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들판을 보았다. 들판을 볼 수 있다면, 이미 모든 것을 보았다. 갈라진 숲길에서 체룹이 오두막을 향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들판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체룹을 보게 만든다. 나를 보는 것은 들판을 보는 것과 같다고, 언젠가 체룹은 말했다. 읽고 있던 어느 책에서 그 문장을 발견했다고 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정확히 어떤 책인지는 기억해내지 못했다. 당시에 그는 너무 많은 책을 동시에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특정한 시기 동안 그는 더이상 시를 쓰지 않았고 친구들과의 교류를 끊었으며, 그 어떤 편지에도 답장하지 않았다고 했다. 누구나 그런 시기가 있다. 단지 수십 권의 책을 책상에 쌓아두고 그중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임의의 책의 임의의 페이지를 펼쳐, 제목이나 책의 내용 따위에는 관심도 두지 않고 한두 페이지 한두 줄, 혹은 겨우 한두 개의 단어만 읽은 다음 다시 덮어버리기를 반복했다고 했다. 그 무엇에도 오래 집중할 수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 읽은 것을 기억에 간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런 책은 아니었다. 목축이나 농업에 관한 책은 애초에 거의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나는 책을 읽을 때 들판을 바라봄에 대한 구절이 나타나면, 혹시 이 책을 체룹이 읽었던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읽은 책들은 들판을 바라봄에 대한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았다. (체룹이 읽었다고 믿는 책 또한 마찬가지라고 했다.) 단지, 주인공이 갑자기 들판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거기 들판이 나타난다. 그는 특별한 이유 없이 들판을 바라본다. 대개는 그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겉보기에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건 혹은 하나의 단순한 문장이라 해도, 그 안에는 내가 알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전 존재를 바쳐 웅크리고 있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어떤 사건은 거울의 뒤편에서만 일어나고, 열정과 슬픔을 숨긴 일생은 들판처럼 편평하기만 하다. 나는 창밖을 바라본다, 그러자 먼 들판을 가로질러 오두막을 향해 걸어오는 한 사람이 보였다. 나는 그의 모습을 알아보기 전부터 그가 체룹인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아주 멀리서 점처럼 작게 보였지만 나는 그가 체룹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준비중이던 아침식사를 잊은 채 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갔다. 체룹을 더 자세히 보기를 원했다. 혹은 내게 체룹의 모습으로 비치는 그 무엇, 들판에 눈이 내리기 직전 일어나곤 하는 선취된 비전과도 같은 형상을. 그는 혼자였고 양손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작은 손가방이나 신문조차 없었다. 모든 것이 아무런 설명을 요구하지 않을 만큼 그저 자연스러웠다. 아아, 체룹이 온다. 나는 그를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파헤쳐진 흙구덩이와 물웅덩이, 지표면에 드러난 뿌리와 얼음과 서리와 돌을 헤치며 걷느라 그가 다가오는 속도는 느렸다. 간혹 차가운 얼음 구덩이에 발이 빠지면, 그는 비틀거리며 양팔을 옆으로 뻗어 중심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느라 단추가 열린 외투 자락이 양옆으로 커다란 날개처럼 바람에 펄럭였다. 그건 마치 춤과 같았다. 그가 디디는 끈적한 진흙구덩이를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땅은 그것으로 둘러싸였다. 몸을 붙잡고 아래로 끌어당기는 차가운 흙이 있다. 실수로 구덩이에 한 발을 디딘다면, 그는 이미 절반쯤 땅속에 있다. 체룹, 하고 나는 큰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내 목구멍에서 나온 목소리는 내 귀를 거치지 않고 먼 들판으로 곧장 날아가버렸다. 그를 보는 것은 곧 들판을 보는 것과 같았다.
돌아온 체룹은 다정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거부하거나 증오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의 시선에는 감정이 없다. 평화와는 다른 종류의 거리감과 무감각이다. 아마도 그는 나를 잊은 지 오래일 것이다. 나를 떠나기 전, 그는 내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 행복이나 불행, 내 삶이나 고독에 대해서 관심이 없으며, 내가 죽는다고 해도 슬픔이나 연민 등 특별한 감정이 생길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심지어 내가 죽거나 비참해지기를 바라지조차 않는다고 했다. 나에 관한 그 무엇도 소망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아무것도 소망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말라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그는 말했다. 말라 죽은 나무에게 물을 주려고 시도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는 내게 상처를 입힐 의도는 없다고 했으나, 그렇다고 하여 자신의 말이 내게 정말로 상처가 되지 않는 건 아니라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떠나고 나는 살았다. 비참이나 굴욕, 고독, 슬픔, 불행은 그 반대의 것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움의 일부였다. 그래서 나는 웃을 수 있다. 놀랍게도, 밤새 눈물을 흘린 다음 샐러맨더의 눈으로 아직 소리 내어 웃을 수 있다. 나는 내 무릎에 고개를 깊이 파묻고 잠든 웃음의 머리를 사랑스럽게 쓰다듬는다. 나는 웃는다.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어떻게 우리는 서로를 바로 알아볼 수 있는 건지? 체룹은 식탁에 차려진 두 사람 분의 아침식사를 보았다. 그래서 내가 다른 누구와 함께 살고 있다고 여기는 눈치였다. 아니면 누군가를 아침식사에 초대했거나. 하지만 오늘의 아침식사는 그를 위한 것이 맞다고, 그의 표정을 읽은 내가 말했다. 나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정말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오늘 자신이 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느냐고 그가 놀라는 기색 없이 물었다. 심지어 오늘의 방문은 그 자신조차도 예상한 일이 아니며, 그럴 계획은 전혀 없었다고. 우리는 예전에 아주 가까운 사이였으나 지금은 아니다. 팔 년 혹은 구 년 동안 우리는 마치 서로에게 없는 사람처럼 살았다. 함께하는 아침식사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사이는 더이상 아니라는 의미다. 그가 떠난 뒤로 우리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한 번도 서로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체룹은 모자와 외투를 벗고 식탁에 앉았다. 그의 행동은 마치 집에 있는 듯 자연스럽고 익숙해 보였다. 그는 버터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습관처럼 식탁 위에 놓인 신문을 뒤적였다. 그러나 오늘 신문에는 그의 흥미를 끌 만한 내용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곧 신문을 옆으로 치웠다. 우리는 조용히 아침식사를 시작했다. 그는 뮌헨에서 밤 기차를 타고 왔다고 했다. 인근 도시의 공증인 사무실에 들러 서류에 서명을 하기 위해서라고. 수년 전부터 미루어오던 일인데 이제 더이상 지체할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했다. 그를 대신해 서명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에 역에 도착하여 곧장 공증인의 사무실로 갔으나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고 했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의 기억에 의하면 공증인과 이미 이른 새벽 시간에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공증인은 일상적인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그와의 일을 매듭짓고 싶어했다고. 너무 이른데다가 어쩌면 자신이 약속 날짜나 시간을 착각한 것일지도 몰랐으므로 그는 공증인에게 당장 전화하기를 망설였다. 그는 만 하루 이상 걸리는 장거리를 날짜변경선을 넘어 날아왔으므로 시간 개념이 희박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공증인과의 약속이 과연 오늘이 맞는지, 혹은 하루 전날이거나 하루 다음날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만약 공증인이 아직 잠자리에 있다면 굳이 전화를 걸어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어쩌면 약속 시간이나 날짜를 착각한 건 그가 아니라 공증인일지도 몰랐다. 혹은 그와의 약속 자체를 잊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그는 공증인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당연히 공증인의 얼굴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외국에서 살고 있었고 한 번도 고향을 방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외국으로 떠나 거기서 정착했다는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너무 오래되어 누구로부터 들었는지는 잊어버리고 말았다고. 어쨌든 그의 부재 기간 동안 일을 대리해주던 나이 많은 공증인은 은퇴를 했고 얼마 전 젊은 후임자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고, 그는 내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계속해서 말했다. 그동안은 그의 편의를 위해 은퇴한 전 공증인이 많은 일을 약식으로 처리해주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공증인과 새로운 위임 계약서를 작성해야만 했다. 또 공증인은 이전 공증인이 그에게 구두로 위임받아 처리한 서류에 몇몇 불충분한 점이 있다고 했고 그걸 확실하게 바로잡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그는 말을 도중에 멈추고 잠시 뒤에 계속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이곳으로 와야만 했다고. 그의 어조는 자신의 고향 방문이 전혀 자발적인 의사가 아닐뿐더러, 내키지 않는 불편과 부담이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원래는 아무런 다른 계획은 없었다고 했다. 공증인 사무실에 잠시 들러 필요한 일을 최대한 빨리 마친 후 곧장 다음 기차를 타고 뮌헨으로 되돌아가 가장 빨리 출발하는 비행기를 탈 생각이었다고. 하지만 공증인이 전화를 받지 않자 그는 갑자기 뭘 해야 할지 몰랐다고 했다. 그러다 문득,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사무실 앞에서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가까운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만나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자신의 어머니를 말하는 것이다. 애초에 이곳에 올 때는 어머니를 만나겠다는 생각까지는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처럼 이른 시간에 요양원 방문이 가능한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가 옛날에도 요양원 방문하기를 매우 꺼려했던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오래전부터 치매를 앓아온 어머니가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할 것이고, 또 이제는 나이가 무척 많아서 어쩌면 더이상 살아 있지 않을 수 있겠다고도 그는 생각했다. 그제서야 나도 기억이 났는데, 그의 어머니인 M 부인은 얼마 전에 백 살 생일을 맞았다. 그건 지방 소도시에서는 자그마한 사건이었고 지역신문에 실리기까지 했다. 나는 신문을 거의 읽지 않지만 우연한 기회에 그 기사를 보았던 것이다. 도시의 시장이 요양원으로 와 생일 파티에 참석했고 그의 어머니에게 꽃다발과 초콜릿 한 상자를 선물했다는 기사를 지역신문에서 읽었다고 나는 체룹에게 말했다. 그래 맞아, 그녀의 침대 곁에는 생일에 선물로 받은 크고 작은 초콜릿 상자가 아직도 가득 쌓여 있었어, 하고 그는 말했다. 정작 어머니 자신은 초콜릿을 먹지 않는데도. 요양원 로비 게시판의 입소자 명단에는 놀랍게도 어머니의 이름이 적힌 명패가 여전히 걸려 있었다고 했다. 아주 오래된 상태 그대로, 잉크가 절반쯤 지워져서 그 이름을 애초에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이긴 했지만. 뿐만 아니라 그는 이처럼 이른 시간에 그 어떤 절차도 없이 방문객이 요양원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놀랍게 느꼈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수십 년 만에 만난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기도 했고 그의 모습이 많이 변한데다가 치매를 잃고 있으니 이상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로 어머니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어머니에게 오늘은 기분이 좀 어떠냐고 물었다. 마치 지난주에 들렀던 것처럼, 지난 수십 년 동안 항상 주말마다 방문해왔던 아들처럼 말이다. 침대에서 베개를 등에 받치고 앉은 어머니는 아무 대답도 없이 속눈썹이 모두 빠져버린 충혈된 눈을 커다랗게 뜬 채 창밖의 적십자 표시만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고 했다. 원래도 자그마한 편이던 어머니의 몸집은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고, 그래서 상체가 거의 그의 양손 안에 담길 정도였으며 뒷목과 등은 구부정하게 휘어서 커다란 혹을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침대 발치에 앉은 그는 무심결에라도 이불을 들춰 어머니의 몸이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했는데, 어머니의 기저귀나 무섭도록 앙상한 다리를 보고 충격을 받을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변한 것만큼이나 어머니도 변했다. 만약 길에서 우연히 어머니와 마주쳤더라면 당장 알아보지 못했을 거라고 그는 털어놓았다. 물론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그를 알아보지 못할 테지만. 나쁘지 않아, 하고 말하며 그는 공증인을 생각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요양원을 나가서 공증인에게 전화해보자, 오늘따라 늦잠을 자는 거겠지, 젊은이들은 잠이 항상 모자랄 테니까, 어쨌든 나쁘지 않아, 적어도 최악으로 나쁜 건 아니지, 인생 전체를 통틀어본다면 그 무엇도 가장 나쁘지는 않아, 더구나 오늘 아침은 더더욱 아니고. 잠시 후 아침식사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간병인들의 명랑한 목소리가 복도를 지나갔고 다시 정적이 흘렀다고 했다. 왜 그들은 아침식사를 곧장 어머니 방으로 가져다주지 않는 걸까, 하고 그는 잠시 의아하게 생각했다. 아마도 이번주 중으로, 적어도 주말이 되기 전에는 눈이 내릴 것 같다고, 그는 잠시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그 말에 동의하는 의미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살게 된 이후로 늘 그러듯, 나는 매년 이즈음에는 눈을 기다리고 있노라고. 눈은 죽은 자들의 귀환을 더 쉽게 만들어준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놀라운 사실은 아니지만 어머니는 그가 누구인지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고, 그는 내 말은 신경쓰지 않은 채 계속해서 말했다. 아니 그가 방에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했다고. 그의 생각에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머니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어머니 자신이 언제 죽는가 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더 나아가 이미 어머니는 나이가 점점 들면서 아마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이제 어머니는 죽기 위해서 반드시 죽어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종종 죽은 이들을 실제로 만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살아 있는 이들과 죽은 이들을 혼동하며, 살아 있는 이에게서 죽은 이를 보거나 혹은 그 반대도 가능하며, 심지어는 죽은 이들을 자유롭게 불러오는 능력을 갖춘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럴 때 잠시나마 어머니의 눈빛이 선명해지며 정신이 또렷하게 깨어나는 듯하다고, 하지만 어머니의 내면에서 말없이 일어나는 일들, 그것을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치매를 앓게 된 이후 그녀는 오직 내면의 삶을 살고, 매일 밤 내면의 땅에 묻히는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가 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고 착각했으나, 곧 그건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것임이 밝혀졌다.) 잠시 후 그는 떠나려고 했다. 침묵 속에서 언제까지나 어머니와 단둘이 앉아 있을 수는 없었고 또 이제 공증인에게 다시 전화를 해봐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머니는 곧 아침식사 식당으로 갈 것이다. 혹은 어머니가 이동이 불편하다면 간병인들이 방으로 직접 식사를 가져다줄 것이다. 그는 진심으로 그러기를 바랐다. 그는 어머니가 잘 지내는 듯해서 마음이 놓인다고 말한 후 일어서서 외투를 입었다고 했다. 그때 한마디 말도 없던 어머니가 갑자기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다짜고짜 사냥꾼은 언제 오느냐고 물었다. 사냥꾼이라니 무슨 사냥꾼. 어머니의 먼 친척 중 한 명이 사냥꾼이었다는 사실이 기억나긴 했으나 그는 죽은 지 적어도 오십 년은 지나지 않았는가. 그 사냥꾼 삼촌을 말하는 것인지. 그러나 어머니는 그의 질문은 무시한 채 계속해서 말했다. 저녁에 사냥꾼이 와서 이런저런 외설적인 소문을 떠들기 전에 아이들을 침실로 올려보내야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를 닦는 걸 잊었을 게 분명하다고. 어머니에게 아이들이란 그와 그의 형과 누이를 의미했다. 그런데 소문이라니. 그제야 그는 어머니가 오래전 옥수수밭 사건을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고 했다. 사냥꾼은 한 농부가 한여름의 옥수수밭에서 애인과 정사를 나누는 광경을 우연히 목격했다. 그런데 농부와 함께 있는 애인은 다름 아닌 농부의 동생 아내였다. 사냥꾼 삼촌은 그 일을 소문냈고 결국 하루가 지나지 않아 마을 사람 전체가 다 알게 되었다. 농부와 그 동생, 그리고 동생의 아내 사이에 그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어린 그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적어도 오십 년도 훨씬 지난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데 어머니는 마치 어제 일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옥수수밭 정사 사건은 그동안 인근에서 일어난 몇몇 살인사건, 시장과 도서관 여자 사서의 스캔들, 농가의 연쇄 방화 사건을 포함하여, 그보다 더 오십 년 전에 갈라진 숲길에서 늑대가 유아차에 실린 갓난아기를 물고 가버린 이후 그 지역 최대의 화젯거리 중 하나였다고 했다. 그래서 사냥꾼 삼촌을 비롯하여 이웃 농부와 그 동생의 아내 등 사건의 당사자들이 모두 죽은 지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그 일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냥꾼 삼촌은 죽은 지 오십 년은 되었잖아요” 하고 그는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의아한 듯 물었다. “그가 죽었다고?” 그는 그렇다고 했다. 어머니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혹시 내 어머니도 죽었는지?” 그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고 어머니는 약간 주저한 후 계속해서 물었다. “그럼 나는, 나도 죽었는지?” 그렇지 않다고 하면 어머니는 실망할 것이 분명했다. 그는 대답 없이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그럼 나는 지금 정화의 불 속에 있는 게 맞지?” 어머니는 연옥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차피 어머니는 남들이 뭐라고 하건 지금 자신이 불 속에서 정화되고 있는 중이라고 믿을 것이다. 오,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기에 정화의 과정이 이처럼 기나긴가, 마치 일생과도 같구나 마치 영원과도 같구나. 그는 작별인사를 했으나 어머니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느새 어머니는 턱을 가슴 쪽으로 깊숙이 끌어당긴 기묘한 자세로, 입을 반쯤 벌리고 눈을 감고서 앉은 채로 잠든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아마도 정말로 잠들어버린 것이리라. 그는 모자를 쓴 후 방을 나왔다. 복도는 냉랭하게 텅 비어 있었고 아침식사를 운반하는 간병인들의 웃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인기척 없는 복도에 서서 잠시 귀를 기울였으나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고 했다. 갑자기 어머니의 방문을 다시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상한 두려움 때문에 손잡이를 잡았던 손을 그냥 놓아버렸다. 어머니는 잠들어 있겠지, 공증인도 마찬가지고. 로비에서 그는 아마도 직원인 듯한 한 젊은 여자가 어머니의 명패를 걸레로 문질러 이름을 지우는 것을 목격했다고 했다. 그가 지나가지 않고 가만히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자니 젊은 여자는 조금 당황하며 의아한 시선을 그에게 보냈고, 그는 어머니의 이름을 지우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젊은 여자는 긴장을 풀고 웃으면서,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일도 아니에요, 오래된 잉크가 다 지워져서 이름을 새로 쓰려는 거랍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요양원 로비의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었으나 공증인은 여전히 받지 않더군.” 체룹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별다른 근심이나 초조함이 실려 있지 않아, 정말로 공증인과의 약속을 위해 그 먼 나라에서 일부러 찾아온 사람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채로 무작정 걸었다고 했다. 요양원의 숨막히는 공기를 벗어나 차갑고 신선한 밖으로 나오니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아지기는 했으므로 공증인과 연락이 되지 않는 문제쯤은 잠시 잊어버릴 수 있었다고 했다. 완전히 머릿속에서 사라졌다기보다는 마음을 억누를 만큼 괴롭고 심각한 문제로 느껴지지는 않았다는 의미라고. 작은 도시의 광장과 우체국, 은행과 카페는 그가 이곳을 완전히 떠났던 시절과 크게 변하지 않았다. 소방서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으나 버스 정류장은 사라졌다. 버스를 타는 사람이 줄어들어서겠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광장에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나뿐이던 종합병원은 문을 닫았지만 그 옆의 도서관은 과거와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이가 많은 누이와 함께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리곤 했다. 그는 도서관으로 들어가보려고 했으나 문 앞에 걸린 시간표에 따르면 월요일은 휴관이고 화요일은 오후가 되어서야 문을 연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날짜를 올바로 계산했다면, 불행하게도 하필이면 오늘이 바로 월요일 혹은 화요일이었다. 그는 광장의 동상이 마주 보이는 도서관 유리문 앞에 잠시 서 있었다. 흘러내릴 듯 무거운 납빛의 아침이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그의 누이는 결혼하여 진작에 대도시로 떠났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던 그의 형제는 몇 년 전에 죽었다. 그들 가족이 살던 물방앗간이 딸린 외딴 농가는 형제의 죽음 이후 부유한 치과의사에게 팔렸고 경작지는 이웃 농부에게 소작을 주었다. 원래 이 고장 출신이지만 젊은 시절에 도시로 이주한 치과의사는 수백 년 된 낡은 농가를 은둔자들에게 장기간 임대했다. 은둔자들은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은둔자들은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외부와의 접촉도 거의 없었으므로 그들에 대해서 알려진 사실은 없었다. 내가 사는 집은 원래는 농가에 속한 헛간을 개조한 여름 거주지였다. 여름 거주지는 농가 본채와는 좀 떨어진 저수지 가에 있다. 은둔자들의 영토 내에 거주하는 유일한 이방인인 나는 은둔자들의 유일한 이웃인 것은 맞지만 딱히 그들을 안다고 할 수는 없고 실제로 그들과 교류라고 부를 만한 관계는 없다고, 내가 말했다. 은둔자들은 나 역시 자신들과 마찬가지인 은둔자로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간혹 농가로 오는 우편물을 내게 전달해주거나 달걀이 든 바구니를 집 앞에 놓아두기도 한다. 이곳 시골 사람들이 은둔자들을 조금 기이하게 보는 건 사실이지만 그러나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그들은 모두 조용하고 평화로우며, 세상이 자신들을 가만히 놓아둔다면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나는 말했다. 따지고 보면 이 고장 사람들에게 은둔자들뿐 아니라 나 역시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체룹은 내 말에는 대꾸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고향에서 그가 아는 이들, 몇 안 되는 친구나 이웃들은 대부분 죽거나 병들었다고. 그의 어머니처럼 요양원에서 하루종일 적십자 표시만 바라보고 있든지, 그렇지 않으면 진작에 큰 도시로 떠나 그곳에서 죽었거나 혹은 배를 타고 더욱 먼 외국으로 떠나 영영 소식이 끊겼다고. 그의 삼촌 중 한 명은 오래전 바로 이 여름 거주지 옆 저수지에서 자살했고 다른 삼촌은 행방불명이 되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한겨울 스탈린그라드에서 전사한 삼촌도 있다. 하지만 가장 흔한 경우는, 집을 떠나 대도시의 농축된 밀도 속으로 빨려들어가 사라져버린 사람들이다. 세월이 흐르자 아무도 그들을 몰랐고, 바람결에라도 그들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생사조차도 불분명한, 오직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이름들이 된 것이다. 고향에 남은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바로 그런 하나의 예일지도 모른다고, 체룹은 고백하듯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는 마치 나를 보지 않는 듯, 나는 거기 없으며, 그래서 아무도 듣지 않는 독백에 몰두한 사람처럼 그렇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자신이 다녔던 학교를 떠올렸다고 했다. 혹은 교회, 혹은 빵집, 어린 시절 여자친구의 집, 축구장, 이발소와 양복점과 진료소. 그러나 그것들은 더이상 굳이 찾아보고 싶을 만큼 그리운 대상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랬다. 아주 멀리서 보듯이, 그는 이 모두를 아주 먼 곳에서 바라보았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겼다고 했다. 회계사와 결혼한 누이와는 수십 년 동안 연락 없이 살았다.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그렇게 되었다고. 아마도 그들이 살아가는 형태가 너무 달랐고, 나이를 먹을수록 그 차이는 점점 커져서 마침내 혈육의 가까움이 상쇄시킬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버렸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마도 그가 누이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그녀의 생일날 가족과 친구들이 모인 뮌헨 식당의 저녁식사 자리였을 것이다. 그날 누군가가 우연히 신문에 실린 사파티스타 해방군에 대한 기사를 화제에 올렸다. 덕분에 사람들의 주의가 체룹에게로 쏠렸다, 누이는 체룹이 시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탐탁지 않아했지만, 그보다 그가 일생 동안 우정을 나누고 있는 친구 존을 더더욱 싫어했다. 공허한 대안주의자인 그 친구와 얽히지 않았더라면 동생 체룹이 확연히 다른 생을, 정확히는 자신들과 같은 더욱 시민적인 생을 살 수 있었을 거라고 그녀는 믿었기 때문이다. 체룹은 당연히 존을 변호하려 했다. 누이와의 대화는 격하지 않았으나 그들은 감정이 상했다. 그는 이제 누이의 주소조차 모른다고 고백했다. 거주지를 자주 옮기며 살았던 탓에 누이와의 연락이 끊어져버렸고, 양쪽 모두 끊어진 그것을 굳이 다시 이어갈 수고를 할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누이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으며, 어린 시절 누이와 죽은 팔 강을 산책하고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일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던 일을 기억하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겼다. 그러다 갑자기 여름 거주지가 떠올랐다고 그는 말했다.
농가에 딸린 시설이지만 외따로 떨어져 저수지 옆에 있는 여름 거주지는 농가가 팔리면서 더불어 치과의사의 소유가 되었다. 그러나 요즘 같은 계절이라면 난방 문제 때문에 임대할 수가 없을 테니 비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치과의사가 과연 그 낡아빠진 별채 헛간까지 큰돈을 투자해서 수리했을까. 아니, 어쩌면 아예 철거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만약 여름 거주지가 그대로 있다면,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한번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고. 그의 가족이 농가에서 살 당시에도 여름 거주지는 말 그대로 여름에나 머무는 장소였다. 기숙학교에 다니던 그와 형제는 방학 때 집으로 돌아오면 늘 여름 거주지에서 지냈다. 두 형제는 저수지에서 수영을 하거나 커다란 포플러나무 아래서 하루종일 빈둥대곤 했다. 이웃 농가에서 가져온 우유를 끓여서 사과, 감자와 함께 먹었다. 화가가 꿈이었던 그의 형제는 하루종일 그림을 그렸고 주말이면 누이가 커피와 함께 바구니 가득 빵과 치즈를 담아 들고 그들을 방문했다. 당시 이미 학교를 졸업한 누이는 뮌헨의 회계사 사무실에서 보조 사무원으로 일하면서 주말이면 집으로 왔다. 그들 셋은 죽은 팔 강가로 산책을 갔다. 좁다란 강은 주변의 저지대를 범람하면서 또아리를 튼 뱀처럼 구불구불 흘렀다. 그들은 숲에서 송진과 이끼를 모아 여름 거주지 테라스를 꾸몄다. 그는 집안이 아닌 테라스에 잠자리를 만들어두고, 밤이면 모기장을 치고 잠을 잤다. 여름 거주지 내부는 두 형제가 자기에는 너무 좁기도 했고 또 그는 신선한 밤공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간혹 갈라진 숲길에 늑대가 나온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두렵지 않았다. 소문은 백 년 전부터 늘 있었고 그는 유아차에 실린 아기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번개가 치던 밤 그는 누렇게 번쩍이는 공 모양의 커다란 번개 덩어리가 열린 창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모기장 너머로 보았다고 했다. 잠시 뒤 번개 덩어리는 작게 일그러진 두 개의 형체가 되어 창밖으로 빠져나왔다. 그가 집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의 형제는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침대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다음날 아침 형제는 침대 위 벽이 그을린 것을 발견했다. 이제 침대는 그 자리에 없지만 그을린 벽은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체룹은 이 모든 것을 오래전부터 내게 말해주었으므로, 나는 마치 내가 직접 겪은 일처럼 그것들을 회상했다.
체룹은 오랜만에 저수지 옆의 여름 거주지를 한번 찾아가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쳐지나간 것일 뿐, 정말로 찾아가야겠다는 구체적인 바람까지는 결코 아니었다고 했다. 공증인을 만나러 올 때만 해도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을 뿐 아니라, 외국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여름 거주지는커녕 고향집 자체를 떠올린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고향집과 농장, 경작지는 모두 고향에 머무는 형제가 상속을 받았고, 또 형제가 죽은 후 거의 대부분이 외지인에게 팔린 지금에는 굳이 고향을 찾는 일이 별 의미가 없을 것이었다. 어차피 모든 것은 변했을 터이고, 아마도 높은 확률로 여름 거주지는 폐허가 되었거나 아니면 완전히 사라져버렸을 가능성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은둔자들에게 장기 임대한다는 농가 또한 더이상 과거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울 거라고 그는 믿었다. 과거 공증인이 언젠가 편지로 알려온 내용에 따르면, 은둔자들이 꽤 나이가 든 벤타이머 돼지 한 마리와 몇 마리 닭을 안마당에 풀어놓고 기르는 바람에 원래 수줍고 조심성 많은 동물인 늑대를 농가 가까이 끌어들이는 위험을 야기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숲에서 먹이를 구하기 어려운 겨울철에는 더욱 위험하다고. 그들이 기르는 브라마 종의 닭은 흰색과 검은색이 빛과 어둠처럼 섞인 종류인데 은둔자들은 엄격한 채식주의자이므로 돼지는 물론 닭들도 고기나 달걀을 먹기 위한 목적은 아니라고 공증인은 편지에 썼다. 또 은둔자들이 거주 첫해에 숲에서 희귀한 푸른 동전을 하나 발견했고 그것이 16세기 농민전쟁 당시 생산된 동전으로 밝혀졌다고, 그래서 그들은 큰돈을 벌었노라고 지금은 은퇴한 공증인은 주장했다고 했다. 어쩌면 은둔자들은 우리들 대부분보다 더 부유할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동전을 실제로 본 사람은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체룹은 말했다, 여름 거주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고. 시내에서 여름 거주지는 걸어서 한 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였다. 들판과 죽은 팔 강변의 습지초원 그리고 갈라진 숲길을 걷고 싶었기 때문에 택시를 부르지는 않았다고 했다. 아직 비교적 이른 아침이었고 들판의 안개는 완전히 걷히지 않았다. 밤사이 겨울을 알리는 비가 내렸고 숲 가장자리 땅은 차가운 진창과 엷은 얼음이 덮인 물구덩이로 변했다. 당연히 긴 산책을 하기에 적당한 날은 아니었다. 그는 축축하고 냉랭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숲을 가로질러가는 길을 선택했다. 숲에서. 그를 침입자로 인식한 어치가 가문비나무 위에서 큰 소리로 울었다. 그는 야생 멧돼지들이 뒹굴다 가버린 강가의 진창과 해마다 겨울이면 넓게 물이 고이는 습지대 초원, 무성한 나무딸기 가시덤불을 헤치면서 걸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땅에서 섬뜩한 냉기가 올라왔다. 농부가 막 갈아놓은 경작지를 지날 때 그의 발은 거의 발목까지 부드럽고 질퍽한 흙속으로 가라앉았고 얼음처럼 차고 끈적한 진흙이 신발에 두텁게 달라붙었다. 진흙은 그의 양말과 바지, 외투 자락까지도 엉망으로 만들었다. 들판용 장화가 있다면 좋을 텐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숲과 들판을 지나고 언덕을 넘어 산기슭의 겨울 거주지로 가는 동안 그는 단 한 명의 사람과도 마주치지 않았다고 했다.
잠시 말을 멈춘 그는 문득 생각난 듯 주머니에서 조그만 호박색 송진 덩이를 몇 개 꺼내 식탁 위에 놓았다. 가문비나무 숲에서 송진이 잔뜩 달라붙은 나무를 발견했다고, 나이프가 없었기 때문에 나무껍질 사이로 흘러나와 굳어진 송진 덩이를 기대만큼 많이 긁어모을 수는 없었다고 했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여름 거주지에 누군가가 살고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며, 왜냐하면 너무 오래되어 낡았기도 하고, 그것이 다른 사람도 아닌 나라고는 더더욱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그리고 그는, 정말로 궁금한 것을, 감정 없는 의아함을 드러내며 물었다.
그런데 메레, 너는 왜 떠나지 않았는지.
나는 가문비나무 송진을 아직도 흰 연기를 뿜고 있는 화로 속에 넣었다. 우리는 귀리죽을 먹고 버터차를 마셨다. 그의 찻잔이 비자 나는 화덕 위에서 끓고 있는 주전자를 가져와 뜨거운 버터차를 그의 찻잔에 채웠다. 왜 너는 아직도 여기에서 살고 있느냐고 그가 다시 물었다. 자신을 그토록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느냐고 그가 물었다. 메레 너는 당장이라도 떠나겠다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의 질문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기억나지 않는지, 네가 나를 이 오두막에 감금하고 떠나갔잖아” 하고 내가 대답했다. 감금이라니, 그는 흉측한 농담을 들은 듯 고개를 저었다. 그는 팔 년 전에, 아니 구 년이던가, 자신의 고향인 이 농가에 나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버린 일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혹은 잊은 척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나를 여기 감금했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그는 내게 되물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나를 떠나며 했던 모든 말을, 마치 아득히 긴 시간이 흐른 뒤에 되돌아온 산의 메아리처럼, 그에게 다시 들려주어야만 했다.
그는 내가 어디에도 가지 못하리라고 말했다고. 왜냐하면 여름 거주지는 내게 상징적인 감옥이 될 것이기에, 그래야만 하기에, 그것이 정당하므로. 그가 마치 낙원의 동쪽을 지키는 체루빔처럼, 불붙은 칼을 들고 오두막 동쪽 입구를 지키고 있을 테니까. (내 눈에서는 무거운 눈물이 흐른다, 샐러맨더의 눈.) 인간은 모든 희망에서 추방되고, 두 번 다시는 생명의 나무 아래로 다가가 서지 못할 것이라고, 그래야만 한다고, 그렇게 그가 말했다고. 나는 여기서 무한한 고통을 느끼거나, 혹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채로 살게 되리라고. 나는 말라 죽어갈 것이다. 혹은 번개가 내 머리 위로 떨어질 것이다. 그 어느 쪽이든 자신은 전혀 신경쓰지 않으며, 그것이 내게 내려지는 상징적이며 가장 합당한 벌이라고 말했다고. 크게 흥분하거나 격한 감정 없이 차분한 어조로 그가 내게 말했다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고, 그의 말은 단지 상징적일 뿐이어서, 그는 결코 폭력적인 성향이 아니니, 그가 의미한건 단지 상징적인 감옥이며 상징적인 고통의 집, 그리고 상징적인 불과 상징적인 검, 상징적인 감금일 뿐이니, 그러니 사실은 나는 이 쓰러져가는 낡은 집에 짐승처럼 결박된 신세가 아니라, 어제 그리고 내일과 마찬가지로 실제로는 아무것도 나를 구속하지도 감시하지도 않으니, 원한다면 내 발로 어디라도 갈 수 있었고 나도 잘 알고 있노라고. 큰 도시로 나가서 살거나 아니면 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고.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 번 다시는 생명의 나무 아래로 다가가 설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그의 말이 나를 실제로 이곳에 가두었고, 내 안에서 그 말을 명상하게 만들었으며, 그 이외의 다른 모든 말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했노라고. 그리하여 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가장 먼 이곳, 그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하며 나 역시 아무도 모르는 바로 여기에 있었고,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여기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체룹은 여전히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뭐라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도통 모르겠어, 하고 그는 짧고 건조하게 내뱉었다. 그의 표정은 내가 꿈을 꾼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혹은 완전히 다른 일과 착각하고 있거나. 그는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럴 리가 없어. 내가 그런 말을 했다니, 불가능한 일이야. 뭔가 엄청난 오해가 우리 사이에 있었음이 분명해.” 그는 몹시 혼란스러워진 표정으로 거의 더듬거리며 말했다. “나는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도대체 그렇게 말할 이유가 없잖아.” 나는 거의 웃음이 터져나올 뻔했으나 곧 그것을 억눌렀다. 웃음은 이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그가 처음부터 이곳을 찾을 생각으로 왔을 거라고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그는 나를 만나기 위해서 온 것이라고. 그러기 위해서 아마도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은 공증인과의 약속을 만들어냈을지도 몰랐다. 뿐만 아니라 나는 그가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완전히 확신한 건 아니지만 아주 근접한 미래에, 이번주나 다음주, 적어도 이번달 안에, 늦어도 눈이 내릴 때 까지는, (눈은 죽은 자들의 귀환을 더 쉽게 만들어준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혹시 빠르다면 오늘이나 내일, 그의 방문을 예견하고 있었노라고 했다. 하지만 체룹은 다시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그는 부정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믿도록 만든 사람은 바로 다름 아닌 그 자신이다.
놀라지 말아, 하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놀라지 말라고, 난 최근에 그와 마주치는 경험을 했다고. 그래서 조만간, 아마도 눈이 내릴 무렵에, 내일이나 혹은 빠르면 오늘, 혹은 아주 근접한 미래에, 늦어도 이번주 안으로, 나를 만나기 위해 올 것임을 알았다고 말했다. 뭐라고, 그럴 리가 없어. 그는 이번에는 좀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겨우 이틀 전에 멕시코를 떠나 어제 저녁 뮌헨에 도착했고, 곧장 밤 기차를 타고 오늘 새벽 인근 도시로 왔기 때문이다. 그가 팔 년 전, 아니 구 년이던가, 멕시코로 떠난 뒤로 첫 방문이었다. 그는 지난 팔 년 동안, 아니 구 년이던가, 단 한 번도, 내가 이 허물어져가는 집에 살게 된 이후로 단 한 번도, 이 고장은 물론이고 독일, 아니 유럽 자체를 찾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므로 내가 여기서 자신과 마주쳤다는 말은 절대로 사실일 리가 없고, 그야말로 꿈을 꾼 것이거나 착각일 거라고. 그래서 나는 체룹에게 설명해야 했다. 마주쳤다는 표현은 이 경우 조금 기이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그건 오직 나만이 인식 가능한, 그런 방식으로 마주쳤다는 의미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