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메시지 창에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영상 하나가 떠 있었다

메시지 창에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영상 하나가 떠 있었다. 재생 버튼을 눌렀더니 영도의 얼굴이 보이고 노래가 시작됐다. 중학교 시절 우리가 한창 좋아하던 드라마 주제곡이었다. 노래방만 가면 불러젖히던 기억이 났다. 그 무렵 우리는 노래란 노래를 다 판소리 조로 불렀다. 통성을 크게 지르면 일단 노래방 점수가 잘 나오기도 했지만, 목청은 소리하는 데에만 써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어른들 짐작보다 아이들의 꿈이란 깊고 그것을 향한 집념도 강하다. 촛불처럼 미약해 보여도 그 시절을 밝히기에는 충분하다. 결과적으로 우리 다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때의 순도만은 지금도 부인할 수 없었다. 평조로 시작된 영도의 노래는 적당히 음을 떨고 짚으며 나아갔다.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지난 시절에도 우리는 서로를 최대한 깎아내리며 박하게 굴곤 했다. 좋아하는 사이인 것과 같은 꿈을 두고 경쟁하는 사이인 것은 열정의 톤이 비슷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서로에게서, 혹은 꿈으로부터 버려질까봐 두려워도 했다.

버스가 가다 서다 하며 서대문역 사거리를 지나 광화문 일민미술관과 종각과 종로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영상을 반복 재생했다. 열심히는 했지만 음이 자꾸 떨어지는 영도를 보며 오늘 처음으로 진짜웃음이 터져나왔다. 이럴 때면 내가 알던 영도처럼 느껴졌다. 전화를 걸어 나 오늘 아주 피곤해하고 말해도 상관없는 사이. 그런 대화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하루 동안 나를 누르던 긴장과 피로가 녹는 듯했다. 엉망인 하루였지. 엉망이라고 치부할 수조차 없이 엉망인 하루. 이게 엉망이 아니면 뭐가 엉망일까.

해가 지면서 도로 위 차량 사이사이로 빛무리들이 생겨났다. 안경을 벗고 보면 그것들은 마치 눈송이 같다. 빛으로 이루어진 눈꽃들. 그렇게 끝나가는 하루의 풍경을 바라보다 충동적으로 영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을 끝까지 다 들었지만 통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콜백이 온 건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도 한참 뒤였다.

여보세요?”

전화를 건 사람은 영도가 아니라 나이가 좀 든 듯한 여자였다. 여자는 누구시죠?”라고 물었고 나는 친구라고 답했다. 친구 누구냐는 말에 하는 수 없이 소리판 이름을 댔다.

, 판소리 선생님 따님이구나. 저 그때 인사드린 영도 엄마예요.”

영도는 엄마가 안 계시는데. 이상했다. 모친상 기사를 본 날이 뚜렷이 기억에 남아 있는데. 마감일이라 늦은 퇴근을 했고 성당으로 들어가 천원을 내고 촛불을 켰었다.

저 영도 소속사 대표예요.”

내가 말이 없자 여자가 신원을 똑바로 밝혔다. 하교하는 영도를 교문 밖에서 기다렸다가 캐스팅한 그 사람이겠구나. 2의 인생을 살게 해줬다는 의미로 스스로를 엄마라고 칭하는 건가.

지금 자리에 없는데, 오면 콜백 하라고 할게요!”

나는 메시지가 와서 걸었을 뿐이라고 그럴 필요는 없다고 했다. 괜히 감상적으로 굴었구나 싶은 따끔한 후회가 들었다.

…… 브이로그 찍은 거 봐달라고 보냈나봐. 영도가 워낙 완벽주의가 있어서. 아무래도 판소리하는 친구가 봐주면 낫잖아, 그렇죠?”

저는 판소리 안 하는데요.”

판소리를 안 해요? 발성이 너무 좋은데. 그럼 뭘 해요?”

직장 다녀요.”

어머, 말도 안 돼. 이런 목소리를 가져놓고는.”

대표는 정말 안타깝다는 듯 소리쳤다. 상대방에게 훅 들어가 휘저어놓고는 금세 흥미를 잃고 무관심해지는 유의 사람 같았다. 적어도 짧은 대화로는 그렇게 느껴졌다. 나는 더이상 할말이 없어 그러게요하며 전화를 끊었다.

영도가 속해 있는 세계 사람들은 접촉만으로도 사람을 묘하게 불편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지난번 소리판 촬영 현장에서도 비슷했는데, 가장 불편한 건 돌변한 영도의 모습을 보는 일이었다. 우리와 연습할 때는 연예인이라고 다를 바 없구나 느끼게 했던 사람이 자기 세계 속에 섞이자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여러 의미로 아주 뻣뻣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스태프들이 달라붙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만져대는 동안 걔는 아무 말도, 표정도 없었다. 휴대폰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삼선 트레이닝복을 입고 낡은 방석 위에 앉아 히죽히죽 웃던, 어느 비 오는 날에는 양이 이모가 권하는 막걸리를 받아 마시기도 하던 모습과는 영판 달라서 소리판 식구들은 어리둥절했다. 스태프들 모두 반사판이 되어 비추고 있는 영도가 도리어 인간으로서의 온기는 잃어가는 듯 보였다.

오빠, 스케줄 확인해보시겠어요?”

중간에 매니저가 들어왔다.

그냥 읽어.”

영도가 깍지 낀 양손으로 뒤통수를 받힌 채 의자에 기대며 답했다. 그 의자는 평소 연습실에는 있지도 않은 것이었다. 매니저는 어깨 위 카나리아처럼 붙어 영도 귓가에 다음 일정을 조곤조곤 읽어주었다. 포토그래퍼가 데려온 팀원들을 포함해 메이크업 스태프, 스타일리스트 들은 거의 다 여자였다. 다만 카메라를 가진 사람들은 다 남자였다. 스틸 사진이나 동영상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깨금발로 서서 자기 키만한 반사판을 들고 서 있는 어린 스태프와 촬영장에 선 영도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한복만 주야장천 입는 엄마를 둔 나조차 처음 보는 고급스러운 질감의 화려한 한복을 영도는 입고 있었다. 병색이 완연한 용왕의 얼굴도 홍안의 이도령으로 만들어놓을 듯 눈부시고 부귀가 좔좔 흐르는, 하지만 현실에서는 누구도 입을 것 같지 않은 개량에 개량에 개량을 더한 복장을.

위치 똑바로 안 해?”

포토그래퍼가 짜증을 내자 어린 스태프는 팔을 더 높이 들었다. 모자를 푹 눌러쓴 작은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영도가 동작을 바꿀 때마다 의상을 담당한 스태프가 달려와 주름과 각을 잡았다. 가만히 보니 촬영의 주인공은 영도도 아니고 옷 자체였다.

아가씨 팔 부러지겄네.”

구경하고 있던 양이 이모가 한마디했다. 이미지 하나를 위해 다른 모든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살풍경이보다 적확한 말이 있을까에 몰두해 있던 그들은 갑자기 우리 존재를 깨달은 듯 아연히 바라보았다.

영주야, 거 가서 사다리 즘 갖구 와라.”

이모가 시켜서 나가는데 지수 리가 미소 지으며 소리판 식구들에게 다가왔다. “여기 선생님도 판소리하세요?” 하고 묻자 이모는 저는 다 해요하고 답했다.

종합 예술인이시구나!”

지수 리는 박수까지 쳐가며 반가워했다.

아니, 나는 풍수, 사주, 소리, 전통주 제조, 그러니까 동양의 기예를 다 허는 사람이오.”

사다리는 이모네 냉장고 옆에 있었다. 들고 복도로 나오는데 반층 위 철제문이 잠깐 열렸다 닫히는 것이 보였다. 몇 년 전부터 누군가가 지낸다는 느낌은 있지만그것이 명패대로 한석구씨인지는 몰라도정작 얼굴을 마주친 적이 없는 터라 나는 재빨리 계단 위를 훑었다. 하지만 분명 열렸던 듯한 문은 감감이 닫혀 있었다. 하지만 서둘러 닫느라 그랬는지 문틈에 끈 같은 것이 끼여 있었다. 한복 바짓단을 묶는 대님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문 뒤에 서 있다는 말 아닌가. 나는 잠시 서서 이웃이 그 대님을 수습하러 다시 문을 열까 기다려봤지만 그는 나오지 않았다. 철제문을 사이에 둔 어색한 대치 끝에 하는 수 없이 나는 사다리를 가지고 연습실로 갔다.

그날 촬영은 엉뚱하게도 영도와 카즈하루의 대화 장면으로 끝났다. 물론 예정에는 없던 시나리오였다. 지수 리는 카즈하루가 판소리를 배우러 온 일본인이라는 사실에 큰 관심을 보이더니 영도가 카즈하루에게 한국말 가르쳐주는 장면을 찍고 싶어했다. 일본 아이돌인 미치에다 슌스케 닮았다는 소리를 여러 번 감탄하듯 하면서.

좋잖아? 그러면 한일 뭐 해서 인사이트도 있고.”

너무 빤해서 듣기도 전에 흥미를 잃을 것 같은 스토리였다. 하지만 지수 리를 둘러싼 스태프들 모두 좋다고 동의했다. 그 순간에도 영도는 별 의견이 없는 얼굴이었다.

영도 배우님이랑 해서 나가면 진짜 인급동감이에요.”

의상 팀장인 듯한 남자가 그렇게 쐐기를 박았다. 인급동은 인기 급상승 동영상의 준말이라고 했다. 단박에 엄마가 싫어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판소리로 시작해 방송계로 나간 소리판 식구들은 늘 있었다. 트로트로 전향해 이름을 얻기도 하고 외국인 강습생들은 한국을 좋아하는 특별한존재로 이런저런 매체에 불려다녔다. 엄마가 소리 말고 다른 건 안 했으면 헌다하고 충고하면 소리판에 점차 발길을 끊었다. 그래도 제지하지 못한 건 카즈하루가 흥미로워하며 응했기 때문이었다. 오사카의 재일동포 마을에서 자란 카즈하루는 그 동네 한국어 학원을 다니다 판소리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들었고 어학 연수를 핑계삼아 서울로 날아왔다.

자신 있는 거 하나 해봐요. 뭐 자신 있어요?”

카메라 앞에서 카즈하루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정고를 보며 뭘 할까요?” 하고 물었다. 내내 이 장면을 무던히 바라보고 있던 정고는 생각나는 게 없으면 담에 하고. 억지로 해불면 나중에 이불킥 안 하겄냐하고 에둘러 말렸다. 하지만 카즈하루는 그 말이 만류가 아니라 동의, 더 나아가 권유로 들린 모양이었다. 가만히 생각하더니 <만고강산>을 하겠다고 나섰다. 대체로 초보자들이 처음으로 완창하는 단가였다.

* 다음주 연재는 쉬어갑니다. 6월 3일 수요일, 오후 3시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