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회

정고는 상황을 다 받아들인 듯 덤덤한 얼굴로 북을 잡더니 “허이” 하고 시작 소리를 냈다

정고는 상황을 다 받아들인 듯 덤덤한 얼굴로 북을 잡더니 허이하고 시작 소리를 냈다. 두 다리를 접어 옆으로 빼고 첫 음을 땅 치자 지수 리가 잠깐만하더니 한복을 입으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정고는 흰색 티셔츠에 바지통이 넓은 개량한복 차림이었다. 매일 입는 소리판 출근복이었다.

고수는 그림자라 눈에 안 들어도 되고 그냥 살살 허시죠.”

말투는 느긋했지만 정고와 얘기해보면 이가 안 들어가겠구나 싶은 느낌을 받기 마련이었다. 등을 둥글게 말고 앉아 날름 들고 갈 밤송이처럼도 보이지만 수틀리면 따끔따끔하겠구나 싶은. 다행히 지수 리는 눈치가 빤해 알겠다며 물러섰고 촬영이 시작됐다. 카즈하루가 첫 소절을 부르는데 영도가 내 옆으로 와서 가사가 해석이 안 된다고 속삭였다. 나지막이. 어려선 기억력이 좋아 선생님들에게 녹음기라고 칭찬받았었는데, 그간 멀리 떠나 있기는 했구나 싶었다. “만고강산 유람헐 제하며 평조로 시작한 단가는 낮은 성음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며 중모리장단으로 흘러갔다.

 

전설에서나 볼 듯 황홀한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풍월(風月) 실어 금강산을 구경 가고

경포대 동쪽의 밝은 달을 바라보고

너무 아름다워 머물다보면 산속의 은자로 살고픈 고개는 얼른 넘고

봉오리와 절벽들이 겹겹의 부용꽃처럼 펼쳐진 장관이 눈에 들어오네

꺾이고 꺾여 한바탕 흐르는 폭포 물줄기는 은하수를 기울인 탓일까

잠든 구름은 흐리고, 맑은 안개에 잠겨 신선이 살 것처럼 신비로워

지난 일들이 오늘에야 새롭게 되살아나지 않아?

세상 모든 것은 완전히 바뀌고 만다고들 하지

우리 모두 (잎처럼) 시들고 (꽃들처럼) 져버리는 운명일 뿐이라고

그러면 버드나무 가지를 실로 삼아 서산에 지는 해를 묶어두면 어때

달에게 부탁해 동쪽 고개 계수나무에 머물러달라고 하면 어때.

 

영도는 단번에 내 설명을 외웠고 노래가 끝나자 카즈하루에게 설명해주었다. 이미 가사 뜻을 알 텐데도 처음 듣는 사람처럼 고개를 주억거리며 들었다. 저러면 우리 소리판이 뭐가 되나 싶기도 했다. 뜻도 알려주지 않고 가르친 셈이 되지 않나. 목도 제대로 풀지 못한 카즈하루의 노래는 듣기에 영 궂었다. 소리의 강약으로 풍경의 원근을 전달하는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았고 이면도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이면은 판소리 선생님들 모두 설명을 하다 하다 거시기 인자 알겄제라고 정리하는 개념으로, 소리의 핵심이었다. 음정을 정확히 내라거나, 가사를 잘 전달하라거나, 너름새가 좋아야 한다는 말로는 채 표현되지 않는 어떤 것’. 최선을 다해 이면을 잘 그려야 훌륭한 소리꾼이었다.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연기로 친다면 메소드 연기쯤 될까.

뭔 헷도깨비들이 놀다가 간 것 같지 않냐? 사람 혼을 싹 빼놓데. 그리고 청이 그렇게 주저앉은 걸 유튜브에 올리면 어떻게 해.”

촬영팀이 돌아가고 내가 툴툴대자 정고는 원래 소리가 그렇지 않냐하고 나를 달랬다. 대학에서 고명한 교수님들이 나와서 그 가사 틀렸다, 그 음 아니고 이거다, 참견하면 자기 스승은 오히려 잘 살아 있는 노래를 죽인다며 역정을 냈다고.

스승이 누구시라고 했지?”

북으로 전향한 뒤 정고가 누구에게 배웠는지를 정작 나는 몰랐다.

국악 하면서 스승 한 분 모시는 사람 봤어?”

하기는 엄마도 여러 스승에게 마디마디를 배웠다고 했다. <심청가>만 해도 눈 어둔 백발부친은 성선생님에게 배우고 따러간다 따러간다대목은 정선생님께 배우고 심청 임당수 나가는 대목은 또다른 선생에게 배워 완성했다고 했다. 마치 패치워크처럼. 아무튼 카즈하루도 촬영했다는 말은 엄마에게 하지 않기로 소리판 식구들끼리 약속했다. 정고는 선생님이 구신이신디, 언젠가는 아실 텐데하면서 찜찜해했지만.

 

집 앞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 하지 말라 한 콜백이 왔다. 받을까 말까 하다가 받지 않는 편이 뭔가 여지를 두는 행동 같아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잘 지냈어? 전화한 것 같아서.”

영도는 자기가 보낸 노래 영상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그새 잊은 건지 아니면 정말 여기저기 보내 특별히 물을 일도 아닌 건지 의아했다. 하지만 금세 영도에게 이런 면이 있었지 싶으면서 그 시절 우리의 관계가 좀더 정확히 떠올랐다. 눈앞에 영도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상하게 잊고 있었던 마음들. 어떤 무력감. 영도는 뭐랄까, 자기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강력한 거부가 있었다. 더 나아가 자기가 감정을 느끼는 존재라는 사실 자체가 버겁고 싫은 듯했다. 우울하다거나 사교성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얘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남들 감정에 거의 맞춰주었고 늘 나서서 도와주었다. 하지만 그 관심과 애정을 받은 사람이 뒤돌아 그 마음에 대해 짚으면, 그러니까 더 가까워지려 하면, 손을 씻는 수도의 물줄기나 거리를 죽 쓸고 나가는 밤바람처럼 관계에서 빠져나가버렸다. 갑자기 왜 영상을 보냈느냐고 물으면 그냥이라고 할 것이었다. ‘그렇게 한 이유가 뭐야라고 캐물으면 없는데?’ 하고 부정할 것이다. ‘그 노래는 우리가 좋았던 시절에 가장 사랑했던 노래잖아라고 하면 연락을 끊을지도 몰랐다. 그간 어떻게 변했는지 몰라도 내가 아는 선에서는 그랬다. 작고 불안한 것들의 행동이었다. 어린 시절 시냇가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궁금해서 다가왔다가 손을 내밀면 달아나버리고 다시 와서 내 주변을 헤엄치던 작은 송사리들처럼.

그래…… 엄마랑 통화 나눴다. 중딩 때도 안 받아본 부모님 전화를 다 받네.”

…… 어디야?”

집 앞.”

……

내가 지금 무지 피곤하거든.”

, 그래?”

영도는 당황했는지 말끝을 흐렸다.

……만 할 거면 인자 나 좀 쉬어야겠다. 내가 오늘 연타석 스리런 맞은 급으로 마음고생을 해갖고.”

그래그래. 언제 시간 내줄 수 있어?”

뭔 일로?”

딴 건 아니고 영비가 널 만나고 싶어해서.”

만날 수는 있지. 그런데 아직…… 외출 어려워해? 그러면 내가 가고 아니면 동네로 한번 데려와.”

우리는 그 노래 영상 따위는, 내게 전화를 걸게 했던 충동 따위는 없었던 것처럼 지우고 대화했다. 그게 뭐 대수인가, 노래는 그냥 노래일 뿐이고 세상에 노래는 차고 넘친다.

말해볼게.”

영도는 전화를 끊으며 비 온다는데 얼른 들어가라고 했다. 아주 가끔 떠올리곤 하던 영비의 얼굴이 선명해졌다. 어깻등이 툭 불거질 정도로 깡말랐던, 눈 코 입이 약간씩 비틀려 있던 아이. 가여운 아이였다. 누구네 집에나 가여운 아이 하나쯤은 있지, 생각하려 해도 가엾고 가여운 아이. 영도는 엄마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느꼈고 아버지에 대해서는 무신경하려 했다. 하지만 그 노력이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증오심의 다른 모습일 뿐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있는 것과 그런 아버지마저 없는 내 상황 중 뭐가 나은 건지 판단이 서지 않을 정도로 감정의 골은 깊었다.

증권사를 다녔던 영도 아버지는 조갈이 나는 듯한 성마른 얼굴로 늘 한 손에 신문을 들고 다녔다. 세상에 그렇게 여러 종류의 신문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영도 아버지를 통해 알았다. 그 아버지란 인간의 기벽은 영도와 사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무슨 결벽증이 있는지 영도가 외출했다 돌아오면 현관문에서 옷을 다 벗기고 바로 씻도록 시킨다는 거였다. 집안으로는 바깥의 먼지 하나, 흙 한 톨도 따라 들어올 수 없었다. 그건 불운을 뜻하니까.

영도가 어렸을 때는 아예 직접 씻겼고 중학생이 된 후로는 샤워를 완벽히 마쳤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영비가 외출을 거의 않는 것도 그런 일과 관련 있는 것 같았다. 아예 방문을 닫아걸고 학교도 나왔다 말았다 했다. 물리적 폭력의 흔적이나 욕설이 없는 아주 고요하고 괴이한 학대라고 생각했다. 영도네 집은 동네에서 가장 비싸고 번듯한 아파트였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으스스하고 기괴했다.

영도 엄마는 말이 거의 없는, 유령처럼 희미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늘 어떤 긴장에 몸을 관통당한 듯한 분위기였다. 높은 건물이 없어 여름이면 더 땡볕이 되는 동네를, 어딘가에 목덜미가 걸린 듯 꼿꼿이 걸어가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어느 날 우리는 버스에서 우연히 만나 어색하게 동석하기도 했다. 영도와 내 사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영도 엄마는 내색이 없었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손을 들어 막았고, 나더러도 얼굴이 타지 않게 가리라고 했다. 나는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얼굴을 가렸다. 그러자 영도 엄마와 나 사이에 커튼이 쳐진 듯 약간의 단절이 생겨났고 그것이 꽤 안정감을 주었다.

아줌마, 어디 가세요?” 나는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고속버스 타러 가.”

어디 멀리 가세요?”

, 잔치가 있어서 고향에.”

더 이을 말이 없어서 침묵을 보내는데, 영도 엄마가 아줌마네 고향은 아주 시골이야하고 덧붙였다.

내게 시골은 여름에 산공부를 가는 곳이었다. 나무 그늘이 무겁게 드리워지고 빗줄기가 내리꽂듯 쏟아지고 바위는 차갑고 각자 좋아하는 자리로 들어가 온종일 소리를 하다보면 문득 무섬증이 일기도 하는. 벌레도 듣고 산새도 듣고 고라니도, 다람쥐도, 돌멩이도 들을 내 소리는 한번 내지르고 나면 그냥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형태로든 남아 이 세미한 존재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일까 생각하게 만드는. 소리가 잘되면 잘되어서 눈물이 나고 안되면 안되어서 눈물이 나는 여름이었다.

얼마나 시골인데요?”

나는 좋아하는 애의 엄마이니까 말을 더 붙이고 싶었다. 좋아하는 애를 좋아할 수 있게 해준 사람이니까.

영도 엄마는 너무 컴컴해서 밤에 골목을 걸으면 바로 눈앞에 사람이 와도 모를 정도라고 설명해주었다. 부딪히고 나서야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상상조차 안 가는 어둠이었다. 산공부 장소도 그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인기척도 지워버리는 어둠이라니. 어둠이 짙어서 사람이 지워질 수도 있는 것일까. 발소리, 숨소리나 심지어 체취도 없는 상태로 만들 수 있나.

그러면 어떻게 걸어요?”

나는 겨우 질문을 생각해내 대화를 이었다.

생각이 재미있구나.” 영도 엄마는 약간 흥미가 인 듯 내 얼굴을 마주보았다.

담벼락을 짚으며 가면 되지.”

그 또한 재미있는 대답이었다. 영도의 모친상이 알려진 날, 뉴스를 클릭한 수많은 사람 중 한 사람으로 소식을 접했다. 성당으로 가서 촛불을 켠 것은 영도에 대한 의리도, 감상적인 마음도 아니었다. 어느 더운 여름날 영도 엄마와 함께 한강을 넘은 기억에 대한 애도일 뿐이었다.

 

* 본문 중 <만고강산>의 가사는 풀어 해석한 것이다.

* 본문 중 <만고강산>의 가사는 풀어 해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