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궁은 내려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고 고집했다. 계단은 오를 때는 운동이 되지만 내려갈 때는 무리가 되기 때문이었다. 만원인 엘리베이터를 몇 대나 보낸 후에야 우리는 구내식당 ‘워스트’로 꼽히는 육개장을 놓고 앉았다.
“대구식인가?”
자기 앞에 놓인, 뭔가 허전한 인상을 지울 수 없는 음식을 내려다보며 그가 물었다. 고사리와 숙주는 기본이고, 때론 계란 노른자 고명까지 소담하게 놓이는 여타의 육개장과 달리 대파와 무 그리고 고기 몇 점이 들어 있었다. 대구식 육개장은 고기와 파, 무를 오래 끓여 나온 뭉근한 단맛이 고춧가루의 아린 맛을 감싸주는 음식이었다. 그 육개장에 대해서라면 글 한 편도 너끈히 쓸 수 있을 정도로 내 전문인데…… 이게 대구식이라니…… 달구벌 사람들이 아우성칠 판이었다.
“셰프가 경상도예요.”
부장이 말했다. 주방장 여사는 연변 출신이었다.
“뭘 잔뜩 넣어서 잡다하게 만드는 걸 싫어하죠.”
주방 사람들도 회사의 식당 운영 방식에 불만이 많았다. 언젠가 지나며 듣자니 주방장 여사는 이렇게 절약정신이 투철한 밥상은 처음 봤다고 냉소했다. “우리 마을에서는 이렇게 밥상을 내면 귀뺨을 맞아.” 그러자 같이 밥을 먹고 있던 조리사들이 후후 웃었다.
“일하느라 다들 썰썰한 속을 점심에 채워야 하는데 구경 뭔 수가 나야 말이지. 외부 업체에서도 조련찮아 다들 나간다 하지 않니?”
무말랭이를 씹으며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드는데 멀리 걸어오는 차이사가 보였다. 저자를 본 모양이었다. 하기는 나이 지긋한, 더구나 회장과 친분 있는 저자를 구내식당에 앉혀놓다니 누가 봐도 예의가 아니었다. 비록 국궁은 코를 연거푸 풀어가며 허기를 열심히 채우고 있고 주위에는 디자이너까지 배석했지만, 손에 쥔 수저의 인삼 무늬조차 부끄러워 몸을 배배 꼴 상황 아닌가.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영국에서 공부했으니 이를 간과할 리 없었다. 차이사는 백지 같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 가지런한 치열 사이로 약간 비틀려 올라간 송곳니가 드러났다.
“조중균씨!”
이사가 부른 사람은 부장이 아니라 조중균씨였다. 조중균씨는 숟가락을 든 채 차이사를 올려다보았다. 차이사는 테이블 위를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심상치 않았다.
“제가 그랬잖아요. 이럴 수 있을 거라고, 이렇게 될 거라고. 그럴 리는 없을 거라더니 몇 달도 안 돼 이게 무슨 일입니까?”
워낙 모호한 대명사가 많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뭐가 이럴 수 있고 뭐가 이렇게 되었으며 그럴 리 없을 줄 알았던 것이 어떤 일이란 말인가.
“아, 여기 저자도 계시니까 나중에 얘기하시죠.”
부장이 당황한 기색으로 차이사를 말렸다. 그제야 차이사를 의식한 국궁 교수가 땀에 젖은 안경다리를 닦으며 흘깃 바라보았다. 만면에 일정한 미소를 유지하는 차이사에게는 이제 보니 기묘한 ‘기계미’가 있었다. ‘기괴미’가 아니라 ‘기계미’. 조중균씨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무릎에 손을 올렸고 차이사와 눈을 맞췄다.
“앉아는 있었지만 먹지는 않았습니다.”
그러자 차이사는 검지를 기역자 모양으로 꺾어 식판을 가리켰다.
“앉아만 있었습니다.”
조중균씨가 다시 덧붙였다.
“이사님, 제가 다 설명드릴 테니까……”
부장이 아예 일어섰을 때 국궁 교수가 부장을 향해 몸을 틀더니 눈을 꿈벅꿈벅 하며 “누구야?” 하고 물었다. 얼마나 콧물을 닦았는지 코밑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 부장이 소개가 늦었다며 새로 부임하신 회계이사로 사장과는 사촌지간인데 영국 명문대에서 겨우 모셔왔고, 회사 신사업 성장을 이끌 차세대 브레인이라며 수선을 피우는데도 국궁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인데?”
좌파냐 우파냐를 따지는 명함 교환 절차도 없이 국궁은 물었다. 그러자 부장은 모든 걸 포기한 듯했다. 이제 더이상 ‘실드’를 쳐줄 수 없다. 조중균씨가 점심을 안 먹는 대가로 되받아가는 십삼만구천원도, 당신 책이 돈이 안 될 것이기 때문에 컬러로는 절대 찍을 수 없다는 사실도, 이 모든 일에는 돈, 돈, 돈 문제가 있다는 진실도 이제는 숨기기가 어려운 것이다. 일단 봇물이 터지자 부장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포효하는 한 마리의 거죽만 남은 호랑이, 아래로는 쇄신을 요구하는 후배들에게 치이고 위로는 하던 대로 하라는 임원들에게 눌려 결국 자기가 뭘 원하고 뭘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된 가엾은 영혼이 온 힘을 쥐어짜 속내를 발설하고 있었다. 풍자나 위악, 시대에 뒤떨어진 농담 따윈 싹 빼고 오로지 ‘진실’만 토로하고 있었다. 생소한 환경에 덜렁 놓여 자기 삶을 강제로 되돌아보게 된 심리상담소의 내담자처럼, 고해성사에 나선 원죄의 그리스도교 신자처럼. 그러다 조중균씨 점심 식대 문제로 자기가 회사와 중재를 나서야 했을 때 매사에 철두철미하신 차이사가 했던 우려도 전해졌다. 회사 인원만 해도 200명 가까이인데, 식대는 식대대로 받고 사람들 사이에 끼어 슬쩍 점심을 먹고 나가도 회사에서는 알 도리가 없지 않느냐는 지적이었다.
“제에길!”
고해실 저편에서 예상치 않은 대답이 들려왔다. 국궁 교수였다. 정말 화가 나 보였다. 그러게 제작비 때문에 국궁 과녁이 침침한 흑백이 되어야 한다면 가만히 있을 성격인가. 바닥을 긁어 육개장의 고기를 찾아내고 있던 한 직원이 놀라 국자를 떨어뜨렸고 주위 시선은 우리에게 꽂혔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국궁은 차이사를 향해 “지금 그래서 밥 먹지 말라고 여기까지 온 거야?” 하고 물었다. 얼굴은 벌건 육개장 국물 색을 닮아갔다.
“밥 먹지 말라고 온 거냐고, 어?”
“교수님, 처음 뵙네요.”
그렇게 말하며 차이사가 내미는 명함을 국궁이 밀쳐냈다. 그리고 “자네는 그 높은 자리에 떡하니 앉기 전, 이 회사의 창립 역정은 안 들여다봤나?” 하고 물었다. 유신 시절 회장은 금서로 지정된 책들을 유통시킨 죄로 감옥까지 갔다 온 전력이 있었다.
“고리끼! 니꼴라이 오스뜨롭스끼! 브레히뜨! 프란쯔 빠농! 님 웨일스! 칼 맑스! 그 고생이 다 무엇을 위해서였다고 생각하나?”
“제 대학원 졸업논문에도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가 주된 테마입니다.”
차이사는 공손하게 답했다. 교수는 마음에 들지 않는지 코를 팽 풀더니 고개를 아예 외로 돌렸다.
“나는 말이야, 유학까지 가서 한국 주제로 논문 쓴 사람들 안 쳐줘. 피상적 흥미에 기대는 편의주의랄까. 안 그래?”
그 말에 차이사는 잠깐 얼굴이 굳었다가 또다시 미소의 윤전기를 돌리며 “논문 자체는 회계학입니다만…… 그렇게 보시면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게 보이시겠지요”라고 응수했다.
우리는 다 식어버린 육개장을 들통에 버리고 밖으로 나왔다. 차이사 말마따나 그렇게 보면 그냥 그렇게 보이는 세상으로, 그래서 고민을 하다 하다 문제의 시초조차 점점 희미해져 방향을 잃고 마는 막막한 세상으로. 평소의 오수 시간이 되었는지 국궁 교수는 하품을 길게 했다. 좋은 신호였다.
“많이 번거롭습니까? 교수님.”
여태껏 제 의지로는 입을 뗀 적 없는 조중균씨가 국궁에게 물었다. 아까 화제에 오른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절차에 관한 질문이었다.
“당신, 받으려고?”
“아니요. 친구가 있습니다.”
“부류가 뭔데?”
조중균씨는 뭔가를 생각하다가 부장이 전화를 받으러 간 사이 답했다.
“사형수였다가 특사로 나왔습니다.”
“옥살이는 얼마나 했고?”
“십이 년.”
순간 국궁 교수는 두 눈을 꾹 감았다. 온전히 꽉 있는 힘을 다해 뭔가를 막아내듯. 햇빛이 눈부셔 그러는 것 같기도 했고 어떤 답을 줄까 고심하는 듯도 했다. 아니면 미팅 서두에 이미 한차례 분개했듯, 자기 희생을 증명하라는 행정 요구에 스러져간 수많은 영혼을 생각하는 듯도 했다.
“연락해요.”
국궁 교수는 그렇게 말하고 조중균씨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조중균씨는 알았다고 했지만 정말 연락할 표정은 아니었다.
“어이, 디자이너 우파야?”
허정허정 발걸음을 옮기던 교수가 휘발유에게 물었다. 내내 구경꾼처럼 있던 휘발유는 “정치에 관심 없는데요”라고 답했다.
“우파구먼.”
교수는 명함을 쥐여주고는 정문 밖으로 나가 마침 지나던 택시를 잡아탔다. 멀리서 부장이 통화를 잠시 멈추고 “교수님, 가십니까?” 하고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사무실로 들어가다 아까 국궁 교수가 가리켰던 백송을 올려다보았다. 거기에 정말 새 촉이 나 있었다. 아무것도 목적하지 않고 오직 허공을 겨냥하는 푸른 촉.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 꽃가루들이 공기의 힘으로 부양돼 날아가겠지. 그렇게 다 날려보내고 다음 계절을 덤덤히 맞는 나무들에게서 언젠가부터 위엄 같은 것이 느껴졌다. 십대 시절 판소리를 배울 때는 젊음은 짧으며 사는 것은 덧없고 청산만이 유구하다는 유의 가사들을 지겨워하기도 했는데, 이제 보니 그건 내가 나이듦을 자각할 수조차 없이 어렸다는 증거였다.
“특이한 이미지를 쓰시네.”
남궁 디자이너가 고개를 숙여 명함을 들여다보고 있자 해란씨가 어깨 너머로 건너봤다. 긴 미팅을 겪은 후폭풍―피로―이 해란씨 얼굴에 남아 있었다.
“나랑 같은 거네. 그거 판화예요.” 해란씨가 말했다.
“방금 나한테 다른 거 준다고 하시지 않았나?”
“맞아요, 우파 거 준다 그러셨는데.”
“근데 왜 이거지? 주먹 힘줄이 꼭 뭐에 긁힌 것 같다. 그쵸?”
“긁혔다면 뭐에 긁혔을까요?”
“뭐, 고양이한테?”
둘은 잠깐 키득거렸다. 웃음 포인트가 어딘지 몰라 나는 동조가 어려웠다.
“생각해봤는데 그 과녁, 방법은 있어요. 대수를 맞춰서 그 페이지만 컬러로 하면 되거든요.”
“그래요? 와, 디자이너님 천재구나. 근데요, 왜 점심을 안 드세요?”
“입맛이 없어요.”
“사람은 밥을 먹어야 됩니다. 살인의 칠십오 퍼센트가 공복에 일어나거든요.”
“진짜요?”
“가짜요.”
휘발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더니 “편집자님도 무척 긱하시네요” 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런 거 요즘 유행이잖아요.”
해란씨가 답하며 따라가다가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사장을 위시한 몇몇 사원이 백송 아래 탁구대를 놓고 경기중이었다. 2.7그램에 불과한 공을 서로에게 떠넘기기 위해 긴 랠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 다음주 연재는 한 주 쉬어갑니다.
5월 13일 수요일, 오후 3시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