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분위기는 좋지 않았지만 어쨌든 책 작업은 진행되었다. 해란씨는 회사의 제작비 절감 원칙과 국궁 저자의 요구를 절충해 어떻게 해서든 대수를 맞춰 과녁판을 컬러로 뽑기 위해 애썼다. 가끔 편집 과정이 대패질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해란씨가 무섭게 골몰하고 있는 『국궁』이 그랬다. 단어를 움직이고 문장을 늘이고 줄여 이 문단을 저 페이지로 밀고 당기다보면 대수가 맞춰져, 컬러 과녁은 일반적으로 ‘한 대’라 부르는 열여섯 페이지짜리 묶음의 끝마다 등장할 터였다. 교수가 소원하던 그대로. 흑백으로 인쇄한 대와 대 사이에 끼워지는 방식으로.
“대패질 열심히 했으니 저녁에 대패삼겹살이라도 먹으면 어때?”
이쯤이면 회식이 필요하겠다 싶어 권하자 해란씨는 좋다고 했다. 그리고 조중균씨와 휘발유도 같이하자고 제안했다. “원팀이잖아요”라며 검지손가락을 펴 보였다. 퇴근 후 우리는 소문 난 맛집으로 택시까지 타고 갔다. 상호명이 ‘행진’이었고 붉은 세로 글씨로 ‘삼겹살’ ‘막창’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뒷마당 야외석과 실내석이 있는데, 해란씨와 휘발유 둘 다 밖에 앉고 싶어했다. 휘발유는 옷에 냄새가 배는 것이 싫어서였고 해란씨는 저녁 하늘이 좋아서였다. 자리에 앉기 전 조중균씨는 백팩에서 담요를 꺼내 좌석에 판판하게 깔았다. 에어컨 바람을 막기 위해 들고 다니는 줄 알았더니 다용도인 모양이었다. 하긴 나도 플라스틱 의자가 부담스럽기는 했다. 경추, 요추 같은 척추질환은 웬만한 편집쟁이들은 다 앓는 고질병이니까.
“행진 노래 아세요?”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조중균씨가 물었다. 신기하게 해란씨와 휘발유 모두 알았다.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노래를 어떻게 알까 싶었더니 유튜브로 봤다고 했다.
“전인권 노래를 다 아네.”
메뉴판을 보며 중얼거렸더니 해란씨와 휘발유가 동시에 전인권 아니고 들국화라고 고쳐주었다. 사실 나는 그 가수를 좋아한다거나 잘 아는 건 아니었고 판소리를 하며 동굴에서 득음했다는 풍문 정도를 기억할 뿐이었다.
“내가 음악 베이스가 국악이다보니 들국화를 처음 들어보네.”
“국악이요? 와 신세계네요.” 휘발유가 앞치마를 매다가 소리쳤다.
“차장님 국악 하신 분이에요. 그냥 찐, 리얼, 국악 신동.” 해란씨가 추켜세웠다.
“아니야, 에이, 그 정도는 아니고……”
그러고 보니 해란씨는 어느새 나에 대해 꽤 알고 있었다. 말수가 적어 대체로 내가 떠들던 터라 그렇게 되었겠지만. 점심 메뉴로 삭막한 직장생활을 견디는 나는 해란씨와 함께 근처 맛집들을 순례했고, 그렇게 둘이서만 먹다보면 여름이 일상에 스미듯 자연스레 개인사를 나누기 마련이었다.
“어려서 그냥 작은 대회에서 상 좀 주워 들어오고 그랬죠.”
음식을 기다리는 잠깐 동안에도 조중균씨는 가게를 들락날락거렸다. 이제는 통화 상대가 궁금하지도 않았다. ‘형수’일 테니까. 회사 사람 전부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복도 끝에서 휴대폰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속삭이는 상대가 시동생의 회사생활을 망하게 하려는 형의 부인이 아니라 친구로 짐작되는 모씨라는 걸. 이 정도면 거의 원격조정 아닌가. 그 사람에게는 개인생활이란 게 없나 싶을 정도로 전화는 잦았다. 조중균씨가 소문처럼 이 출판사, 저 출판사 전전하다 여기로 흘러들었다면 그놈의 전화 때문일 듯했다.
“그 형수 선생님은 어떤 분이세요?”
레몬소주가 몇 순배 돌아가자 해란씨가 물었다. 그렇게 순하고 천진한 얼굴로 물으면 대답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신에 대해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종족들이니까. 아무리 회사 사람과는 거리를 두라는 둥 시절인연이라는 둥 하지만 하루 삼분의 일을 같이한다는 건 그렇게 깜깜이로 지낼 수 없는 관계였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자기 친구에 대해 물었을 뿐인데 조중균씨는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소주잔을 쥐고 빙글빙글 돌리며 한참을 생각했다. 전 여자친구에 대해 물어도 그렇게 뜸을 들이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우리 곁에는 고기 굽는 냄새와 사람들이 저마다 떠들어대는 소음, 막창 기름에서 피어오른 들척지근한 연기가 뒤엉켰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뭘 해 먹고사나. 나는 와글와글한 식당에 들어가 술만 마시면 더더욱 심해지는 고질병─연민─에 휩싸였다. 아무리 해도 고쳐지지 않는 나쁜 버릇 같은 것이었다. 그게 다 소리를 해불은 탓이지. 다른 것을 해불었어야 하는데. 내가 보낸 연민이 냉담한 거절이나 뒤통수 맞는 일로 되돌아올 때마다 구부장 언니는 그런 위로를 했다. 워낙에 배곯는 노래를 많이 하고 들어서 그러는 거라고.
“조중균 선생님, 첫 직장은 어디셨어요?”
나는 한 팔로 머리를 받치고 우리가 주문한 된장찌개가 끓어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지락 껍데기와 두부, 양파, 호박 위로 자글자글 거품이 생겨나고 있었다. 다른 테이블에서 벨을 눌러 대패삼겹 이 인분에 미나리까지 추가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무던히 무심하게 모두가 잘도 먹고 있구나 싶으면서 콧날이 시큰해졌다. 사람들이 모여 배를 채우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뭉근하게 만들었다.
“제 직장 얘기 한번 할까요?” 식당 전체로 퍼져나가는 내 멜랑콜리를 주방가위로 싹둑 끊어내듯 조중균씨가 입을 열었다.
미학과를 졸업한 조중균씨는 선배가 하던 이른바 ‘민족·민중 출판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선배네 부모가 하던 선술집 이층 한 칸을 사무실로 쓰는 조그마한 업체였다. 직원도 선배와 조중균씨 둘뿐이었다. 처음 맡은 책은 한 민중신학자의 원고로 만만치 않은 이론서였다. 대학 때 교양으로 종교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이해하는 데 곤란을 겪었을 법한 난이도였다. 저자 영입과 수금까지 맡고 있는 선배는 대개 외근중이었고 사무실에는 조중균씨만 남아 원고와 씨름했다. 그러다보면 점심시간이 되었고 그때부터 투쟁은 변질되었다.
멸치 국물을 우리는 구수하고 감칠맛 나는 냄새, 시금치나 콩나물을 무치는 참기름 냄새, 돼지고기나 닭 따위를 조리고 굽는 냄새와 각양각색의 전 냄새.
명문대를 나와 자기 가게 이층에 틀어박힌 아들을 좋아할 리 없던 선배 부모는 어떻게든 출판사가 망해 선배가 취직하기만 바랐으므로 조중균씨를 냉랭하게 대했다. 내려와 밥 한번 먹으라는 소리가 없었고, 비유적 의미이지만 조중균씨를 포함한 이놈의 출판사―오클로스라는 이름의―가 아사하기만을 바랐다. 선배 부모는 조중균씨를 ‘아들 주머니를 터는 좀도둑’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사실 조중균씨는 월급이 따로 없었다. 이따금 서점을 돌며 수금해 온 선배가 불쑥불쑥 쥐여주는 얼마가 월급이라면 월급이었다. 자취방 월세를 내고 나면 거의 빈손이 되는 사정이었지만 조중균씨는 돈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 출판사를 다닌다고 생각하지 않고 사회운동을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선배는 “세상 좋아지면 다시 얘기하자”라는 말로 미래를 약속했다.
그러나 진한 음식냄새가 올라오면 조중균씨의 내장은 아우성쳤고 그는 일종의 존재적 전이까지 느꼈다. 정신은 천상에서 아래층 주방으로 내려앉았다. 5구의 가스레인지가 쉿쉿 열을 가하는 가운데 멸치와 마늘, 고추장, 된장, 후추 같은 양념들이 세이렌의 유혹처럼 조중균씨의 영혼을 식당으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사무실을 나가 산책을 하기도 했으나 허기가 심한 날에는 혼곤한 가운데 주방으로 가 점심을 먹는 환상에 빠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