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회

아니, 언제부터 여기 와 계셨던 거예요. 오늘 배우님 안 와요.

*

 

“아니, 언제부터 여기 와 계셨던 거예요. 오늘 배우님 안 와요.”

“저번에도 그러셨잖아요. 왔잖아요!”

“전번에는 나도 몰라서 그랬던 거고. 계단이 얼마나 찬데, 여그 엉덩이를 붙이고 오래 앉아 있으면 큰일나.”

침대에 뻗어 있는데 양이 이모와 누군가가 나누는 대화 소리가 들렸다. 달래보다가 다그치기도 하는 듯한 어조였다. 영도의 유튜브에 판소리 수업 영상이 풀리자 소리판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대체로는 팬이었지만 묵직한 카메라 장비나 액션캠을 단 기다란 봉을 들고 촬영하는 유튜버들도 있었다. 가끔은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모르겠는 이들도 보였는데, ‘윤석열 정부 결사 수호’ ‘종북·주사파 세력 척결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든 경우였다. 혜화역 근처에 늘상 있던 치들이 소리판 주변까지 진출한 건 체감되는 변화였다.

엄마는 이런 상황들에 대해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성격대로라면 한소리 나올 법했지만 언급 자체를 하지 않았다. 대신 커튼을 확 친 듯한 매정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나는 엄마가 가만있지는 않으리라 예상했다. 소리판을 두고 일어나는 소란들이니까. 어떨 때 보면 엄마는 그 나이대 한국 여자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지만 소리의 자장 안으로 들어오면 무섭게 변했다. 자긍심과 완전한 독립성을 넘어 타 세계에 대한 배척마저 느껴졌다.

양이 이모는 어린 내가 무대에 오른 엄마를 볼 때마다 그렇게 울었다고 알려주곤 했다. 처음에는 소리가 하도 처연하게 들려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는데 배꼽 빠지는 대목을 불러도 마찬가지였다고.

“그러던 애가 소리를 배운다니 참 희헌하다 싶었는데, 다행히 딴 길 찾아가더라. 선생님이야 섭섭해했지만 나는 잘됐다 생각하지.”

이모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건 무대 위의 엄마가 내가 아는 엄마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잠깐의 단절만으로도 아이는 엄마를 영영 잃은 듯한 공포를 느꼈을 거라는 걸, 내가 소리를 해보고 나서야 알았다.

“그 판이 이제 그냥 아사리판이다. 뭣 때문이냐. 전, 승, 지, 원, 금. 인, 간, 문, 화, 재. 스승님이랑 제자가 싸워쌓고 서로들 시샘에, 모함에, 더럽고 치사해서 그짝과 담 쌓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어. 평생 한 소리는 다 소용없고 별 볼 일 없이 초라한 늙은이로 소일하다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몰르는 명창 고수들도 부지기수고. 선생님도 무대에 안 서고 이렇게 소리 선생으로 만족할 사람이 아닌데 무슨 사연이 단단히 있는겨.”

엄마가 왜 무대에 서지 않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가르칠 때는 듣는 귀가 없으면 소리는 무용(無用)이라며 취미 삼아 배우러 온 사람들까지도 크고 작은 무대에 올렸지만 정작 자기 공연에는 무심했다. 엄마와 나는 ‘자기 일’이라고 할 만한 것에 대해 진지한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대학을 정할 때도 이직을 할 때도 상의하지 않았고 아마 결혼도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우리 사이에 큰 갈등은 없었지만 뭐랄까, 점도가 낮았다. 어떤 부모들에게는 자식이 전부라는데 엄마에게는 내가 이따금씩만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걸 아주 어렸을 때 알았다. 변학도가 아무리 패악을 부려도, 용왕이 제아무리 대신들을 풀어도, 놀부가 어거지로 흥부를 따라 해도 얻어낼 수 없는 어떤 것, 그런 걸 가진 사람들이 따로 있다는 걸. 그렇게 보면 춘향이도 토끼도 흥부도 모두 범속한 현실에 잡아먹히지 않는 특별한 존재들이었다. 그러면 나는…… 나는 어떤가? 어제 집에 돌아와 뭔가를 써재끼다 자기는 했는데……

술을 마시고 청승맞게 쏘다니느라 얻은, 눈꺼풀이 들어올려지지가 않는 피로감 속에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고민했다. 가끔 무섭게 각성돼 잠에 들 수 없는 날이 있었다. 그런 각성은 대체 뭘 위한 것일까. 마치 땅을 파헤치는 두더지나 청설모처럼 갈급해져 뭔가를 하지만 다음날이면 뭘 한 것이지 싶은 밤들. 지난밤 거의 숨결이 느껴질 듯하던 형상들이 별안간 다 헛것처럼 여겨지면서 자괴감에 휩쓸리는, 이게 다 누구지 싶은 아침. 패포는, 아델리나는, 난데없이 등장한 수로 관리인은, 세상에, 여덟 늙다리라니. 불성실한 신자여도 신자는 신자인지라 나는 패포처럼 성호를─마음으로─그었다.

가엾은 한 외주 편집자─구부장 언니─의 하소연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어느덧 중세 이탈리아의 복잡한 수로처럼 제멋대로 뻗어나가 있었다. 정신없이 타이핑을 하다 컴퓨터를 끄고 나면 수로 속에 완전히 잠겼다가 올라온 기분이 들었다. 소리를 배울 때 순간순간 들던 정신의 단락이 느껴졌다. 내가 없어지는 기분이랄까. 복도에서 실랑이를 끝낸 이모가 벨을 눌렀다. 나는 큰 이불을 걷듯 무겁게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들어온 이모는 내가 내민 물 한 잔을 달게 마셨다.

“야, 이제 외국인까지 보러 와. 글로벌이다, 글로벌.”

“누구를 보러? 가영도?”

이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외국인인데 한국말을 그렇게 잘하느냐고 묻자 이모는 약간 웃으며 “니 이모부보다 낫더라” 했다.

“그래도 입은 떼니께.”

손끝으로 찬기를 느끼며 나는 냉동실을 뒤적였다.

“우리집 냉장고에는 왜 만날 이렇게 먹을 것이 없지, 이모?”

거기에는 아주 오래된 유물처럼, 엄마가 지난 스승의 날에 받아둔 케이크와 홍삼엑기스 따위만 보관되어 있었다.

“요즘 내가 생각하는 게 있어, 영주야.”

“뭘 또 힘들게 생각하는데?”

“사랑.”

겨우 백설기 한 덩이를 찾아낸 나는 뭔 소린가 싶어 이모를 아연히 건너다보았다. 하기는 이모야말로 사랑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비혼주의를 한순간 집어치우고 여름 산 공부에서 만난 운명의 상대와 결혼했으니까. 어떻게 그 첩첩산중에서 남자를, 그것도 결혼할 남자를 만난다는 말인가. 차라리 강도를 만났다고 하는 편이 그럴듯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모는 거기서 나무하러 온 벌채업자를 만나 운명을 바꿨다. 이모의 소리를 들은 벌채업자가 홀린 듯 도끼를 내려놓고 다가왔던 것이다.

“그 배우를 본다고 을매나 많은 사람이 와쌓는지 오징어 다리맨치로 마음이 메말라가던 이모가 간만에 사랑을 다 생각혔네.”

“이모가 마음이 왜 말라? 이모부랑 그렇게 잘 지내면서.”

“겉만 봐서 남녀 사이는 모르는 것이다.”

“이모부가 이모를 을매나 위하는데 그래?”

“아니여, 그 사람한테는 딴게 있어서 나는 좀 외롭지.”

무슨 일이 정말 있나, 눈치를 살피는데 이어지는 설명은 이모부의 방랑벽에 관한 것이었다. 사주에 역마살과 지살이 있어서 그럴 줄은 알았지만 어떻게 한 달을 함께 있어보는 적 없이 전국을 돌아다니느냐고. 사주 풀이가 그렇게 나왔을 때 딱 그만두었어야 했는데 마음이 약해서 그러지를 못했다고. 그때 이모가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를 정작 이모 입을 통해 실감나게 들은 적이 있기에 나는 피식 웃었다. 짐을 싸들고 숙소로 쳐들어간 사람은 이모였다.

“그건 역마살이 아니라 이모, 직업상 나무를 찾아다녀야 하니까 그렇지. 그런 건 직업상의 애로사항, 좀 과장하자면 직업병 같은 거야.”

“내가 영주 너랑 그 뭐냐 그 청년이랑도 사주를 봤다.”

“누구?”

“누구긴 누구야 그 잘난 배우님. 연락하고 지내는 것 맞지?”

마침 어젯밤 영도가 보낸 메시지가 생각나서 뜨끔했지만 전혀 연락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이모는 정작 내 대답에는 귀기울이지 않는 것 같았다. 이모는 왜 이렇게 낭만적일까. 그 잘나가는 놈이 뭣하러 나랑 연애를, 더 나아가서 결혼이라는 미래를 꿈꾼단 말인가.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돌아온 옛 연인의 선택지가 되어버린 듯해 기분이 나빴지만 일단 얘기를 들었다.

“둘 사주가 나쁘지는 않은데 좀 애매혀.”

“사주를 보려면 영도 생년월일시를 알아야 허는데?”

“아, 그거.”

양이 이모가 뭔가를 숨기는 듯 쑥스럽게 웃었다. 걸리는 구석이 있을 때의 표정이었다. 이어진 설명이 놀라웠는데, 영도를 기다리는 팬들과 말을 섞다가 자연스레 이모의 직업이 밝혀졌고 그뒤로 그들이 ‘힐링우리문화센터’를 이용한다는 거였다.

“와서 뭘 하는데?”

“주로 사주를 보더라.”

양이 이모는 계면쩍어하며 보풀이 일어난 바지의 무릎 부분을 정리했다. 최근의 이 난리판 속에서 자기가 어떤 이득―가게의 매출―을 봤다는 사실이 미안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 사람들 통해서 영도 사주를 알았다고? 태어난 시까지 꿰고 있어? 광팬들이네.”

“광팬은 지랄발광 할 때 광 자니까 나쁜 말이겄고 덕후라고 한다던데?”

“덕후나 광팬이나…… 그럼 와서 궁합 같은 걸 보는 거구먼?” 나는 혼잣말로 크리피하네, 하고 중얼거렸다.

“그란 거면 이 이모가 사랑에 대해 생각하겄냐?”

이모는 이상하게 그 사람들 편을 들었다. 낭만주의자 이모답게 벌써 영도 팬들과 어떤 친밀감을 쌓은 모양이었다. 이모 표현에 따르면 사랑하는 사람들로서의 유대감. 그 친구들은 딱 하나, 영도의 미래만 궁금해한다고 했다. 영도에게 얼마나 좋은 일이 있을지, 영화가 잘될지, 해외 촬영이 많은데 물을 건너다니다 화를 입지는 않을지, 전체적으로 영도 사주에 부족한 기운은 무엇인지를. 가족도 아닌데 남의 사주를 본다는 것부터가 몹시 괴이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남을 걱정하며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자기 돈을 쓴다는 것, 더불어 이모가 거기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붙인다는 것까지.

“그 배우 사주라고는 말 안 하는데 이상하게 들어와서 대는 생년월일시가 똑같어. 아니 어떻게 이 사람들은 사주가 맨 똑같나 했더니 아니여, 자기 사주가 아닌 거야. 내가 정작 당신들 사주는 안 보느냐고 하니까 덕후들한테는 그게 그거라고 하더라고. ‘아(我)’ ‘타(他)’를 넘어서는 사랑의 세계라는 거야.”

“누가 그런 으리으리한 말을 해?”

“영심이가.”

“영심이라는 사람은 또 누군데?”

“팬클럽 총대인데 영원히 영도를 사랑하는 마음이라서 계정 명이 영심이래.”

나는 베어문 떡을 씹지도 못한 채 이모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단 나 자신과 남의 구분을 넘어섰다는 자부심부터가 낯설었다. 그런 사랑을 스크린 속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것도.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이모는 총대 영심과 이하 덕후들의 이모저모를 들려주며 편을 들었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았다.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다음날 출근해보니 조중균씨는 이미 나와 있었다.

“네.”

돋보기안경 너머로 잠깐 눈을 맞춘 조중균씨는 다시 교정지로 시선을 돌렸다. 자기 인생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놓은 사람치고는 너무 평소 그대로였다. 회식의 효력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무심한 태도였다. 나는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들을 확인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차이사가 전달한 초청장이었다. 호주 멜버른에서 열리는 도서전에 회사 대표로 다녀오라는 얘기였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 해외 출장을 보낸다는 건 인사 평가의 청신호라 기대가 됐다. 그다음 이메일은 성경 필사 일인자의 것으로, 바티칸까지 날아가서 구해온 고서적들을 보여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낙하산처럼 떨어져내린 이 원고도 국궁 못지않게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책이 일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는지 필사자가 원고를 무한 증식시키고 있었다. 이메일 몇 개를 처리했을 뿐인데 오전이 다 가버리고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 마침 메뉴가 해장에 딱 좋은 황탯국이어서 우리는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어제 너무 재밌었죠?”

시원한 면 원피스를 입은 해란씨 표정이 밝았다.

“좋았어? 내가 싫었다는 건 아니고.”

“그럼요, 남들이 회식하는 거 얼마나 부러웠다고요. 버젓하잖아요. 워낙 부스러기 경력으로만 살아서 벅차더라고요.”

그때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우리 앞을 지나쳐 갔다. 국장이었다. 서두르는 발걸음을 보니 배가 많이 고픈 모양이었다. 그리고 식당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던 이 공간의 정적을 느꼈다. 주방마저 고요해서 일하는 사람들 다 어디 가버렸나 싶었다. 침묵에 압도되어 우리도 대화를 끊고 배식대로 다가갔는데, 정수기 앞에 서 있는 조중균씨가 보였다. 뭘 하느라 서 있지? 누구를 기다리나? 생각하는데 해란씨가 놀랐는지 숨을 급하게 들이마시며 내 팔을 잡았다. 조중균씨는 그냥 서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A4 용지를 가슴 앞에 들고 있었다. 거기에는 ‘나는 밥을 먹지 않았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