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회

강원도 속초 출신인 조중균씨는 온갖 생선들 사이에서 성장했고 밥상에도 그런 재료의 반찬들이 올라왔다

강원도 속초 출신인 조중균씨는 온갖 생선들 사이에서 성장했고 밥상에도 그런 재료의 반찬들이 올라왔다. 그가 어렸을 때 명태는 일 년 내내 제철이었다. 그 생선이 지금처럼 절멸할 줄은 마을 사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였다. 그때는 누구도 명태와 무관할 수 없었다. 작업장에서 명태를 할복하고 젓갈 공장에서 소금을 치고 통나무를 이은 덕장에 명태를 널었다. 동네 어디 한 점 노는 땅 없이 명태로 그득했다. 간유 공장에서 일했던 조중균씨네 엄마는 온종일 명태 내장 냄새를 맡고도 집에 돌아와 또 명태 반찬을 했다.

나 지겨워 안 먹을 테니 다른 반찬 있으면 달라.”

어린 조중균씨가 반찬 투정을 하면 함경도 피란민 출신의 어머니에게서 어선에 실려오는 명태 백 바리만한 욕설이 쏟아졌다. 너무 빨라 알아들을 수도 없고 그저 먹기 싫으면 말라는 뜻이구나 짐작할 수밖에 없는. 하지만 이층 후미진 사무실에서 음식냄새를 맡다보면 그 밥상이 그리워졌다. 막장으로 간한 밑 국물에 명태를 넣고 끓이는 장칼국수, 선착장에 앉아 한잔하는 어른들 옆에서 얻어먹던 구운 명태 눈알, 명태 애기름에 엄마가 튀겨주던 건빵…… 그러다 조중균씨는 어느 날 계단을 홀연히 내려가 식당으로 들어섰다. 선배의 모친은 그를 힐끔 보고도 알은척하지 않다가 행주로 테이블을 훔치며 홀에는 손님이 많으니 방으로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열두 자 고급 자개장이 꽉 들어찬 살림방이었다. 한참이 지나 미닫이문이 열리고 밥과 반찬이 들어왔다. 된장국과 밥, 깍두기, 마늘종볶음과 콩자반. 차갑기가 어린 시절 처마에 달리던 고드래미 같구나, 조중균씨는 그 간소한 밥상을 보며 생각했다.

청초호 인근에 살았던 조중균씨는 겨울을 그 다종다양한 고드름으로 기억했다. 굵기와 모양과 무늬가 다 다르고 맛 또한 다르던 그것. 통학하거나 시내에 나갈 때 이용하던 갯배에 고드름이 달리면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그저 궁금해서 먹어보곤 했다. 어떤 것에서는 소금기가 느껴졌고, 어떤 것은 비렸으며, 어떤 것의 맛은 놀랍게도 투명했다. 그런 칼칼한 바다 풍경에 빠져 있던 조중균씨가 식사를 시작했을 때 엄마, 나 밥 얼른 줘요하는 선배 목소리가 밖에서 들렸다.

어딜 또 가야 해?”

, 바로 나가려고.” 선배는 꽤 쾌활하게 답했다.

이층은 어떻게, 회사가 돌아가는 거냐, 어쩌는 거냐? 사람은 불러다놓고.”

걔는 신경 안 써도 돼요. 어차피 갈 데 있는 애도 아니고.”

그제야 조중균씨는 예비 아사자 목록에 올라 있던 것은 오직 자신뿐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태껏 선배가 식당을 드나들면서 점심 한번 같이 먹자고 부르지 않았다는 것을. 깍두기는 오래되어 물큰한 맛이 났다. 조중균씨 고향에서 이런 건 김치로 치지도 않았다. 명태 대가리나 아가미, 창자, 그도 없으면 도루묵 새끼라도 넣어 시원한 감칠맛을 내지 않고 밍밍하기만 한 서울 김치는 맛이 아주 얄팍했다. 선배가 그렇게 말해버렸으니 그 부모도 저 방에 그 오갈 데 없는 인간이 식사중이라는 말을 더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조중균씨는 매장의 선배가 제육볶음을 다 먹고 나갈 때까지 방안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갇혀 자개장의 붕어들만 들여다보다 이층으로 올라갔다.

 

조중균씨가 말을 마치고 나자 불판에는 대패삼겹살 여남은 점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매장 안 스피커에서는 시티 팝이 흘러나오고 야외 테이블 위로 한줄기 바람이 불어 상추 잎을 들췄다.

아후, 고용노동부에 신고 들어가야죠.”

휘발유가 조중균씨를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고용노동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일을 한다는 걸 휘발유가 모른다면 그는 운이 좋은 휘발유였다. 나는 삼겹살 기름에 절어 척척해진 파김치를 해작거렸다. 조중균씨 얘기는 너무 비극적이랄까, 속물적이랄까, 웃프달까, 이상한 말이지만 기분을 아주 파김치적으로 만들었다. 다 시어빠져 뻣뻣하고 쿰쿰해진 파김치 끝맛에서 느껴지는 씁쓸함. 그때 경찰차가 도로에 정차하더니 사람들이 한 무더기 내렸다. 한 명은 경찰 복장이었고 나머지는 사복 차림인데 걸음걸이와 덩치, 눈빛만으로도 형사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는지 뒷마당이 일순 조용해졌다.

“살벌하네.” 내가 한마디했다.
“형사들은 원래 저럽니다.” 조중균씨가 잔에 남은 술을 홀짝 마시며 답했다.
“원래 그런다고요? 무슨 일 있는 것 아니고요?”
해란씨가 담장 너머를 보려고 일어서다 테이블을 툭 쳤고 파김치 그릇이 내 바지 위로 엎어졌다.
기름기가 흰 바지를 타고 죽 흘렀다. 해란씨는 미안하다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괜찮다고 새 옷이 아니라고 손을 내저으며 자리를 정리했다. 냅킨으로 닦일 얼룩이 아니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계산대에 서 있는데 조중균씨가 다가와 셔츠 앞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돈이었다. 나머지 일행은 가게 밖에 나가 있었다.

이게 뭐예요?”

세탁비에 보태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신기해서 건네받았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구권이었기 때문이다. 만원짜리 구권은 신권보다 크고 넓적했다. 그래, 이게 만원이었지, 언제부턴가 만원권은 너무 푸릇해졌다. 포장 끈에 단정히 묶인 마트 푸성귀들 같은 새파란색 말고 이렇게 회색이 섞여 데친 우거지빛이 돌아야 만원이 만원짜리 같은데. 나는 취한 가운데에서도 회식비 십팔만 구천원을 정확히 확인하고 사인을 했다. 그리고 그 구권 두 장을 들여다보며 식당을 나섰다. 색상만이 아니라 지폐에 그려진 물체들도 달랐다. 천상열차분야지도, 혼천의, 천체망원경 같은 별 보는물건들로 구성된 신권과 달리 자격루 같은 실측용 실용 기계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뒷면에는 경회루 앞 연못이 텅 비게 그려져 어딘가 사람을 무상함에 빠지게 했다. 지폐를 돌려주고 헤어지려는데 해란씨와 휘발유가 입을 모아 하이볼을 마시러 가자고 했다. 요즘 친구들은 술에 뭘 섞는 걸 너무나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나는 단순한 알코올을 좋아하는 편이었고 넣어봤자 얼음 정도였지만 평소와 달리 메뉴 욕심을 내는 해란씨를 보며 잠자코 따랐다. 전화가 자꾸 울려대 갈등하는 듯하던 조중균씨는 전화를 받고는 여기 젊은 친구들이 내 얘기가 듣고 싶다고 하네하며 형수씨를 달랬다.

, 그 화분은 내가 치워놓은 거야. 고양이가 밟고 올랐는지 계단참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어서.”

드디어 휴대폰이 조중균씨를 놓아주었고 우리는 해란씨가 소개한 하이볼 맛집으로 걸어갔다. 휘발유는 잠깐 어디를 들렀다 오겠다고 했다. 철제 계단을 오르니 피규어와 온갖 인테리어 용품으로 가득찬 술집이 나타났다. 이름은 하이에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