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가 올 것임을 알았다. 얼마 전부터 그런 느낌을 갖고 있었다. 그를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보았지만, 그리고 그를 금세 알아보았지만, 아마도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변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울을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긴 세월이 흘렀고 내 외모가 변했다는 것을―그것도 상상 가능한 경계를 훨씬 너머 아주 많이―나는 잘 안다. 하지만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한 건 반드시 내 외모가 달라져서만은 아니다. 나는 그를 보았다. 그것도 겨우 몇 주일 전, 11월이 막 시작된 어느 날이다. 나는 시내의 우체국 앞에 서 있었다. 우체국 앞 신문 가판대 옆에는 청어 뼈 문양의 회색 외투와 검은 펠트 모자 차림의 남자가 내게 등을 보인 자세로 서서 한 손에 신문을 들고 읽고 있었다. 그가 우체국에 가는 길이었는지 아니면 우체국에서 나오는 길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우체국을 겸하는 잡화점 앞에서 우연히 멈추어 서서 그저 신문을 읽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예를 들자면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를 피하기 위해서. 그때 마침 정말로 광장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고요했고, 오직 돌이 깔린 포도 위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비좁았기에 남자와 나는 꽤 가까이 서 있었고, 그의 손에 들린 지방신문 기사의 사진과 제목이 내 눈에 들어왔다. 필요 이상으로 커다랗게 인쇄된 ‘100살을 맞은 M 부인’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남자의 시선이 고정된 것도 다름 아닌 M 부인의 기사였다. 사진에는 영문을 모르는 채 당황하고 어색해하는 꽤 나이든 여자가 아마도 요양원일 방에서 꽃다발을 받아들고 있었다. 그녀를 향해 허리를 숙이고 꽃다발을 건네는 사람은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 남자였다. 그의 뒤에서 제복 차림의 간병인들이 그녀를 대신하여 활짝 웃으며 손뼉을 치고 있었다. 아, 그녀가 100살이 되었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M 부인을 오래전에 실제로 한 번 본 적도 있으나 그녀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이미 당시에도 그녀는 사람을 기억하거나 알아보는 데 문제를 겪고 있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그녀의 병은, 일반적인 경우와는 좀 다르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잊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면서 오십 년 전 이웃집에 살던 사람 또렷이 기억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벌써 100살이나 되었구나. 내가 M 부인을 방문한 건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그때 이미 그녀는 시내의 요양원에서 살고 있었다. 그녀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디서 학교를 다니고 누구와 결혼했으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심지어 그녀의 이름이 뭔지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단지 그녀에게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그녀 역시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태어나 학교를 다녔는지 지금 어떤 계기로 자신을 찾아온 것인지 알지 못했고, 사실 그런 문제들은 더이상 그녀에게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 역시 나를 향해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손을 내밀었고 우리는 악수를 했다. 그녀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물었고 나는 그냥 머리에 당장 떠오른 대로 산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건 거짓도 아닌 것이, 그때 우리는 정말로 지난 며칠간 산속에서 머물렀었기 때문이다. 산이라고요, 그녀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 사촌 한 명도 삶의 대부분을 산에서 보냈답니다, 그는 사냥꾼이었거든요. 그는 내 결혼 선물로 직접 잡은 알프스 마멋 으로 만든 가죽 모자를 선물해주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는 그다지 행실이 좋지 못했고, 슬프게도 평온하지 못한 마지막을 맞았어요. 그러고는 M 부인은 차를 내오겠다며 방에 딸린 작은 주방으로 갔다. 위태로울 만큼 마르고 바람에도 흔들릴 듯 허약해 보이는 그녀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차를 내올 수 있을까 나는 걱정이 되었다. 그때 이미 그녀는 여든 살이 훨씬 넘은 나이였을 것이다. 잠시 후 M 부인은 차가 담긴 커다란 사기 주전자와 사기 찻잔을 쟁반에 담아 내왔는데, 그녀의 가느다란 두 팔이 지탱하기에는 찻잔과 주전자가 너무도 무거워 보였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나를 향해 다가왔다. 마치 정지한 화면처럼 느린 속도였다. 그녀를 돕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까? 나는 이곳으로 나를 데려온 장본인이자 M 부인의 가장 나이 어린 아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작은 소리로 체룹을 불렀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창가의 소파에 앉아 잡지를 뒤적이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놀랍게도 M 부인은 아들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체룹을 행실이 좋지 못한 사냥꾼 사촌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우리가 산에서 왔다고 해서 그렇게 짐작하는지도 몰랐다. 나는 다시 한번 더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잡지를 내렸다. 열린 창으로 들어온 파리 한 마리가 파리 잡는 끈끈이를 피해 그의 얼굴 앞을 가로질러 날았다. 우리는 모두 못박힌 듯 정지했다. 방안에서 오직 검은 파리만이 의지를 갖고 살아 있었다. M 부인은 아직도 나를 향해 간신히, 힘겹게,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그녀의 손에서 차가 가득 담긴 무거운 찻주전자가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기 전에, 나는 눈을 감았고, 기억하기를 멈추어야 했다. 그때의 M 부인은 100살이 되었고, 그녀의 아들인 남자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신문을 내리고 고개를 들었다. 비록 옆모습뿐이지만 나는 첫눈에 체룹을 알아보았다. 내 안에서 심장이 쿵 내려앉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 것 같았다. 비가 내렸고 어두침침한 대기엔 거무스름한 누런 빛이 고여 있었다. (이런 빛과 공기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 늙거나 병들어 보이는 법이다. 그리고 마치 다들 언젠가 어딘가에서 한번쯤 만났던 얼굴이라는 인상을 주기 쉬웠다.) 그는 늙었고,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적어도 스무 살은 더 나이들어 보였으므로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병들었을까? 안경 뒤에서 그의 눈동자가 회색 물방울처럼 번득였다. 죽은 물방울이었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 수도 있었겠지만 놀라움과 두려움이 너무 커서 당장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샐러맨더의 눈을 갖게 되었어.”) 그는 마침내 돌아온 것일까? 체룹, 하고 나는 작은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다. 그러나 내 입술이 열리기도 전에 그는 회색 외투가 비에 젖는 것을 개의치 않고, 서두르는 기색은 조금도 없이 광장 반대편을 향해 걸어가버렸다. 그가 사라진 후 나는 내가 마주친 사람이 정말로 체룹인지 아니면 그저 불안한 내 시각과 기이한 대기가 만들어낸 환영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가 여기 있을 리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는 지구 반대편만큼 먼 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가 너무도 나이들고 허약해 보였으므로 그를 알아보자마자 나는 그를 부축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을 정도였다. 미처 찻잔을 건네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기운을 잃고 천천히 쓰러지는 노인처럼, 그도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나는 혹시 착각한 것일까. 잠시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나는 그에게 다가가려고 걸음을 옮겼다.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 같으니, 그에게 말을 걸고 내가 누구인지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놀라워라, 조금 전까지 떨어지는 빗줄기 외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던 우체국 앞 광장 전체가 갑자기 청어 뼈 문양이 든 회색 외투 차림에 검은 펠트 모자를 쓴 남자들로 가득찬 듯 보였다. 그들은 모두 내게 살짝 구부정한 등을 보이며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 일정한 속도로 내게서 멀어지는 청어 뼈 문양의 회색 외투와 검은 펠트 모자들. 11월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돌이 깔린 포도는 미끄러웠고 모든 돌들은 비에 젖었다. 나는 머리카락과 얼굴에 떨어지는 비를 의식하지도 못한 채 광장을 빠르게 두 번 왕복하며 회색 외투를 입은 행인들의 모습을 살폈으나 그는 두 번 다시 보이지 않았다. 혹은 내가 그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르는 청어 뼈 문양이 든 회색 외투를 입은 남자는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청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 생선이나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는데, 특히 청어는 그 무엇보다도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길을 잃은 듯한 기분으로 나는 은행 건물의 모퉁이를 돌았고, (아마도) 방금 환자를 실은 구급차 한 대가 막 차 문을 닫고 사이렌을 울리며 출발하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네가 다른 사람을 나로 착각한 거겠지, 그건 나일 리가 없으니까.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착각이 당연한데, 하고 내 설명을 들은 체룹이 천천히 말했다. 그는 올해 11월에 자신이 이곳에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자신은 고향에 발걸음을 끊은 이후로, 오늘 이전에는 단 하루도 이 고장에 오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자신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이곳에 없었고, 11월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며, 게다가 나를 보러 올 리는 더더욱 없고, 다른 용무로 뮌헨과 같은 인근 도시를 방문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러기를 계획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러므로 당연히, 우리들에게 커다란 예외적인 사건인 오늘을 제외한 다른 모든 날들에, 단 한 번도 이곳에 있지 않았노라고.
그뿐 아니라 우체국 앞 광장에서 그를 마주치기 이전, 오후의 짧은 햇볕이 아직 따뜻하던 여름과 가을 사이의 어느 날에도 그를 보았다고, 나는 그의 반박을 개의치 않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를 보았다, 아니, 그를 들었다고. 나는 도서관 서가 구석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이 지역의 전설과 역사를 기록한 향토학 책이었다. 19세기에 강에서 백조를 죽이고 체포된 이방인 남자나 깊은 숲속에서 나타난다는 초록색 모자를 쓴 이끼 아가씨, 금식 주간에 개를 데리고 마을을 산책하면서 행여나 몰래 숨어서 춤추는 젊은이들이 있을까 집집마다 창문을 들여다보며 감시하고 다니던 가톨릭 신부, 곡물 창고의 연쇄 방화 사건 등을 나는 흥미롭게 읽었다. 방화범은 방앗간에서 일하던 젊은이였는데 불타지 않는 헛간만큼 견디기 힘든 존재는 없었다는 것이 방화의 이유라고 했다. 중세였다면 방화범은 예외 없이 화형에 처해졌겠지만 그 젊은이는 방화광 판정을 받고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고 한다. 도서관은 한산했고 서가는 거의 비어 있었다. 그때 그의 이름이 들렸다. 나는 서가를 지나가고 있는 누군가가, 책장에 가려 내게는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의 이름은 그 나이대의 남자들에게는 비교적 흔한 편일 수도 있고 그래서 그 이름이 반드시 내가 아는 그의 이름이라는 확신은 없지만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나는 잠시 귀를 기울이면서 앉아 있었으나 더이상 다른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서가의 문이 열리고 다시 닫히는 소리. 단지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인가 아니면 누군가 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메마른 한숨을 내쉬는가. 나는 향토학 책들을 그 자리에 둔 채 도서관 로비로 나왔다.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멀리서 작별인사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 도서관을 나가는 듯했다.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도서관 밖에 있었다. 바싹 마른 길에 물방울이 떨어져 있었다. 그가, 아니 그의 이름이 온몸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도서관 앞을 지나간 다음이었다. 나는 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걷는 한 키 큰 남자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남자는 혼자가 아니었다. 두 명의 경찰관이 그를 데려가고 있었다. 내가 들은 그것은 정말로 그의 이름이었을까. 그는 내 기억 속에서보다 키가 훨씬, 머리 하나만큼은 더 컸고, 비록 뒷모습이지만 무척 젊어 보였으며, 맨발이었다. 놀랍게도 등뒤로 모아진 그의 양 손목은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두 명의 경찰관이 양쪽에서 팔을 붙들고 그를 끌고 갔다. 도서관 옆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의 뒷모습에 쏠렸다. 강에서 백조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체포된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체룹’이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고 믿었다. 강이라면 꽤 떨어진 곳인데 어째서 하필이면 여기서 체포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내가 들었던 그의 이름은 경찰관이 백조를 살해한 범인을 부르는 소리였을까. 나는 고개를 돌려 멀리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래서 나는 알았다. 내 가슴은 크게 뛰었다. 조만간 그가 나를 찾아올 것이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그러나 한 번도 마음에서 떠난 적이 없던 사람이 갑작스러운 환영으로, 근원을 알 수 없는 목소리로 일순간 내 눈앞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앞으로 실제 일어날 만남에 대한 일종의 예언일 것이기 때문에. 그는 혼령처럼 불러내지고, 회귀될 것이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이것을 배웠다. 그런데 내 어머니가 그러한 회귀에 대해서 잘 알고 있거나 분명한 언어와 의도로 내게 전달한 건 아니었다. 어머니는 예언자도 무녀도 아니었다. 단지 어머니 자신도 알지 못하는 어떤 미래의 일을,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채로 내게 누설한 적이 있다는 의미이다. 나는 요람에 있었고 어머니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혹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방안에는 나와 어머니뿐이었고 대화의 상대방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손에 다리미를 들고 있었는데 그건 다리미가 아니라 전화기였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내 눈에 비친 다리미는 신기하게도 검은색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어머니는 아마도 다림질을 하던 도중에 혼잣말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아무도 자신을 지켜보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하면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리게 되는, 그런 나이였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상대편의 목소리는 없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딸을 낳으리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뿐 아니라 그 딸을 개인적으로 이미 알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태어난 내 얼굴을 보기도 전에,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먼저 내가 아직 뱃속에 생기기도 전부터 말이다. 그리고 이어진 어머니의 말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이미 알고 있다는 확신의 감정이 얼마나 강했는지, 심지어 아기가 아직 잉태조차 되지 않았을 때에도 우연히 길에서 미래의 아이를 마주치게 된다면 분명히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느꼈다고, 그렇게 어머니는 말했다. 어머니 자신뿐 아니라 아직 잉태되지도 않은 미래의 아기 또한 어머니를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소리 내어 웃었다. 바보 같은 말이라고 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내가 바보 같지.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마주칠 거라는 상상을 다 하다니.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와 서로 알아볼 거라고 생각하다니. 웃으면서 어머니는 뜨거운 다리미 혹은 전화기를 손에 든 채로 고개를 숙이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다리미의 열기가 이마에 느껴질 만큼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어느새 어머니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졌다. 나는 이 여자아이를 이미 알고 있어. 그것은 내게 말이 생겨나기도 전에 인식한 최초의 말이었다.
나는 샐러맨더의 눈을 갖게 되었어, 하고 내가 말했다. 어머니도 샐러맨더의 눈을 갖고 있었을까. 우리는 샐러맨더의 눈으로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 만약 어머니가, 오늘 아침 그가 그랬듯이, 여기 아래쪽 갈라진 숲길에서 자작나무가 서 있는 모퉁이를 돌고, 여름 거주지 오두막을 향해서 천천히 걸어올라온다면, 어머니는 죽은 지 한참이나 지난 다음이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를 발견할 것이다. 그녀를 알아볼 것이다. 나는 내가 그녀를 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약간의 의심도 없이 나는 그녀를 부를 것이다. 체룹은 내가 이미 오래전에 이곳을 떠났을 거라고, 약간의 의심도 없이 그렇게 믿고 있었다고 말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는 나를 떠났고, 그 자신이 나를 이곳에 상징적으로 감금한 사실은 잊었다. 내가 너를 감금하다니, 그럴 리가 없다고, 거짓 사실을 꾸며내지 말라고 그는 놀란 듯한 몸짓을 하며 항의했다. 그래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기름에 적신 빵을 먹으며, 그는 다시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메레, 왜 너는 아직도 여기에 있는 건지.
그가 언젠가 이곳을 찾아오리라고 믿고 있었으나, 나는 또한 그를 잊기도 했다. 마치 그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데 익숙해졌다는 의미이다. 그가 오지 않는다면 나는 여름 거주지라는 유형지에서 영영 해방될 길이 없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초조해하지 않고, 그곳에 앉았다. 나는 기다렸다. 부재하는 그를 받아들였다. 나는 항상 스스로의 삶을 산다고 믿었다. 그러나 믿음이란 또 얼마나 거짓말 같은지. 회의하지 않는 다른 많은 것들과 더불어. 매일 나는 두송나무 열매가 든 차를 마신다. 그가 떠난 후로 팔 년 혹은 그 이상 동안, 그 어디로도 가지 않고 여기 홀로 살았다고, 나는 말했다. (“왜냐고? 네가 나를 여기 감금했으니까, 나는 그것에 반대하지 않았고.”) 그동안 단 한 번도 퇴거를 요구당하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여기 머물렀다고 나는 말했다. 농가와 토지를 사들인 치과의사는 내 거주권을 인정해주었다고. (“M 부인의 막내아들인 체룹과 그의 배우자는 여름 거주지 소유권자와 무관하게, 일생 동안 여름 거주지 오두막에 거주할 권한―주거 공간으로서 여름 거주지의 배타적 사용권―을 갖는다.”) 부유한 치과의사가 거주권을 인정한 건 놀라운 일이라고 나중에 사람들은 말했다. 보통 건물의 소유자가 바뀌면 새로운 소유자는 값비싼 소송 등을 통해서 오래된 거주권을 소멸시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떠나기 전 체룹은 내게 말했다, 나중에 내가 여기 여름 거주지에서 죽으면, 죽은 팔 위쪽 숲에 있는 가족 묘지에 묻힐 거라고. 그것이 자신이 내게 내린 유배형의 완성이 될 거라고. 죽은 팔은 뱀처럼 구불구불 흐르던 곡류천이 홍수나 범람 혹은 오랜 세월에 걸친 강바닥이나 주변 토양의 침식작용으로 본류와의 연결이 끊어져 생긴 고요한 수역이다. 그것은 흐르지 않는 물길이 고여 죽어가는 버려진 하천이다. 작은 새들과 모기 그리고 끈적이는 진흙이 이룬 늪지이다. 한여름 많은 비가 내린 다음이면 죽은 팔 수역에 일시적으로 물이 차올랐다. 겨울이면 얕은 물이 고이는 늪지 초원이 형성되었다. 빽빽하게 우거진 수풀과 기묘하게 자라난 나무들, 숲 한가운데 넓게 펼쳐진 정지한 듯 고요한 그곳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의 하나이다. 강 주변에서 자주 산책을 했지만 나는 죽은 팔 가족 묘지에는 한 번도 들어가본 적이 없었다. 낮은 울타리 너머로 몇 개의 비석들이 십자가와 함께 서 있는 걸 보았을 뿐이다. 내 이름이 예약되어 있다는 가족 묘지의 서류는 보지 못했다. 오직 목소리의 형태로 들었을 뿐이다. 그건 체룹의 목소리였다.
그동안 체룹은 내게, 다른 무엇보다도 부재하는 간수였다. 그는 내게, 부재하는 수많은 눈이었다. 사자의 눈, 뱀의 눈, 나무옹이와 겨울의 눈, 이끼의 눈, 독수리의 눈을 모두 합한 눈이었다. 그는 나를 감시하는 케룹Cherub이었다. 그가 아무리 완강하게 부정한다고 해도, 그는 나의 형리였다. 설사 그가 나를 완전히 잊었고, 이제는 내게서 감시의 시선을 거둔 지 오래라고 해도, 그가 마련해둔 유형지에서 나는 계속해서 머문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가 아직도 이 집에 살고 있으리라고는 당연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가 여름 거주지를 찾은 건 나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었으며, 나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겠다는 기대나 의도 같은 건, 맹세컨대 당연히 꿈에서조차 없었노라고 했다.
여름 거주지는 절대적으로 고독한 장소다. 이웃이라고는 은둔자들이 전부인데, 사실 그들을 안다고 할 만큼 가까이 지내지 않으며 마주치거나 대화를 나눌 기회는 더더구나 거의 없다. 은둔자들은 사교적인 사람들이 아니었고, 나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배타적이라는 뜻은 아니며 나 또한 마찬가지다. 은둔자들은 간혹 여름 거주지 앞에 달걀이 든 바구니를 놓아두고 간다. 그들은 달걀을 먹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작은 채마밭과 토마토 온실을 갖고 있고 채소를 자급자족했다. 채소나 달걀을 판매하면 소소한 돈벌이가 되겠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인근 농가에서는 직접 기른 농작물과 우유, 직접 만든 치즈와 버터를 비교적 저렴하게 팔았고 매주 금요일엔 갓 도살된 신선한 쇠고기를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농가 상점은 조만간 문을 닫을지도 몰랐다. 시내에 대형 슈퍼마켓이 생긴데다가 이 지역의 인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시내의 병원과 학교도 몇 년 사이 문을 닫거나 더 먼 거리의 도시로 옮겨갔다. 하루 세 번 다니던 지선 버스도 두 번으로 줄었고 그마저도 날씨나 그 밖의 이유 때문에 아예 안 다니는 날이 많았다. 그러나 여름 거주지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려고 생각해본 적조차 없었다. 심지어 병이 들었을 때조차 나는 여름 거주지를 떠나지 않았다고, 나는 체룹에게 말했다. 기침약과 해열제를 먹고 민들레차와 뜨거운 수프를 마시면서 오랜 시간을 버텼다고. 나는 햇볕에 타고 앙상하게 말랐으며 피부는 나무껍질같이 주름지고 딱딱했고, 손톱과 머리카락은 회색으로 푸석푸석해졌다. 언젠가 내 뼈는 내부에서부터 소리 없이 바스라질 것이며 어금니는 피도 통증도 없이 잇몸에서 빠질 것이다. 바로 이곳, 체룹의 여름 거주지에서.
나는 변했다. 남들이 그럴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변했다. 그러나 나는 내 유형지, 앙상하고 차가운 여름 거주지를 떠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혹은 이곳에 살고 있는 한 외국인 여자가 바로 나라는 사실을 모른다. 종종 나이든 사람들은 여름 거주지에 살고 있는 이가 내가 아닌 체룹 혹은 체룹의 형제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들은 오래전에 이 헛간 오두막에 살았던 두 형제를 기억하고, 오두막에 여전히 인기척이 있다면 그건 형제 중 살아남은 한 명일 거라고 믿는 것이다. 형제 중 한 명이 몇 년 전에 죽었다는 사실은 알려졌다. 하지만 그것이 체룹인지 혹은 체룹의 형인지에 대해서는 혼동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이 아는 것은 단지, 한 형제는 일생 동안 외지를 떠돌았으며 다른 형제는 단 한 번도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놀랍게도 아직도 간혹 체룹에게 편지와 우편물들이 도착하곤 했다. 물론 우편물들은 은둔자들이 있는 농가 집으로 왔고 그들이 달걀 바구니와 함께 내게 전달해주었다. 원래 헛간이자 임시 거처로 지어진 여름 거주지엔 정식 주소가 없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가끔 책을 주문하곤 하지만 우편이 아니라 시내의 서점을 통해서이다. 서점으로 가서 원하는 책과 출판사를 알려주고 대신 주문하도록 하면 일주일쯤 후에 찾을 수 있다. 나는 그렇게 한다. 그의 우편물들은 광고지나 대학 동창회 소식지 등 크게 중요하지 않은, 단체로 발송되는 인쇄물이 대부분인데 아마도 오래전에 등록한 부모님 집의 주소를 갱신하지 않고 놓아둔 탓일 것이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먼 여행지에서 보낸 엽서가 도착하기도 했다. 친애하는 친구에게, 우리는 지금 유이스트섬의 모래언덕에서 북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소식을 들은 지도 무척 오래되었군요. 잘 지내기를 바라며. 당신의 A로부터. 나는 A가 누구인지 몰랐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예외적으로 단 한 번, 한 친구가 그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나는 그것이 개인적인 편지인 것을 알았고, 그래서 그 자리에서 당장 봉투를 뜯었다. 편지를 쓴 사람은 이 년 동안 그와 함께 기숙학교를 다녔고 학교를 떠난 이후 일생 동안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던 중 신문에서 우연히 그에 관한 기사를 읽게 되었고 반가운 마음에 편지를 쓴다고 했다. 다행히도 자신의 집에 오래전 학창시절의 주소록이 남아 있어서 그 주소로 편지를 보내는 거라고. 그는 썼다, 이 편지가 체룹에게 가닿을 수 있을지 자신은 확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이렇게 시도를 해보고 싶었노라고, 자신은 작년에 심근경색을 앓았고 올해는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그의 어린 시절 꿈은 파일럿이었으나 이루지 못했고 부모님의 여관 겸 식당을 이어받아 운영하다가 지금은 조카에게 물려준 상태이다, 그는 수도원 기숙학교에 다닐 때 가톨릭 수도사들에게 부적절한 성적 학대를 받았고 작년에 그 일을 상세하게 기술하여 주교에게 항의 편지를 써 보냈더니 몇 달 뒤 보상금을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으나 슬프게도 스무 살 젊은 날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십여 년 전 사별한 이후 그는 혼자다, 이제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연락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의 수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늦더라도 소식을 들려준다면 좋겠다, 기다리고 있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편지를 지금이라도 체룹에게 전해주어야 옳겠지만 아쉽게도 편지의 행방은 기억나지 않았다. 편지를 버리지는 않았으니 주방의 찬장 구석이나 책장 뒤편, 다락방의 궤짝 어딘가에 들어 있겠지만 그것을 당장 찾아 헤맬 자신이 없었다다. 늦더라도 소식을 들려준다면 좋겠다, 기다리고 있겠다고 친구는 썼다.
나는 그를 정말로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그 대답을 나는 원하지 않는다. 어떤 대답도 나는 듣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그가 돌아올 것을 기대했던가? 그걸 바랐던가? 어떤 대답도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두려워한 대답이 있다. 그는 내가 죽기를 바랐던 걸까. 더욱 두려운 것은, 나는 그가 죽기를 바랐던 걸까. 우리, 잠재적인 살인자이나 결코 살인을 실제로 저지르지는 않는 이들은 살인 대신 더 큰 욕망을 남몰래 품고 산다. 한때 나는 그가 죽기를 바란 적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그를 증오하거나 원한을 품었다는 뜻은 절대 아니며, 도리어 그 반대이다. 사람들이 흔히 짐작하는 것과는 달리 죽음은 증오나 원한과는 무관하며, 도리어 그 반대이다. 아마 그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는 피곤해 보였다. 짙게 그늘진 눈가는 음울해 보이기도 했다. 그는 나이들고 지쳤다.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는데, 살짝 거무스름해진 새끼손가락의 손톱이 눈에 띄었다. 지난밤은 끔찍했다고 했다. 여행은 길었고, 휴스턴을 거쳐 뮌헨으로 오는 비행은 거의 스물네 시간이 걸렸으며, 그는 한숨도 자지 못했고 한 가지 생각도 온전히 끝까지 이어나갈 수가 없었노라고 했다. 기차에서 맞은편에 앉은 여자가 종이 타월을 내밀었는데, 그제서야 자신이 코피를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고 했다. 공증인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놀라워라, 지금도 여전히 어디에선가 우리의 소식을 기다리는 이가 있다니.
그는 천천히 빵을 손으로 뜯어 입에 넣고 씹었다. 프라이팬에 구워 충분한 기름과 소금을 뿌린 빵이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음식을 즐기는 자의 그것은 아니었다. 마치 나뭇잎을 씹는 것처럼 그는 빵을 먹었다. 그의 눈빛은 불 꺼진 창과 같았다. 그 안에서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우리의 기억이 조금 다르다고 해도 그는 과거의 일을 명확히 하기 위해 나와 논쟁을 벌이고 싶은 생각은 없어 보였다. 세월이 흘렀고, 누구에게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 반드시 말해져야 할 만큼 중요하거나 결정적인 일은 없었다. 혹은 반대로 침묵하거나 망각되어야 할 만큼 사소하고 무의미한 일 또한 없었다. 편지는 그 사이에 있는 언어이다. 낡은 지갑 속 몇 장의 지폐와 갱신 시기를 넘긴 흐릿한 신분증, 발등을 옥죄는 구두와 마흔여덟 시간 동안 갈아 신지 못한 양말, 우리가 소유한 세계는 불 꺼진 창과 같았다. 나는 오래전 그의 어린 시절 기숙학교 친구가 보내온 편지를 읽었고, 어쩌면 그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언젠가 이곳으로 돌아오리라고 전제할 경우, 친구는 살아 있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고, 그래서 그를 대신해 내가 직접 답장을 써 보내야 하는 건 아닐까 잠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나는 ‘친애하는 친구에게’라고 그를 부를 것이다. 친애하는 친구에게, 나는 이곳에 살지 않지만, 나를 아는 한 목소리가 나를 대신하여 지금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아니, 내가 그를 대리하는 목소리라는 사실을 굳이 밝힐 필요도 없다. 타이프라이터를 사용하면 친구는 이 편지를 체룹이 아닌 내가 썼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혹은 아예 처음부터 친구는 열 살도 되기 이전에 함께 학교를 다녔던 체룹의 필체 따위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이미 그 답장을 쓰기 시작했고, 게다가 완성한 편지를 부쳐버렸다고 그에게 고백해야 하리라. 체룹, 나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여관 주인의 아들이던 오래전 학교 친구가 이런저런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는데, 나는 그 편지가 어디 있는지 지금 찾을 수 없다고. 그리고 어쩌면 이걸 고백해야할 것 같은데, 아마도 나는 그의 이름으로 그를 대신하여 편지에 답장을 보냈던 것 같다고. 그 또한 이미 여러 해 전의 일이며 친구로부터는 더이상 소식은 없었노라고. 그러나 체룹은, 나와 마찬가지로 전혀 논쟁을 좋아하지 않았다. 세상의 그 무엇도 논쟁을 벌일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논쟁 없이 행할 수 있는 일을 좋아했고, 그래서 시인이 되었다. 게다가 여관 주인의 아들이며 그 자신도 여관과 식당을 운영하다가 은퇴했다는 아무개는 학교에서 그와 가장 사이가 나빴던 개자식이었고, 더 정확히는 교실 뒷자리에서 기회만 있으면 자신의 뒤통수를 후려치면서 즐거워하던 놈이었다고. 그 이외에 다른 기억은 전혀 없으며, 당연히 꿈에서라도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인물이라고 했다. 논쟁을, 특히 과거에 관한 해답 없는 논쟁을 좋아하지 않는 그는 단지 의아한 얼굴로 물었을 뿐이다. 그런데 메레, 왜 너는 아직도 여기에 있는 건지.