다. 국궁은 이미 사무실을 나가 창밖을 보면서, 회사 마당에 백송이 있네, 통의동에 가면 추사 김정희랑 같이 자라던 백송이 있었는데 노태우 때 태풍으로 쓰러져 지금은 밑동만 남고 말았네, 떠들고 있었다. 휘발유는 저 혼자 계단으로 흘러내려가고 해란씨만 듣고 있었다.
“저자 응대차 하는 식사는 업무지. 어른이 찾아왔는데 자기 입장만 생각할 거야?”
조중균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윽고 점퍼를 챙겨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