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수업을 단가와 민요로 시작하고 판소리 다섯 바탕 중 씩씩하고 밝은 기운이 나는 대목부터 가르쳐주었다. 빠른 장단의 익살스러운 내용들이었다. 부자가 된 흥보 집에 낯짝 두껍게 놀러간 놀부가 금은보화 가득한 화초장을 얻어가는 대목은 정말 웃겼다. 혹시라도 금은보화를 빼고 보내줄까 그 무거운 장을 직접 이고 가며 똥을 지리고 화초장이라는 이름조차 외우지 못하면서도 그저 재물이라니 어떻게든 소유하려는 풍경. 미끄러운 시냇가를 간신히 건너며 놀부의 화초장은 초장화, 장화초가 되었다가 구들장, 된장, 간장, 고초장까지 되고 만다.
지금 생각하면 무서운 장면이었다.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맹목적으로 욕심을 내는 풍경 말이다. 하지만 또 생각하면 대담한 장면이었다. 그런 인간들을 희롱하고 피로와 긴장을 풀어버리려는, 일종의 윤리적 힘이니까. 사람들은 판소리의 작가가 미상이라고 하면 없다고 여기기 쉽지만 사실 정확히는 복수(複數)의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했다. 창작 주체는 없는 것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였다.
계면조(界面調)는 몇 개월이 지나 비로소 배웠다. 슬픔 때문이었다. 얼굴 전체에 나는 ‘눈물 금’을 보고도 소리할 수 있는 ‘힘’을 갖춰야 부를 수 있는 것이라고, 그 금을 더 깊숙이 파서 바윗돌 같은 ‘애통함’을 깨뜨리는 처절함이 필요하다고, 엄마는 말했다. 계면이라는 한자 자체에 듣는 이 얼굴에 금을 긋는다는 뜻이 들어 있었다.
나는 계면조 노래는 잘 못했지만 영도는 곧잘 칭찬받곤 했다. 그래서 배우까지 하는지 모르겠지만. 영도의 진정한 재능은 슬픔에 있을 텐데 맡는 배역들을 보면 대체로 분노에만 특화되어 있었다. 하기는 요즘 한국의 영상물들이 대개 그랬다. 분노와 사적인 복수가 대세였다. 하지만 복수는 복수를 낳고 그 복수는 다시 복수를 낳아 결국 분노에 대한 애착에 가까운 갈구로 이어질 텐데…… 앞에서 눈물짓는 저자를 보며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부장이 물었다.
“그래, 이차장 의견은 어떤가?”
미안하다며 울고 있는 저자 앞에서 계약금 내놓으라는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유책시에는 세 배를 물어야 해서, 백만원은 삼백만원이 되었고 회사에서는 그런 묵은 계약들을 청산해 경영 건전화를 꾀할 작정이었다. 결혼이나 이사 등으로 저자에게 큰돈이 필요해지면 선인세 명목으로 슬쩍 보태준다거나 글빚은 빚도 아니라며 하염없이 기다려주는 아량은 정말 과거의 미덕으로 사라질 모양이었다.
“아니, 우리가 왜 저자들 사정을 다 봐줘야 해요?”
언젠가 회의 시간에 차이사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불평했다.
“거, 글이라는 게 붕어빵 찍는 것도 아니고 안 나올 때는 영 변비처럼 어렵습니다.”
부장의 간곡한 비유에도 차이사는 문제 제기를 계속했다.
“영국에서는 자기 장례식이 제시간에 치러지지 않으면 시체도 못 참고 일어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신용이 중요하죠. 그간 회사 자금 운용을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해왔더라고요.”
적어도 그 회의에서 나는 차이사 편이었다. 언제까지 진상 저자들을 참아줘야 하는가. 가장 징징거리는 저자가 가장 대접받는다는 자조가 편집자들 사이에 돌 정도였다. 별말 없이 원고 주고 책 내는 1급수 저자는 예나 지금이나 멸종 위기였다. 하지만 아까 식당에서 본 차이사에게서는 회사 쇄신을 위한 노력이라고 이해하기에는 지나치게 차가운 어떤 것이 느껴지지 않았는가. 그리고 생각해보면 죽은 사람이 벌떡 일어났으면 좀비 아닌가. 좀비도 신용을 중시하는 나라에서 공부해 점심시간에 그렇게 차가웠나. 하지만 그렇게 깐깐하게 살아봐야 뭐할까, 결국 좀비인데.
“선배, 내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글을 쓰냐고요.”
국립국어원에서 연구자로 일한다는 국어학 박사는 내 쪽은 보지도 않고 대학 선배인 부장에게만 매달렸다. 현명한 대처였다. 나는 인내심의 대부분을 오전에 소진했으니까. 아무리 눈물 금이 주룩주룩 나도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선생님, 계약은 이미 팔 년이나 되었고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어려움들은 최근 것이라서요.”
그렇게 말하자 박사의 눈물은 더 흘러내렸다. 안타까운 일이기는 했다. 국정감사 시기 유관 기관들이 얼마나 피곤해지는지는 공무원 친구들을 통해 잘 알고 있었으니까. 국회위원들 보비위 때문에라도 웬만하면 웃대가리들이 나갔어야 했을 텐데 용역직 연구자가 증인으로 참석했다니. 어떻게든 떠넘겼겠지.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내려와 시시덕거리며 지껄인 말이 ‘날리면’이었는지, ‘바이든’이었는지에 대한 음성학적 판단. 촌극이 따로 없었지만 당하는 사람에게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결국 뭐라고 했어?”
안타까운지 부장도 한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기는 조중균씨 점심 식대를 어떻게든 해결해온 걸 보면 생각보다 부장은 인간미가 있는 편 같았다.
“날리면에 가깝다고 했죠.”
박사는 코를 팽 풀었다. 오늘 회사 티슈들이 열일하고 있었다.
“잘했어. 똥이 더러워서 피하는 건 아니지. 똑같아질까 피하는 거지.”
“생중계로 그게 나가고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휴대폰으로 욕설이 얼마나 오던지 내가…… 의사도 그렇게 생각하라더라고요. 지하철에서 주취자가 어깨를 치고 갔다 생각하라고, 그 주취자 붙들고 싸울 거냐고. 그렇게 흘려보내고 지나가는 거라고.”
사달을 일으킨 대통령이 소문난 주취자이기는 해서 나는 풋 웃고 말았다. 그리고 그게 트리거가 되었다.
“왜 웃으시는 거예요?”
박사의 얼굴이 와락 싸늘해졌다. 눈물 금이 끊기고 입가가 굳어가는 것이 보였다.
“네?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지금 저 보고 웃었잖아요. 선생님 눈에는 제가 한심해 보이죠? 돈 삼백이 없어서 여기 와서 이러고 있나 싶죠?”
박사의 급발진에 어질머리를 느꼈지만 이때 응수하면 가속페달을 밟는 격이었다.
“우리 이차장 그런 사람 아니야, 수경아.” 부장이 손을 내저으며 말렸다.
“아니에요?”
“응, 아니야.”
그러자 박사는 금세 성질을 죽였다.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었다.
“애가 고3이에요.”
“그래, 그 이야기는 했지.”
“이번 해만 지나면 저 쓸 수 있어요.”
“그렇겠지.”
부장이 덥다며 창문을 열었고 실내로 불어오는 바깥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들며 모두가 힘들다. 적어도 그 정도 합의는 되는 순간이었다. 부장은 허리춤에 손을 얹고 한참을 창가에 서 있었다. 나는 수첩을 넘기며 무언가 확인하는 체했다.
“죄송해요.”
박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리고 거울을 꺼내 얼굴을 잠깐 살폈다.
“아닙니다, 선생님. 죄송은요. 회사 일이라 재촉드릴 수밖에 없어서 저도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사과도 조심해야 했다. 상황에 대한 양해를 얻은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서였다. 하지만 여전한 나의 경계심과 달리 박사는 낮잠이라도 잘 것처럼 눈가가 츰츰해져 있었다.
“사는 게 재미가 없어.”
“네, 선생님, 아이가 고3이면 정말 힘들죠. 요즘 입시제도가 워낙 복잡하니까요.”
박사는 약간 코웃음 쳤다. 나를 향해서라기보다는 자기 인생이나 혹은 그걸 포함한 세상 모든 것을 겨누는 냉소 같았다.
“삼십대 중반이고 결혼 안 하셨죠?”
“네.”
“안 할 거예요?”
나는 뜸을 들였다. 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비혼주의자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주 듣는 질문이었다. 구부장 언니는 마흔만 넘으면 묻는 사람조차 없다며 웃곤 했다. 그런 인간사에 왜들 기한을 정해서 서로를 피곤하게 하는 걸까.
“하지 마요.”
“네?”
“결혼하지 말고 나중에 국정감사 같은 데 끌려가면 존심을 지켜요.”
“존심이요?”
나는 뭔 소린가 싶어 물었다.
“그건 누가 들어도 바이든이었어. 그걸 판단하는 데 나 정도의 사람까지 필요해?”
방금의 눈물 금 따위는 싹 메워버리고 박사는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마도 이것이 그가 소유하고 있는 ‘진짜’ 얼굴일 것 같았다.
길고 긴 하루에도 끝은 있어서 퇴근 시간이 왔고 나는 정류장에서 160번 버스를 기다렸다. 두 정거장쯤 가다 용케 자리가 났고 좌석에 앉은 후에야 휴대폰을 내내 꺼두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얼마나 험난한 하루였으면 휴대폰을 잊었을까. 전원을 켜자 광고와 알림, SNS 메시지 사이 ‘손택수’라는 이름이 떴다. 영도가 카카오톡에서 사용하는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